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88
488회. 귀신이 곡할 노릇
당가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는 관우의 예까지 들어 가며 호언장담했다.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석경장의 고수는 고작 네 명.
당가의 정예가 몰려가면 싸움이 장기전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당가의 싸움은 항상 속전속결이었다.
평생 독만 파 온 만큼 제압하지 못하면 도리어 제압당하기 때문이다.
가주인 당세호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호법당 당주 귀혼산수 당자안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연적하에게 얻어맞은 내각 장로 당기로는 시종일관 침묵했다.
더 이상 이견이 없자 당세호는 회의를 끝냈다.
잠시 후 장녀인 단장월녀 당하연만 남기고 모두 물러갔다.
“고생했다. 십전무후와 남천은 만나 보았느냐?”
당가도 호천맹에 속한지라 연적하보다는 십전무후를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당세호의 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네.”
“어떻더냐? 기대를 꽤 하더니만.”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흠! 잘 모르겠다라…….”
당세호는 딸의 안목이 아직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대부분의 경우 눈빛만 봐도 상대의 경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로구나.”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당하연은 부친의 말을 부인했다.
객청에서 연적하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당운망이 나타났다.
그 뒤로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석경장 밖이었다.
“그래도 놀랄 만한 게 있더냐?”
“십전무후요.”
“십전무후라면 그럴 만도 하지.”
당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십전무후 남궁연이라면 안목의 고하를 막론하고 탄복할 만했다.
“기이한 검공을 보았어요.”
“어떻기에?”
“내각의 당 숙부께서 당운망에게 암암리에 독을 쓰셨거든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번개가 쳐서 독을 다 태워 버렸어요. 뒤이어 십전무후가 검을 들고 나오더라고요. 검술로 번개가 치다니……. 그건…….”
“‘검의발현(劍意發現)’을 보았구나.”
“그건 절대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게 아닌가요?”
검공의 극에 이르면 ‘검의’를 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검의발현’이다.
화산파 제자라면 매화(梅花)가 흩날릴 테고, 무당파 제자라면 태극(太極)이 나타난다.
‘검의 발현’은 ‘절대지경’의 초입이었다.
“그녀의 별호가 ‘십전무후’라는 걸 잊었느냐?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머리만 좋은 줄 아는데, 이미 천지맹 시절부터 ‘무후(武后)’로 불렸느니라.”
“하아! 세상 불공평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칠파일문 장문인들도 대부분 ‘절세지경’을 벗어나지 못했건만.”
당세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검공의 경지는 방파마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예컨대 외부로 ‘검기’를 발출하면 그때부터 ‘절정고수’라고 한다.
절정고수를 대표하는 단어가 ‘검기상인’, 즉 ‘검기’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경지다.
그보다 더 ‘검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면, ‘검기’로 ‘점혈’까지도 가능해진다.
‘검기’를 발출해 ‘점혈’이 가능한 경지를 ‘절세’라 한다.
‘절세’는 누구라도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알려져 있다.
그다음부터는 ‘깨달음의 영역’으로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가능하다.
깨달음이 바탕이다 보니 뛰어난 검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꿈도 꿀 수 없다.
‘절대자’라 불리는 ‘절대지경’이 그것이다.
검법에 담긴 뜻, 즉 ‘검의’를 발현하면 비로소 ‘절대지경’에 발을 걸쳤다고 볼 수 있다.
‘절대지경’의 완성은 ‘형상화’한 ‘검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의형검기’다.
‘절대지경’ 이후는 상상의 영역이라 설화인(说话人, 전문 이야기꾼)들도 취급하지 않았다.
“십전무후가 ‘절대지경’이어도 문제가 없을까요?”
당하연이 착잡한 눈으로 부친을 보았다.
그러나 당세호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만약 문제가 될 정도라면 호법당 당주와 내각 장로가 십전무후의 무위를 따로 언급했을 게다.”
“그래도…….”
“게다가 ‘절대지경’의 고수라 해도 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 당가가 무림 세가로 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지.”
“절대삼기(絶對三機)가 있다면 그렇겠지만…….”
당가 궁극의 암기인 ‘만천화우’, ‘낙월독정’, ‘천지황엽’을 ‘절대삼기’라 한다.
그녀가 아는 한 현재 당가에 ‘절대삼기’를 연성한 사람은 없었다.
“너는 본가에 ‘절대삼기’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있어요?”
당하연이 의아한 눈으로 부친을 보았다.
외각 제자 삼보절명 당운망이 ‘백팔독정’을 훔쳐 달아났으니 ‘낙월독정’은 연성 불가.
남은 건 ‘만천화우’와 ‘천지황엽’인데 그걸 연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다.
“내가 ‘천지황엽’의 연성에 성공했느니라.”
“예? 정말요?”
당하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천지황엽’을 연성하려면 ‘백팔독정’이나 그에 버금가는 독물(毒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한 당가에 있던 것은 ‘백팔독정’이 전부였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연성한 지 몇 해 되었지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아! 감축드려요.”
