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92
892회. 저것들 사람 아니네
사흘 전.
무한 천검문.
안채에 세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다.
천검문주 활인검 유진원과 그의 딸 유소운, 그리고 사범 유지민이다.
“호천맹에서 마교와 싸우기로 결의하였다는구나. 이곳 무한에서 건곤일척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소집에 응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문주의 말에 유지민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문주님. 호천맹이 마교를 막아 낼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예를 보면 정사파가 힘을 합쳐서야 겨우 상대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호천맹은 종이호랑이가 아닙니까? 마교와 싸우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맞아요, 아버지. 응하지 마세요. 사천무림과 남맹도 없잖아요. 호천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사천무림과 남맹의 움직임을 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그러자 유진원이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말이 다 맞다. 하지만 우리 같은 호천맹 산하의 문파들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천검문은 그동안 호천맹의 그늘에서 혜택을 누려 왔다. 그래 놓고 호천맹의 소집을 거부한다면 천하가 우리를 손가락질할 게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결정을 할 거예요. 사천무림도 그랬잖아요.”
“사매의 말이 맞습니다. 무시하면서 잠시 시간을 끄는 게 낫습니다.”
유진원이 고개를 저었다.
“호천맹의 뿌리는 칠파일문이다. 마교는 스쳐 지나가는 태풍과도 같지. 무림사에 마교가 천하를 지배한 역사는 없다. 마교의 바람이 잦아들면 호천맹에서 천검문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유지민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그래도 호천맹은 정파인데 설마 정파인 천검문을 적대시하겠습니까?”
“대놓고 적대시하지는 않더라도……. 서서히 말려 죽일 게다. 호천맹의 말 한마디면 태평상방과의 관계도 끝난다. 지역 상권은 말할 것도 없지.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우리에게 누가 일을 맡기겠느냐?”
“…….”
유진원의 말에 유소운과 유지민은 반박하지 못했다.
독이 잔뜩 오른 무한 지부에서 천검문을 그냥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교에 이철산 대사부를 잃었다. 이 기회에 대사부의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자꾸나.”
대사부의 이야기가 나오자 유소운과 유지민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검문은 ‘강호 도의와 이철산 대사부의 복수’라는 기치를 들고 무한 지부로 달려갔다.
***
현재.
무한 북부 섭수(浸水) 강변.
사방에서 괴소(怪笑)가 들리자 호천맹 무한 지부의 무인들은 한자리로 모여들었다.
무한 지부 총관 동정일학 진량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부장님! 설마 벌써 따라잡힌 건 아니겠지요?”
“모르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마두들이니까. 여러분, 빈틈이 보이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리시오. 목련산을 목표로 하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아무 곳으로라도 피하시오. 목숨을 보존하는 게 우선이라는 소리요. 호천맹은 여러분이 보여 준 신의를 잊지 않을 것이오.”
무한 지부장 청풍도 양홍의 유언과도 같은 말에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마교 본진의 손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다.
두 시진(4시간) 전 고작 세 사람을 상대로도 악전고투를 치렀다.
그런데 웃음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만약 마교 본진의 포위망에 갇혔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으리라.
무한 지부 무인들은 포위당했다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사실 마교는 아직 포위망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이 들은 소리는 몇몇 마두들의 육합전성이었다.
사방팔방에서 소리가 들리게 하는 음공에 놀라 오도 가도 못한 셈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두들이 보이지 않자 양홍은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육합전성에 속은 것 같소. 적이 아직 이르지 못한 것 같으니 다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의 웃음소리는 귓가에 대고 웃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져 소름이 오싹 돋았다.
“크하하핫-!”
“크크큿!”
양홍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는 마교가 어느 쪽에 있는지 아예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사방팔방은 물론 하늘과 땅 밑에서도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서는 적이 없음을 알면서도 무리를 어느 한 곳으로 이끌 수가 없다.
그렇게 무한 지부 무인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마교 본진의 전위대(前衛隊)인 적룡대였다.
적룡대 대주인 역천마도 금환이 남방사자 재견우를 보며 말했다.
“흐흐. 내 말하지 않았소? 육합전성 몇 번 쓰면 오도 가도 못할 거라고.”
“인정하리다. 호천맹의 떨거지들이 저렇게 어리석은 줄 몰랐소. 개돼지들도 아니고. 고작 육합전성에 발이 묶이다니. 쯧쯧!”
재견우는 전설의 음공인 육합전성을 고작이라고 표현했다.
금환도 같은 생각인지 실실 웃기만 할 뿐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마교 고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한 지부 고수들을 포위했다.
오십 대 오심.
숫자는 같지만 양측의 구성원을 보면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이다.
오십여 명의 무인들을 훑어보던 금환이 물었다.
“너희는 호천맹이 맞느냐?”
무한 지부장인 양홍이 무리를 대표해 답했다.
“맞소. 나는 호천맹 무한 지부장 양홍이오. 당신은 누구요?”
“나? 너희가 아직도 기억하는지 모르겠구나. 본좌는 역천마도라 불리던 사람이니라.”
역천마도라는 말에 양홍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녹림의 총채주 파천마군보다 윗줄로 알려진 전전 대의 대마두였다.
과거 역천마도의 손에 죽은 정사파 무림인이 천 명을 넘는다던가.
오죽하면 별호에 역천(逆天)이 들어갈까.
무림공적이던 그를 죽이기 위해 정의맹이 백 명의 척살대를 보냈지만 모두 죽임당했다.
그게 한 갑자(60년)도 전에 일어난 ‘역천마도의 혈겁’이었다.
금환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양홍을 빤히 보며 말했다.
“급히 달아나는 것 같던데 호천맹의 본진으로 가던 중이냐?”
