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92
992회. 그러니까 가
검왕 남궁벽은 시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게 남맹을 키우겠다고 했다.
남맹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규모가 커질수록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니까.
오대세가와 검왕은 천하무림을 호천맹과 남맹으로 양분할 계획이었다.
남천이 남맹에 우호적인 지금 그건 실현 가능한 미래였다.
검왕이 사위와 딸의 앞에서 규모 운운한 것도 그래서다.
남궁연은 부친과 남맹이 알지 못하는 미래를 말해 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적하가 언제까지 아버지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딸의 말에 검왕이 병명하듯 말했다.
“물론 나와 남맹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적하의 의견을 받아들여…….”
“적하 곧 떠나요.”
“그게 무슨 소리냐?”
검왕이 의아한 눈으로 딸과 사위를 번갈아 보았다.
딸의 말을 자신과 남맹이 너무 연적하를 이용하려 들지 말라는 경고로 생각했는데 떠난다니?
“유명교주의 술법으로 적하와 제가 ‘범천욕계왕재천’에 갔다 온 것은 알고 계시죠?”
“알다마다. 그래서 이 년 동안이나 소식이 두절되지 않았느냐. 설마하니 ‘범천욕계왕재천’에 또 간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니에요. ‘범천욕계왕재천’보다 더 상계(上界)에 가게 되었어요.”
“왜 간다는 것이냐? 이전에는 유명교주의 술법에 휘말려 그렇게 되었다지만, 이젠 유명교주도 없지 않느냐? 적하야, 네가 말해 보거라.”
검왕은 그 모두를 남맹을 막기 위한 남궁연의 지략으로 생각해 연적하에게 물었다.
연적하는 그런 쪽으로 둔하기도 하거니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궁연은 연적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연적하는 자신이 구천현녀를 돕기로 한 약속과, 천자마와 금사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조만간 ‘네 번째 하늘’이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범천욕계왕재천’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네 번째 하늘’도 짧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끙!”
검왕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적하가 상계로 가야 한다니?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범천욕계왕재천’을 생각하면 최소한 이 년, 길면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그 기간 동안 남맹은 숨죽이고 그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일이 년은 어찌어찌 숨길 수 있을 것이다.
연적하의 석경장은 강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가 몇 년 동안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면 호천맹도 이상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다.
어쩌면 몇 년까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사라는 명목으로 석경장을 염탐하면 금방 그의 부재를 알게 될 테니까.
그다음은 사실 확인차 몇 차례 도발을 할 게다.
그 도발에 남천이 잠잠하면, 남맹을 칠 것이다.
연적하가 ‘네 번째 하늘’로 가는 것은 곧 남맹의 몰락과도 같았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고민하던 검왕이 넌지시 물었다.
“적하야, 지금 네가 상계로 떠나면 현세에서 혈난이 벌어질 게다. 상계와 현세의 안위 중에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생각하느냐?”
가지 말라는 소리다.
그러나 연적하는 그의 말에 그다지 휘둘리지 않았다.
강호의 분쟁이야 자신이 있든 없든 계속된 거지만, 상계의 상황은 다르다.
자신에게는 천자마와 금사가 상계에서 일으킬 대재앙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게다가 구천현녀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장인어른. 현세의 혈난은 장인어른과 남맹의 노력으로 최소화할 수 있지만, 상계는 저 외에는 누구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남맹의 노력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고? 천만에. 남맹은 망할 것이다. 호천맹에서 네가 없는 남맹을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으냐?”
“남맹이 무극문을 건드리지 않고, 남직례성 외부로 세를 확장하지 않는다면, 호천맹도 남맹을 내버려 둘 겁니다.”
“네가 없다는 게 알려지면 무극문은 이문사방을 다시 노릴 것이다. 그럼 이전처럼 호천맹이 관여할 테지. 그다음은? 다시 남경이 호천맹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게다.”
“남맹이 호천맹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면, 호천맹이 남경까지 진출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누님?”
연적하는 남궁연을 끌어들였다.
강호 정세를 예측하는 데 남궁연을 따라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적하 말이 맞아요. 남맹이 많은 부분에서 양보하면 호천맹도 남경까지 진출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애써 얻은 이문사방을 무극문에 다시 내어 주라는 소리냐?”
“호천맹에 남경까지 뺏기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해야 할 거예요. 이문사방을 두고 무극문과 대립하려 하지 마세요. 그랬다가는 호천맹을 남경으로 불러들이게 될 테니까요.”
“적하가 없다는 게 알려지면 무극문이 이문사방으로 만족할것 같으냐? 그들은 계속해서 세를 넓혀 나갈 게다. 남맹이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남경이 호천맹 손에 떨어지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잘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와 남맹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시간이에요. 남맹은 적하가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해요. 그러니 무극문이 조금씩 세를 넓혀 나가도 그냥 못 본 척 내버려 두세요. 행여나 남맹이 움직이면 호천맹도 그에 대응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정말 아버지 걱정대로 될 수도 있어요.”
“적하야. 너는 언제쯤 돌아올 수 있겠느냐?”
검왕은 사위와 딸의 뜻이 확고하자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연적하가 상계로 가는 걸 막지 못한다면 언제쯤 돌아오는지만이라도 알아야 했다.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니?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면서 상계로 간다는 것이냐? 네 처와 딸은 어쩌라고?”
