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67
667회. 저들을 죽일 생각이오?
엄지봉의 마물들을 살펴보던 연적하가 천뢰종 종사 광성 존자를 힐끔 보았다.
“광성 존자님.”
“예, 대종사님.”
“갑자기 오지산에 마물이 생길 수는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마물들이 오지산까지 이동했다면 진즉에 종문들의 눈에 띄었을 겁니다.”
“그럼 저것들은 어떤 통로를 이용해서 왔다는 건가요? 오백 년 전의 황정산처럼?”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물들이 오지산까지 진출하려면 북쪽으로는 웅천주, 동쪽으로는 영천주를 지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벌써 혈주종에서 연락이 왔을 겁니다. 영천주의 성주들도 난리를 쳤을 테고요. 하지만 혈주종은 물론 영천주의 성주들도 잠잠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누군가 오지산에 은밀하게 마천과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
“미친놈은 많으니까요.”
“벌써 달아나고 없겠죠?”
“마물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그랬겠지요.”
“이곳에 있는 여섯 종문의 힘으로 저 마물들을 처리할 수 있나요?”
여섯 종문의 고수들을 합치면 칠백여 명이다.
거기서 약체인 노사들을 빼면, 실제로 마물과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삼백여 명에 불과했다.
마물이 천여 마리이니 대략 세 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노조, 제군, 존자 들의 무위는 뛰어나지만 마천의 마물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군단장이라 불리는 몰록만 봐도 종사들보다 강해 보였다.
세부적으로 마물들을 들여다보면 노조와 제군 급에 이른 것도 적지 않으리라.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처치하지 않으면 몰록의 군세가 더 늘어나니…….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들려왔다.
연적하는 마물로 시선을 돌렸다.
마천에 대해 말로만 듣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했다.
구주의 종문들이 마천과 대적하기 위해 연합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잠시 후 종문의 고수들이 연적하를 중심으로 모였다.
그 속에는 아직 그를 대종사로 인정하지 않은 태상종과 무극종도 있었다.
칠백여 명의 고수들이 모였지만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연적하에게 향했다.
연적하가 ‘경험 많은 종사들이 다섯이나 있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하며 멀뚱멀뚱 있을 때, 곁에 있던 광성 존자가 속삭였다.
“대종사님 명을 내려 주십시오.”
“아…….”
그제야 연적하는 자신이 네 개 종문의 대종사임을 자각했다.
“나는 몰록을 맡겠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세요. 됐죠?”
종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광성 존자가 얼른 말을 보탰다.
“대종사님이 몰록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열라는 말씀이시오. 쐐기형 진형으로 마물을 돌파하도록 합시다. 선두는 대종사님께서 맡으실 게요. 그 뒤를 종사들이 받쳐 몰록까지 일직선으로 내달리십시다.”
그제야 네 명의 종사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몰록만 사라지면 마물들은 통로가 열려 있어도 구주로 넘어오지 않는다.
넘어오더라도 소수에 불과해 종문에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다만 몰록에게 접근하기까지가 문제다.
제군급 마물들이 몸 바쳐 몰록을 지키면 종문의 피해도 상당할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종사들은 휘하의 제군들에게 쐐기형 진형을 지시했다.
여섯 종문 고수들이 쐐기형 진형을 갖추자, 연적하는 마물들의 중앙으로 돌진했다.
“쿠어어어!”
“캬아아!”
호기롭게 달려가던 연적하가 눈을 찌푸렸다.
마물 특유의 구린내도 괴롭지만 거대한 마물들의 외침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강호에서 상대했던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의 마물은 냄새가 없었다.
연적하는 최대한 들숨을 참으며 청사를 휘둘렀다.
청사에서 뻗어 나간 진검강이 전광석화처럼 야수들을 베었다.
콰자자작-!
마물의 몸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지만 일검에 양단되는 마물은 없었다.
‘헛!’
연적하는 멈칫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강호에서 상대한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의 마물들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천산검영을 펼쳤다.
