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5
95회. 좀 주저앉아도 돼
개봉.
천향반점.
천향반점의 주인 천살마안 척도광은 조금 독특한 사람이다. 사파의 거마이지만 돈을 모아 천향반점이라는 대형 음식점을 차렸다.
대부분의 마두가 혼자 잘난 맛에 사는데, 그는 관계를 중요시했다. 그 결과 지금은 개봉 사파연합인 흑사회의 십장로 중 하나다.
천향반점을 운영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천향반점에는 정상적인 반점과 인육을 파는 흑점, 그리고 살인 청부를 받는 죽방이 있다.
그는 세 명의 제자에게 각각 반점과 흑점과 죽방의 관리를 맡겼다. 반점은 일 공자, 흑점은 이 공자, 죽방은 삼 공자의 식으로 말이다.
한 건물에 관리자가 셋이다 보니 제자들의 반목이 심했지만, 그는 제자들의 암투를 재밌는 구경거리로 여기고 오히려 부추겼다.
그 천살마안 척도광이 뱀 같은 눈으로 삼 공자 유령검 심영춘을 바라보았다.
“살수가 둘이나 죽었더구나. 그것도 고작 기루의 호위들에게 말이다.”
잔잔한 음성이지만 심영춘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놈의 무공 수위가 예상과 달라서 그만…….”
“살수 하나를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느냐?”
“용서해 주십쇼.”
“최소 일만 냥이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느냐? 가르치고, 치료하고, 필요하면 영약까지 구해서 먹여야 하지.”
“…….”
“한 사람이 제구실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최소한 오 년이다. 그런데 육살과 칠살은 십 년 이상 된 녀석들이야. 만 냥이 아니라 이만 냥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봐야지. 그런 녀석을 둘이나 죽였으니, 너는 나에게 최소 사만 냥의 손해를 입힌 셈이다.”
“이건 모두 추엽진의 잘못입니다. 그놈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는 바람에…….”
심영춘은 추엽진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사해상방의 의뢰였더냐?”
“예. 자기들이 고용한 낭인이면 그 무위를 알고 있었을 텐데, 전혀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도 말입니다.”
심영춘은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
기루에서 고용한 낭인 하나 처리하는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상대가 그 정도 고수인 줄 알았다면 방법을 달리했을 겁니다. 돈도 칠백 냥이 아니라 삼천 냥 이상 청구했고요. 놈들이 작정하고 속인 게 분명합니다.”
어느새 대상은 추엽진에서 사해상방으로 확대됐다.
미묘하게 변한 심영춘의 말에 척도광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심영춘의 노림은 뻔했다.
사해상방에 배상을 받아 내자는 것이다.
천향반점과 사해상방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천향반점이 밀린다.
사해상방에는 호위무사만 사십여 명에 달한다.
그에 반해 천향반점은 죽방의 살수 일곱이 전부다. 본래 아홉인데 둘이 죽어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면대결을 피하면 천향반점이 유리하다.
살수들이 작정하면 사해상방의 방주 상재용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그건 저 여우 같은 상재용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재용 역시 보통 욕심 많은 놈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죽하면 자신이 고용한 기루의 호위를 죽여 달라는 청부까지 넣을까!
척도광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상재용은 오히려 청부에 실패했으니 위약금을 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럼 죽여 버리겠습니다.”
심영춘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쯧쯧! 물주를 죽이겠다니 분노로 이성을 잃었구나. 그래서야 어디 죽방을 맡기겠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죽방에서 손을 떼라.”
“…….”
심영춘의 머리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최악의 결과다.
스승의 입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나왔다.
“상재용에게 전하거라. 내일 술시 초(저녁 7시)에 강월루에서 만나잔다고.”
“예…….”
심영춘이 기운 없는 소리로 답했다.
아무래도 스승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잔심부름이나 하게 될 모양이다.
***
하남성.
정주.
정주는 하남성의 성도로 가히 대륙의 심장과도 같은 도시다.
시월의 마지막 날.
기울어 가는 늦가을 햇살을 받으며 이두 마차 하나가 성문으로 들어섰다.
대로를 따라가던 마차는 중원반점 앞에서 멈췄다.
말고삐를 한쪽에 내려놓은 마부가 뒤쪽을 보며 ‘도착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잠시 후 마차 안에서 두 남자가 내렸다.
낙양을 떠난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이었다.
창해무관의 마차를 그렇게 부러워하더니 끝내 한 대 구한 모양이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고민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부실하게 해결해 저녁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던 심통이 연적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공자님께서 산을 내려온 이유가 떠올라서요.”
“싱겁긴.”
갈증이 나는지 연적하가 찻잔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진전은 좀 있으신 겁니까?”
“우물에서 숭늉 찾을 사람일세. 천지상인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진전 타령이야.”
“아니 그냥, 공자님께서 요즘 무공을 등한시하시는 것 같아서요.”
“안 될 때는 쉬라며?”
“쉬는 것도 좋지만 ‘너무 내려놓으신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요.”
“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흐흐, 적당히 하시라는 거지요. 적당히.”
“그거 알아? 개구리도 멀리 뛰기 전에 먼저 쪼그리고 앉는다고.”
“예, 예, 그러다가 주저앉지나 마십쇼.”
“내 나이에는 좀 주저앉아도 돼. 심 노인이야 주저앉으면 위험할 나이지만.”
“어이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이야기는 안 들은 것으로 하십시오.”
“그래. 아 참! 풍 형님이 중독됐잖아? 어디서 해약이라도 구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냥 가 봤자 별 도움이 안 되잖아.”
