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98
598회. 연 형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살수를 쓸 것같이 펄펄 뛰던 이월화 노사가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혹시 조양성의 무신(武神) 연적하세요?”
“조양성은 모르겠고 산음현에서 그런 소리를 듣기는 했지.”
“어머, 정말 그분이신가 보네? 올해 ‘비승과해’로 들어오셨나 보다. 다시 인사할게요. 저는 무월당의 이월화 노사예요. 조서하 노사의 사매고요. 사저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소격각의 연적하 방삽니다.”
이월화 노사가 공손하게 인사하자 연적하도 더는 하대를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천주금 노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월화 노사와 인사하던 연적하가 천주금 노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천 노사 선배는 나하고 볼일을 끝내야지. 어딜 내빼려고 그래?”
그러자 천주금 노사가 냉소를 날렸다.
“흥! 속세에서 쥐꼬리만 한 명성을 얻은 모양인데, 그게 소요종에서도 통할 것 같으냐? 소격각에 배치된 걸 보니 네놈의 주제를 알 만도 하다. 나에게 볼일이 뭐냐?”
연적하와 천주금 노사 사이에 불꽃이 튀자 이월화 노사는 살짝 뒤로 빠졌다.
“노사 선배가 때린 병휴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지?”
“소격각 놈이 ‘천애불문비’ 앞에서 냄새를 피우면 맞는 게 당연하지. 그건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일이니라.”
“소격각 사람들은 뒷간 청소를 하니까 냄새가 난다고 쳐. 그런데 노사 선배는 뭘 하고 다니길래 입에서 그렇게 구린내가 진동을 해?”
“무슨 개소리냐!”
“노사 선배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싹 다 똥 같다고. 그런 정신머리로 용케 노사가 됐네? 오늘 내가 노사 선배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똥을 치워 줄게.”
“재주가 있다면 해 봐라. 나도 네놈의 사지를 꺾어 소요종 웃어른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가르쳐 주마.”
천주금 노사가 먼저 검을 뽑았다.
그는 말과 달리 연적하를 경시하지 않고 처음부터 중급 검공인 고검일낙(孤劍日落)을 펼쳤다.
그가 허공에 검을 한차례 긋자, 돌연 거대한 검형(劍形)이 나타나 연적하를 향해 날아갔다.
연적하는 구천세법 삼 식 운룡풍호(雲龍風虎)로 받아쳤다.
청사 끝에서 일어난 청룡이 고검을 휘감았다.
천주금 노사가 청룡을 베기 위해 더 영기를 쏟아부으려는 순간이다.
돌연 눈앞에서 검풍이 몰아치더니 호랑이가 튀어나왔다.
“으헉!”
호랑이가 상반신을 덮치자 천주금 노사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촤촤촤촥-.
검기에 천주금 노사의 상반신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천주금 노사는 식당 바닥에 길게 누워 꿈틀거렸다.
검기에 찢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식당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연적하가 그의 머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노사 선배, 내 사지를 꺾겠다고 했어?”
“크윽! 나는 대라각의 사람이다. 네가 나에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대라각 각주 주역봉 노조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대라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소격각 각주가 대라각의 횡포를 알고도 찍소리 못 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니 오늘의 일을 그냥 넘길 리가 없다.
“노사 선배 착한 사람이네? 내 걱정까지 해 주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왜 소격각 사람을 패고 다녔대? 어때 이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흥! 미안하냐고? 천만에! 네놈 때문에 소격각 놈들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어, 상관없어. 난 병 형의 복수만 하면 되니까. 그럼 오늘은 다리 하나만 부러뜨려 줄게. 다음에 또 걸리면 그때마다 하나씩 추가야.”
말과 함께 연적하가 천주금 노사의 정강이를 의자로 내리찍었다.
콰직!
의자가 산산이 부서졌다.
“끄악!”
천주금 노사가 부러진 다리를 움켜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돌아서 가려던 연적하가 다시 천주금 노사의 머리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냥 가려니까 기분이 막 나빠지려고 하네? 왜 그런가 했더니 사과를 못 받아서 그런 것 같아. 노사 선배, 사과 한번 해 봐. 내 기분이 풀어지나 보게.”
