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87
487회. 술잔이 식기 전에
천운도관에서 일어난 일들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 나갔다.
신도들 사이에서 전진파보다 무당파가 더 영험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비록 복을 비는 대상은 같지만, 도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천운도관의 관주가 귀신 들린 소년에게 목을 잡혀 기절한 일은 수치를 넘어, 치명타였다.
잘나가던 천운도관은 유교원의 일을 계기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누군가 추락하면 누군가는 떠오르는 법.
천운도관을 발판 삼아 백운도관이 여강현 최고의 도관으로 솟아올랐다.
여강현이 천운도관과 백운도관의 일로 들썩거렸지만 정작 석경장은 조용했다.
***
여강현.
석경장.
연무장.
금아와 비무를 마치고 검을 갈무리하던 월아가 구천노도에게 물었다.
“스승님, 사조께서 귀신을 물리쳤다면서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일꾼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요. 요즘은 모이면 그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렇지 금 사매?”
“맞아요. 저도 여러 번 들었어요. 사조님의 법력이 천운도관 관주보다 훨씬 높으시다고. 그러고 보면 무당파 술법이 대단한가 봐요?”
“흥! 네 사조님은 무당파 제자가 되시기 전에도 도력이 뛰어나셨다. 무당파 술법은 그저 범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뿐이다.”
금아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무당파 제자가 되시기 전에도 도력이 뛰어나셨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희는 그새 사조님의 스승이 누군지 잊었느냐?”
“구천현녀님요!”
스승의 힐난에 월아과 금아가 얼른 한목소리로 답했다.
“이제 알겠느냐?”
“예!”
“예!”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월아와 금아는 격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심통이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자 월아가 재차 물었다.
“스승님도 사조께서 귀신을 물리치는 거 보셨어요?”
“귀신은…….”
심통은 잠시 머뭇거렸다.
솔직히 그는 귀신 들린 걸 믿지 않았다.
대부분의 마두들도 그럴 것이다.
죽으면 귀신이 되고, 업보가 따라 다닌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나쁜 짓을 하겠는가.
천하의 마두들은 오늘도 죽으면 끝이라고 여기며 화끈하게 살아간다.
물론 심통의 경우 연적하를 만난 이후 심경에 변화가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물 한정이다.
마물은 눈에 보이니까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귀신으로 넘어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유교원의 머리에 이상이 생겨 미친 짓을 했었다고 생각했다.
흑운은 술사도 만들 수 있으니 귀신과 관계없다고.
“귀신이라기보다는 잠깐 정신이 오락가락한 애새끼를 고쳐 주신 게다.”
“이상하다. 다들 귀신이라고 하던데.”
“너희들, 귀신 본 적 있느냐?”
심통의 물음에 월아와 금아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없는데요?”
“그래. 본래 귀신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허상에 불과하다. 마음이 약하면 귀신이 보이고, 강하면 보이지 않지. ‘의심하는 마음이 귀신을 만들어 낸다[疑心暗鬼]’고 하지 않더냐.”
월아와 금아는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꾼들의 말과는 조금 달랐지만 감히 스승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연무를 마친 월아와 금아는 집안일을 돕기 위해 안채로 갔지만, 심통은 오우촌 호반(湖畔)의 주루 개축 공사 현장으로 나갔다.
서각(書閣).
남궁연은 서각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유명교에 빼앗길 게 거의 확실한 고서를 다시 한번 읽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이미 외워 버린 그녀다.
그러니 지금은 ‘글자를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게 맞았다.
그녀의 옆에는 연적하가 책을 베고 잠들어 있다.
목이 뻐근할 때까지 낮잠을 자던 연적하는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신발을 신으며 힐금 보니 남궁연은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얼굴이다.
그는 조용히 약제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삼보절명 당운망은 금창약 제조에 빠져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는 일 없이 안채를 오락가락하는 그의 눈에 월아와 금아가 보였다.
“얘들아, 너희 스승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연적하의 물음에 월아가 바로 답했다.
“스승님은 오우촌으로 가셨는데요?”
“오우촌?”
“예, 주루로 나온 건물이 없어서 집을 고쳐 쓰기로 했거든요.”
“아하. 알겠다.”
연적하는 오우촌으로 어슬렁어슬렁 발길을 돌렸다.
오우촌.
연적하는 한 식경(약 30분)쯤 걸어 호숫가에 도착했다.
심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니 호숫가 가까이 제법 널찍한 집에 목수들이 바글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무 그늘에 심통이 돗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 늙은이가 혼자서 살판났네?”
연적하가 다가가자 심통이 실실 웃으며 잔을 권했다.
“흐흐, 일하는 놈들이 농땡이를 칠까 봐 겸사겸사 나와 있는 겁니다. 한잔하시지요?”
연적하는 못 이기는 척 그 옆에 주저앉아 잔을 받았다.
“사모님과 계시지 않고 왜 나오셨습니까? 두 분이 서각에 계신 걸 보고 방해가 될까 봐 피해 드렸는데.”
“누님이 독서 삼매경이라 슬쩍 나왔어. 내가 책하고는 별로 안 친하잖아.”
“아니, 책하고 친하지도 않으신 분이 서각에는 왜…… 아! 좋을 때이십니다. 흐흐.”
“좋을 때인데 왜 이렇게 심심한지 모르겠네.”
“복에 겨워 그러시는 겁니다. 공자님도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심심하던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런지도 모르지.”
연적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자신의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집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심심한 건 심심한 거다.
행복하니까 심심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책만 있어도 즐거운 남궁연과 달리 자신은 좀 살랑살랑 돌아다녀야 한다.