“저도 답답하지만 상계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요. 일을 마치는 즉시 돌아오겠습니다.”
연적하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석경장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래도 돌아오기까지 대략 어느 정도 걸릴지, 대략적인 것만이라도 알고 싶구나. 정확하지는 않아도 된다.”
“저에게 운종술이 있으니 빠르면 이삼 년, 늦어도 오 년 안에는 해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 년’이라는 말에 검왕의 표정이 굳었다.
천하제패를 코앞에 두고, 또다시 오 년 동안이나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못 할 것도 없다.
연적하가 사라진 것을 호천맹에서 알기까지 이 년 정도 걸린다 치면, 삼 년 만 버티면 되는 것이다.
“언제쯤 떠날 예정이냐?”
“인연 맺은 사람들을 둘러본 후에요.”
그제야 검왕은 딸과 사위가 갑자기 석경장을 나온 이유를 알았다.
상계로 떠나기에 앞서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결심하고 움직이는 중이라면 더더욱 번복하기 어려울 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내키지 않아도 깔끔하게 보내 주어야 한다.
“알겠다. 석경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네 처와 지안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돌아오도록 해라.”
“예. 그리고 장인어른.”
연적하의 부름에 검왕이 그와 눈을 맞췄다.
“무극문의 일과 남직례성 밖으로 세를 확장하는 것은, 누님의 말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염려하는 바를 알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연적하와 남궁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검왕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남직례성 밖으로 세를 확장하는 것은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다. 허나 무극문의 일은 예정대로 처리할 생각이다. 무극문을 남경에서 몰아내야 남경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검왕은 무극문을 남경에 남겨 두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무극문이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면 어쩌시려고요?”
“과연 그럴까? 문파가 본거지를 옮기는 과정에 수십만 냥의 은자가 소모된다. 무극문이 그만한 돈을 또 써 가면서까지 남경으로 돌아올 것 같으냐? 그 정도의 은자을 모으려면 못해도 십수 년은 걸릴 게다.”
검왕은 무극문의 문제를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일단 남경에서 내보내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연적하는 찜찜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 무관한 일로 장인과 다투기 싫어서다.
그건 남궁연도 마찬가지였다.
남맹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잠시 후 지안과 월아, 금아가 객청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캄캄한 밤인지라 소윤은 안채에 남았다고 했다.
검왕은 오랜만에 만난 손녀를 안아 준 뒤 조용히 떠났다.
지안을 재운 뒤에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물었다.
“누님은 무극문을 남경에서 내쫓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긴 그거야말로 분쟁의 불씨지. 칠파이문의 체면에 쫓겨나고 가만히 있겠니?”
“그런데 장인어른은 왜 무극문이 안 돌아올 것처럼 말해요?”
“아버지 말처럼 문파를 이전하는 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야. 그걸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아버지가 간과한 게 있어. 무극문에는 돈이 없지만, 호천맹에서 돈을 지원해 줄 수 있잖아. 내가 호천맹 총사라면 무극문을 부추겨서 남경으로 밀고 들어갈 거야. 그때는 이문사방이 아니라 남경을 다 빼앗길걸?”
“그런데 왜 장인어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 귀에는 당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려. 네가 무극문이 자기들 권리를 주장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을 때, 돈이 없어서 그러지 않을 거라고 하셨잖아. 물론 아버지 말도 일리는 있어. 무극문만 생각하면 수 년 내에 다시 돌아오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호천맹이 지원하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장인어른은 왜 호천맹이 무극문을 지원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야. 남맹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서 마치 그게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말하잖아. 그런 건 약으로도 못 고쳐.”
“남맹은 어떻게 될까요?”
“무극문을 내쫓으면 네가 돌아오기 전에 남경까지 빼앗길걸? 어쩌면 남맹이 해체될지도 몰라.”
“그럼 큰일 아니에요?”
“아버지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남맹이 해체되면 무림도 조용해질 거야. 이전 정의맹이나 천지맹 시절로 돌아가는 거니까.”
“장인어른은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호천맹도 아버지를 죽여서 너와 원수가 될 생각은 없을 테니까. 언제고 네가 돌아올 건데 그렇게까지 막 나가겠니?”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고요. 나는 그 과정에서 장인어른과 남궁세가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잠시 침묵하던 남궁연이 말했다.
“적하야. 나는 아버지와 남맹이 싫어. 아버지와 남맹만 아니라면, 나는 네가 상계에 가지 못하게 만류했을 거야. 네가 꼭 가야겠다고 하면……. 지금이 아니라 먼 훗날에 가라고 했을 거야.”
“미안해요. 누님. 괜히 나 때문에…….”
“너 때문이 아니야. 아버지와 남맹이 너를 이용하려고 하는 한, 세상은 한시도 잠잠하지 않을 거야. 죽을 만큼 힘들지만 너를 보내려는 것도 그래서고. 그러니까…… 그들에 대한 걱정은 터럭만큼도 하지 마.”
연적하는 남궁연의 비분강개한 말투에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은 ‘범천욕계왕재천’을 다녀온 경험으로 상계에 가는 걸 쉽게 생각했는데, 그녀의 마음에 저런 분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누님이 가지 말라면 안 갈 수도 있어요.”
“나는 네가 상계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 게다가 말했잖아. 네가 있으면 무림에 혈난이 그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가.”
남궁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지 말라’는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