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23
30. 흑호단.
1.
우거진 갈대숲을 배후로, 배를 일자로 대고 있던 하대구는 기다렸다.
혈천기습대의 진영인 호변에서 도망쳐 나오는 배들이다.
두 척 중 첫 번째 배가 눈앞에 다가왔다. 숨죽여 휴식하며 기다리던 끝이 이제 온 것이다.
부러질 듯 잡아당긴 단궁의 힘을 하대구는 풀어줬다.
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비상했다. 어둠을 가르고 날아간 그것이 한 놈의 목을 꿰뚫었다.
선수에서 화살을 맞은 놈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흑호단의 화살들이 빗발쳐 날아갔다.
오열로 서서 발사하는 연사다.
첫 줄의 열 명이 발사하고 앉으며 두 번째 열, 그다음, 또 그다음과 그다음이 발사하는 식이다.
밀착해 붙어 선 흑호단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화살을 연사했다.
쉰 명이 쏘아대는 그 공세에 피할 길 없이 노출된 도주자들의 배, 백일로와 수하들이 탄 칠대의 배는 고슴도치가 됐다. 칠대무사들은 본능적으로 병기를 휘둘러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하나하나 쓰러졌다.
백일로는 이를 악물고 수하들에게 외쳤다.
“배를 버려라! 물속으로 뛰어들어라! 뭍으로 나간다!”
명령을 들은 칠대무사들은 서둘러 호수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오십여 명 중 이미 절반 가까이나 화살에 낮아 희생당한 후였다. 어둠이 먹장처럼 들이친 호수의 갈대밭 속에 숨어 있던 흑호단의 남은 놈들이다.
그놈들이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숨어 있었던 거다. 이젠 확실히 알았다.
‘멍청한 놈! 알면 뭐하나! 이렇게 당한 후에!’
자신을 향한 욕설과 분노를 터트리며 검을 휘두른 백일로는 화살들을 가르며 뱃전을 차고 도약했다. 수면에 떠서 밀려가던 수하의 시체를 밟고 다시 도약했다. 놈들의 배가 있는 갈대밭을 향해서다. 하지만 아직 거리가 멀다. 때문에 허리에 멘 수통을 던져 그걸 밟고 다시 도약했다.
하대구는 눈을 치떴다. 수면을 차고 비상하듯 다가오는 자 때문이다.
‘칠대주 무혼검 백일로!’
그가 분명하다. 아니라면 저런 무위를 보일 자가 없다.
점창파의 일대제자다. 그런 배경과 실력이 있었기에 칠대주가 된 자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명문대파의 제자다운 신위를 보이고 있다.
저자를 그대로 둘 순 없다.
단궁을 잡아당긴 하대구는 허공에 뜬 백일로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물로 뛰어든 놈들을 잡아라!”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소리친 하대구는 배를 차고 갈대밭으로 나갔다.
허리까지 물에 잠겼지만 상관치 않고 배를 힘주어 밀었다.
흑호단이 탄 배는 그 힘을 받고 대원들이 노 젖는 힘으로 순식간에 호수안쪽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그걸 본 허공의 백일로가 신형을 뒤틀었다.
“그렇겐 안 되지!”
하대구는 단궁을 잡아당겨 다시 화살을 날렸다. 직전에 날린 화살을 검으로 받아치며, 그 힘을 이용해 신형을 비틀어 흑호단의 배를 낙하하려는 놈에게 연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목계백에게 배워 미친 듯이 연습한 것이다.
그게 주효했다. 백일로는 화살을 막기에 다급해 물로 떨어졌다.
풍덩 소리를 내며 빠진 백일로를 향해 하대구는 소리치며 화살을 연사했다.
“이리 와봐 이 멍청한 개자식아!”
차가운 호숫물의 충격을 전신으로 느끼며 이를 악문 백일로는 자신을 지나쳐 가는 혹호단의 배를 쫓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갈대밭에 남아 화살을 날리던 놈이 욕을 했다. 그 순간 다른 생각은 잊어버렸다.
‘죽일 놈이!’