수백 개나 되는 ‘검의 화신’이 마물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쿠쿠쿵-!
머리를 직격당한 마물들은 지면에 나뒹굴었지만, 비칠비칠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마물 덕에 연적하는 십여 장(약 30여 미터)이나 전진할 수 있었다.
그를 뒤따르던 종사와 제군들이 일어선 마물들을 다시 베어 넘겼다.
누적된 충격 때문인지 그제야 마물의 피부가 잘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연적하는 구천구검으로 검공을 바꾸었다.
구천구검 사 식 현녀강우(玄女降雨)가 펼쳐졌다.
천산검영 때처럼 흑운으로 뒤덮인 하늘에서 검영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캬아악!”
“케에에에엑-!”
처음으로 마물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연적하가 보니 강철처럼 단단한 마물의 피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비록 절명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위력이 종문의 검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연적하는 연이어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를 사용했다.
쓰아아아-.
수백 개의 검영이 부챗살처럼 전방으로 뻗어 나갔다.
뒤이어-제 몸의 상처를 잡고 허둥대던-마물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캭!”
“케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마물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역시 구천구검이구나!’
구천구검은 절대적이다.
상대가 인간이든, 마물이든, 일검에 베어 버린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연적하는 그 뒤로 ‘현녀강우’와 ‘산검멸지’의 검공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연적하 주위에서 마물들의 비명이 쉬지 않고 울렸다.
마물들도 공포를 느끼나 보다.
물샐틈없게 막혀 있던 마물의 벽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다경(약 20분)쯤 지났을까?
정신없이 마물을 베며 산 위로 올라가던 연적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삼 장(약 9미터)쯤 뒤 피에 흠뻑 젖은 다섯 명의 종사가 있고, 그들 뒤로 제군과 노조가 쐐기형 진형을 유지하기 위해 분전역투(奮戰力鬪)하고 있었다.
연적하는 그들의 모습에 다시 기운을 냈다.
이미 자신을 믿고 마물의 진영 깊숙이 들어온 상황.
자신이 몰록을 빨리 처치해야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
존자와 제군 들이야 무사하겠지만 노조와 진인은 거지반 죽게 될 게다.
자신은 구주 사람도 아닌데, 구주를 위해 이렇게까지 싸우게 되다니.
사람의 앞일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속전속결이다.’
그렇게 생각한 연적하는 영기를 잔뜩 끌어 올린 뒤에 힘껏 소리치며 내달렸다.
“이야아아아아-!”
가뜩이나 그의 눈치를 보던 마물들이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순간 앞이 뻥 뚫리자 연적하는 질풍처럼 내달렸다.
깜짝 놀란 종사들이 서둘러 따라붙으려 했지만, 마물들이 놓아주지 않았다.
광성 존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대종사님! 천천히!”
그러나 이미 마물 속에 뛰어든 연적하는 보이지 않았다.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광성 존자에게 천태종 종사 혜문 존자가 말했다.
“광성 존자! 이 이상의 속도는 무리요. 지금도 노조와 진인들은 겨우겨우 따라붙는 형편이외다. 대종사께서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우리까지 그래야 되겠소?”
광성 존자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마물의 목을 날린 뒤 소리쳤다.
“뭐요? 대종사님만 홀로 보내자는 말이오?”
“대종사님 때문에 쐐기형 진형이 엿가락처럼 늘어졌소. 이대로라면 노조와 진인들의 희생이 커질 거요. 정녕 저들을 죽일 생각이오?”
“…….”
광성 존자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도 대종사가 너무 빨라 진형에 문제가 생겼음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승리한다 해도 노조와 진인의 태반을 잃게 될 터였다.
“종문 제자들을 생각하시오. 마천과의 싸움을 오늘 하루로 끝낼 게 아니지 않소. 대종사님이야 힘에 부치면 돌아올 수 있지만, 노조와 진안은 죽는단 말이오.”
듣고 있던 소요종 종사 태을 존자가 끼어들었다.
