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5
775회. 처음으로 부탁 좀 할게요
본래 광명진천과 마신도 왕 중에 하나였다.
과거 ‘십왕’으로 불리다 광명진천과 마신이 ‘삼천의 신’으로 격상되면서 ‘팔왕’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광명진천과 마신이 ‘삼천의 신’으로 격상된 것은 둘의 무위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천족’과 ‘마족’이라는 출신성분도 한몫했다.
광명진천과 마하수라천이 각각 정(正)과 사(邪)를 관장하는 신으로 불린 것도 그래서다.
각설하고, 팔왕의 경지가 광명진천이나 마신과 비교하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그 간극은 감히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지 않았다.
그런 팔왕 가운데 무려 셋이 힘을 합쳤으니 연적하가 궁지에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연적하가 놓친 세 번째 검인 광욕천왕의 공중무색(空中無色)은 그가 막연하게 떠올린 무형(無形劍)보다 뛰어난 검공이었다.
예컨대 무형검이 단지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검이라면, 공중무색은 육안은 물론 기감(氣感)으로도 찾을 수 없는 검인 까닭이다.
무형검이 공(空)이라면 공중무색은 그다음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연적하는 천둔검을 정면에 세우고 영기를 발출했다.
기감으로 사라진 검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방으로 영기를 쏘아 보냈지만 어디에서도 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검에 정신을 집중할 때 광욕천왕이 검결지로 연적하를 가리켰다.
“죽어라!”
팟-.
연적하의 가슴에서 한 치 앞에 유령처럼 검이 나타났다.
그러나 천둔검보다 안쪽이라 검으로 막아 내기란 불가능한 상황.
별수 없이 연적하는 다시 한번 철판교의 신법으로 상체를 뒤로 눕혔다.
그러나 빛살처럼 가로지르는 검에 앞가슴이 길게 베어졌다.
연적하의 가슴을 베고 지나간 검은 또다시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가 자세를 바로하기 전에 북명천왕의 신기 적멸신검이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위기의 순간, 보다 못한 심통이 금강저를 들고 난입해 적멸신검을 후려쳤다.
콰앙-!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간 적멸신검은 연적하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이 끝나자 사천왕들은 잠시 거리를 벌리고 물러났다.
그 틈에 연적하와 등을 맞대고 선 심통이 소리쳤다.
“공자님! 검령은 아꼈다가 국 끓여 먹을 겁니까?”
“어.”
“어라니요? 상대는 사천왕입니다!”
심통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검령을 꺼내지 않는 연적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입은 부상은 자신이 본 것 중에 가장 정도가 심했다.
목은 물론 가슴과 옆구리까지 칼에 맞아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그런데도 최강의 수법인 검령을 꺼내지 않는다니?
“알아.”
“알면 꺼내서 쓸어버리셔야죠! 왜 당하고만 계십니까?”
“마지막 패를 벌써 꺼내 들면 안 되지.”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느낌에는 아직 아니야.”
연적하가 주위를 쓰윽 둘러보았다.
가까이는 품자(品字) 형태로 에워싼 공허천왕, 북명천왕, 광욕천왕이 있고, 그 뒤로 일곱 명의 존자들과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곱 명의 존자들과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은 관망하는 듯한 표정들이다.
저러다가도 자신의 한계가 확연히 드러나면 개떼처럼 달려들리라.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러고도 남았다.
그때 공허천왕이 말했다.
“검령을 꺼내라.”
연적하가 기이한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검령을 콕 찍어 말하는 걸 보니 나름 대비를 한 모양이다.
사천왕이라는 이름이 왠지 친숙해서 적의(敵意)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당신 이름은?”
“공허천왕이다.”
“내 검령이 보고 싶은 모양인데, 내 검령은 대비를 한다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내가 그걸 꺼내면 당신들은 다 죽어.”
“후후! 그것으로 마신을 제압했다더니 기고만장하구나. 마신과 사천왕의 경지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나는 네가 우리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로 해서는 안 되려나?”
연적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사천왕들을 보았다.