당하연은 부친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절대삼기’를 연성했으니 그런 것이었다.
그때 문득 당운망의 말이 떠올랐다.
-너 이년! 어디서 거짓말이냐! 당세호가 백팔독으로 ‘낙월독정’을 연성하다가 실패한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걸 내가 훔쳐갔다고 뒤집어씌워? 네년은 누군데 뻔뻔하게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냐!
그때 당운망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혹시 도둑맞았다는 백팔독정으로 천지황엽을 연성하신 건 아닐까?’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 냈다.
다른 건 몰라도 부친이 외각 제자를 도둑으로 몰 이유가 없어서다.
***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은 해거름 무렵에야 어슬렁어슬렁 석경장으로 돌아갔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문지기 소삼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쿠! 이제 오십니까?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온 지 한참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손님?”
“예, 유명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유명교’라는 말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심심할 정도로 평화롭던 날들도 다 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제쯤 왔어요?”
“그때가 아마 신시 정(오후 4시)쯤 되었을 겁니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유시 말(오후 7시)이니 제법 오래 기다리게 한 셈이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약제당의 당 어르신과 함께 약제당에 있습니다.”
듣고 있던 심통이 한마디 했다.
“그래도 밥값은 하는 늙은이로군.”
확실히 당운망이라면 유명교 고수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었다.
연적하와 심통은 부랴부랴 객청으로 걸음을 옮겼다.
객청.
환영신마 웅재귀의 수하인 귀검절영 여음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운망이 뒤늦게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려 하자 연적하가 손을 저었다.
“앉아, 앉아. 뭐 번거롭게 일어나고 그래.”
당운망은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하지만 여음도는 엉거주춤 서서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연적하가 앉는 것을 본 뒤에야 비로소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유명교에서 왔다고?”
“예, 귀검절영 여음도라 합니다.”
유명교 십두마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을 내리깔고 설설 기었다.
과거 연적하가 십두마병들을 척살하고 다닌 탓이다.
연적하는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교주가 뭐래?”
연적하의 불경스러운 말에 여음도는 흠칫했지만 못 들은 척 답했다.
“연 장주께서 직접 가지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직접? 싫다면?”
“그럼 석경장은 물론 남궁세가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제가 아닌 교주님의 뜻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여음도는 가급적 연적하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꼭 내가 들고 가야 한다?”
“그렇습니다.”
“젠장. 알았어. 내가 가져다준다고 해.”
“그럼, 이만.”
말과 함께 여음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연적하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벌써 가게?”
“교주님께 연 장주님의 대답을 전해 드려야 하니까요.”
“그냥 가면 섭하지. 잠깐 앉아 봐.”
“…….”
연적하가 잡자 여음도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심통과 당운망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음도와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여음도는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 속이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적월 공취산 알아? 몰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됐어?”
“…….”
여음도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연적하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지 못해서다.
“살았어? 죽었어?”
그제야 여음도는 연적하가 적월의 생사에 관심이 있음을 알았다.
“배교자 적월은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제물?”
“그렇습니다. 교주님께서 그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죽였다는 소리네?”
연적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명교 인신공양의 과정을 아는 터라 보지 않아도 훤하게 그려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말로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유명교 제사를 모르는 줄 알아?”
연적하가 불쾌한 눈으로 노려보자 여음도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교주님의 제사를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의 제사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목을 자르는 게 아니야?”
“예.”
여음도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십두마병들 사이에서 교주의 제사는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다.
“그래서 살아 있다고?”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모릅니다.”
“왜 몰라?”
“교주님의 제사에서는 제물이 사라지고, 그 대신 이상한 게 생겨난다고 합니다.”
“제물이 사라지고 이상한 게 생겨나?”
“예.”
그러자 듣고 있던 심통이 중얼거렸다.
“저게 말이야 방귀야? 사람 말인데 왜 이렇게 알아먹기가 어렵지?”
“어렵긴 개뿔. 제물이 사라지고 이상한 게 생겼다지 않느냐.”
심통과 앙숙인 당운망이 바로 딴지를 걸었다.
그러나 심통은 당운망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눈길도 주지 않았다.
울컥한 당운망에 한 소리 하려는 순간, 연적하가 말했다.
“적월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리야?”
“예, 그렇습니다. 적월이 사라지고 대신에 ‘흑기사’가 나타났습니다.”
“흑기사?”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여음도를 보았다.
점입가경이라더니, ‘흑기사’는 또 뭐란 말인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연적하의 귓가로 심통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자님, 교주가 이번에는 ‘마물’ 대신 ‘흑기사’를 불러낸 모양입니다. 그런데 적월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러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연적하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 뒤로 적월을 본 사람이 있어?”
“없습니다.”
여음도는 조금도 감추지 않고 연적하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교주가 그를 찾아 오라고 안 해?”
“그런 적 없습니다.”
“어? 그럼 정말 풍지산에 없다는 건데. 묘하군, 묘해.”
연적하는 여음도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기야 적월의 생사를 두고 유명교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생사불명이라니 마음이 가벼워져야 하는데, 왜 여전히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