“옳으신 말씀이오! 여기서 더 속도를 올리면 뒤처진 노조와 진인의 절반이 죽을 거요! 진형을 정비하고 차분하게 토벌하도록 하십시다!”
멀리서 태상종의 진표 존자와 무극종의 구산 존자까지 한마디씩 던졌다.
“무리하지 맙시다!”
“여기서 더 빨리 가는 것은 무리요!”
네 명의 종사들이 반대하자 광성 존자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사실 지근거리에 마물이 나타나 앞뒤 없이 서두른 점도 없지 않았다.
‘쯧! 대종사님을 믿고 나까지도 흥분했구나.’
광성 존자는 후미의 제군들이 따라 붙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선두의 종사들이 멈춰 서자 쐐기형 진형은 조금씩 날개를 벌려 기러기 형태가 되었다.
종사들은 속도를 줄이고 진형을 탄탄히 정비했다.
그 바람에 여섯 종문과 연적하의 거리는 더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군단장 몰록의 툭 튀어나온 입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르르륵.”
한 인간이 마물을 헤치며 자신에게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척 봐도 목표는 분명했다.
한낱 인간 따위가 마의 종주(宗主) 중에 하나인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종문이 창조신의 은혜를 받았다 해도, 저건 주제를 넘어선 짓이었다.
인간은 마물의 파도에 휩싸여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남았다.
오히려 깎여 나가듯 조금씩 사라지는 건 그를 둘러싼 마물이었다.
‘종사인가?’
아니, 종사라 해도 저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
몰록은 자신의 네 종자를 불러들인 뒤 날뛰고 있는 인간을 가리켰다.
“레타(죽여라).”
순간 네 종자, 아탈레스들은 접고 있던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이윽고 연적하의 마리 위까지 날아간 아탈레스들이 입을 쩍 벌렸다.
순간 용암 같은 시뻘건 불줄기가 연적하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처음에는 연적하도 알지 못했다.
사방이 마기로 들끓은 것도 있지만, 상대하는 마물이 많았고, 무엇보다 하늘이 흑암으로 가려져 있어서다.
그러던 중 뭔가 불길한 기운이 머리 위에서 느껴지자 슬쩍 눈을 들어 올렸다.
불덩어리를 본 순간 생각보다 연적하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피한 연적하는 뒤늦게 자신을 공격한 마물을 발견했다.
자기가 있던 자리 위에 편복(蝙蝠, 박쥐)을 닮은 마물 넷이 날개를 펄럭이며 떠 있었다.
코끼리보다 큰 몸통의 편복을 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런 몸뚱어리로 잘도 날아다니는구나!”
연적하의 조소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편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캬아아아-!”
편복의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한 순간, 연적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뒤이어 속이 울렁거리더니, 급기야는 물속에 잠긴 듯 숨마저 가빠졌다.
연적하는 문득 삼보절명 당운망을 떠올렸다.
그의 낙월독정에 당한 때도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고통을 느꼈었다.
‘크흡! 독에 당한 건가?’
혼미한 와중에 연적하는 구천여일진경의 구결을 떠올렸다.
생령과 합일한 구천기가 전신을 한 바퀴 돌았지만, 기이하게도 막히는 곳이 없었다.
독이 아니라는 뜻이다.
연적하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흑운으로 덮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네 마리 편복이 계속해서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왠지 머릿속을 송곳으로 긁어내는 듯한 저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설마 음공이었냐!’
연적하는 즉시 구천검령을 불러냈다.
이윽고 거대한 붉은 검이 흑운에 뒤덮인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뭉쳐 있던 네 마리 아탈레스들은 지상에서 불길한 기운이 올라오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아탈레스들은 구천검령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했다.
붉은 검이 굶주린 독수리라면, 아탈레스들은 살찐 박쥐였다.
독수리가 네 마리 박쥐를 찢어발기는 데 반각(약 7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탈레스들의 피와 살점이 마물들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