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6
646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이포진으로 몰려갔던 천지종 고수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팔문각 근처 숲에서 정방각의 섭소천 노사가 점혈당한 채로 발견됐다.
그는 자신을 구해 준 팔문각의 고수에게 ‘팔문각의 병휴 노사에게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팔문각에 병휴라는 노사가 있을 리 없다.
크게 놀란 원광안 노조는 바로 천수각으로 달려가 종산에 외인이 침입했음을 알렸다.
뎅. 뎅. 뎅. 뎅. 뎅-.
무려 오백 년 만에 천지종 종산(宗山)에서 급박한 타종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종산이 공격받는다’는 신호였다.
종문 간 전쟁의 와중에도 잠잠하던 천지종이 타종 소리에 발칵 뒤집혔다.
천수각 앞의 공터.
급박한 종소리에 일궁(一宮), 오전(五殿), 십삼각(十三閣)의 천지종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무려 천여 명이나 되는 고수가 자신이 속한 곳의 깃발 아래 도열했다.
마치 출정식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천지종 고수들이 내뿜는 서슬 퍼런 기세에 방사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잠시 후 군림전 전주인 대륜 제군이 앞으로 나섰다.
“지난밤 천지종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팔문각의 진인이 이포진에서 살해당하고, 종산에 외부인이 침입해 정방각의 노사를 제압하기까지 했다. 그가 염화전의 위치를 물은 것으로 보아 밤사이에 옥녀봉으로 이동한 것 같다.”
속이 끓어오르는지 대륜 제군은 잠시 말을 끊었다.
수치심 때문인지 천지종 고수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종문 간 전쟁이 벌어진 지금 천지종 종산에 외부인이 침입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종산의 경계를 강화하고, 수호각은 옥녀봉과 염화전을 조사해라. 날이 밝았으니 멀리 달아났을 테지만, 놈이 누구며, 왜 염화전을 찾아다녔는지 알아내야 할 것이다!”
“예!”
천지종 고수들은 원덕산의 주봉인 덕유봉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답했다.
종산이 유린당했다는 초유의 사태에 누구라도 물어뜯을 태세였다.
***
옥녀봉.
염화전.
오 층 빙설화의 침소.
탁자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남궁연이 침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사시 정(오전 10시)이건만 연적하는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
밤새 그렇게 괴롭히더니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어린아이처럼 곤하게 잠든 그를 보고 있으려니 괜히 웃음이 난다.
위험하니 날이 밝기 전에 가라고 밀어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는 마치 하루만 살고 죽을 사람처럼 매달렸다.
그 결과 그는 호굴(虎窟)에 남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자신도 못 이기는 척 그를 받아들였으니까.
그도 알았을 게다.
자신이 그를 보내기 싫어한다는 것을.
어쩌면 그는 그런 자신을 남겨 두고 가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정이 많은 남자니까.
남궁연이 찬찬히 연적하의 얼굴을 뜯어볼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제군님, 안에 계신가요?”
염화전 관리자 중에 하나인 양화영 진인이었다.
특별한 용무가 아니라면 찾지 말라고 했는데 부르는 걸 보니 일이 생긴 모양이다.
남궁연은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물었다.
“무슨 일이죠?”
“수호각의 무천 진인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던 일이 있으니 나중에 오라 하세요.”
그러자 바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빙설화 제군님. 무결단의 단주인 무천 진인입니다. 지난밤 외부인이 침입해 염화전의 위치를 물었다 합니다. 대륜 제군님의 명으로 염화전을 수색 중에 있사오니,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십시오.”
남궁연은 짐짓 냉랭한 어투로 물었다.
“대륜 제군이 직접 그대에게 내 침실을 조사하라고 명했나요?”
“예.”
“그렇다면 대륜 제군에게 가서 전하세요. 내 침실 걱정 그만하고 군림전이나 잘 지키라고.”
문 밖에서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빙설화 제군의 조롱에 양화영 진인이 실소를 흘린 것이다.
무천 진인은 빙설화 제군이 강경하게 나오자 머쓱한 얼굴로 돌아섰다.