“이 미친놈아! 내가 할 것 같으냐!”
“그럼 하나 더 부러뜨려 볼까? 어디 보자, 다리 두 개가 다 부러지면 조금 불편할 테니까, 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천주금 노사의 팔을 움켜잡았다.
순간 천주금 노사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잘못했다!”
“뭘?”
“소, 소격각 사람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때렸다. 그게 내 잘못이라는 말이다.”
천주금 노사는 체면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연적하가 사과를 받을 때까지 사지를 부러뜨릴 것 같아서다.
그제야 연적하가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태연자약하게 남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만약 여기가 대라각이 있는 천주봉이었다면 싸움이 크게 번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라각 사람은 천주금 노사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용화봉에 있는 누구도 대라각을 위해 나서려 하지 않았다.
결국 천주금 노사는 부러진 다리를 대충 싸매고 절뚝거리며 향도관을 떠났다.
연적하의 무위가 노사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본 사람들은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이월화 노사가 연적하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역시 사저에게 들은 대로네요. 사저는 진인이라 해도 연…… 방사님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분이 왜 소격각에 있는 거예요?”
“영기가 저질이래요.”
“아.”
이월화 노사는 의외의 표정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저 정도 무위면 설사 영기가 별로라고 해도 제자로 거둘 것 같은데 윗분들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연 방사님은 금방 위로 올라가실 거예요. 재능이 없다면 그 정도 무위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나도 빨리 소격각을 벗어나고 싶어요. 냄새 때문에 가는 곳마다 말썽이라.”
“저도 그러시기를 바라요. 조 사저가 많이 궁금해하던데, 무월당에 한 번 오세요.”
“그러죠. 그런데 무월당은 뭐하는 데예요?”
연적하가 의아한 눈으로 이월화 노사를 보았다.
소격각에서 ‘소요종에 일궁, 삼전, 칠각이 있다’고 배웠다.
‘세심정’이나 ‘봉황정’이야 청소하러 가는 곳이라 대충 알고 있다.
이를테면 ‘세심정’은 천애곡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고, ‘봉황정’은 여제자들의 숙소였다.
그렇다면 무월당은 뭐하는 곳일까?
이월화 노사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소요종에는 공식적으로 일궁, 삼전, 칠각이 있어요. 그 아래에 당(堂)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당은 노조 이상의 존경받는 분들이 세운 곳이에요. 정(亭)이나 관(館)은 칠각에서 관리해서 소요종의 지원을 받지만, 당은 그렇지 않아요. 당주님 들께서 개인적으로 운영하세요.”
“아! 개인이 세운 곳이라서?”
“맞아요. 하지만 아무나 세울 수는 없어요. 종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당에 속해 있다는 건 아주 명예로운 일이기도 하죠.”
“무월당 같은 곳에는 어떻게 들어가요?”
“당주님이신 백추수 노조님의 제자들만 무월당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건 다른 당들도 같아요. 직계 제자들만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아하! 그러니까 ‘소요종의 높으신 분들이 제자들과 기거하는 곳’이라는 거죠?”
“맞아요.”
“그럼 당주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돼요?”
“홋! 당주님들의 수명은 최소한 구백 년 이상이세요. 당주님이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평범한 제자들은 이미 다 사라졌을 거예요.”
“와아! 그럼 실례지만 지금 무월당의 백추수 노조님은 연세가?”
“육백 살 이상이라는 말만 들었어요. 제가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지 못하면, 무월당에서 제 장례를 치러 줄지도…….”
“대단하네요. 나도 이 노사처럼 단체 숙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네요.”
“소격각은 지내시기가 좀 그렇죠?”
“예, 첫날은 냄새 때문에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렸어요. 지금은 적응이 돼서 괜찮지만.”
냄새 이야기가 나오자 이월화 노사는 어색하게 웃었다.
