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56
656회. 내가 한다고요
연적하가 ‘천뢰종의 주인이 되겠다’고 하자 혜문 존자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잘 생각하셨소. 연 제군이 천뢰종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내 물심양면으로 도우리다. 이제부터 우리 천태종을 연 제군의 혈맹이라 생각해도 좋소.”
“뭘 그렇게까지….”
연적하는 혜문 존자의 설레발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의 속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먼저 혈맹이 되어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비무가 끝나면 천뢰종이 가진 천문의 권한을 위임받도록 하시오. 반드시 그 과정을 끝낸 후에 광성 존자의 영기를 취해야 하오.”
“천문의 권한을 위임받으라고요? 그냥 주인이 바뀌면 되는 게 아닌가 봐요?”
“선대 종사께서 이르시기를 ‘종사의 말은 천지에 각인된다’ 하셨소. 광성 존자가 천뢰종 천문의 주인이 연 제군임을 선언하게 하시오.”
언법(言法)을 수련한 연적하는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혜문 존자는 확실히 자신을 천뢰종의 주인으로 만들 생각인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비무는 언제, 어디서 여는 게 좋을까요?”
“어차피 결과가 뻔한데 시간을 끌어 뭐 하겠소? 태을 존자도 속히 종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니, 연 제군께서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여십시다.”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요?”
“천리포 강변에 비무를 할 만한 터가 있으니 그곳에서 하면 될 게요.”
“천리포에서, 내일이라는 거죠?”
“그렇소. 내일 정오에 비무 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하십시다.”
“내일 정오요? 그럼 태을 존자님에게 내일 정오라고 알려 드릴게요. 비무 대회의 준비와 진행은 천태종에서 맡아 주실 거죠?”
“허허, 연 제군이 해 준 일을 생각하면 비무 대회가 문제겠소? 태을 존자에게 소요종의 제자들은 몸만 오면 된다고 전해 주시구려.”
“그렇게 알고 갈게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느긋하게 앉아 있던 혜문 존자가 그를 따라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바로 가시려오?”
“태을 존자님이 또 이상한 일을 벌일지 모르니 일단 돌아가려고요. 비무 대회에 나갈 사람도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라서요.”
“허허, 설마 연 제군의 무위를 알고도 다른 제군을 내보내겠다고 하겠소? 그랬다가는 천뢰종을 빼앗길지도 모르는데.”
“다들 자기가 천하제일인 줄 알잖아요.”
“그도 그렇군. 내일 보십시다.”
연적하는 혜문 존자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밖으로 나갔다.
천리포 선착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혜문 존자는 무슨 꿍꿍이지?’
어떤 노림수가 있지 않고서야 얼마나 봤다고 저렇게 잘해 주냐 말이다.
‘나중에 누님에게 물어봐야겠다.’
자갈이 백 번 구르는 것보다 바위가 한 번 구르는 게 낫다.
남궁연이라면 단번에 혜문 존자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릴 게다.
그녀를 떠올리자 흐릿하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무겁던 그의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졌다.
***
말리현.
도리포.
중도객잔의 별채.
연적하가 돌아오자 태을 존자는 흩어져 있던 제군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객청에 제군들이 모이자 태을 존자가 근엄한 얼굴로 운을 뗐다.
“소요종과 천태종의 비무 대회는 내일 정오에 열기로 했소. 장소는 천리포의 강변이오. 비무 대회는 천태종에서 준비한다니 우리는 몸만 가면 되오. 그런데 소요종의 대표로 어느 분이 나가시겠소?”
그러자 초요산 제군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천태종의 공법에 관해서는 제가 좀 알고 있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나가서 소요종의 뛰어남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한산월 제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초 제군이시라면 천태종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천 년 전 천태종의 고묘 제군과 시비가 붙은 이래로 줄곧 천태종을 연구해 왔으니까요.”
“그런 일이 있었소?”
태을 존자가 관심을 보이자 초요산 제군이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영물을 잡으려고 마식령 산맥에 들어갔다가 그와 얽힌 적이 있습니다. 그가 굽히고 나와 은원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오! 천태종에서 차기 종사감이라 불리는 고묘 제군이 굽혔다고요?”
흥분을 했던지 태을 존자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렇게 초요산 제군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 연적하가 불쑥 말했다.
“내가 나갑니다.”
“…….”
한순간 객청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한산월 제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초 제군은 천태종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알고 계시오. 물론 연 제군의 무위가 뛰어남은 알고있지만, 초 제군도 충분히 가능한…….”
“내가 한다고요.”
연적하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아홉 종문의 천문을 다 손에 넣어야 하는데 양보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태을 존자가 이제 어쩔 거냐는 눈으로 초요산 제군을 보았다.
두 사람이 계속 고집을 부리면 비무로 정하자고 할 생각이었다.
“아쉽지만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연 제군이라면 천뢰종을 소요종으로 가지고 올 수 있을 겁니다.”
초요산 제군은 한발 빼면서 은근슬쩍 천뢰종의 주인이 소요종임을 강조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태을 존자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내일은 연 제군이 소요종을 대표해 비무 대회에 나가는 것으로 하겠소. 달리 나눌 이야기가 없으면 이만 회의를 끝낼까 하는데…….”
그때 진곤 제군이 손을 들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지난번에 종사께서 천태종을 치는 이유를 말씀해 주겠다고 하신 것 같은데,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아! 정작 그 말을 지금까지 하지 못했구려. 인원으로 보면 천뢰종이 우세하지만, 천태종 종산에 설치된 법진은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소. 천뢰종보다 천태종이 더 까다 로운 상대이기에 천뢰종을 도우려 했던 게요.”
진곤 제군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을 알고 보니 납득할 만한 선택이다.