‘쩝! 이럴 줄 알았다니까.’
원덕산의 다섯 봉우리는 다섯 제군의 관할하에 있다.
당연히 주봉인 덕유봉에 있는 수호각은 군림전 전주인 대륜 제군의 지휘를 받았다.
하지만 역시나.
한때 천지종 이인자였던 대륜 제군의 권위도 빙설화 제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빙설화 제군이 종사패를 받았으니 대륜 제군도 이제 그만 바뀐 현실을 인정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게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사라지자 남궁연은 다시 책 앞으로 돌아왔다.
그때 말소리에 깼는지 연적하가 부스스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누님. 누가 왔어요?”
남궁연은 마치 석경장에 있는 것처럼 태평스러운 연적하의 말투에 혀를 내둘렀다.
“지난밤에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거야? 아침부터 시끌시끌하던데.”
“별일 없었어요. 이포진에서 인간 백정 하나를 응징했고, 여기 와서는 노사 하나를 제압해 염화전이 어디 있는지 물어본 게 전부예요.”
“이포진에서 인간 백정을 응징했다고?”
“예, 반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어떤 놈들이 칼을 들이밀더라고요. 그놈들 칼부림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여럿 죽었어요.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기에 저도 똑같이 대접해 줬죠. 일성 제군의 제자라고 하던데. 일성 제군이 누군지 알아요?”
“일성 제군은 만상전의 전주야. 내 스승님과도 교분이 있는 사람이고.”
“그렇구나. 참! 정방각은 뭐하는 곳이에요? 내가 정방각의 노사라고 했더니 흠칫하는 눈치던데.”
“네가 있었던 소격각과 같은 일을 하는 곳이야.”
“아…….”
그제야 연적하는 지난밤 옥녀봉에서 만난 노인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천지종이 발칵 뒤집혔으니 나갈 때 더 조심해야겠다.”
“나가라고요?”
“여기서 살 수는 없잖아?”
때마침 연적하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남궁연이 그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 봐. 염화전에는 먹을 것도 없다고.”
그러자 연적하가 남궁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나는 누님만 있으면 돼요.”
하지만 그녀는 슬며시 연적하의 손을 털어 냈다.
“미안한데, 내가 많이 바빠. 벌써 잊었어? 구주의 아홉 종문을 하나로 만들어야지. 천문(天門)을 열고 강호로 돌아가려면 노닥거릴 시간 없어.”
“아니, 며칠이라도…….”
“안 돼. 조금 전에 봤잖아. 천지종에 나를 견제하는 제군들이 있어. 빨리 나서서 그들을 누르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종문의 제군들은 보통이 아니야. 조금의 틈이라도 주면 도리어 물어뜯긴다고.”
남궁연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연적하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소요종에서 찬밥인 자신과 달리 남궁연은 해야 할 일이 많을 터였다.
끙끙 앓고 있는 그를 보던 남궁연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소요종은 어때? 계획대로 잘되고 있는 거지?”
“저어, 그게…… 누님.”
“왜?”
머뭇거리던 연적하가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태을 존자가 자리를 만들어 주질 않아서 그냥 놀고먹게 됐어요.”
“이런 시기에 놀고먹는다고?”
남궁연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연적하와 같은 고수를 이용하지 않는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본 연적하는 자신의 근황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리는커녕 숙소도 삼관정이라고 이상한 데를 내주더라고요. 노조가 사용하다가 늙어 죽은 곳이라는데, 굉장히 구석진 곳이에요. 제군이 됐는데 숙소가 진인 시절보다 못하다니까요.”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천지종이 건드리지 않는다고 여유 부릴 때가 아닌데.”
“그러게 말이에요. 수천 년을 살았다는 사람들 생각이 나보다도 못하다니까요.”
“알았어. 내가 해결 방법을 찾아볼게. 태을 존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곧 알게 될 거야.”
“그런데 진짜 전쟁이 나긴 난 거예요? 수약주도 조용하고, 한산주도 조용해서 그런지 영 실감이 안 나네.”
