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09
3.
휘두르던 장도를 내린 목계백은 태웅을 불렀다. 그 소리에 반응한 태웅이 흑철태력부의 선풍을 격하게 몰아치고는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목계백의 곁에 선 그는 무슨 일인지 의아해 하다가 시선을 한곳에 고정했다.
사대금강이다.
목계백은 태웅과 함께 그들의 싸움을 바라봤다.
스무 명의 해남무인들을 상대로 사천왕의 현신처럼 몰아치는 네 명의 승려들.
그들의 손발이 풀어내는 소림권의 폭풍은 해남검을 부수고 으스러뜨렸다.
놀란 눈으로 해남무인들의 최후를 보던 태웅이 물었다.
“해적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저들을 저대로 가게 놔둡니까?”
태웅의 말대로 해적들은 포구로 후퇴하고 있었다.
불타지 않은 배를 향해 도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방율과 해남무인들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우두머리를 잃은 군사들은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게 둬라.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더 이상은 쓸데없는 전력소모다.”
목계백의 말로서 태웅은 알아들었다. 목계백이 칼을 내리고 물러난 이유다.
해적들에게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이곳의 싸움은 어차피 이겼다.
해적들의 숫자도 반 정도로 줄었다.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
“혹호단과 함께 위로 간다.”
태웅에게 지시를 내리고 목계백은 바로 움직였다. 녹림과 맞서 싸우는 서쪽 길의 전장을 향해서다. 태웅과 합류한 흑호단은 지원병력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따라왔다. 종루의 용인성에게 손을 흔들어 신호했다.
이곳의 마무리를 부탁한다는 목계백의 신호를 받은 용인성이 마주 팔을 흔들었다.
그와 시선을 맞춰 서로 독려한 후 포구 길을 올라가는 데 누군가 휙 앞질러 나갔다.
도복자락이다. 삽시간에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제운종이군.’
무당태무자다. 그가 제운종을 펼쳐 목계백을 앞서 갔다.
곁에서 시선을 던지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담담하게 돌아섰건만, 저 도사의 가슴을 자극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그러한 마음의 한 단면이다.
냉정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태무자의 뒷모습을 보며 목계백은 미소 지었다.
‘너희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하찮은 허울인지 알게 될 거다.’
이동속도를 늦춘 목계백의 뒤로부터 비격과 태웅과 흑호단이 달려왔다. 해적들과의 사투로 피에 절고 숨을 헐떡이는 그들을 대신해 비격이 말했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
목계백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사대금강이 태무자가 그런 것처럼 일행의 곁을 지나갔다. 바람을 일으키는 그들의 신법은 고절하기 그지없었다.
“힘을 내라. 전우들의 배후까지 가서 휴식한다.”
흑호단은 헐떡이는 숨을 달래고 피곤한 몸을 움직여 목계백의 뒤를 따랐다.
쉬지 않고 이동한 그 발길은 어느새 격전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서쪽대로에 다다랐다.
그러나 전장으로 가지 않고 길옆 수풀로 들어갔다.
“여기서 휴식한다.”
목계백의 지시로 흑호단은 꿀 같은 휴식에 들어갔다. 등패와 요도를 내려놓고 수통의 물을 마셨다. 그들 사이로 비격이 돌아다니며 누우라고 지시했다.
쉴 때는 확실하게 쉬라는 지시다. 그사이 목계백은 전장을 살폈다.
‘광현방장과 원진장문인이 녹림신군과 붙었구나. 또 다른 해남파의 수괴와 같이.’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림 광현방장은 육 척이 넘는 거한인 녹림신군의 대검을 맞아 연대구품의 신법으로 피하며 권장을 뿌리고 있었고, 원진장문인은 마른얼굴의 흑의초로인을 맞아 쾌검을 받아 내고 있었다.
‘이곳의 승패도 저들의 승부로서 결정이 될 것이야.’
우두머리들의 싸움이다.
저 결과로서 이 전쟁은 끝이 난다.