소격각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것도 그 때문인 까닭이다.
이월화 노사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 아까 그 사람은 대라각에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맞나요?”
“네, 대라각의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당분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대라각의 각주인 주역봉 노조님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분이세요. 대라각 사람이 소격각 사람에게 맞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가만히 있지 않으면요? 설마 노조씩이나 되는 분이 방사를 때리기라도 하겠어요?”
“소격각 각주를 불러서 나무라면, 결국 연 방사님에게도 영향이 미칠 거예요.”
“괜찮아요. 어차피 뒷간 청소에서 더 떨어질 곳도 없어요.”
“그렇기는 하네요.”
연적하의 자조적인 말에 이월화 노사는 피식 웃었다.
아까는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하다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소격각으로 돌아갔다.
그는 일단 병휴에게 자신이 방금 천주금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왔음을 알렸다.
맥없이 늘어져 있던 병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복수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금방 대라각에서 다시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고민했다.
“병 형. 소요종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소격각을 업신여겨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면, 맞아도 억울해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때부터는 소요종 사람들과 싸울 생각을 해야 돼요. 겨우 대라각이 아니라 소요종 사람들 전체와 싸워야 한다고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 그건 일이 너무 커지는 게 아닙니까? 나는 단지 천주금 노사에게 잘못하지도 않고 맞은 게 억울했을 뿐인데…….”
“천주금 노사가 왜 때렸겠어요? 나는 오늘 용화봉의 식당에 갔다가 소격각 사람이라고 쫓겨날 뻔했어요.”
“그건 연 형이 잘못한 거죠. 뒷문에서 받아 먹어야 하는데 식당 안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런 규칙이 어디에 나와 있냐고요. 우리가 뭐 어디 천지종 뒷간을 청소하고 왔어요? 자기들이 불우산에서 먹고 싼 거 치워 준 거잖아요? 그럼 미안해 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왜 우리가 개처럼 뒷문으로 음식을 받아 먹어야 하는 건데요?”
“우리 몸에서 냄새가 나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우리가 언제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고 그래요? 사형들이 뒷문에서 받아 먹으라고 가르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따르는 거지. 내 말 틀렸어요?”
“맞는 말인데, 너무 과격하게 나가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천주금 노사에서 끝내야 하는데 소요종 사람들과 싸우자고 하니까. 우리가 무슨 수로 소요종 사람들과 싸우냐고요.”
“아니 내가 진짜 소요종 사람들과 싸우자고 했어요? 그런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이거죠. 고작 천주금 노사에게 복수한 걸 가지고 덜덜 떨면 어떻게 해요?”
“복수는 좋은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죠.”
병휴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연적하가 너무 이상에 치우친 것 같아서다.
“아니 그렇게 걱정할 걸 왜 복수해 달라고 했어요?”
“연 형이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것 같아서 그럽니다. 다리까지 부러뜨렸다면서요?”
“그야 앞으로 소격각 사람들을 더 괴롭히겠다고 하니까 그런 거죠.”
“헉! 천주금 노사가 정말 그런 소리를 했어요?”
“미안한 마음이 없냐고 물으니까 그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의자로 내리찍었죠. 매에는 장사가 없거든요.”
“큰일이네. 오늘 일로 대라각 사람들이 사형들까지 괴롭히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요?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병 형이 맞고 왔어도 다들 모른 척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들이 나라고 가만히 두겠습니까?”
“병 형은 못 건드릴 걸요? 내가 복수해 준다는 걸 그들도 알 텐데 또 그러겠어요?”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구겨져 있던 병휴의 얼굴이 펴졌다.
소격각 사람들이야 맞건 말건 자신은 괜찮을 거라니 위로가 됐다.
“생각해 보니 연 형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려면 세상에 맞서 싸울 각오를 해야죠. 암요. 맨날 등신처럼 당하고 살면 안 되지요.”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는다고 생각한 병휴는 투사로 변신했다.
그런 병휴를 남겨 두고 연적하는 방을 나섰다.
이제는 ‘천애불문비’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천애곡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