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3
2.
“두이 놈 집에 수상한 자가 나타났다고?”
눈썹을 틀어 올리며 묻는 노인은 세 가닥 수염에 잿빛 기운이 흘렀다. 연강막의 막주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용모에 수염이지만 아무도 면전에선 고개를 들지 못한다.
철만변(鐵萬變) 좌교의(左敎義)는 그럴 수 없는 인물이다.
오직 한사람 아우인 좌행선(左行先)만 그럴 수가 있다.
수염 없는 마른 얼굴의 좌행선이 미간을 좁히며 보고자에게 재차 물었다.
“뭐하는 자 같더냐? 강호인이더냐?”
대장간에서 막 일하다 온 듯 한 복장의 청년은 막주의 집무실에 들어온 것에 위축이 되는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그런 걸로 보였습니다. 병기를 손보러 온자 같았습니다.”
막주 좌교의가 세 가닥 수염을 쓸어내리며 예리한 눈빛을 던졌다.
“출신을 짐작할 만한 자더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냥 행색으로만 보면 낭인이 아닌가합니다만, 거리도 멀고 오래 지켜보지 않아서 그이상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심유한 눈빛을 던지던 좌교의가 상체를 의자에 묻자 아우 좌행선이 물러가라 명했다.
“돌아가서 특별한 동정이 있는지 살펴 보거라.”
고개 숙여 읍하고 청년이 돌아가고 난후, 좌교의와 좌행선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공교로워.”
“그렇습니다 형님.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납니다.”
다탁 위에 올려놓은 식은 찻잔을 집어든 좌교의는 마실 생각은 없는 듯,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잔이 내는 비명 속으로 제 목소릴 섞었다.
“어디서 온 놈일까? 대동보(大同堡)에서 보낸 자일까?”
가늘고 예리하진 좌교의의 눈을 마주보며 좌행선은 다른 의견을 냈다.
“그 반대 일수도 있습니다.”
“반대?”
“비금도(秘禁島)에서 온자일수도 있습니다.”
막주 좌교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비금도에서?”
상체를 더 숙여 얼굴을 가까이한 좌행선은 작게 이야기 했다.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대동보와 우리 연강막이 교분을 쌓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십년 전 형님이 전임막주의 의문사후 장로원의 추인을 얻어 막주에 오르게 된 일, 그 내막을 그들이 알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 그걸? 설마 그들이?”
“혹시 모릅니다. 워낙에 귀신같은 자들이라 언제나 예측을 뛰어넘는 면이 있지요. 비금도 자체가 민가에서는 귀역이라고 소문이 돌지 않습니까? 어부들도 그 섬 근처로는 접근도 하지 않습니다. 강호의 악질들이 모인 곳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비금도주 운악(雲岳)은 기이막측한 인물입니다. 때문에 대동보도 저렇게 고전중이니 않습니까?”
“음. 그렇긴 하지. 절강 남부에서도 노른자위인 이 온주 땅에서 위세를 떨치는 대동보에 유일하게 대적하는 자들이니까. 그건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야.”
고개를 주억대던 좌교의는 예리한 눈빛을 뿜었다.
“하지만 대동보에서 보낸 자일 수도 있어. 그들은 우리가 만든 병장기들이 비금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거야. 표면적으로 우리 연강막이 대동보와 협약을 했다지만, 암거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분명 보이지 않는 감시를 하고 있어. 그런데도 그런 자를 보낸 건 일종의 경고지.”
“경고요?”
“경거망동하지마라는 거야. 대동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보이는 곳에서 언제나 주시하고 있다는 거지. 욕심 부리다간 골로 가게 된다는 경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좌행선은 미심쩍어 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두이의 대장간에 나타났다는 자가 실제론 그냥 낭인 나부랭이인지도 모릅니다. 그자가 야인에 불과하다면……”
“그래서 공교롭다는 거야.”
“예?”
“대동보와 비금도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 때에, 그걸 아는 강호인들이라면 온주 땅에 발도 들이지 않는 마당에, 그런 자가 나타난 게 우연일까?”
“그건……”
“아는 놈들은 안다. 우리 연강막에서 쇠를 제일 잘 다루는 자가 누구인지.”
좌행선은 신음 같은 작은 소리로 한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두이.”
“그래. 그놈이지. 여의수(如意手)라는 별호까지 붙은 놈이야.”