“…….”
너무도 뻔한 질문에 양홍은 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바로 목련산 소리를 하면 도리어 의심받을 것 같아서다.
“호천맹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도 명색이 호천맹의 무인들인데 순순히 가르쳐 줄 것 같소?”
“흐흐. 그래? 네 수하들의 목이 하나씩 잘려 나가도 버틸 수 있는지 보겠다. 놈들을 제압해라.”
금환의 명이 떨어지자 적룡대가 호랑이처럼 무한 지부 무인들을 덮쳤다.
무한 지부 무인들이 모두 제압당하는 데는 채 반각(약 7분)도 걸리지 않았다.
금환이 양홍의 앞에 섰다.
“호천맹은 어디 있느냐?”
“…….”
양홍이 침묵하자 금환은 손가락으로 제압된 무인 중 하나를 가리켰다.
서걱-.
한 남자의 머리가 지면에 나뒹굴었다.
한참을 부들부들 떨던 양홍이 물었다.
“호천맹이 어디 있는지 말하면 저들을 살려 줄 거요?”
그러자 금환의 얼굴에 스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잘 대해 주니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오르는구나. 답하지 않으면 계집은 윤간한 후에 가랑이를 찢고, 사내는 천천히 포를 떠서 죽일 것이다. 그러나 성실하게 대답한다면 저놈처럼 단칼에 죽여 주마. 선택해라. 어떻게 해 주랴?”
머뭇거리던 양홍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목련산이오. 약속을 지켜 주시오.”
“크하하핫! 약속을 지켜 달라고? 백 년 이내에 가장 웃긴 이야기였다.”
연이어 금환은 유소운을 가리켰다.
“저 계집은 나에게 끌고 오고, 나머지는 알아서 즐겨라. 그리고 사내 놈들은 포를 떠라. 오랜만에 신선한 육회를 즐겨야겠다. 남방사자도 입 맛대로 골라 보시구려.”
순간 양홍이 버럭 소리쳤다.
“그만둬! 단칼에 죽인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크크큿! 이건 무슨 병신 같은 소리지? 애초에 우리가 약속하면 지키는 사이더냐?”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냐! 이 개만도 못한 놈아!”
“쯧쯧! 공부가 부족한 놈이로군. 하늘은 선악을 구별하지 않으니 두려울 게 없느니라. 태양이 언제 사람을 가려서 비추더냐?”
그러는 동안 마두 하나가 유소운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금환이 여자를 품에 안고 말했다.
“네놈에게는 특별히 육체의 고통을 눈의 즐거움으로 잊게 해 주마.”
금환이 여자를 데리고 온 마두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마두는 양홍의 옷을 거칠게 잡아 뜯었다.
그리고 알몸이 된 양홍의 피부에 칼날을 슥슥 비벼 댔다.
양홍은 유소운이 겁탈당하는 걸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마두는 양홍의 눈꺼풀을 쭈욱 잡아 늘였다.
눈꺼풀을 도려내 강제로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막 양홍의 눈꺼풀을 잘라 내려 할 때다.
아아아아-!
돌연 천지를 울리는 장소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섬뜩하던지 마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적룡대 대주를 보았다.
남방사자 재견우도 막 고른 여자를 내팽개치고 금환에게 달려갔다.
“금 대주! 이 소리는 혹, 교주님께서 오시는 거요?”
“교주님의 소리는 이처럼 맑지 않소.”
“허면……. 헉?”
뭔가를 생각하던 재견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금환도 불안한지 슬그머니 여자를 옆에 내려놓고 물었다.
“왜 그러시오? 짚이는 사람이라도 있소?”
“혹시 남천 연적하인가 싶어 그러오.”
“남천?”
금환은 급히 일어나 자신의 애도를 손에 쥐고 사방을 경계했다.
***
그것은 어찌 보면 금환의 자승자박이었다.
그의 육합전성은 무한 지부 고수들의 걸음을 묶어 두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던 연적하를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공자님, 들으셨습니까?”
“웃음소리?”
“예, 육합전성 같은데……. 저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영 감이 안 잡힙니다.”
“북쪽이야. 가 볼까?”
“가 볼까라뇨? 무조건 가야죠. 육합전성은 전설상의 음공입니다. 개나 소나 쓸 수 있는 수법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교 놈들일 겁니다.”
“아, 그래? 소리 꽥꽥 지르는 게 전설이나 돼?”
“육합전성은 사방팔방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저만 해도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심 노인이 늙어서 잘 못 들은 게 아니고? 저 위에서 나는 소리를 왜 몰라?”
“그럼 공자님은 콕 찍어서 어디쯤인지 안다는 겁니까?”
“알지. 오십 리(약 20 킬로미터) 북쪽이야.”
섭수 강변을 따라 북으로 삼십 리(약 12킬로미터)쯤 날아갔을까?
다시 한번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 맞지?”
“그러네요. 북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심통도 어느 정도 위치를 감 잡을 수 있었다.
문득 연적하가 물었다.
“사방에서 소리가 나는 게 어려워?”
“쉬우면 전설이겠습니까?”
“어렵긴 개뿔. 잘만 되던데. 들어 볼래?”
“언제 배웠습니까?”
“소리 지르는 걸 뭘 배워? 그냥 내지르면 되는 거지. 육합(六合, 천지와 사방)인지 육갑(六甲)인지 그게 뭐 대수라고.”
연적하는 영기를 끌어 올려 힘껏 소리쳤다.
아아아아-!
천지가 진동을 했다.
심통이 애매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소리는 벽력처럼 큰데 방향이 육합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때 길게 뻗은 강줄기를 내려다보던 연적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것들 사람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