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92
3.
생사를 함께 한 다섯 자 대검, 이 검에는 이름이 있다.
천왕검이다.
그 이름을 한 번도 소리 내어 부른 적이 없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부른 이름이지만 그랬다.
이유는 그걸 말할 자격이 없어서다.
천왕검법의 진정한 오의를 터득하고 진경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부른다.
“이것이 천왕검이다!”
애병의 이름을 부르며. 그것으로 펼치는 염원을 외치며 종패는 방학천과 격돌했다. 무시무시하게 터져 나오는 자줏빛 독검강을 향해 천왕검을 후려쳤다.
그 순간 함윤은 측면으로 돌아 수룡검을 무섭게 내질렀다.
녹림신군과 수룡왕의 합격이다.
공료대사를 맞아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였으나, 강호무림의 그 누구도 무사하지 못할 두 사람의 힘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처구니없게 부서졌다.
검을 부딪친 종패는 낙엽처럼 휘돌며 튕겨 나갔고, 측면에서 공격하던 함윤은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날렸다.
단 일격, 한 번의 격돌로 이뤄진 결과다.
황당무계하고 무시무시한 그 결과는 종패와 함윤의 정신을 앗아갔다. 충돌의 충격조차 잊게 만든 결과다.
창백한 안색으로 굴러 일어난 종패는 우웩하며 토혈을 했고, 담장을 부수고 박혔던 함윤은 비틀대며 일어나다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거짓 같은 이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공료대사와의 격전으로 내상을 입었었지만 완치했다.
오독문의 비방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오히려 내력이 진일보했다.
종패의 천왕검법은 그 오의의 성취가 이전과 달랐다.
그러한 심득으로 펼친 공격이다. 그런데도 일격에 부서졌다.
무엇인가?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방학천은 어찌 저리 강한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몸을 세우는 종패에게 방학천은 무심한 시선으로 말했다.
“나는 천강독인. 이것이 당문의 힘이다.”
한마디를 그 자리에 남긴 방학천은 신형을 뽑아 올렸다.
삼경의 밤하늘을 가르듯 비상한 움직임은 영내의 격전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독귀자들과 무림맹 무사들의 치열한 격전이 진행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검을 뿌렸다.
종패와 함윤은 그 광경을 보고 얼어붙었다.
그건 마치 자줏빛 노을이 퍼지는 것 같았다. 아니 파도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방학천이란 중심으로부터 확산해 나가는 파도다.
자줏빛 그 힘은 접촉하는 것들을 녹였다.
독강이다, 당문이 만든 독인의 힘이다.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참혹한 지옥도다.
방학천의 용화검이 만들어낸 독의 기운이 무림맹 무사들을 죽였다.
몰살했다. 닿는 순간 촛농처럼 녹는다.
만독신약도 만독신공도 소용없다.
저건 무형지독의 차원이 아니다. 독으로 이룬 무공이며 절대다.
종패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어찌, 어찌하여 저런 힘이……!’
무림맹 무사들은 공포와 경악에 잡아먹히며 물러나고 있었다.
녹림대호, 장강수룡, 흑호단 할 것 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
독귀자들을 맞아 용감하게 싸우던 자들이, 무형지독과 청광의 위협 속으로 몸을 던지던 자들이, 방학천 일인이 만든 미증유의 독강기 속에서 스러지고 있다.
‘이렇게, 이토록 무력하다니……!’
단 일격에 나뒹군 자신의 모습을 다시 인지하며 종패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분노와 자괴감과 회한과 자책, 모든 것이 심중에서 용암처럼 들끓었다.
“아니야!”
격렬한 한마디로 심중에 소용돌이치는 것들을 뱉어낸 종패는 천왕검을 다시 세웠다. 시린 빛으로 물드는 검신처럼 눈동자엔 새로운 전의가 찼다.
“내 끝은 여기가 아니다.”
어느새 모든 격동을 다스렸는가?
차분한 목소리를 흘려낸 종패는 검을 던졌다.
천왕검이 비상했다.