“가당찮게 여의수는 무슨……”
“우리에겐 가당찮은 소리지만 두이에 대해 아는 놈들에겐 그렇지 않지.”
그렇다. 그래서 심복지환처럼 여기며 혹시 몰라 감시까지 하고 있다. 그런 정성을 들여선지 지난 십년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이에게 접근하는 자들도 없고 두이도 쥐 죽은 듯이 제 일만 하고 살고 있다.
좌행선은 미간을 가득 좁히고 입을 열었다.
“지금 형님 말씀은 그러니까……?”
“비금도에서도 두이에 대해 알고 대동보에서도 그놈에 대해 안다. 낭중지추라, 더 이상은 그놈에 대해서 숨길 수가 없어. 그놈은 결국 드러났지. 그놈의 재주는 비상해. 그런 놈이라면 누구라도 품고 싶을 거야.”
좁힌 미간을 더욱 뒤틀며 좌행선은 부정을 드러냈다.
“비금도라면 몰라도 대동보는 우리와 긴밀한 관계인데 어찌……”
“멍청한 소리!”
움찔하는 아우 좌행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좌교의는 핵심을 말했다.
“전임막주를 독살하고 막주 자리에 오른 나다. 그 일을 도와주고 눈감아 준 게 대동보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너와나, 그리고 대동보뿐이다. 대동보라는 곳이 어떤 곳이냐? 정의와 인정을 베푸는 곳이냐? 그런 곳이라면 애초에 우리와 관계하지도 않았겠지.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라지 않는 냉혈한들이다. 저희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하는 자들이야.”
“그, 그럼, 대동보가 우리를 버리고 두이를 취하려 한다는?”
“가능성이 있지. 어찌됐건 우리는 대동보와 더러운 물에 같이 손을 담근 자들이니까. 그들의 더러운 손을 아는 자들이고. 그건 개운치 않지.”
“그, 그렇다고, 우, 우리를……”
“흥분하지 마라. 가정이다. 가정이긴 하지만 현실이 될 수 있는 가정이지. 우리는 대동보의 먹이가 될 수도 있고 비금도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정신 바싹 차리고 있지 않으면 잠자다가 목이 베어질지도 몰라.”
“혀, 형님, 그렇다면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좌교의는 칼날 같은 눈빛을 뿜어내고 속삭였다.
“그래서 우리가 선수를 쳐야 한다. 대동보가 행사하기 전에, 비금도와 손을 잡아야 한다. 그들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고 병기를 제공하기로 하는 거다. 차제에 온주 땅에서 대동보를 사라지게 만드는 차도살인지계다.”
놀란 눈을 치뜨는 좌행선에게 좌교의는 재차 속삭였다.
“네가 비금도에 다녀와라.”
* * *
고철 같은 단검을 두드리고 담금질 하면서 두이는 술기운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술 생각이 다시 났다.
하지만 지금은 술을 마실 때가 아니라 일을 해야 할 때라는 걸 알기에 작업에 열중했다.
그렇지만 자꾸 드는 의문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병기들이 어쩌다 이지경이 됐는지.
“아무리 십년을 썼어도 이건 정말 심한데? 어디서 뭘 하고 산건가?”
두이가 묻자 대장간 문턱에 앉아 있던 청년, 목계백이 고개를 돌렸다.
“그냥 살았습니다.
“그냥 살았다니, 어떻게 그냥 살았기에 병기들이 이 모양이 된 거야?”
두이는 정말로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십년 전 청년이 소년이었을 때 만들어준 병장기들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들이다. 한 달 동안 식음은 전폐하다시피 작업에 집중해 만든 것으로 상품 중의 상품이다.
그런 물건들은 그 후로 딱 하나만을 더 만들었다.
화로뒷벽 속에 숨겨뒀던 장도다.
소년이 남기고간 쇠로 만든 장도다.
완성도면에서 보자면 소년에게 준 것보다도 훨씬 훌륭한 물건이다.
그 후론 그런 물건들을 만들지 못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어디 가서도 이런 물건들은 못 구해.”
가슴을 펴며 말하는 두이를 보고 목계백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압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망치질을 멈춘 두이는 미간을 가득 좁혔다.
“도대체 뭘 하고 산거야? 용병이나 보표 같은 삶을 산건가? 혹시 비무자였나? 그래서 매일같이 싸우고 다닌 거야? 얼굴의 흉터들은 그런 거고?”
