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54
554회. 구회일, 천지종 최고의 기재
구회일은 한산주 사람으로 천지종의 제자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입문한 그는, 십 년 후 ‘원영’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날에는 천지종이 들썩거렸다.
스물둘이면 ‘연단’이 보통인데, 그 보다 두 단계나 위인 ‘원영’에 도달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뒤로 그는 ‘천지종 최고의 기재’로 불렸다.
천지종에서는 구회일이 언젠가 종사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인선(人仙)인 ‘독요’는 물론 지선(至仙)인 ‘현인’들까지 그를 탐냈다.
하지만 결국은 ‘현인’의 제자가 되어 비천봉에 칩거함으로 기억 뒤편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오 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원영 삼 성(三成)’에 도달했다.
‘원영’의 고수라 해도 구십 년쯤 걸릴 일을 오 년 만에 해냈으니 기재는 기재다.
비교 불가능한 성취에 그는 점점 자존광대(自尊廣大)한 사람으로 변해 갔다.
‘독요’와 ‘현인’들이 그를 볼 때마다 종사가 될 것이라고 한 것도 한 몫했다.
설상가상으로, 열두 살에 입산해 십오 년을 천지종 고수들과 지낸 그의 성정(性情)은 평범하지 않았다.
많은 종문 제자들이 보통 사람을 그저 축생(畜生)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생각한다.
천지종에서 자라다시피 한 구회일도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다.
서문의 관병이 창끝을 들이대자 망설이지 않고 베어 버린 것도 그래서다.
물론 이곳이 한산주였다면 죽이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관병을 참수한 그는 태연자약하게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소요종의 종산이 있는 수미성이라면 모를까?
구주의 종문제자들에게 종문에서 직접 관리하지 않는 성들은 사실상 뒷마당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소요종과 원한 관계에 있는 천지종의 구회일도 서두르지 않았다.
속세를 출입하는 종문제자들 대부분이 ‘연허’와 ‘연단’이라는 것도 느긋한 이유 중 하나였다.
구회일 같은 ‘반선(半仙, 원영)’들에게 속세는 털어 버려야 할 먼지에 불과했다.
사실 ‘반선’이면서-그것도 한겨울에-구주를 돌아다니는 구회일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구회일의 눈에 다래원(多來院)이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크고 화려한 만큼 맛도 괜찮으리라.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다래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점심때가 가까워서 그런지 내부는 음식 냄새로 진동을 했다.
식당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겠지만, 선민의식이 남다른 구회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 이 층으로 올라가시면 전망이 좋고 쾌적합니다. 그리로 모실까요?”
구회일이 말하기도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은 구회일의 어깨 위로 튀어나온 검 손잡이를 힐끔 보고 조심조심 이 층으로 올라갔다.
정오가 넘어가자 다래원으로 하나둘 손님이 찾아왔다.
그래도 한겨울이라 유동 인구가 적은 탓에 절반은 빈자리였다. 한가한 다래원의 문을 열고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동문의 자경단원들이다.
나른한 얼굴로 계산대를 지키고 있던 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 나왔다.
“어서 오십쇼!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겨울에 가장 큰 손님은 자경단원이 초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관병과 달리 자경단은 식당에서 사 먹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겨울만큼은 자경단이 가장 큰 손님이었다.
그들이 목숨 걸고 도시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동문의 자경단 조장 강수성이 일 층을 휘휘 둘러보았다.
서두른다고 했는데 늦었는지 전망 좋은 창가 쪽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쩝, 같이 앉아서 먹지. 한 사람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건 뭐야.’
강수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기껏 ‘분위기 좋고 맛도 좋은 곳이 있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아쉽게 됐다.
그가 마뜩잖은 얼굴을 하자 주인이 슬쩍 한마디 했다.
“강 대협, 이 층은 자리가 좀 널널합니다.”
“대신에 간단한 식사가 아니라 정식으로 요리를 시켜야 하지 않소?”
이 층은 전망이 좋고 쾌적한 대신 자릿세로 비싼 요리를 주문해야 했다.
강수성은 그걸 지적한 것이었다.
“어이쿠! 별말씀을요. 자경단 분들에게도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저를 욕할 겁니다. 오늘은 제가 특별히 이 층으로 모시겠습니다. 마음 편히 식사하십시오.”
주인은 ‘오늘’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
다음부터는 규칙대로 이용해 달라는 뜻이다.
주인이 그렇게까지 권유하자 강수성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럽시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샐샐 웃던 주인이 앞장서서 이 층 계단을 올랐다.
그의 뒤를 강수성과 공지섭, 천산월, 연적하, 공지유가 따라갔다.
다래원 이 층.
창가 쪽 두 개의 자리 중 하나에는 청년 하나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은 청년의 옆자리로 자경단원들을 안내하고, 주문까지 받은 뒤에 돌아갔다.
자리에 앉기 전 강수성은 옆자리를 힐끔 보았다.
분명히 혼자 온 것 같은데 탁자 위에 값비싼 요리가 가득했다.
‘돈이 많은 건가? 아니면…….’
강수성은 청년의 어깨 위로 삐죽이 솟은 검 손잡이를 보았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이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청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청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 강수성은 웃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남다른 친화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시비를 일으키지 말라는 본능의 경고에 충실하게 따른 것이었다.
순간 재밌다는 듯 청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청년이 미소를 지어 보이자 강수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자리에 앉고 난 뒤에도 강수성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마치 등 뒤에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오싹한 느낌이다.
굳어 있는 그에게 연적하가 물었다.
“조장님, 똥 마려워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한 사람처럼.”
