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34
634회. 아홉 하늘[九天]의 수호자, 구천검령
잠에 취한 연적하가 혼미한 가운데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왔다.
-연적하.
그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으로 직접 와 닿는 기이한 소리, 말로만 듣던 검령이 분명했다.
“검령?”
-사막에서부터 너를 불렀건만 이제야 응답을 하는구나.
“사막에서부터 나를 불렀다고…… 요?”
-정욕에 귀가 막혀 불러도 알지 못하더니 이제야 정신이 드느냐.
“저어, 그게 정욕이 아니라 사랑이거든요?”
그때 또 다른 음성이 들려 왔다.
-네가 우리를 불러서 현현하였으니 눈을 들어 보아라.
순간 연적하는 흠칫 놀랐다.
눈을 들어 보라고 한 검령의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서다.
마치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왜 우리라고 하지?’
검령은 하나다.
그런데 말하는 걸 보니 자신을 찾아온 검령은 하나가 아닌 것 같았다.
‘눈을 들어 보라고?’
숲을 보던 연적하는 완연하게 어두워진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
‘헉!’
어두워진 밤하늘 저편에서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가까워짐에 따라 그 형태가 드러났는데, 무려 아홉 개나 되는 거대한 검이었다.
검신의 폭은 일 장(약 3미터), 길이도 무려 십 장(약 30미터)에 달했다.
그런 검 아홉 개가 날아오니 하늘이 온통 검으로 가득 찼다.
‘미쳤다.’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맹세코 이런 검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그가 멍하니 보고 있을 때 각각 다른 음성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아홉 하늘[九天]의 수호자로 ‘구천검령’이라 불린다.
-신들조차 우리 중에 셋 이상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우리 중 하나만으로도 능히 악신(惡神)에 맞설 수 있다.
-구천검령을 온전히 받으면 만신(萬神)조차 앙복(仰伏) 하리라.
연적하는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순간 그는 ‘구천검령의 하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건 구천검령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인간이 우물이라면 구천검령은 대해(大海)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구천검령 하나가 연적하에게 뚝 떨어졌다.
파아앗-.
강렬한 빛이 연적하를 휘감았다.
빛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연적하의 두 팔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높이 들려 있었다.
마치 더 오라는 듯 보였다.
또 하나의 구천검령이 연적하에게 돌진했다.
파아앗-.
두 번째도 처음과 같았다.
연적하의 몸은 한순간 번쩍 빛났지만 이윽고 처음처럼 잠잠해졌다.
겉으로 봐서는 처음과 같았다.
이윽고 남아 있던 구천검령들이 줄지어 연적하에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파아앗- 파아앗- 파아앗-.
구천검령이 들어갈 때마다 연적하의 몸은 번개치듯 번쩍였다.
잠시 후 모두 여덟 개의 구천검령이 사라지고 하나가 남았다.
-너는 신맥(神脈)을 열었느냐.
“어떻게 알았어요?”
연적하의 물음에 마지막 구천검령은 답하지 않고, 즉시 연적하에게 돌진했다.
파아앗-.
이윽고 아홉 개의 구천검령은 기경팔맥과 신맥에 자리를 잡았다.
창세 이래 인간의 몸에 구천검령이 온전히 자리를 잡기는 처음이다.
번쩍-!
연적하의 몸이 폭발하듯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시커멓게 물들어 가던 비경의 하늘마저 한순간 환하게 밝힐 정도였다.
뒤이어 폭발한 무형의 기운에 돌풍이 일어났다.
연적하를 중심으로 사방 백 장(약 300미터) 안의 바위와 초목 들이 돌풍에 휘말려 하늘로 솟구쳤다.
콰아아아-.
이윽고 무형의 기운이 잦아들었다.
그러자 연적하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바위와 초목 들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구천검령을 받아들인 연적하는 꽤 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래도 연적하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하늘이 완전히 캄캄해지기 직전, 연적하의 눈이 열렸다.
“뭐야? 씨! 왜 이렇게 어두워?”
벽곡단 다섯 개나 먹으며 건너온 사막을 생각하면 절망할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그저 그랬다.
구천검령과 합일하면서 구천구검에 숨겨져 있던 오의(奧義)를 깨달은 까닭이다.
연적하는 허공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며 구룡번신(九龍御身)을 펼쳤다.
휘릭-.
검게 물든 하늘에서 단 한 번 자리를 바꾸었을 뿐인데, 그가 내려선 곳은 비경의 초입이었다.
“그래! 이거지. 이런 걸 모르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니. 쯧쯧!”
나직이 혀를 차던 연적하가 이젠 거의 걷혀 가는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몽천성 양태현.
왕옥산.
비경으로 통하는 협곡 앞.
무장한 삼백여 명의 남녀 무인들이 흉흉한 얼굴로 줄지어 서 있다.
아홉 종문의 고수들이다.
천여 명이 들어가서 삼백여 명만 살아 나왔으니 살기등등할 수밖에 없다.
팔백여 명이 생환한 과거와 비교하면 실로 끔찍한 결과다.
비경에서 벌어진 살육이 외부로 전해지면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그래도 꾹꾹 참고 있는 것은 아직 비경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다.
비경의 입구에 깔려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누가 봐도 마지막 상황이었다.
“아!”
“하아…….”
협곡 입구를 지켜보던 아홉 종문 고수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비경은 사라져 가는데 생환자는 더 늘지 않았다.
칠 할에(70%)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암담함을 넘어 섬뜩할 지경이다.
비경에서 이토록 많은 사망자가 나온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칠 할이면 여섯 종문의 싸움에 휘말려 죽은 사람도 꽤 된다는 뜻이다.