그것은 탈피이고 뛰어넘음이며 모든 것으로부터의 초월이다. 세상 끝으로부터 끝까지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와 같이, 의지와 사유의 한계가 없는 무한대의 심령과 마찬가지로, 천지간을 구애 없이 노니는 소요(小搖)다.
야공을 가르는 섬광이 된 천왕검은 방학천의 등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방학천이 귀신처럼 돌아섰다.
자줏빛으로 물든 용화검이 날아온 천왕검을 받아쳤다.
전신이 자줏빛인 방학천의 신형이 출렁거렸다.
폭음이 터지기도 전에 천왕검은 야공으로 솟구쳤다.
방학천은 주춤, 한 걸음을 물러났다.
종패는 창백한 얼굴로 검결지를 모아 가슴 앞에 세웠고, 야공을 새처럼 돌아온 천왕검은 종패의 등 뒤에 멈춰서 빙글빙글 돌았다.
방학천이 자줏빛 안광을 무시무시하게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어검술이라니, 놀랍군.”
함윤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이가는 소리를 던졌다.
“공료대사도 죽었다! 네놈도 피할 수 없을 것이야!”
방학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지.”
자줏빛의 한 덩어리로 보이던 방학천의 용화검이 스르르 떠올랐다. 주인의 손을 떠난 그것이 허공에서 빙긍빙글 돌았다. 마치 종패의 천왕검처럼.
“해 볼까?”
방학천의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온 직후, 종패의 천왕검과 방학천의 용화검이 비상했다. 상대를 향한 그 섬광의 선이 무영사의 어둠을 갈랐다.
환영이 아닌 실체다.
당대천의 전신으로부터 퍼져나온 기세, 천강대류는 권장지의 형태로 변했다.
수백 개다.
마치 소림사의 천수여래장이나 혈천의 천수인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르다. 이것은 독의 최고봉이다.
당문의 누백년 저력과 심득을 모은 정화다. 대적자는 독수로 화하리라.
‘나에겐 무엇이나 같다. 내 칼로 베지 못할 것은 없다.’
북해신룡의 포효를 전신에 두른, 영혼에 두른 목계백은 장도를 그었다.
일도에 수백 수천의 힘과 기세를 실었다.
쾌, 변, 환, 절, 단, 자, 칼이 가진 모든 것과 그 이상의 힘을 끌어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흠집 내지 못할 의지와 기세로서 용악폭전도를 펼쳤다.
신룡의 울부짖음으로.
목계백의 장도는 가르고 쪼개고 찌르고 분쇄했다.
당대천이 만들어낸 천강대류의 수많은 그림자를, 죽음의 실체를 소멸시켰다.
그 속을 뚫고 당대천에게 나아갔다. 그건 천상의 격류를 거스르는 신룡과 같았다.
눈을 부릅뜬 당대천은 내딛던 걸음을 물렸다.
당면하고 있는 목계백의 접근을 믿기 어려워, 그것을 막으려 전력을 다했다.
당대천의 자줏빛 눈에서 한광이 터지는 순간, 소매 속에서 번개가 터졌다.
목계백은 당대천의 눈빛을 인지한 순간 예감했다. 다른 수단이 나올 것이라는 걸.
그것은 분명 당문의 암기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청광보다 무서운 것이리란 건 분명하다.
당문 일차암기계보도의 두 번째에 오른 것이 청광, 그보다 무서운 것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첫 번째다.
당대천의 소매 속에서 폭발해 나오는 번갯불, 그것을 향해 목계백은 장도를 내리쳤다.
타격의 진동과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그 순간에 알았다. 번갯불이 장도의 끝을 자르고 가슴으로 파고들어 온다는 것을.
몸을 비트는 목계백의 왼쪽 어깨를 섬광이 치고 지나갔다.
비트는 그 힘으로 장도를 횡으로 후리며 방어했다.
분섬보를 밟으며 거리를 벌리고 멈춰서야 상황을 인지했다.
장도를 가르고 어깨를 가른 암기를 봤다.
“제황(帝皇)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구나.”
