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0
730회. 너는 저주받은 씨앗이다.
해상전은 시작부터 격렬했다.
마흔네 척의 배가 마신의 선단(船團)에 정면으로 선수(船首)를 들이밀었다.
생사를 도외시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충격(衝激) 전술이다.
연적하의 대장선도 정면에 보이는 대형 목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방이 피하려고 뱃머리를 트는 바람에 살짝 비껴 났지만, 충돌을 막지는 못했다.
콰드드드득! 쿠웅-!
대장선이 측면을 파고들었다.
목선 측면의 널빤지가 부서지고 깨졌지만 워낙 덩치가 커서 단번에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대장선이 적의 목선에 꽉 끼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연적하가 본의 아니게 공동 운명체가 되고 만 두 목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들이받으면 상대가 부서져 침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블레이즈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막 뭐라 답하려는 순간, 마물들이 대장선으로 넘어왔다.
그 뒤로 마귀와 마족 들까지 우르르 건너오면서 백병전(白兵戰)이 벌 어졌다.
선수 부근에 있던 연적하도 즉시 청사(靑蛇)를 뽑아 들었다.
그가 한 차례씩 청사를 휘두를 때마다 진검강에 맞고 튕겨 난 마물들이 강물로 떨어졌다.
백리하의 중심부에 살고 있던 괴수 들이 떨어지는 마물을 집어삼켰다.
날고뛰는 마물들이지만 물속에서는 괴수들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맞붙은 두 척의 목선 주변에서 쉬지 않고 물보라가 튀었다.
천족의 배가 들이받음으로 촉발된 백병전은 시간이 지나도 끝날 줄을 몰랐다.
모두가 흥분한 마물들 때문이다.
마물들은 자기들이 불리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날뛰었다.
그래도 변화는 생겼다. 백병전이 길어지면서 연적하 주변 은 도리어 한산해졌다.
그에게 우르르 몰려갔던 마물과 마귀들이 죄다 강물로 떨어진 탓이다.
잠시 한숨 돌리고 있는 연적하의 앞으로 대검을 든 마족 하나가 다가갔다.
“너는 인간이냐? 천족이냐?”
연적하가 놀란 얼굴로 상대를 보았다.
양측의 전투가 시작된 이래 말을 걸어오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뭐야? 마족이야? 말 잘하네?”
“이 몸은 적마족(赤魔族)의 베르비아 님이시다. 네놈은 인간으로 보이는데, 왜 천족들과 함께 있느냐?”
“내가 대장이니까. 대장기 걸려 있는 거 안 보여?”
연적하가 돛대 위를 가리켰다.
베르비아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인간을 보았다.
하지만 어딘지 만만해 보이는 모습에 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천족들도 맛이 갔구나. 하다 하다 이제는 너 같은 인간을 앞세우다니.”
“개소리!”
말과 함께 연적하가 청사를 힘껏 내던졌다.
진검강에 휩싸인 청사가 일직선으로 베르비아를 향해 날아갔다.
“흥! 그따위 단검으로 이 몸을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베르비아가 대검으로 단검을 쳐 내며 치달렸다.
챙-!
맑은 쇳소리와 함께 대검의 절반이 성둥 잘렸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기세 좋게 인간의 정면으로 달려가던 베르비아가 멈칫했다.
그때 소리 없이 청사가 그의 뒷덜미를 베고 지나갔다.
“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비칠거리던 그는 뱃전에 걸려 뒤로 넘어갔다.
첨벙-.
적마족 베르비아가 당하자 또 다른 마족이 대검을 들고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 역시 일합 만에 백리하로 떨어졌다.
그렇게 두 명의 마족을 순식간에 처치하자 마족들은 그를 슬슬 피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대장선이 삐그덕거리며 조금씩 움직였다.
이윽고 대장선이 마족의 목선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대장선에 올라탔던 마귀와 마물 들이 허겁지겁 자기들 목선으로 후퇴했다.
마침내 두 척의 배가 완전히 분리됐다.
예상과 달리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족의 목선은 침몰하지 않았다.
절반쯤 살아남은 마족과 마귀, 마물 들이 갑판 위에서 연신 괴성을 내질렀다.
마물은 몰라도 마귀와 마족 들은 날아와서 싸움을 이어 갈 만도 한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의 얼굴로 멀어져 가는 대장선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마족의 목선을 보았다.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전투였지만 마족의 배는 가라앉지 않았다.
“배가 안 가라앉는데요?”
그러자 블레이즈가 좌우편을 가리 키며 말했다.
“저들의 운이 좋았습니다. 침몰하는 배들도 제법 있습니다.”
연적하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과연! 가까운 곳에서 세 척의 배가 천천히 물에 잠기고 있었다.
주변의 목선들에 시야가 가려져서 그 이상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블레이즈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가라앉는다고 끝난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침몰 중인 배에는 마물이 하나도 타고 있지 않았다.
적지 않은 마물과 마귀 들이 천족의 배에서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저건 총참모 벨 소니아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른 마족의 배로 후퇴한 마물들도 있었지만 천족의 배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마물도 적지 않았다.
일차 접전은 그렇게 끝났다.
마치 기마대처럼 천족의 배는 마신의 선단을 관통했다.
다른 마족들의 배가 선회하여 붙기 전에 치고 빠진 건 순전히 바람 덕분이었다.
마신의 선단은 옥천항으로 직진하지 않고 끝장을 보려는 듯 선회했다.
양측이 마주하자 일차 접전의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전장을 빠져나온 천족의 배는 여전히 마흔네 척.
단단한 선체의 힘이다.
반면 침몰한 마족의 배는 다섯 척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천족에게 유리한 상황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천족의 배 중에 무려 세 척이 아직도 갑판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던 마물들이 천족의 배로 이동한 탓이다.