‘쯧! 그랬다면 처음부터 천태종을 치자고 하시지…….’
왜 연 제군을 천태종에 보내 동맹까지 맺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정말 고절한 병법의 한 수였을까?
혹시 연 제군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자신도 이렇게 헷갈리는데 당사자인 연 제군은 오죽할까.
그때 연적하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모두가 똑똑히 들었지만 짐짓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양 행동했다.
그렇게 태을 존자와 제군들의 회의는 끝났다.
***
다음 날.
천리포.
백리하 강변.
강변의 넓은 공터에 천태종과 천뢰종, 소요종의 고수들이 모였다.
공터 한가운데는 비무장을 표시한 듯 사각으로 줄이 처져 있었다.
비무장 동쪽에는 천태종, 서쪽에는 소요종이 자리를 잡았다.
천뢰종의 포로들은 북쪽에 줄지어 앉아 있었는데 첫날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소요종 고수들이 자리를 잡자 천태종의 황백 노조가 앞으로 나섰다.
“저는 천태종 천방각의 각주인 황백 노조입니다. 지금부터 천태종과 소요종, 두 종문을 대표하는 제군님의 비무가 시작되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비무의 승자가 천뢰종의 처분권을 갖게 됩니다. 먼저 천태종의 대표는 고묘 제군이십니다.”
그의 소개가 끝나자 천태종 진영에서 한 노인이 나와 비무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황백 노조가 소요종 진영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요종의 대표는 어느 분이십니까?”
그러자 연적하가 앞으로 나섰다.
황백 노조는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비무장 안으로 들어간 연적하는 고묘 제군과 마주 보고 섰다.
잠시 후 황백 노조가 비무의 시작을 선언하자 고묘 제군이 히죽 웃었다.
“연 제군의 위명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소. 천리포에서 천산검영도 잘 보았고. 나는 천 년 전부터 소요종의 공법을 연구했소. 혜문 존자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모르지만 쉽게 얻지는 못할 게요.”
“나도 그쪽에 대해 들었어요. 천 년 전에 초요산 제군에게 싹싹 빌고 달아났다면서요?”
“누가 그런 헛소리를! 천 년 전에 초요산과 싸운 것은 사실이나 그때는 승부가 나지 않았소!”
“아, 그래요? 초요산 제군이 어제 그랬는데. 고묘 제군이 막판에 빌어서 보내 줬다고.”
“아니라고 하지 않소!”
고묘 제군이 버럭 소리치며 두 손을 활짝 펴 앞으로 밀었다.
마치 허공을 움켜잡는 듯한 모양새다.
고묘 제군이 자랑하는 만목초요(夏木招搖)의 수법이었다.
순간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 수백 개의 나무뿌리가 연적하를 휘감았다.
깜짝 놀란 연적하가 청사를 꺼내 휘둘렀지만, 허망하게 나무뿌리를 통과할 뿐이었다.
‘헛! 술법인가?’
술법으로 나무뿌리 특유의 냄새와 질감까지 나타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콰드드득-.
눈 깜빡할 사이에 나무뿌리는 쑥쑥 자라 완전히 연적하를 감싸 버렸다.
고묘 제군은 연적하 제군이 손안에 떨어지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주야장천 검공만 판 모양이로군. 술법에 적응하기 전에 끝을 봐야겠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종문의 비무란 본래 생사결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니 싸우던 중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성명 절기인 십지독행(十指獨行)을 펼쳤다.
그의 양 손가락 끝에서 쏘아져 나간 열 줄기의 강기가 뭉쳐 있는 나무뿌리를 꿰뚫었다.
퍼퍼퍽-!
나무뿌리를 관통하는 소리에 고묘 제군의 입꼬리가 올라갈 때다.
꾸아아아-!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나무뿌리가 툭툭 끊어져 나갔다.
이윽고 만목초요를 찢어발기며 푸른 이무기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청사(靑蛇)가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나무뿌리에서 풀려난 연적하가 단검의 끝을 고묘 제군에게 향했다.
무려 삼십 장(약 100미터) 길이의 거대한 이무기가 입을 쩍 벌리고 고묘 제군에게 날아갔다.
대경실색한 고묘 제군은 허공으로 바쁘게 손을 휘저었다.
천라혈망(天羅穴網)이라 불리는 강기의 그물이 이무기의 진로를 막았다.
이무기는 천라혈망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콰드드득-! 투툭-!
눈 깜짝할 사이에 천라혈망이 찢어져 나갔다.
뒤이어 튕기듯 날아간 이무기가 벼락처럼 고묘 제군을 덮쳤다.
고묘 제군은 피할 틈도 없이 이무기에 잡아 먹히고 말았다.
천태종 고수들은 눈앞에서 일어난 기괴한 일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황하기는 연적하도 마찬가지다.
술법을 깨기 위해 청사를 끄집어내기는 했지만 그게 고묘 제군까지 삼킬 줄은 몰랐다.
“어?”
여기서 고묘 제군이 비명횡사를 해 버리면 천태종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린다.
그는 서둘러 청사를 다시 단검에 봉인했다.
츠츠츠츠-.
다행히 청사가 사라진 자리에, 방금 삼켜졌던 고묘 제군이 나타났다.
그는 고슴도치처럼 한껏 몸을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묘 제군의 생사가 궁금해진 연적하는 한달음에 달려가 찬찬히 살폈다.
“이봐요. 죽었어요? 살았어요?”
연적하의 음성을 듣고 깨어난 고묘 제군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고, 살아 계셨네? 아직 소화가 안 됐었나 보다. 어떻게? 끝은 봐야죠? 계속할까요?”
고묘 제군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산 채로 거대한 이무기에게 잡아먹히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