이길 수도 있고 질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예상은 승리다.
전황이 바뀌었다.
소림과 무당의 후속지원군이 아주 주효했다.
그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녹림의 배후와 측면을 공격한 것이 분명하다.
전술의 승리다. 게다가 역시 객관적인 무위가 앞선다. 아니, 절대적으로 앞선다.
지금도 사대금강과 태무자가 저희문파의 어른들 뒤로 다가가고 있다.
저들의 무공실력은 원진장문인과 광현방장과 손바꿈을 해서 싸운다 해도 모자람이 없을 터다. 오히려 넘친다. 저러한 자들이 샘물처럼 솟는 곳이 소림과 무당이다.
애초에 그런 곳을 상대로 덤빈 녹림이 무모하다 하겠다. 저희들에게 무슨 기연과 노력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가진 자신감의 발로였고, 해남파의 충동에 넘어갔겠지만 역시 무리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꾸민 자는 목계백 자신이다.
‘해남파의 복수가 겨우 이것인가?’
미간을 찌푸린 목계백은 생각을 곱씹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아직 찾아내지 못한 숨은 그림이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해남파의 복수가 끝이라는 건 뭔가 이상하다.
지금대로라면 불나방의 꼴과 무엇이 다른가?
‘십년 간 절치부심 복수를 꿈꿔온 자들이……’
뭔가가 더 있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저들은 항주무림맹에 침투해서 혁리세가의 용화검을 가져갔다.
칠절신편 위홍은 긴 시간 정체를 숨기고 암약했다.
혁리세가와는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었다. 그런 자들이 복수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해남검을 쓰는 무인들도 스물에 불과했다.’
미간을 좁힌 목계백은 다시 모든 걸 더듬었다.
포구에서 죽인 방율은 도주한 혈뢰인의 흉수 중 한명일 수 있다.
애초에 위홍을 제외한 정체불명의 삼인이 침투했다.
결국 그중의 한명만이 용화검을 훔쳐 달아났다.
‘해적을 이끌고 온 자가 그일 수 있고, 원진장문인과 싸우는 자는 그 윗선일수 있겠지. 그러나 저들이 다일까? 십년간 고작 저만큼만 세를 키운 건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목계백은 흑의초로인이 뿌리는 검광을 보고 눈을 치떴다.
태청검법의 묘리에 집중하며 새삼 새로운 검의 길로 접어든 원진장문인은 희열을 느꼈다.
오래도록 정체되어 고인 물과도 같았던 자신의 검이 이 순간 새로운 눈을 뜨고 있었다.
유민홍이라는 강적을 맞아서다.
해남검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보여주는 저자의 검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중원무림 전체가 두려워하던 해남검, 역시 무섭구나. 이검을 만나 내가 검을 맞대는 날이 올 줄은 정말로 생각 못했음이다. 더구나 이처럼 생사격전을 통해 새 길이 보일 줄이야…… 그래, 검이란 생명을 베는 도구, 그것의 효용을 다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
유민홍과의 생사결을 통해 검이 가진 본연의 길을 다시 깨달은 원진도장은 오롯한 희열을 만끽했다.
이 결전이 즐거웠다. 그런데 뭔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곧 알았다.
자신이 새롭게 본 길은 사검(死劍)의 길이다. 그건 백정의 칼과 다름 아니다.
도사의 칼이 그러해서는 안 된다.
‘활검(活劍).’
스승께서 가르친 것이 그것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평생을 검을 잡고 살았지만 그 오의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에게 다시 그 가르침을 주고 있지만 공허하다.
알지 못하니 그러하다. 그러나 무당의 검이, 도사의 검이 가야할 길이 그러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택한 길은 무엇인가?’
한순간 원진장문인은 미망에 빠졌다.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명확히 잡지 못해서다.
왜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인지가 새삼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검이 흐트러졌다. 검로를 잃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민홍의 쾌검이 무섭게 가르며 들어왔다.