경직한 표정의 당대천은 육각의 암기를 손으로 받아들었다.
얇기가 종이장과 같은 암기다. 눈부신 은빛을 뿜는 것으로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잘린 장도의 끝을 응시한 목계백은 물었다.
“그것이 제황인가? 당문 일차암기계보도의 첫 번째?”
은빛의 면도(面刀)와 같은 제황을 어루만지며 당대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것이 제황이다. 본가가 만든 최고의 암기지.”
목계백의 물음에 대답하며 당대천은 여유를 되찾아갔다.
천강대류의 공격을 오척의 장도로 가르고 다가오던 목계백의 무위에 경직했던 마음, 놀람과 두려움을 제황이 찾아준 자신감 아래로 내리눌렀다.
하지만 여전히 놀람은 남아 있다. 제황까지 사용하게 만든 목계백에 대한 놀라움이다.
잘린 장도와 피 흘리는 목계백의 어깨를 응시하며 당대천은 말을 이었다.
“제황은 본가의 총화다. 청광의 단점을 없앤 무적의 암기지. 이것을 사용하게 만든 맹호 너의 실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로구나.”
그 말끝에 당대천은 장효에게 제황 잡은 손을 겨눴다.
“먼저 죽고 싶다면 움직여라.”
흠칫한 장효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기회를 노리던 마음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당대천의 한 손도 상대할 수 없고, 맹호에게 짐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욱 분노로 치가 떨린다. 맹호는 칼이 잘리고 상처를 입었다.
“무적의 암기라고 했나?”
목계백의 목소리가, 입가의 미소가 당대천의 자신감에 다시 얽혀들었다.
“무적이라 하는 그 암기를 왜 혼자만 사용하는가?”
실룩, 입가를 경련하듯 움직이는 당대천에게 목계백은 거듭 냉소를 던졌다.
“웃기는 소리로군. 저 혼자만 쓰는 물건이 무에 그리 좋아서 무적인가? 차라리 청광이 그렇다고 하면 믿어주겠다. 그건 독귀자들도 사용하는 것을 봤으니까. 하지만 그 물건은 뭐냐? 내 보기엔 그걸 다른 이들이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제약이 있는 거지. 가주 외엔 무용지물인 거야.”
“아가리를 닥쳐라!”
“그게 뭔지 물어볼 필요도 없지. 천강대류나 뭐 그런 무공이 뒷받침되어야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겠지. 그걸 대성이나, 최소한 제황이 운용가능하도록 연성한 자가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건 연성의 어려움이 있다는 소리. 그 내막까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를 보면 반쪽자리 무적이구나.”
격노를 드러냈던 당대천은 험악하게 일그러뜨린 얼굴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하지만 직전처럼 소리치진 않았다. 차분하게 격노를 다스렸다. 그게 목계백이 정곡을 찔러서만은 아니다. 불현듯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다.
가라앉은 숨을 내쉬며 당대천은 말했다.
“맹호, 네 말이 맞다. 제황은 오직 나만이 사용할 수 있지. 나 외에 운용법을 연성하지 못한 자들은 이걸 손에 지닐 수조차 없다. 청광의 자철비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 그래, 이건 반쪽의 무적암기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그 부족함이 상관없다. 내가 너희의 목을 가를 테니까.”
참았던 격노를 터트리듯, 당대천은 제황을 던졌다.
천왕검이 우는 소리를 종패는 들었다. 그건 분노해서 우는 소리이고 아파서 우는 소리이며 승리하기 위해 우는 소리였다. 무영사의 밤하늘을 밝히듯 섬광을 내는 중이다. 그 상대는 방학천의 용화검이다. 자줏빛으로 물든 그 검과 부딪치며 울부짖고 소리치고 있다. 종패의 가슴속처럼.
‘물러서지 마라!’
종패는 염원을 다해 검에 의지를 실었다. 내력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력의 싸움이 아니다. 영혼으로 하는, 의지와 정신의 싸움이다.
그 싸움을 천왕검이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방학천의 기세에 점점 밀리고 있다.