구천검령으로 저들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뒤다.
구천검령에도 한계가 있다.
아니, 그것은 구천검령의 한계라기보다 자신의 한계다.
구천검령의 힘을 쓰면 영기가 고갈되어 한동안 다시 꺼내기 어려웠다.
영기가 고갈되었을 때 존자들과 천족 원정군이 뒤통수를 치면 당할 수밖에 없다.
광명진천이라면 종문과 천족 원정군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는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과 함께 이선으로 물러나 있었다.
‘교묘하군, 교묘해.’
고개를 젓던 연적하가 공허천왕에게 물었다.
“고범천왕의 복수는 핑계일 테고, 당신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뭐지?”
“너의 죽음이다.”
“왜? 내가 뭘 어쨌다고?”
“살고 싶으냐?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
“창조신의 생령을 우리에게 넘겨라. 그렇게 한다면 우리 사천왕이 너의 후원자가 되어 주겠다. 너는 구주의 대종사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 하는 약속이다.”
“와아! 날로 먹겠다는 거네?”
연적하는 사천왕의 욕심에 혀를 내둘렀다.
‘천문의 수호’와 ‘사천왕의 복수’를 앞세웠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창조신의 생령이었다.
연적하는 존자들과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을 보았다.
분명히 광명진천은 사천왕처럼 저들의 감추어진 욕망을 자극할 터였다.
‘이것들을 어떻게 물 먹이지?’
그가 잠시 고민할 때 남궁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적하가 사천왕과 생사결을 벌이자 기다리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남궁연은 무리들을 가로질러 연적하의 곁에 나란히 섰다.
연적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그녀가 고수라 해도 배가 산처럼 부른 그녀를 전장에 세울 수는 없었다.
“누님? 여긴 나 혼자도 충분하니까 잠깐 빠져 있어요.”
연적하의 만류에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 군림전의 목수평 노조에게서 연락을 받았어. 천족군이 이중 삼중으로 덕유봉을 에워싸고 있대. 저들은 우리를 놓아줄 마음이 없어. 그렇지 않나요? 광명진천님?”
갑자기 남궁연이 광명진천을 지목했다.
그러자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과 나란히 서 있던 광명진천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핫! 역시 지혜로는 따를 자가 없다고 하더니만, 네 말이 맞다. 너희는 오늘 덕유봉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말했다.
“광명진천! 그렇게 당하고 무슨 얼굴로 나대는 거지? 아직 남은 날개가 있어?”
“연적하! 하계(下界)에서 올라온 너는 범천 욕계의 질서를 파괴했다! 범천 욕계 신들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고, 창조신의 생령을 되찾겠다. 그것은 본디 범천 욕계의 것으로 하계의 인간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 너에게 아무리 대단한 검령이 있다. 해도 범천 욕계 전체를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미 말을 맞추어 놓았는지 광명진천의 말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연적하는 광명진천이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풀어 갈 줄 몰랐기에 멈칫했다.
남궁연이 나직이 속삭였다.
“광명진천은 천족과 종문을 동원해 우리를 말살할 생각이야. 그러니 지금은 싸우기보다 천문을 여는 데 집중하도록 해. 뒷일은 신경 쓰지 말고.”
연적하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광명진천을 노려보았다.
‘저 노괴가 이렇게 분탕질 칠 줄 알았으면 진즉에 죽였을 텐데…….’
저걸 왜 살려 두었는지 모르겠다.
이를 박박 갈던 연적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범천 욕계의 질서 어쩌고 하지만 실상은 그저 탐욕에 눈이 먼 거지? 존자들은 너희가 왕 노릇을 하고 싶은 거고! 천족은 너희보다 뛰어난 인간을 인정하기 싫고! 너희 사천왕들은 창조신의 생령을 뺏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광명진천! 뱀처럼 간교한 노괴야! 너희들은 영원히 범천 욕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알아? 너희들은 구제불능이라고!”
연적하가 펄펄 뛰자 북명천왕이 공허천왕과 광욕천왕에게 눈짓을 보냈다.
