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6
686회. 의지의 검을 빳빳하게 세우십쇼.
다음 날 아침.
천지종 종산.
군림전.
마천과의 전쟁에 동원된 태상종과 천지종 고수들이 결연한 얼굴로 대오를 맞춰 섰다.
출정 준비가 얼추 끝나자 천수각 각주 곡분조 노조는 안학궁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광명진천이 군림전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상종과 천지종 고수들을 둘러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종사 연적하가 보이지 않아서다.
“대종사는 어디 있느냐?”
그 말에 곡분조 노조는 종문 고수들을 살폈다.
과연 대종사가 보이지 않았다.
대종사가 인솔해야 하니 나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차, 찾아보겠습니다.”
“…….”
광명진천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한낱 인간이 ‘삼천의 신’으로 불리는 자신을 기다리게 하다니?
눈치를 보던 곡분조 노조는 급히 운종술을 펼쳐 옥녀봉으로 날아갔다.
염화전 앞에 떨어져 내린 그가 막 염화전으로 뛰어 들어가려 할 때다.
때마침 연적하가 느긋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연적하와 눈이 마주친 곡분조 노조는 저도 모르게 윽박지르듯 말했다.
“아니! 왜 이제야 나오십니까? 아침 식사 후에 바로 출정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그래서 아침 먹고 나왔잖아. 눈에 뵈는 게 없어? 누구한테 큰소리야?”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곡분조 노조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용서해 주십시오. 급한 마음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광명진천님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아서 그만.”
“곡 노조, 천지종의 대종사는 나야. 당신은 내 심기도 살펴야 한다고.”
“예, 주의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곡 노조, 실망이야.”
“잘못했습니다.”
“사람이 말야. 지조와 의리가 있어야지. 철새도 아니고 그럼 되나.”
곡분조 노조는 억울했지만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았다.
그보다 광명진천에게 빨리 대종사를 데리고 가는 게 더 급했다.
“대종사님. 서둘러 주십시오. 광명진천님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내가 늑장을 부리고 있다는 거야?”
“아닙니다.”
곡분조 노조는 울컥하고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대종사와 말씨름을 하는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뚱한 얼굴로 앞마당에 내려간 연적하가 운종술을 써서 날아올랐다.
곡분조 노조가 허겁지겁 운종술로 그 뒤를 따랐다.
군림전.
군림전 앞으로 연적하와 곡분조 노조가 거의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연적하는 광명진천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묵례했다.
그 모습은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하는 곡분조 노조와 대조를 이루었다.
대종사의 그런 모습에 종문 제자들은 긴장한 얼굴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다행히 광명진천은 그런 대종사의 행동을 따로 지적하지 않았다.
“이제 왔느냐?”
“예.”
고개를 끄덕이던 광명진천이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 그의 신형이 동쪽으로 백여 장(약 300미터)이나 이동했다.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광명진천은 한 걸음에 백여 장씩 쭉쭉 나아갔다.
광명진천이 멀어져 가자 종문 제자들은 부랴부랴 몸에 신행부(身行符)를 붙였다.
연적하가 운종술로 날아가자 태상종과 천지종의 고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광명진천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반나절이나 예의 그 축지법으로 걸어갔
연적하와 태상종의 진표 존자, 제군들은 그럭저럭 어려움 없이 따라갔다.
하지만 천지종과 태상종의 노조와 진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어검비행과 신행부를 이용한 경신술을 번갈아 사용했음에도 조금씩 뒤처졌다.
급기야 진인들이 낙오했다.
뒤이어 노조들마저 대열에서 떨어져 나갈 즈음, 광명진천이 멈춰 섰다.
연적하와 진표 존자, 그리고 태상종의 제군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광명진천이 웃으며 말했다.
“식사는 하고 가야겠지?”
그 소리에 연적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걸 보니 미시(오후 1시-3시)쯤 된 것 같았다.
두 시진(4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온 셈이다.
보통 한 시진마다 쉬곤 했는데 그 두 배를 전력으로 달렸으니 다들 지쳤을 게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진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노조들만 후미에 붙어 있었다.
잠시 후 낙오됐던 진인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평소 깔끔하게 하고 다니던 진인들은 밭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 같았다.
땀에 절은 진인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런 진인들을 물끄러미 보던 광명진천이 문득 연적하에게 손짓했다.
“예?”
“오늘의 할 일을 해야지?”
“할 일요?”
“청명신주.”
“아!”
연적하가 야릇한 눈으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내 기억을 주물러 보시겠다?’
연적하는 자신의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일단 목부터 가다듬었다.
“험! 험!”
남궁연은 의지에 날을 세워 그것으로 광명진천의 언명(言命)을 베라고 했다.
검기발현(劍氣發現)도 따지고 보면 같은 방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언명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광명진천은 자신의 기억을 멋대로 조작할 게 분명했다.
“무얼 하고 있느냐?”
광명진천의 채근에 연적하는 천천히 주문을 외웠다.
“나는 스스로 삼가며 내 마음을 지킬 것이다…….”
보여라.
광명진천의 언명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리에서 어긋난 것을 내 마음에서 지울 것이다.”
마지막 주문을 마칠 때까지 언명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광명진천의 눈에서 태양처럼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을 뿐이다.
심력을 너무 쏟았기 때문일까?
마지막 주문을 마치는 순간 짧게 현기증이 밀려왔다.