하기야 눈만 마주쳐도 칼부림이 나는 비경에서 대놓고 살육전이 벌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홉 종문 중에 소요종의 분위기가 무거웠다.
이유는 하나다.
진인 중에 최고 고수인 연적하 진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서다.
연적하 진인에 대한 소요종 진인들의 생각은 비경 전과 후로 갈린다.
비경 전에는 그저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린 고수였다.
하지만 비경에서 그에게 도움을 받은 진인들의 숫자가 꽤 많았다.
그들에게 연적하 진인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생사 여부에 많은 소요종 진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안개가 사라지기 직전, 협곡에서 누군가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연적하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연적하를 발견한 소요종 진인들이 ‘와아!’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다른 여덟 종문 고수들이 복잡한 눈으로 소요종을 보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던가.
종문에서 천지종 빙설화와 소요종 연적하의 싸움은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검령을 얻기 전에도 두 사람은 초월적인 신위를 보여 주었다.
천지종의 빙설화가 검령을 얻고 운종술로 나온 것은 이미 유명하다.
운종술은 노조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진인에 불과한 빙설화가 숨쉬듯 자연스럽게 운종술을 사용한 것이다.
설상가상, 천지종의 노조들이 그녀에게 존대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드러난 것만 봐도 빙설화는 노조보다 윗줄이었다.
그런 빙설화를 비경에서 물리친 사람이 연적하니, 그는 또 얼마나 고수일까!
칠 할에 가까운 진인을 잃고 침울해 있던 소요종이 거의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비경이 닫히자 아홉 종문의 고수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소요종의 진인을 이끌고 온 주역봉 노조가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여러 진인들에게 연 진인의 활약에 대해 들었네. 검령을 얻기도 바쁜 와중에 동문까지 챙기다니 실로 고맙네. 그런데…… 검령은 얻었는가?”
주역봉 노조는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검령을 얻기 전에도 그의 무위는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하물며 검령까지 얻었다면, 그는 더 이상 노조의 아래가 아니었다.
“예.”
연적하의 대답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초월적인 무위에 검령까지 얻었으니 금상첨화다.
“축하드리오. 그대가 검령을 얻었다니, 이는 우리 소요종의 홍복이외다.”
주역봉 노조는 연적하를 진인이라 칭하지 않았다.
태을 존자가 그의 지위를 정할 테지만 진인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
왕옥산 산중.
천지종 고수들은 협곡을 떠났음에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윽고 천지종 진인들의 앞으로 일성 제군과 진명 제군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소요종의 생환자들을 끝장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던 곡분조 노조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비켜섰다.
진명 제군이 누군가를 찾듯 진인들을 둘러볼 때다.
서편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빙설화가 다가왔다.
진명 제군은 단번에 그녀의 성취를 알아차리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윽고 진명 제군 앞에 내려선 빙설화가 가볍게 묵례했다.
“스승님.”
“축하한다. 용이 여의주를 얻었으니 소요종의 생환자들만 불쌍하게 됐구나.”
실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순간 빙설화가 천지종의 인솔자인 곡분조 노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언의 압박에 곡분조 노조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진명 제군님. 소요종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실은 비경 안에서 일이 있었습니다.”
“일?”
“빙설화 님과 소요종의 진인 간에 싸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진명 제군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빙설화에 맞설 정도의 고수가 있다는 말이냐?”
“그것이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곡분조 노조는 차마 제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빙설화의 눈치를 살폈다.
그제야 빙설화가 나섰다.
“제가 그를 당해 내지 못하고 달아났어요.”
“달아났다고?”
진명 제군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녀가 건곤벽의 기연을 얻은 뒤로는 종사도 어려워하는데 달아나다니?
이게 무슨 고약한 농담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소요종 생환자들을 죽이러 가기 직전에 그런 말이라니!
“저처럼 그도 검령을 얻었으니 당분간은 그를 피해 다닐 생각이에요.”
점입가경이라더니, 이젠 아예 피해 다니겠단다.
진명 제군과 일성 제군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검령을 얻은 빙설화가 피해 다닐 정도면 제군들이 나서도 안 된다는 소리다.
소요종의 제군이라면 혹 모를까?
이제 갓 검령을 얻은 진인에게 그런 능력이라니 듣고도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일성 제군이 체면 불고하고 물었다.
“진명 제군과 내가 돕는다면 그를 제압할 수 있겠는가?”
일성 제군은 제군임에도 감히 빙설화에게 하대를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검령을 얻은 빙설화의 존재감은 컸다.
빙설화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검령에 익숙해지고, 자신감을 회복하면, 다시 한번 그와 겨뤄 볼 생각이에요. 두 분은 가급적 그를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자네가 검령을 얻었고, 제군이 둘이나 거들어도 안 된다는 말인가?”
“그에게서 신격(神格)이 느껴졌어요. 어쩌면 그도 소요종의 성물(聖物)에서 기연을 얻었는지 몰라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죠. 소요종에서 무엇을 감추고 있었는지.”
“…….”
그녀의 말에 일성 제군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만약 소요종에 빙설화 같은 존재가 있다면, 피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가 못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오늘의 일은 자네가 추회 존자께 잘 말씀드려 주시게. 추회 존자께서 기대하고 계실 텐데, 아쉽게 됐구먼. 진명 제군,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나는 먼저 가 보겠소.”
일성 제군은 누가 잡을세라 유령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구십여 명의 천지종 고수들도 곡분조 노조의 인솔하에 왕옥산을 떠났다.
고요를 되찾은 왕옥산 위로 세 개의 달이 떠올랐다.
격랑에 빠져든 종문의 미래를 예견하듯 광명진천(여름의 달)이 불길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