화끈한 통증을 팔뚝에 느끼는 순간 원진장문인은 벼락처럼 깨달았다.
‘나는 무당의 장문인으로서 여기 있다!’
잊을 뻔한 그것을 자각했다.
왜 이 순간 새 검의 길을 보고 미망에 빠져들었는지 모르지만, 장문인의 자리에 오르던 날 조사전에서 한 맹세를 상기했다.
무당의 장문인, 그것은 세상이 아는 것처럼 지고한 자리가 아니다.
세속적이고 욕된 자리다.
그 자리를 맡아야 함은 그래서 책임이 막중하다.
무당의 지고무상함을 이어가기 위해서, 활검의 오의를 깨닫는 도인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할 자리다.
‘내 검이 사검의 길만 좇을 지라도 내 책임을 잊지는 않을 터!’
완전한 자각과 의지를 고정하는 순간 원진장문인의 검은 다시 무섭게 변화를 일으켰다. 태청검법의 유려한 물결을 토해내다가 태극을 그러냈다.
그런데 그 순간 유민홍의 검이 눈부신 검광을 토했다.
‘헛!’
대경한 원진장문인은 전 내력을 끌어올려 검막을 펼쳤다.
태청태극이 만들어낸 검막이다.
그 방어를 송곳처럼 파고 들어오는 것은 유민홍의 검이 토해낸 검광.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경지인 검강의 분출이다.
폭음이 터지고 원진장문인은 주르륵 뒤로 밀려갔다.
휘청하는 그에게 유민홍은 붉은 손을 뿌렸다.
혈뢰인이다. 그 붉은 번개의 장력이 틈을 보인 원진장문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 앞을 태무자가 막아섰다.
“원시천존!”
강력한 도호를 외침과 더불어 태무자가 검을 뻗었다.
일직선으로 찔러나가는 그 검에서 푸른빛의 기운이 번져 나왔다.
검 끝에 결정을 맺은 그 힘은 혈뢰인의 장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태극을 그려 흩어버렸다.
주먹을 움켜쥐고 격전을 바라본 목계백은 비격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저런 게 진정한 고수들의 싸움이구나. 검강이라니……”
해남파의 고수가 검강을 사용해 원진장문인을 공격했고, 연이은 혈뢰인의 공격을 태무자가 역시 검강을 발현해 방어했다. 포구에서 목계백이 방율을 해치울 때도 그랬다는 걸 모르는 비격은 감탄과 외경을 드러냈다.
“해남파의 고수가 정말 대단하구나.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안 되겠어. 원진장문인과 태무자, 광현방장과 사대금강, 절대고수의 수가 모자라.”
목계백은 비격에게 계속 휴식하라는 지시를 남기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분명한 걸음으로 비격이 감탄하는 고수들의 격전장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옆쪽으로는 명세기를 비롯한 다른 문주들이 있었다. 전장 속에서 좌충우돌하던 은발야와 오세명과 호일도와 모금량도 뒤로 물러나왔다.
은발야 등과 시선을 맞춰 눈빛을 교환한 목계백은 명세기의 옆에 섰다.
“정말 엄청나구나……”
비격처럼 감탄하는 목소리를 낸 자는 남경제검문주 궁모달이었다.
검을 성명무기로 사용하는 자이니만큼 검강의 목격은 충격이었을 터다.
그 자신 역시 추구하고 있지만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경지가 검강인 것이다.
목계백을 비롯한 모두가 시선을 던지는 가운데 유민홍의 소리쳤다.
“나 유민홍! 해남검문의 일대제자로서 하늘에 대고 맹세하며 조사들의 영령과 비명에 죽어간 형제들의 원혼 앞에서 맹세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소림과 무당장문인의 목을 벨 것이다! 내 목숨을 바쳐 해 낼 것이다!”
서리서리 원한이 맺힌 유민홍의 외침 앞에서 태무자는 검을 세우고 차가운 눈빛만 내뿜었고 원진장문인은 창백한 미간을 찌푸리고 눈썹을 뒤틀었다.