갑판에서 계속되는 백병전과 별개로 세 척의 목선은 사령선의 신호대로 움직였다.
그 당황스러운 광경을 본 연적하가 물었다.
“이게 우리가 이긴 거예요? 아니면 불리한 상황인 거예요?”
그러자 블레이즈가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아직 승기를 잃지 않은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어렵네요.”
연적하의 핀잔에 블레이즈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도 마물들이 천족의 배로 옮겨 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벨 소니아도 그런 상황에 대한 지침을 따로 내려 준 적이 없다.
저 세 척의 배에 타고 있는 천족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게다.
문득 사령선을 보니 여전히 붉은 깃발이다.
수적으로 워낙 열세이다 보니 일단 적의 배부터 확실하게 줄이려는 모양이다.
배가 다시 속도를 높일 즈음, 연적하가 물었다.
“그런데 왜 저들은 옥천항으로 가지 않는 거죠? 백리하를 건너는 게 목적이었을 텐데.”
“마신의 목적이 ‘구주의 점령’에서 ‘태고의 전쟁’으로 바뀌었으니까요.”
“천족과 싸우기 위해서라고요?”
“마족들은 구주의 정복보다 천족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을 겁니다. 우리 천족에게 마족을 격멸하는 게 지상 과제이듯, 저들도 그럴 테니까요.”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가 ‘종문이 이용당하는 걸 수도 있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건 억측이었다.
이번의 경우 강조점이 ‘구주’에서 ‘두 종족의 오랜 전쟁’으로 잠깐 옮겨 갔을 뿐이다.
그걸 두고 ‘태고의 전쟁에 종문을 이용한다’는 건 너무 종문 중심의 해석이었다.
마신의 선단(船團)이 점차 가까워졌다.
그때 갑자기 블레이즈가 소리쳤다.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의 깃발입니다! 드디어 마신이 승부수를 띄우려나 봅니다.”
연적하가 정면에 보이는 목선을 찬찬히 살폈다.
돛대 위의 검은 깃발에 두 개의 뿔을 가진 악마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저 검은 깃발이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의 표시인가요?”
“그렇습니다. 놈은 우리 천족들 사이에서도 악종으로 유명하니 조심하십시오.”
“뭐하는 놈인데요?”
“검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놈입니다. 특히 저주에 능하니…….”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척의 배가 측면으로 부닥쳤다.
콰지지직-!
거의 비슷한 각도로 들이박은 터라 두 척 모두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기울어진 배가 원상태로 돌아가기도 전에 마족의 배에서 거대한 창이 날아왔다.
콰직!
거대한 철창이 갑판에 깊게 박혔다.
이윽고 깃대에 돌돌 말려있던 검은 깃발이 차르륵 펼쳐졌다.
검은 깃발에 그려진 악마의 얼굴을 본 천족들이 치를 떨었다.
“악투스 발라지크!”
“악마 중의 악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말들은 요란했지만 누구도 나서서 악마의 깃발을 제거하지 않았다.
정예 강군인 서부군이 몸을 사릴 정도로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의 악명은 높았다.
곧이어 마족의 배에 타고 있던 마물과 마귀 들이 개떼처럼 대장선으로 넘어왔다.
마지막으로 스무 명의 마족들이 느긋하게 건너왔다.
스무 명의 마족들 중 하나가 깃발 옆에 서서 우렁차게 외쳤다.
“칠대 악지(惡地)를 다스리는 악마 중의 악마! 흑마족(黑魔族)의 적자(嫡子) 중의 적자! 마신님의 오른팔이신 악투스 발라지크 님이 강림하셨다! 장군기의 주인은 나와서 악투스 발라지크 님 앞에 무릎을 꿇어라!”
“…….”
천족들은 분기탱천한 얼굴이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서부군 총사령관의 부관 블레이즈가 나섰다.
“장군기의 주인은 아홉 종문의 대종사이신 연적하 님이시다!”
마족의 설명에 비하면 짧아도 너무 짧은 소개다.
연적하가 못마땅한 얼굴로 나섰다.
그러자 블레이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족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연적하가 나오자 깃발 옆에 서 있던 마족이 가소롭다는 얼굴로 말했다.
“천족이 한낱 인간 따위……. 악!”
마족은 말하다 말고 얼굴을 감싼 채 뒤로 나뒹굴었다.
바람처럼 다가간 연적하가 주먹으로 마족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팔다리 부러뜨려서 백리하에 처넣어 버린다.”
비칠거리며 일어난 마족은 연적하의 투기에 눌려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연적하가 창대에 걸려 있는 검은 깃발로 목 주위를 쓱쓱 닦으며 말했다.
“덥다. 빨리 끝내자. 악투스 발라당 어쩌고 나와라.”
순간 깃발에서 검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났다.
깜짝 놀란 연적하는 들고 있던 깃발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퍼엉-!
가벼운 폭발음과 함께 깃발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일 장(약 3미터) 크기의 마족이 나타났다.
악마의 얼굴에 거대한 두 개의 뿔, 깃발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였다.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는 등장하자마자 연적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너는 창세 이전부터 저주받은 씨앗이다. 너를 잉태한 죄로 네 어미는 너를 낳다 죽었고, 네 아비는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했다! 창세 이전부터 저주받은 씨앗이여! 너의 근원과 존재를 부정하라! 투락숨(약해져라)! 아란트 사마니(한없이)!”
순간 연적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죽었고, 아버지는 죽은 뒤에 부관참시(副棺斬屍)를 당했다.
그건 이 세계의 악투스 발라지크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악투스 발라지크는-누구도 알지 못하는-자신의 과거를 까발렸다.
그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한 순간, 놀랍게도 그의 저주는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