핏발선 눈으로 다시 몸을 돌린 백일로는 갈대밭을 향해 헤엄쳤다.
물에 뛰어든 수하들의 안위는 더 이상 걱정하거나 수습할 단계를 넘어섰다.
대패요 전멸이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 빠져나가기를 바랄뿐인 상황이다.
백일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혼자인 저놈을 뚫는 것이 낫다.
어느새 발이 물밑 땅에 닿았다.
뻘이다. 발을 끌어들이는 그 바닥을 내력으로 차고 나갔다.
비운축영(飛雲蓄影)의 신법이다. 그야말로 섬전이다.
“이노옴!”
갈대밭에서 뒷걸음질하며 뭍으로 나가는 놈, 흑호단의 나머지 절반을 이끌던 놈을 향해 호통치며 나간 백일로는 검에 내력을 실어 내리쳤다.
진흙의 미끄러운 갈대밭을 벗어난 하대구는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감산도를 움켜쥐었다. 이젠 단궁이 필요 없는 상황, 던져버린 단궁대신 잡은 성명무기는 새로운 힘을 전해줬다. 이전과는 다른 철마진기의 힘이다.
“와라!”
호기롭게 하대구가 외치는 순간 백일로가 무섭게 검을 내리쳤다.
내력을 실은 그 일격을 하대구는 검산도로 받아쳤다.
충격음과 불꽃이 터지고 하대구는 휘청대며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그걸 보며 백일로가 쫓아왔다.
“버러지 같은 놈아! 천참만륙을 내주마!”
분노를 실은 백일로의 검이 분광검법의 섬광을 토해냈다.
그 무시무시한 쾌검을 맞아 하대구는 정신없이 뒷걸음질했다.
순식간에 팔다리 여기저기가 베어져 피를 튀겼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상대의 공격을 봤다. 하나하나 인지했다.
이전이라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이제는 다 보이고 있다.
“죽어라!”
격노와 함께 터져 나오는 백일로의 분광검법 앞에서 하대구는 차츰 균형을 찾아갔다. 그걸 본 백일로의 검은 더욱 무섭게 쾌검을 토해냈지만, 철마진기를 운용하며 심신을 통일한 하대구는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백일로가 탄 배가 지나가는 것을 호변에 숨어서 지켜보던 태웅은 노를 저었다.
목계백을 향해서다. 두 번째 배가 지나갔지만, 혈천놈들이 타고 도주하는 것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우선은 동료들을 태우는 것이다.
“저럴 수가……”
송인찬은 탄식을 흘려냈다.
혈천기습대의 진영이 있던 호변 모래사장의 광경 때문이다.
피와 사체들뿐이다.
혈천기습대도 칠대의 정예들도 다 죽어 넘어갔다.
서로 싸우다 죽었고 흑호단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남은 자들은 이제 수십 명에 불과하다. 배를 타고 도주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을 맹호와 흑호단이 도륙하고 있다.
맹호의 장도가 번쩍일 때마다 수명씩 갈라지고 있다.
그 뒤를 어미 따르는 새끼 맹수들처럼 흑호단이 달려든다.
등패와 요도로 무장한 저들의 전법은 무서울 정도다.
태웅은 배를 호변에 댔다. 시체와 불타는 배들이 있는 사이를 치고 들어갔다. 흑철태력부를 휘둘러 불타는 배를 가격했다. 대번에 부서지며 옆으로 밀려나갔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신력을 보이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검은 선풍을 일으키며 태웅은 호변의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섬광처럼 휘돌아나가는 흑철태력부의 도끼날은 혈천과 칠대를 가라지 않고 동강을 냈다.
생선토막처럼 변한 그들의 육신이 태웅이 지나가는 곳에 널렸다.
“저……!”
외마디를 내 송인찬은 그저 충격 속에서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호변의 접전은 끝났다.
태웅의 가세로 협공당한 혈천과 칠대의 무사들은 얼마 남지 않은 숫자마저 사라졌다.
그 일을 끝내고 모두 돌아왔다.
