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4
4.
시체들에 남은 상흔을 예리한 눈으로 살펴보던 명세기는 부보주 감흥찬(甘興璨)에게 시선을 던졌다.
“출정을 나간 사이에 특별한 동정은 없었느냐?”
이제 나이 서른일곱의 감흥찬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보 주변과 온주일대에 수상한 동정은 없었습니다.”
“자신하느냐?”
감흥찬은 대답을 주저했다.
대동보라는 조직에서 보주 명세기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대호 명세기 앞에선 다른 수하들과 다를 바 없다.
명세기는 부보주로서의 위신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혹, 본보의 이목을 피하고 암약하는 간자들이 있을지도……”
감흥찬의 대답은 명세기의 차가운 목소리에 잘렸다.
“그게 답이다.”
시체들 앞에서 무릎을 세우고 일어선 명세기는 창고에 모인 자들의 면면을 차례로 주시했다.
부보주 감흥찬과 적호단주 모금량(毛錦梁), 백사단주 위덕환(魏德煥), 그리고 비격. 대동보의 핵심인사들은 숨을 죽였다.
“비금도에서 날 죽이려 한 놈이 여기 있다. 그놈과 함께 온 놈들이 다섯이나 더 있었다. 다행히 모두 죽였다. 여기 차가운 시체로 변한 이놈들이다. 하지만 이놈들이 은천장 무리에 섞여들어 왔다는 것, 그게 문제다.”
시린 명세기의 시선을 받아내던 적호단주 모금량이 입을 열었다.
“은천장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사단주 위덕환도 동의했다.
“이런 암살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 그들입니다. 전후사정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것도 그들입니다. 이런 놈들이 스며들었다는 것도 모르고……”
명세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생각만 하지 말고 머리들을 굴려라.”
짜증어린 보주의 목소리에 모두가 시선을 내렸다.
명세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은천장주는 부상을 입고 누워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한 것이야. 그런 자에게 이 일의 책임을 추궁한단 말이야? 더욱이 그는 은천지혈사의 당사자다. 딸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러 나선 사람이란 말이다. 강호의 동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추궁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명세기의 시린 눈빛은 다시 암살자들의 시체로 돌아갔다.
“근본과 핵심을 봐야 한다. 누군가 날 죽이려 이런 암살자들을 보냈다는 거다. 그런 목적을 가질만한 자들, 의도와 배경을 의심할만한 곳, 그런 곳을 특정해 내야 한다. 그렇다면 역시 혁리세가다. 운악놈의 말대로지.”
다시 시체 앞에 무릎을 접고 앉은 명세기는 전신으로 한기를 뿜어냈다.
“혁리세가는 날 죽이려고 했다. 비금도를 치게 하고 내 등 뒤를 노렸지.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자들, 이런 자들을 보내서 살인멸구를 하려했다. 이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해남검을 썼다는 것뿐이야. 은천장주도 이들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지역인사들의 추천으로 급히 합류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야. 여섯 놈이 전부 제각각이었다는 거지.”
그게 은천장주를 통해 알아낸 암살자들의 정보 전부다.
그것 때문에 은천장주 은발야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부상조차 잊을 정도로 죄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고 당한 일이기에 의혹만 커졌다.
“이놈들, 정확한 출신성분을 모르지만 몰락한 해남검파의 놈들이다. 이놈들이 어떻게 혁리세가의 칼이 됐는지 의문이지만, 역시 해남검파 출신들답게 무서운 실력을 지닌 놈들이었다. 여섯 놈 전부가 고수들이었어.”
말을 하고 명세기는 어금니를 물었다.
‘역시 해남검파라고 할 만큼……’
비금도에서의 격전을 생각하면 좁쌀 같은 소름이 돋는다.
명색이 절강십검의 한자리를 차지한 자신이지만 힘겹게 상대를 쓰러뜨렸다.
그나마 파랑검 호일도와 합세한 결과다.
그에 반해 춘추검 오세명은 혼자서 해냈다.
오세명은 알려진 것보다 더 강자라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해남검파의 무서움을 절감했다.
구대문파를 오시했다는 그들답게 무서운 검력을 보였다.
일개 암살자들의 검이라기엔 고절한 무공이었다.
‘하긴, 해남검파가 아직 건재했다면……’
그렇다면 절강십검이란 이름 따윈 없었을 것이다. 대동보도 이만큼 이름을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혁리세가 역시도 저렇게까지 위세를 부릴……
‘가만, 혁리세가? 해남파의 원인모를 몰락?’
느닷없이 머리에 떠오른 그 아귀가 빙글빙글 돌며 좌충우돌했다.
“설마…… 아니지, 그들이라면 그랬을 수도…… 하지만 어떻게?”
정말 어떻게다. 상대는 해남검파였다. 구대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문파다. 그런 문파를 도모하는 건 아무리 혁리세가가 난다 긴다 해도 무리다.