‘제발! 더 힘을 내!’
밀리는 천왕검의 비상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종패는 그 순간 눈을 치떴다.
함윤, 그가 방학천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수룡검이 빛을 토했다. 주인과 같이 하나의 빛으로 물든 그 검이 방학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폭음과 함께 함윤은 튕겨 나왔다. 수룡검은 주인의 손을 떠나 바닥을 뒹굴었고 함윤은 토혈하며 쓰러져 버르적거렸다. 그 순간 천왕검이 부서졌다.
검이 지르는 마지막 비명, 그것을 들으며 종패는 함윤에게로 달려갔다. 야공에서 부서져 흩어지는 천왕검의 최후를 보며 함윤을 잡았다. 그 등으로 방학천의 용화검이 날아내려 왔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이제 없었다.
검은 선풍이 날아온 것은 그 순간이다. 회오리의 그 힘이 용화검을 강타했다.
튕겨 나간 용화검은 허공을 선회하며 주인의 등 뒤에서 둥실거렸고, 검은 선풍을 날려보낸 자가 달려와 종패와 함윤을 부축해 뒤로 물러났다.
“괜찮으십니까?”
다급히 묻는 자, 검은 선풍을 날려 용화검을 튕겨낸 자는 태웅이었다. 맹호의 수하인 그가 커다란 도끼창을 들고 돌아섰다. 그 옆으로 비격과 모금량이란 자가 섰고, 흑호단 수십여 명이 등패와 요도를 들고 나섰다.
공간을 가르며 날아오는 은빛 번개, 제황을 응시하며 목계백은 마주 몸을 내밀었다.
자살행위와도 같은 그 움직임에 당대천과 장효는 눈을 치떴다.
번개가 치는 것 같은 그 찰나의 움직임과 놀람 속에서 목계백은 왼손을 내밀었다. 전력을 다한 용악단혼수로 제황의 비상을 마주 때렸다.
폭음도 섬광도 없었다. 은빛 번개는 사라졌다.
그 이유가 목계백의 손에 있었다.
육각의 제황이 손바닥에 박혔다.
그걸 안 당대천이 경악을 보이는 순간 목계백은 사 척으로 줄어든 장도를 휘둘렀다.
당대천은 천강대류의 힘을 발산하며 방어했다. 하지만 갈라졌다.
당대천의 왼팔이 떨어져 나가고 옆구리가 쪼개졌다.
그러나 당대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순간에도 독을 살포하고 독강기를 전력으로 날렸다.
그렇지만 뒤로 물러나는 그 몸을 목계백은 놔주지 않았다.
당대천을 좇아가며 휘도는 회오리가 된 목계백은 용악폭전도와 섬전분뢰각을 폭발시켰다.
칼은 갈라진 한을 토하듯 당대천의 육신에 칼집을 냈고, 섬전조차 부수는 발은 무수한 그림자를 토해냈다.
당대천은 맷돌에 갈리는 곡식알처럼 부서져 휘말렸고, 그 정수리에 제황이 박혔다.
움직임을 멈추고 선 목계백으로부터 당대천이 튕겨 나갔다.
맹주전의 벽을 부수고 나간 몸은 바들거리는 최후의 경련을 보였다. 그 머리에 무적암기 제황이 박혔다. 목계백이 마지막 순간 내리친 한 수의 결과다.
피투성이 모습으로 당대천의 앞에 선 목계백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게 너희가 자랑한 무적의 참모습이다.”
경악한 눈으로 다가오는 장효의 얼굴과 시선을 뒤로 둔 채 목계백은 맹주전 밖, 접전의 한복판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쓰러진 함윤과 주저앉은 종패가 있는 곳, 그 앞을 막은 태웅과 비격과 모금량과 조승과 하대구와 흑호단이 있는 곳, 그들을 마주하고 선 방학천이 있는 곳을 향해서다.
목계백은 등 뒤로 검을 띄우고 있는 방학천을 향해 소리쳤다.
“방학천!”
방학천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목계백은 장도와 하나가 되어 달려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