“그래서 살수 단체를 찾으려고 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응?”
“저는 공자님께서 그들에게 해약을 받아 내려고 그러신 줄 알았습니다.”
“난 그냥 복수하려고 그런 건데?”
“흐흐흐.”
심통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무위가 너무 뛰어나서 다른 것도 심오할 거라 자꾸 착각하게 된다. 정작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강호초출일 뿐인데 말이다.
“누구 짓인지 찾아서 족치면 해약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렇구나.”
“독을 쓰는 자들은 해약도 함께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심 노인 친구를 빨리 찾아야겠네.”
“흐흣! 친구는 아닙니다. 그냥 서로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 정도지요.”
살수와 알고 지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니 어쩌면 친구가 맞을지도 모르는데, 심통은 극구 부인했다.
“마부가 아까 개봉까지 반나절 정도 걸린다고 했지?”
“예, 하지만 말과 마부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니 정주에서 묵어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풍 형님이 잘 버텨 주어야 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무림인들은 보통 사람보다 오래 버티니까요. 더구나 풍 형제는 백자구결까지 익히지 않았습니까? 잘 견뎌 줄 겁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문득 심통을 보았다.
“대체 어떤 놈이 청부를 한 걸까? 풍 형님에게 뭐 뺏을 게 있다고.”
“저도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풍 형제가 기루에서 일했다는 걸 보면 돈 때문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어떤 놈인지 잡기만 해 봐라. 아주 그냥…….”
연적하가 이를 갈았다.
십수 년 만에 겨우 가족들 곁으로 돌아간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어려서 학대받은 그는 평범한 가족에 대한 동경과 애틋함이 남들보다 강하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주까지 오셨는데, 정말 대연상방에 안 들르실 겁니까?”
“응.”
“왜요?”
“나중에…….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때 보려고.”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연적하의 표정에 심통은 더 묻지 않았다.
***
개봉.
강월루.
개봉의 삼대기루 중 하나인 강월루는 고급술과 맛난 요리, 그리고 아름다운 기녀를 찾는 손님들로 매일 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귀빈들이 애용하는 밀폐된 방.
천향반점의 주인 척도광과 사해상방의 방주 상재용이 마주 앉았다.
술과 안주가 탁자 위에 가득 깔렸다.
두 늙은이는 젓가락으로 안주만 깔짝거릴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일각(15분)이 지났을까?
느릿느릿 안주를 집어 가던 상재용이 돌연 척도광을 빤히 바라보았다.
“허허. 왜 그렇게 보시오?”
“아, 갑자기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의 뻔뻔한 대답에 척도광이 피식 웃었다.
자신들의 청부로 살수가 둘이나 죽어 나갔는데 시치미를 떼다니.
“추엽진이 재밌는 짓을 했더군요.”
“그랬습니까?”
“칠백 냥이라는 거금으로 의뢰를 해 왔지요. 상 방주의 호위에 불과한 놈에게 그런 거금이 있었을 리 없고. 상 방주의 작품이겠지요? 덕분에 아주 피해가 막심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거느리고 있는 무사들만 사십이 넘는데, 척 대인께 의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순간 척도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상재용. 적당히 까불어라. 그 호위들이 너를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으냐?”
“…….”
갑작스러운 상대의 폭언에 상재용은 입을 꾹 다물었다.
죽방의 살수들도 무섭지만 당장 저 척도광만 해도 전대의 거마인 까닭이다. 지금 자신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돈 많은 상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재용은 두려워할지언정 척도광에게 머리를 숙이지는 않았다.
척도광이 자신의 목숨을 취하는 순간, 그와 천향반점도 끝장난다. 상대도 그걸 알고 있으니 요란하게 짖기만 하는 것이다.
“네놈들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자그마치 십 년을 키운 아까운 수하 둘만 잃었지. 긴말하지 않겠다. 어떻게 보상할 테냐?”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의뢰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상재용은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이렇게 꼬일 경우를 대비해 처음부터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추엽진이라는 놈의 선에서 끝내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 간단할 것 같으냐? 추엽진이 같은 식구인 용희루의 호위를 죽여 달라고 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왜 추엽진이 그런 짓을 했는지 굉장히 궁금해 할 거야. 그렇지 않나?”
척도광의 도발에도 상재용은 담담했다.
사실 이번 작전의 대미는 청부의 배후를 드러내는 것이다. 풍연초가 죽지 않아 약간 복잡해졌지만 자신은 결과만 같으면 된다.
“저도 알고 싶군요. 추엽진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
척도광이 상재용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뻔뻔한 놈. 끝내 모르쇠로 나가겠다는 건가.’
추엽진의 청부가 밝혀지면 사해상방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왜 저렇게 태평한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결국 척도광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상 방주, 내가 졌소. 그러지 말고 서로에게 득 되는 방향으로 풀어 보십시다. 장사를 하려면 적이 아니라 친구를 늘려야 하지 않소?”
척도광은 자신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상재용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걸 인정했다.
“허허, 정말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적이 아니라 친구를 늘려야지요. 좋습니다. 척 대인과 저를 위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시렵니까?”
“말씀해 보시오.”
“누가 추엽진에게 청부를 맡겼는지 밝혀 주십시오. 그때가 되면 척 대인에게 제가 의뢰를 하겠습니다. 쉬운 일이지만 금액은 만족하실 겁니다.”
척도광은 멍한 얼굴로 상재용을 바라보았다.
그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장사꾼들의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