“그래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혼자 중얼거리는 보주 명세기를 의아하게 주시하던 비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금도 동굴 앞에서 목계백이 보주에게 도움이 됐다고 들었습니다만……”
도움이 됐다고, 라고 완화된 표현을 썼지만 실제론 목숨을 구했다.
그랬다는 걸 이젠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놀라워하고 목계백이란 인물에 대해서 궁금함과 경탄을 자기고 있다.
그런데 명세기는 아닌 것 같다.
“목계백, 그놈의 정확한 출신이 뭔지 자세히 알아봐라.”
미간을 찌푸리며 명하는 명세기의 기색을 살피며 비격은 더욱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임 연강막주 두이의 조카뻘 되는 혈족이라고……”
명세기는 버럭 소릴 질렀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으라는 거냐?”
비격은 얼른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으며 부보주 감흥찬과 적호단주 모금량, 백사단주 위덕환도 시선을 깔았다. 왜 그런지 보주는 화가 났다.
수하들의 얼굴을 무섭게 노려보던 명세기는 자신의 실태를 이내 깨달았다.
‘흥분했구나, 나답지 않게.’
많이 흥분했었다. 그 흥분의 이유는 혁리세가라는 대적을 마주하게 됐다는 중압감보다도, 의지와 제어 밖에 있는 목계백이란 돌출 존재 때문이다.
‘그놈은 어디서 온 누구야? 원하는 게 뭐지?’
알 수 없다.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로움을 주겠다고만 말했다.
그걸 의심하고 죽여 버리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출정에 함께 했던 고수들이 다 봤고 수하들도 그의 활약을 안다.
명분이 없는 것이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는 거지만……’
죽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적다.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동시에 생각하면 짜증이 나지만, 마음한구석에서 일어나는 효용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론 손 하나라도 더 필요해질 텐데, 목계백 같은 자라면 더욱 절실하다.
‘칼이야 쓰기 나름, 하지만 손에 쥔 칼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생각을 일단락한 명세기는 현안에 집중했다.
“노획물 정리가 끝나는 대로 희생된 수하들의 집에 방문해라. 섭섭지 않을 만큼의 재물로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대동보의 이름으로 행한 협의였음을 알려라. 물론 드러내놓고 그런 말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정중하고 겸손하게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면서 민심을 얻어내란 말이다. 이미 소문이 퍼졌으니 반은 된 것이다. 나머지 반을 채우면 된다.”
보주 명세기의 의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부보주와 적호단주 백사단주, 비격이다.
모두 고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명세기에게 거두어져 자랐다.
명세기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의도하는지 가장 잘 안다.
결론은 민심이다.
민심을 얻어야만 무엇을 해도 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명심거행 하겠습니다.”
부보주 감흥찬의 대답으로 모두의 대답을 들은 명세기는 쉬지 않았다.
“이제 운악에게 가 보자.”
비격이 시체들을 거적으로 덮는 동안 명세기는 창고 밖으로 나갔다.
* * *
“혁리세가를 무너뜨릴 수 있겠냐고? 누가 말인가?”
오세명이 눈동자를 빛내며 목계백의 물음에 되물음을 던졌다.
목계백은 대동보 무사들을 돌아보며 담담히 답했다.
“무너뜨려야 만 하는 사람이겠지요.”
“무너뜨려야 만 하는 사람?”
다시 되풀이해서 말하는 오세명의 옆에서 호일도가 이름을 꺼냈다.
“대동보와 은천장을 말하는 겐가?”
목계백은 다시 두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누가됐든 그래야만 하는 목적을 가진 곳이지 않겠습니까?”
미간을 좁힌 오세명은 다른 걸 물었다.
“자네 이름이 목계백이라고 했지? 지금 말하는 걸 들으니 대동보사람이 아닌 것 같군? 맞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대동보에 정식으로 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들인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동보의 일원으로 비금도 출정을 나간 건 사실이지요. 아직 품계나 직급을 받지 않았지만, 여기 있을 생각입니다.”
오세명과 호일도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섞인 눈으로 목계백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서로를 돌아보고 눈을 맞췄다가, 다시 목계백을 봤다.
“비금도주 운악의 말이 사실이라고 보는 건가?”
툭 튀어나온 오세명의 물음에 목계백은 엷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진실과 허위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드러난 현실들이 중요합니다. 운악이란 자가 혁리세가를 언급했다는 사실, 대동보주가 암습을 받았다는 사실, 누군가 암살자들을 보냈다는 사실, 이번 전쟁에 많은 이권이 걸려있다는 사실, 비금도를 정벌한 결과의 파급이 작지 않다는 사실.”
날카로운 눈빛을 내던 오세명과 호일도에게 목계백은 물었다.
“두 분은 운악의 말이 거짓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진실이라고 보십니까?”
오세명과 호일도는 즉답을 하지 못하고 가라앉은 시선만 던졌다.
“흑막이 있다고 보네.”