“사흘 전에 천뢰종이 완산주로 쳐들어갔어. 백년하(百年河)를 사이에 두고 천태종과 천뢰종이 혈전을 벌이는 중이야. 태상종에서도 무진주로 진입했고. 무진주의 ‘만사평(萬死坪)’에서 태상종과 무극종이 대치 중이야.”
“만사평요? 이름이 무시무시하네요?”
“마식령산맥에 있는 들판인데, 과거 마계와의 전쟁에서 만 명에 가까운 종문 고수들이 죽었다고 해. 그 뒤로 만사평이라 불리고 있어.”
“마계요?”
“아, 마천을 이곳에서는 마계라고 해.”
“아! 마천. 그런데 사망자가 만 명이면 아홉 종문이 힘을 합쳤었나 보네요?”
“그때는 마계의 군세가 컸으니까.”
“그렇구나. 수약주와 한산주가 조용해서 몰랐네요.”
“태을 존자가 너를 방치해 둔 것도 그래서일지 몰라. 차라리 그런 단순한 이유라면 좋겠다.”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대륜 제군이 나에게 그러듯, 태을 존자가 너를 경계하는 거라면 어쩔래?”
“그때는 누님이 확 밟아 줘요. 그럼 ‘깨갱’ 하고 물러나 나를 앞세울 거에요.”
“훗!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무슨 말요?”
“‘깨갱’ 하고 물러난다는 말.”
무림세가에서 곱게 자란 남궁연은 연적하가 쓰는 말들이 낯설면서도 재밌었다.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지면서, 귀에 콱콱 박히는 느낌이랄까?
“녹림에는 개와 관계된 묘사가 많거든요. 개놈, 개소리, 개 맞듯 처맞을래? 이런 거요. ‘깨갱’도 그런 거죠. 누님은 그런 소리 안 들어 봤죠?”
“남궁세가에서는 상스러운 말을 쓰면 야단맞아.”
“재밌네요. 녹림에서는 상스러운 말로 야단을 쳐야 먹히는데.”
빙긋 웃던 남궁연이 연적하에게 다가가 그를 보듬어 안았다.
연적하가 남궁연의 체향을 맡으며 중얼거렸다.
“누님, 알아요? 누님하고 있으면 나한테 있던 나쁜 게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
“너는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었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도 그래.”
두 사람이 한창 달콤한 밀어를 나누고 있을 때, 또다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연적하에게서 떨어진 남궁연은 문가로 다가갔다.
“제군님.”
그 목소리는 아까 수호각의 진인과 왔던 염화전 관리자 양화영 진인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군림전의 전주이신 대륜 제군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늙수그레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군림전의 대륜 제군이외다. 빙설화 제군께서 내 뜻을 오해한 것 같아 해명하려고 왔소.”
“오해할 게 있나요? 제군의 침실을 진인에게 조사하라고 명했다면, 뻔하지요.”
“허어, 종산에 외부인이 침입했고, 나는 그자를 잡을 생각뿐이오.”
“내 침실에 그 침입자가 있다는 말인가요?”
“끙, 그런 뜻이 아니라. 일단 얼굴이나 보면서 이야기하십시다. 제군들이 종문 전쟁을 앞두고 반목하는 것으로 보여질까 두렵구려.”
남궁연이 어질러진 침상을 힐끔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히 하실 말씀이 있다면 객청에서 뵙도록 하지요. 먼저 가면 저도 곧 따라 내려가겠어요.”
“쯧! 알겠소.”
이윽고 두 사람의 인기척이 멀어져 갔다.
다시 연적하 곁으로 다가가는 남궁연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내가 나가면 분명히 수호각 사람들이 방을 조사할 거야. 위험하지만 이곳에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괜찮겠어?”
“훗! 누님. 내가 비경에서 터득한 게 하나 있거든요. 천지종 사람들 전부가 염화전을 지키고 있어도 나를 어쩌지 못할 거예요.”
그가 호언장담하자 남궁연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럼 해 봐.”
말과 함께 남궁연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순간 염화전 앞마당에 서 있던 수호각 진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