십두마병들을 척살하러 다닐 때처럼 몸이 축날 정도는 아니고, 그제 가볍게?
그러니까 석경장에서 오우촌의 호숫가 거리 정도로.
심통이 호숫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보다 더 좋은 날도 없을 겁니다. 불안할 정도로 좋아서 걱정입니다.”
“좋으면 좋은 거지 무슨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좋아서 불안하다니.”
“‘태풍 전의 고요’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괜찮아. 우리는 뭍에서 살고 있으니까. 배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공자님, 혹시 농담이라고 하신 겁니까?”
“뭐가?”
“아, 아닙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연적하를 보며 심통은 딴청을 했다.
그는 종종 상대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창고에서 십 년이나 갇혀 지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뭐야? 실없게.”
“바늘은 있고요?”
심통이 가볍게 받아쳤다.
한물간 농담인데 자라면서 그런 걸 접해 보지 않은 연적하는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연적하와 심통이 풍광 좋은 곳에서 노닥거리고 있을 때, 전신으로 음험한 기운을 풀풀 내뿜는 남자가 석경장의 대문 앞에 섰다.
그는 ‘석경장’이라 적힌 편액을 한 번 올려다본 후, 정중하게 문을 두드렸다.
***
사천성.
성도.
당가.
무상각.
가주의 집무실에 다섯 사람이 모였다.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와 총관 경신읍귀 당유담과 출행(出行)에서 돌아온 호법당 당주 귀혼산수 당자안, 내각 장로 당기로, 단장월녀 당하연이다.
“……그래서 반도(叛徒) 당운망을 두고 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전무후는 ‘당운망에게 용무가 있으면 먼저 연 장주를 찾아올 것이며, 누구라도 석경장의 식솔을 건드리면 열 배로 돌려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내각 장로 당기로가 참담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그의 보고가 끝난 뒤로 한동안 당가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내용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서다.
당가의 호법당 당주 앞에서 당가의 반도를 식솔로 받아들인 것도 기가 막히는데, 건드리면 열 배로 돌려주겠다고 협박까지 하다니?
“험, 험, 정말 십전무후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는 거요?”
가주와 가솔들의 다리 역할인 당유담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녹림의 연적하라면 모를까?
강호 정세를 훤히 꿰고 있는 십전무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다.
당기로가 한 자 한 자 분명하게 말했다.
“분명히 그 말을 한 사람은 십전무후였소.”
“허어!”
당유담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연적하가 그랬다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녹림은 본래 생각 없이 말하니까.
그러나 십전무후는 다르다.
그녀는 감정과 담을 쌓은 사람이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계산되지 않은 건 없다.
십전무후가 그랬다면 둘 중 하나다.
당가를 무력으로 찍어 누를 자신이 있든지, 당가가 호구로 보였든지.
어느 경우는 당가의 일원으로 기분이 더럽고 불쾌했다.
가주인 당세호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자네들은 십전무후가 왜 당운망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가?”
노회(老會)한 당세호는 당가에서 당운망으로 화제를 살짝 비틀었다.
‘당가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정도로 십전무후에게 당운망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해서다.
당가의 총관이자 지략가인 당유담이 답했다.
“우리 당가의 독공은 천하제일입니다. 유명교 팔황과 십두마병조차 당해 내지 못하고 달아날 정도로 말입니다. 석경장을 지키는 인원은 고작 넷에 불과합니다. 유명교와의 싸움을 생각하면 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겠지요. 당가와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당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신읍귀(驚神位鬼, 신이 놀라고 귀신도 운다)’다운 정확한 분석이군. 비록 당가의 반도라 할지라도, 꼭 필요하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 당장 석경장도 살아야 할 테니까.”
“이제 어찌하시겠습니까?”
총관의 질문에 당세호가 되물었다.
“십전무후가 당면한 위기 앞에서 이성을 잃고 우리 당가를 능멸했네.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 했습니다. 석경장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니 유명교의 일로 동정이나 연민을 가질 때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허면 치자? 석경장의 뒤에 남궁세 가가 있음을 잊었는가?”
모르는 사람은 반박하는 것으로 생각할 테지만 당유담은 알고 있었다.
저건 단지 ‘남궁세가에 대한 대책이 있느냐?’는 소리였다.
“싸움은 남궁세가에서 끼어들기 전에 끝날 겁니다. 남궁세가에서 석경장은 하루 거리이니, 검왕이 알게 될 즈음이면 이미 싸움이 끝난 뒤입니다.”
“끝난 뒤에는? 설마 검왕과 원수로 지낼 생각은 아니겠지?”
“석경장을 독으로 제압하고 당운망만 죽이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당운망이 죽고 나면 십전무후와 연적하도 결과에 승복할 겁니다. 중독도 문제지만 본가와 싸워서 얻을 게 없으니까요. 그때 해약을 주고 사천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본가와 석경장이 한 번씩 주고받은 셈이니 검왕도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럴듯하군.”
당세호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당가와 남궁세가 모두 ‘호천맹’에 속해 있으니 검왕도 함부로 날뛰지 못할 터였다.
그대로 결론이 나는 듯하자 호법당 당주 당자안이 끼어들었다.
“십전무후와 남천의 조합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팔황와 십두 마병들의 실패를…….”
당세호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만. 유명교에서 본가에 항의를 할 정도로 독이 큰 역할을 했네. 고작 반도 하나가 쓴 독이 그 정도였는데, 본가의 정예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도 관우처럼 술잔이 식기 전에 석경장을 점령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