“그냥, 뭐 하나 이룩한 거 없이 오래 살았다 싶어서요.”
고작 이십 대 중반의 청년에게 겁 먹은 걸 생각하면 그런 회한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요? 소이문의 장로님이시라면서요. 그 정도면 성공한 거 아니에요?”
연적하의 위로에 강수성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습니다.”
때마침 국수와 국밥이 나왔다.
강수성 일행은 각자가 주문한 음식을 앞에 놓고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이 층으로 사람들이 올라왔다.
무심코 계단으로 고개를 돌렸던 강수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산음현에서 악명 높은 귀문방의 방도들이었다.
그가 만약 소이문 사람들과 있었다면 서둘러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귀문방은 소이문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방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현천문도들은 물론 연적하까지 함께 있는데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강수성은 느긋한 얼굴로 밑바닥에 고인 국물을 알뜰하게 떠먹었다.
한편 강수성을 발견한 귀문방 방주 오불괴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소이문도였으면 벌써 다가가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천문의 공지섭과 천산월이다.
산음현에서 현천문과 척을 지고 세를 확장하기는 어렵다.
결국 오불괴는 강수성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개가 똥을 끊지는 못한다.
그의 눈이 이번에는 혼자 식사 중인 청년에게로 향했다.
고작 이십 대로 보이는 놈이 전망 좋은 자리에, 푸짐하게 차려 놓고, 혼자서 처먹고 있다?
깨작거리는 걸 보니 저걸 다 먹고 일어나려면 못해도 반 시진(1시간)은 더 걸리겠다.
청년의 자리가 마음에 든 오불괴는 부방주 석견에게 턱짓을 보냈다.
‘저 어린놈을 빨리 치우라고.’
석견이 청년, 구회일의 옆으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이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다니 양심이 없는 놈이로구나! 이 몸은 귀문방의 석견이라고 한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의 누군지 정체를 밝혀라!”
우아하게 닭다리를 들고 뜯어 먹던 구회일이 살짝 얼굴을 돌렸다.
“풋!”
제삿날을 받아 놓은 줄 모르고 눈에 힘주고 선 사내를 보니 웃음부터 났다.
“어쭈? 우습냐?”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석견이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이마 정중앙에 닭 뼈가 깊게 박혀 있었다.
“…….”
오불괴를 비롯한 귀문방 방도들은 한순간 말을 잊고 눈만 끔뻑거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불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 대협, 제 수하가 대협께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구회일은 대답하지 않고 젓가락만 놀렸다.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귀문방도 하나가 다시 모로 넘어갔다.
풀썩.
그의 이마에 가지처럼 나무젓가락이 돋아나 있었다.
이제 살아남은 귀문방도는 둘.
오불괴와 그의 수하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바쁘게 눈알만 굴렸다.
사람이 둘이나 죽어 나가자 강수성과 현천문 고수들도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강수성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 험.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십시다.”
“그럴까요?”
말과 함께 천산월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었을 때다.
굳게 닫혀 있던 청년의 입이 열렸다.
“자경단이라고?”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강수성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답했다.
“그, 그렇소만. 자경단에 무슨 용무가 있으시오?”
“성문이 깨끗하고, 성문 근처에 부서진 집들도 없던데, 이곳은 야수의 침입이 없었나? 아니면 소요종의 고수가 머무르고 있다든지.”
구회일은 ‘산음현에 소요종의 고수가 있다’고 지레짐작했다.
관병과 자경단만으로 이렇듯 깔끔하게 도시를 지켜 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천관산맥에서 무량하를 따라오는 동안 본 도시 중에 산음현이 가장 멀쩡했다.
종문제자가 관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산음현에 소요종 고수가 있다면, 꼬리를 잡히기 전에 먼저 끊어 낼 생각이었다.
이미 기가 눌려 있던 강수성은 그의 하오체에도 항의 한번 못 하고 선선히 답했다.
“아, 야수라면 우리 자경단이 처리한 게 맞소.”
“겨울이 시작된 지 꽤 되었는데 그동안 ‘초목급’ 야수만 출몰했다는 말인가?”
“아니외다. ‘철급’과 ‘은급’의 야수도 있었소.”
“다시 묻지. 그 ‘철급’과 ‘은급’의 야수를 처리한 사람이 누구냐?”
이젠 대놓고 반말이다.
그래도 강수성은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누구냐고 물을 때, 청년의 눈에서 번갯불 같은 광망이 번득였다.
그건 찰나지간에 사라졌지만,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자경단의 연 대협께서 처리해 주었소.”
“연 대협은 어디에 있느냐?”
청년의 기세에 압도당한 강수성은 저도 모르게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구회일의 시선이 강수성에서 연적하로 옮겨 갔다.
“그대가 연 대협인가?”
“그런데?”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청년을 마주 보았다.
풍기는 기도를 보니 종문의 제자 같은데, 왜 자신을 찾는 건지 모르겠다.
식사를 마쳤다는 듯 구회일이 손을 가볍게 털며 물었다.
“소요종의 제자인가?”
“아닌데? 그걸 묻는 걸 보니 소요종 사람은 아닌 모양이네?”
제법 날카로운 연적하의 지적에 구회일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소요종의 제자가 아닌데 ‘철급’과 ‘은급’의 야수를 죽였다? 그걸 믿으라고?”
“누가 믿으래?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셔. 나는 관심 없으니까.”
구회일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이 아까부터 반말이다?
‘내 이름을 들으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날 주제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구회일이 손을 까딱이자 두 개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오불괴와 귀문방도의 잘린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촤아아-.
피바다 속에서 구회일이 하얗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천지종의 구회일이다. 너는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