“하대구에게 간다.”
목계백이 명령하자 흑호단은 단궁을 놓고 모두 노를 찾았다.
태웅과 합세한 그들의 노 젓기는 수면을 찢으며 무섭게 나아갔다.
잠시 만에 뒤에 남았던 흑호단 동료들의 배와 마주쳤다.
그들이 수면을 뒤지며 칠대의 잔당들에게 화살을 날리는 것을 보고, 갈대밭 너머를 보고 목계백은 명령했다.
“조승은 나와 같이 간다. 태웅 너는 도망가는 혈천의 배를 잡아라.”
목계백은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조승도 뒤따라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이 하대구가 싸우고 있는 갈대밭 너머로 가는 동안 태웅은 혹호단 전부를 이끌고 호수를 가르고 나갔다. 혈천의 배는 어둠 저편에 아직 보였다.
하대구는 백일로의 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섬광을 토하듯이 검 끝을 흔들며 튀어나오는 분광검, 점창파가 자랑하는 그 쾌검의 궤적을 정확하게 파악하며 감산도를 마주 올려쳤다.
검과 부딪치는 순간 미끄러져 들어올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피할 순 없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한 수 역시 백일로는 피할 수 없다.
감산도와 검이 부딪치는 순간, 역시 잉어가 수면을 차고 넘듯이 검이 휘어져 들어왔다.
그 끝을 향해 하대구는 왼쪽 어깨를 들이밀었다.
동시에 검을 받아치던 감산도를 휘돌려 백일로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부릅뜨는 백일로의 눈을 보는 순간 하대구는 어깨에 박히는 검날의 충격을 느꼈다.
같은 순간 백일로가 몸을 옆으로 비트는 것도 봤다.
감산도가 놈의 화살 박혔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놈이 검을 빼지 못하게 검날을 잡았다. 동시에 감산도를 던져버리며 그 손을 흔들었다.
소매 속에 감춘 강변의 모래가 비산하며 백일로의 시야를 가렸다.
바로 그 순간 오른발을 차올렸다. 벼락처럼 나간 발은 놈의 하복부를 강타했다.
쾅 소리와 동시에 백일로가 정신없이 뒷걸음질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수법, 시정잡배들의 막 싸움에서나 있을법한 기격의 한 수, 명문대파에서 고절한 무공을 익히고 수많은 대련을 통해 무공을 완성한 백일로지만, 추잡하고 음흉한 이 한 수의 기격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휘청거리며 백일로는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하대구의 어깨에 박혔던 검은 빠져나갔고, 백일로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배를 잡은 채 하대구를 노려봤다.
치욕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그 입에서 가는 피가 흘러나왔다.
“너…… 이 개자식이 감히……!”
피 흘리는 어깨와 베어진 손의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대구는 감산도를 다시 잡았다. 미소를 문 얼굴은 백일로가 아닌 목계백과 조승을 봤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조승이 엄지를 세우며 감탄성을 냈다.
“최고다!”
뒷말은 다 생략했지만 그 한마디로 족했다.
철마진기를 익힌 지 얼마나 됐다고 백일로 같은 고수를 잡는단 말인가?
물론 백일로가 부상입은 상태였고 제 자만과 편협한 심성으로 패배를 당한 꼴이지만, 명색이 점창파의 일대제자다. 백혈맹 좌군 칠대를 이끄는 고수다.
그런 자를 상대로 싸워 이런 결과를 냈다. 현재까지 동수이고 더 싸운다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대단한 결과다. 백일로는 내상을 입은 게 분명하다.
하대구에게 흡족한 미소를 보낸 목계백은 조승에게 말했다.
“마무리는 네가 해라.”
눈을 크게 떴다가 이글거리는 불꽃을 피워낸 조승이 목례하고 나서는 걸 보며 목계백은 돌아섰다.
이제 이곳은 신경 쓸 것이 없어서다. 조승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두 사람이면 백일로는 끝난 목숨이다.
‘태웅이 잘하고 있군.’