연적하는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반신(半神)이라고 했는데, 이 순간만큼은 무기력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희미하게 미소 짓던 광명진천이 그만 가도 좋다는 듯 손을 까딱였다.
우두커니 서 있던 연적하는 터덜터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순간 열패감이 밀려왔다.
‘씨발…….’
광명진천에게 눈 뜨고 당했다.
그의 의지에 얼마만큼의 기억이 뒤틀렸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렇게 육 일이 지나면 메누아는 악신(惡神)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최고신인 광명진천의 의지를 꺾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빠드득!’
연적하는 남궁연의 말을 곱씹었다.
‘의지에 날을 세워 언명을 벤다.’
그가 굳은 얼굴로 앉아 있자 심통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심 진인.”
“예?”
“의지에 날을 세우는 법 알아?”
“예에?”
심통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뜬금없이 의지에 날을 세우다니?
“그건 그냥 배운 사람들이 잘 쓰는 하나 마나 한 소리가 아닙니까?”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요.”
“헛소리라는 거야?”
“그보다는 뭐랄까, 그냥 뭔가 있어 보이는 소리? 왜요? 누가 대종사님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누님에게 그대로 전해 줄게.”
“헉! 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까?”
심통은 석경장에서의 생활이 그리운지 남궁연을 꼬박꼬박 가모님이라고 불렀다.
“어. 하나 마나 한, 있어 보이는 소리라고 했지?”
화들짝 놀란 심통은 황급히 말을 돌렸다.
“제가 강호를 떠돌아다닐 때 들은 이야기인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게 전부인 줄 안다고요.”
“당연한 거 아니야?”
“대종사님을 두고 반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대종사님을 보면 반신답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굉장히 인간적이시다 이 말이지요.”
“내가 너무 잘 대해 준다는 거야?”
“그보다는 대종사님도 대종사님이 경험한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흠…….”
연적하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연적하의 모습에 고무된 심통이 계속해서 말했다.
“의지에 날을 세운다는 게,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말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종사님은 신의 반열에 발을 걸치신 분이 아닙니까? 그냥 의지의 검을 빳빳하게 세우십쇼. 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강호에서의 경험으로 ‘할 수 없다’고 단정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오! 그럴싸한데?”
“흐흐, 뭔가 깨달음을 얻으셨다면 제 덕이라는 걸 기억해 주십쇼.”
“하여간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
“가모님에 대한 저의 충심이 빛을 발한 것뿐입니다.”
가만히 심통을 보던 연적하가 말했다.
“충심을 말하는 사람이 왜 석경장으로 안 돌아가겠다는 거야?”
“석경장에 가면 평생 이곳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팔황신모를 생각해 보십쇼. 제가 그 사람처럼 살아가기를 바라십니까? 불로장생에 눈이 벌게져서 무슨 짓이든지 다 하는?”
“허! 누군 이곳을 감옥이라고 말하면서 증오하던데. 평생 그리워할 것 같다고?”
“평범한 백성들이야 그렇겠지요. 야수에, 마천의 마귀에…….”
“메누아가 그랬는데?”
“메누아 님이요?”
심통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는 초월적인 존재인 메누아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니까. 한번 이 세계에서 태어나면 죽어도 벗어나지 못한대.”
“못 벗어나면 또 어떻습니까? 불로장생하면 그만이지. 제 귀에는 배부른 소리로 들립니다.”
“어째 심 진인은 점점 팔황신모를 닮아 가는 것 같아.”
“대종사님도 늙어 죽기 직전의 상태를 경험하면 저처럼 될 겁니다. 그 유명한 말 있잖습니까?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
“그것도 신체 건강하고 먹고살 만할 때 이야기지.”
“딱 지금의 저네요?”
뺀질뺀질한 심통의 얼굴을 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건강할 때 누려. 거기서 더 욕심부리지 말고. 심 진인은 지금도 아슬아슬한 상태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흡자결로 영기를 취하지 말라는 소리다.
심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어도 능력이 안 돼서 못합니다. 영기를 뺏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속세를 드나드는 종문 제자들 중에 진인은 말단에 속했다.
그러니 심통이 다른 종문 제자와 싸워 영기를 취할 일은 거의 없었다.
심통과의 대화로 기분이 풀린 연적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더니, 심통과의 대화가 그랬다.
연적하는 자신의 생각이 굳어 있음을 알았다.
남궁연이 신좌에 올랐음을 알지 못할 정도로, 자신은 인간의 습성에 젖어 있었다.
그저 눈에 익숙한 것을 좇았다.
자기가 경험한 세계에 갇혀서는 광명진천의 언명을 베어 낼 수 없다.
자신은 신이다.
강호에서 막연하게 상상한 그런 신은 아닐지라도, 신에 걸맞은 능력을 가졌다.
‘의지에 날을 세우라고?’
사람은 그걸 비유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신좌(神坐)에 오른 남궁연은 그걸 비유라고 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는 소리다.
‘나는 할 수 있다.’
연적하의 눈이 구주의 하늘을 향했다.
문득 천둔검의 검결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道)란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으뜸이 되는 기운[祖氣]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손에 잡히지도 않으나,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으뜸이 되는 기운이라.’
한순간 그의 눈에 거대한 검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과거 무당산의 하늘에서 보았던 바로 그, 천둔검이었다.
마침내 그의 의지가 으뜸이 되는 기운[道]을 검의 형상으로 빚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