입을 연 호일도에게 날아가던 목계백의 시선은 오세명에게 돌아갔다.
“진실은 밝혀야겠지.”
결론이다.
그것을 말한 오세명의 눈엔 가라앉은 의지가 있었다.
돈이나 명예나 그 밖의 것을 좇는 자의 것이 아닌, 충정과 우의로서 빛나는 의지다.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
담담히 중얼거린 목계백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혁리세가를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오세명은 미간을 뒤틀듯 좁혔다.
“우리가 그들과 싸울 거라고 확신하고 있군.”
호일도는 성난 표정을 지었다.
“싸워야 한다면 하는 거지.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두려워한다면 이미 무인이 아니다. 사내가 아니지. 강호에 이름을 내놓았으면 그 값을 하는 거다.”
목계백은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로 거듭 고갯짓을 했다.
“강호에 내놓은 이름값.”
역시 중얼거린 목계백은 다른 말을 했다. 두 사람도 의혹을 가진 부분이다.
“암살자들이 해남검법을 썼습니다.”
파랑검 호일도가 성냄을 드러냈던 미간을 확 좁히며 의혹을 말했다.
“그건 정말이지 이상하고 의문이 가는 부분이야. 대동보주하고도 이야기를 해 봤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 몰락한 해남검파의 검이라니? 그 검법을 쓰는 자들이 암살자라?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이?”
목계백을 시린 눈빛으로 주시하던 오세명도 입을 열었다.
“해남파는 십년 전에 원인 모르게 몰락했다. 그 누구도 그들이 왜 몰락한 건지를 모르지. 구대문파의 이름과 같이 추앙받던 그들이 도대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불가사의야. 강호엔 구구한 억측과 소문만이 난무했지. 하지만 십년세월과 함께 잊혀 갔어. 그런데 오늘 그들의 검을 봤지.”
날카로움을 품은 오세명의 눈은 목계백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들을 혁리세가가 보냈다고 보는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남검법을 쓰는 자들을, 그런 고수들을 보냈다고 보는가?”
목계백은 달을 한번 올려다 본 후 입을 열었다.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진실을 알자면 그걸 아는 자의 입을 열어야겠지요.”
호일도는 묵직한 숨소리를 냈고 오세명은 차가운 눈빛을 뿌리며 말했다.
“결국 혁리세가와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로군.”
닫히려던 오세명의 입은 다시 벌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확실한 사람이 하나있군.”
대동보주 명세기를 말함이다.
그는 이제 기호지세다.
그에게 남은 결정은 두 가지 뿐이다.
혁리세가에게 엎드려 살기를 간청하거나 전쟁을 하거나다.
하지만 그도 안다.
혁리세가가 죽이기로 작정한 자를 살려두지 않는 다는 것을.
그리고 그에게도 목적과 싸워야만 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사정이 운악이 말한 대동보와 혁리세가의 숨은 거래라는 것을 오세명과 호일도도 짐작하고 있다.
거의 확신이다.
때문에 전쟁은 피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전쟁에 참여할 것을 각오했다.
하지만 목계백은?
“자네가 원하는 것은 뭔가?”
“목적이 무엇이지?”
오세명과 호일도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목계백은 엷은 미소로 대답했다.
“진실.”
두 사람이 미간을 좁히고 찌푸리는 것과 동시에 목계백은 또 다른 말을 뱉었다.
“대동보주는 운악과 거래를 할 겁니다.”
“거래?”
“무슨 거래를 말함인가?”
의혹으로 좁아진 두 사람의 눈을 직시하고 목계백은 말했다.
“혁리세가의 비리와 죄과를 폭로하는 일, 대동보의 약점은 감추는 일, 그걸 하기 위한 방도를 찾는 일, 협조대가로 운악의 목숨을 살려주는 일.”
호일도가 눈을 부릅떴다.
“운악을 살려주다니 말도 안 돼!”
역시 놀라고 분노한 얼굴이지만 오세명은 부정을 드러냈다.
“대동보주 명세기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건 결과적으로 그에게 치명타가 돼.”
목계백이 동의를 더했다.
“맞습니다. 잡았던 짐승을 놓아줘 다시 뒷다리를 물리는 후환을 남지지 않을 사람이 대동보주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다른 방도를 강구하겠지요.”
다른 방도란 결국은 운악을 이용하고 죽이는 것이다. 그걸 호일도와 오세명도 안다.
눈동자의 흔들림을 힘주어 가라앉히며 오세명은 무겁게 물었다.
“자네는 정말로 누군가? 대동보를 이용해서 혁리세가를 치려는 건가? 우리마저도 이용해서?”
목계백은 담담히 대답했다.
“서로 돕고 싶을 뿐입니다.”
짧은 대답을 내놓고 돌아서는 흑의청년 목계백, 그의 등을 바라보며 오세명과 호일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말과 눈빛만 눈과 귀에 맴돌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