호수 저편에서 들려오는 격전의 소리, 아니 일방적인 몰살의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이제 마무리가 된 것이다. 남은 일은 이곳의 흔적을 치우는 일이다.
흑호단이 칠대를 공격했다는 흔적을 넘겨선 안 된다.
물론 끝까지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고 보지 않고 그걸 바라지도 않지만 해야 한다.
‘할 일이 없으니 나부터 시작해야겠군.’
호수로 다시 들어간 목계백은 부력흉갑의 힘을 빌려 호변으로 유영해 나갔다.
기세 좋게 타오르는 배들의 불길로 호변은 대낮 같았다.
모래사장에 발을 디디자마자 송림을 지나 외부로 이어진 길의 이상 징후부터 살폈다.
혹시라도 혈천이 인근에서 인지하고 달려올 경우에 대비해서다.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음을 확인하고 호변으로 돌아갔다.
버렸던 단궁을 찾아들고 화살들을 수거했다.
혈천무사들과 칠대무사들의 몸에 박힌 것을 다 수거했다.
혈천무사들의 몸에 박힌 것은 남겨둘까 했다가 화살수급도 생각해야 하기에 그냥 다 뽑았다.
그러는 동안 태웅이 돌아왔다.
목계백이 하는 것을 본 태웅은 흑호단 절반을 배에서 내리게 했다.
그들이 목계백처럼 화살을 수거하는 동안 자신을 다시 배를 타고 호수로 돌아가 물에 뜬 시체들의 화살을 수거했다. 칠대와 혈천이 타고 도망치던 배에서도 수거했다. 그 시간에 제법 오래 걸려 다들 기진맥진했다.
마침내 모든 일이 다 끝나자 목계백은 휴식을 명령했다. 그 직후 조승과 하대구가 돌아왔다. 힘든 얼굴로 호수를 헤엄쳐 온 그들 중 하대구의 손에 백일로의 머리가 잡혀 있었다. 그걸 하대구는 모래사장 위로 던졌다.
하대구의 부상을 돌보는 동안 송인찬은 홀로 떨어져 혹호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저들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흑호단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혈천기습대와 칠대정예들은 전멸했다.
이 호수에서 살아 도망간 자는 아무도 없다.
황당한 시선을 갈무리하지 못하는 송인찬의 곁에 목계백이 다가왔다.
“결정해.”
흠칫 눈자위를 떨며 고개를 돌린 송인찬은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목계백의 눈과 자신들 둘러싼 이 상황으로 결국 알았다.
‘살지 죽을지 결정하라는 거야. 흑호단에게 협조하든지 그 반대이든지.’
송인찬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여긴 영락없이 자신의 무덤이다. 흑호단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살인멸구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은 이 일의 도중에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이렇게 결과가 난후에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건 자신을 그냥 죽이진 않겠다는 거다. 그랬었던 건 오히려 백일로의 칠대다. 그들은 처음부터 흑호단에 밀어 넣고 사지로 보내려 했다.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송인찬은 물었다.
“내가 이용가치가 있습니까?”
목계백은 표정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말고 이번 일을 설명해줄 사람이 한사람 있으면 좋겠지.”
“내가 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목계백 대신 태웅이 뒤에서 나서서며 말했다.
“그냥 죽여 버리지요, 그게 깔끔합니다.”
조승도 거들었다.
“그렇게 하시죠. 명문정파라고 하는 놈들치고 뒤가 안 구린 놈 못 봤습니다. 괜히 살려뒀다가 후환을 만드느니 깨끗하게 죽여 없애는 게 좋습니다.”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장도를 뽑았다.
“그게 낫겠어.”
칼이 세워지는 걸 보며 송인찬은 말했다. 의외로 차분하게.
“처음부터 날 살려 다 지켜보게 해 놓고 희롱하지 마시오.”
송인찬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동자로 뒷말을 뱉었다.
“칠대 정예들의 몰살은 그들이 자초한 일, 이 승리는 혹호단이 만든 것이오, 나는 오직 그것만을 돌아가 보고할 것이오. 당신들이 얼마나 용맹스러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