대종사가 이성을 잃고 날뛸 때 공격하자는 뜻이다.
순간 밤하늘을 선회하던 적멸신검이 벼락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쉬이익-.
뒤이어 공허천왕이 다시 한번 생법시무의 검공을 펼치려 할 때다.
돌연 연적하가 들고 있던 천둔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사천왕들은 연적하가 예의 그 검령을 꺼낼 줄로 알고 십 장(약 30미터) 뒤로 물러났다.
떨어져 내리던 적멸신검도 다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천문을 염두에 둔 연적하는 그러지 않았다.
검결지를 머리 위로 치켜든 그가 크게 외쳤다.
“포라천지(包羅天地)”
사천왕과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 그리고 존자들의 시선이 그의 검결지를 따라갔다.
그들 모두 대종사가 구천검령을 꺼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까마득히 올라간 천둔검이 멈춰 섰다.
본래 천둔검은 ‘하늘과 땅을 포용한다’고 할 정도로 컸다.
그것을 연적하가 자신이 원하는 크기로 줄여서 사용해 왔었다.
분기탱천한 연적하는 단숨에 천둔검의 크기를 본래대로 돌렸다.
쿠쿠쿠쿵-!
우렛소리와 함께 천둔검이 커졌다.
거대한 검신이 세 개의 달을 가리자, 이내 덕유봉에 그늘이 졌다.
곧이어 산처럼 거대한 검이 지면을 향해 기울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그 기괴한 광경에 사천왕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공허천왕이 소리쳤다.
“저것이 대종사의 검령인가 보오! 다들 준비한 것을 씁시다!”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의 신기(神器) 공허신검을 뽑았다.
광욕천왕도 신기 광욕만천을 뽑아 들었고, 북명천왕은 적멸신검을 불러들였다.
이윽고 서기(瑞氣)에 휩싸인 세 자루 신기가 어두운 밤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꽈르르릉! 꽈광! 꽝!
밤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번개가 치듯 천둔검과 신기가 마주칠 때마다 밤하늘이 번쩍거렸다.
천둔검의 크기와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에 비하면 세 자루 신기는 마치 이쑤시개 정도로 보였다.
세 자루 신기는 쉬지 않고 천둔검을 때렸지만 천둔검은 묵묵히 낙하했다.
결국 ‘이러다 압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천왕들이 덕유봉에서 황급히 몸을 뺐다.
뒤늦게 종문의 고수들과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도 북악봉으로 피했다.
연적하의 검결지가 광명진천을 가리켰다.
가가가각-.
덕유봉으로 떨어져 내리던 천둔검이 미끄러지듯 방향을 틀었다.
천둔검을 북악봉으로 날려 보낸 연적하가 남궁연과 심통에게 말했다.
“누님, 내 옆으로 와요. 심 노인도. 천둔검은 눈속임에 불과해요. 이제 천문을 열 거예요.”
남궁연과 심통이 연적하의 좌우편에 자리를 잡았다.
영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린 연적하가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유체이탈의 상태로 구주를 한 바퀴 돈 적은 있지만 육신으로는 처음 시도다.
범천 욕계의 모든 존재가 자신을 노리고 있으니 이번에 실패하면 두 번은 없다.
최후의 순간 연적하는 창조신에게 기원했다.
‘창조신님! 처음으로 부탁 좀 할게요. 나 좀 도와줘요.’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라는 말이 새삼 뼈에 와 닿았다.
문득 구룡번신을 익히던 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위치를 바꿀 때마다 기경팔맥과 신맥의 용들을 하나씩 깨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천검령이 기경팔맥과 신맥에 자리를 잡고 난 뒤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구룡번신에는 공간 이동의 공법이 숨겨져 있었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아홉 번 자리를 바꾸는 것은 입문의 단계에 불과하다.
구룡번신의 오의(奧義)는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다[九龍翻身 無所從來 亦無所去]’는 구결에 숨겨져 있었다.
‘가자!’
팟-!
연적하의 신형이 마치 이형환위의 신법을 쓴 것처럼 허공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