그런 그들의 옆으로 싸움을 멈춘 녹림신군과 광현방장이 붙어 섰다.
“아미타불, 사대금강은 제마멸사의 불법을 거행하라!”
격하게 터져 나온 광현방장의 외침 뒤로 사대금강이 앞으로 나섰다.
“싸움만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사대금강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돌아오도록 외친 자는 목계백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겐가?”
심히 못마땅한 시선을 광현방장이 던졌다.
사대금강도 마찬가지였다.
태무자의 시선은 검신처럼 빛났고 원진장문인은 여전히 찌푸린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은 저마다 놀람과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특히 명세기의 시선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왜 이러나 하는 눈길이다.
일단 의도대로 접전이 다시 시작되는 걸 막은 목계백은 정중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항주무림맹의 목계백이라고 합니다. 강호의 높으신 어른들이 계신 가운데 주제넘게 나서게 되었음을 사죄드리며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유민홍과 녹림신군까지 시선을 던지는 가운데 목계백은 이야기를 이어냈다.
“자고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저자의 일편경구가 이 상황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전쟁을 막아 피 흘림을 그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천하에 다시없는 절대악인과 마인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죽고 죽이는 일을 좋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국을 막기 위한 논의가 불가능 하지 않다고 봅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싸움이 일어났는지를 밝혀 오해를 푼다면……”
광현방장이 엄중한 목소리로 불호를 터트렸다.
“아미타불!”
목계백을 무섭게 응시한 광현방장은 고함치듯 말했다.
“허튼 소리를 하지 말라! 오해는 무슨 오해며 밝힐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항주무림맹의 청으로 인해서다! 또한 소림의 승려들을 해치고 도발한 녹림을 징치해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광현방장이 사대금강에게 다시 공격을 명령하려는 데 유민홍이 외쳤다.
“가증스러운 놈아! 무엇이 정의를 바로잡음이냐! 그 일은 내가 하려함이다! 바로 너희들! 소림과 무당을 쳐 죽이고 구대문파라 하는 것들과 오대세가라 하는 무리들! 해남검문의 멸문에 가담한 놈들을 죽임이 정의다!”
유민홍의 외침을 들은 자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소림과 무당인사들을 뺀 나머지 인물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소리를 들어 귀를 의심했다.
“무슨 소리야? 해남파의 멸문에 소림과 무당이 가담했다니?”
황당하다는 듯 칠도문주 하진이 중얼거렸다. 해룡문주 왕충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자가 지금 무슨 소리는 하는 건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해남파의 멸문을 꾸몄다는 소리가 아닌가?”
누구에게랄 것 없는 그 중얼거림은 귀 가진 모두가 들었다.
원진장문인이 바로 도호와 함께 외쳤다.
“원시천존! 무당과 소림을 욕보이고 강호무림을 욕보이다니! 더 이상 추악한 짓을 하지 말고 차라리 자결토록 하려라! 그것이 해남파의 명성을 지킴이다!”
유민홍은 커다랗게 웃었다.
“으하하하하하!”
하늘이 떠나가도록 큰 웃음을 웃고 난 유민홍은 붉어진 눈동자로 말했다.
“자결을 하라? 그게 본문의 명성을 지키는 길이다?”
부드득 이를 간 유민홍은 살기로 뭉쳐진 목소리를 이어냈다.
“그래 맞다. 나는 오늘 여기서 살아 돌아 갈 생각이 없다. 십년 전 나는 죽었다. 너희들 소림과 무당을 위시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제남회합을 통해 본문을 멸문케 하길 결정하고 북천의 칼잡이들을 시켜 해남도를 침공한날, 나는 그날 죽었다. 그런데 너무 억울해서, 그 억울함을 하늘이 헤아려주시어 구사일생 살아났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살아났지.”
유민홍은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십년 전 해남검문은 너희들의 음모로 멸문했다! 그 복수를 하러 내가 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