구릿빛 얼굴 속의 희미한 흉터들이 움직이도록 목계백은 웃었다.
“웃기만 하는구만.”
체 하며 다시 망치질을 하는 두이에게 목계백이 물음을 던졌다.
“저편에 보이는 대장간을 잘 아십니까?”
“어디? 아, 진가네? 알지. 뭐, 우리 연강막 마을 전체가 다 같은 식구니 당연한 거야. 그런데 왜?”
“저 곳에서 일하는 청년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뭐 감시?”
목계백의 옆으로 다가가 선 두이는 미간을 좁히고 시선에 힘을 줬다. 진가네 대장간은 거리가 멀어 뭘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기 어려웠다. 대장간도 보이고 일하는 사람도 보이지만, 감시하는지 어쩐지는 모를 거리다.
“뭘 보고 감시한다는 거야?”
문가에 앉은 목계백을 내려다 본 두이는 그때서야 확신을 가지고 깨달았다.
‘그런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문주형제가 옆에서 본 것처럼 알고 있는 게 그런 이유인가? 그래, 그랬구나, 나만 모르게 다들 그래왔던 거구나.’
이젠 알았다.
정말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 그걸 목계백이 알아챘다는 것. 십년 만에 만난 이 청년이 같은 연강막 식구인 진가네 보다 믿음직하다는 것. 그래서 알 수 없는 반가움에 아침술까지 나눠 마시고 웃고 있다는 것. 이런 심경변화와 모종의 예감을 두이 자신이 즐기고 있자는 것.
다시 진가네를 응시하며 두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늙은이들이 긴장하고 있구만.”
무심한 시선을 던지던 목계백은 두이를 올려다봤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네 때문이야. 외지인이 들어왔기 때문이지. 뭐, 연강막에 외지인이 들어오는 게 이상하건 아니지만, 지금 시기가 그래. 여기 온주 땅을 호령하는 대동보와 바다건너 비금도와 전쟁을 벌이기 직전이거든. 그래서 강호인으로 보이는 자네가 나타나자 긴장한 거야. 게다가 찾아든 곳이 내 집이고.”
“미움 받고 사시는 군요.”
“뭐, 잘난 자의 숙명 같은 거지.”
어깨를 으쓱하는 두이도 그걸 보는 목계백도 풀썩 웃었다.
“신경 쓰지 말라고. 난 일이나 해야겠군.”
다시 망치를 잡고 두드리던 두이는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런데 자네, 십년 전에 가지고 간 그것도 사용했나?”
뭘 말하는지 잠시 생각하던 목계백은 알았다는 미소 지으며 일어섰다.
“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검은 무복을 풀어헤친 목계백은 흉갑을 떼어냈다.
먹빛강철로 된 흉갑이다.
앞부분과 등부분으로 나뉜 흉갑을 풀자 구릿빛 근육의 몸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 몸에도 흉터가 빼곡했다. 그 이유는 흉갑의 파손에 있었다.
“이런, 많이도 칼을 맞았구만.”
두이는 정말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흉갑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구멍이 나 있었다. 그 부위가 정확하게 목계백의 몸에 난 상처와 일치했다.
어떤 상대와 싸웠는지 모르지만 흉갑을 뚫는 힘을 지닌 적과 상대한 것이다.
“이건 못쓰겠는데?”
찌푸린 두이의 얼굴을 보고 목계백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버릴 때가 됐지요.”
망치로 흉갑을 탕치며 상태를 다시 확인한 두이는 새로운 의견을 냈다.
“이걸 녹여서 찰갑을 만들지. 그거면 무게도 훨씬 가볍고 활동성도 좋아지니까.”
찰갑이 뭔지 아는 목계백은 눈빛을 반짝였다.
“가능하겠습니까?”
“허, 그 물음은 자존심이 딸꾹질하게 만드는데? 이래 뵈도 여의수라는 별호까지 있는 자가 바로 나라고. 아는 사람은 내 솜씨를 다 안단 말이지.”
“그럼 부탁합니다.”
목계백이 정중하게 고개 숙이자 두이는 뭔가를 떠올렸다.
‘이 병기들을 만든 쇠는 수레에 싣고 왔던 병장기들……’
그랬다. 저 밖에서 여물을 우물거리고 있는 추레한 나귀, 저놈이 그때 그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귀가 끌고 온 수레에 병장기들이 실려 있었다.
말라붙은 피와 살점들이 썩은 냄새를 풍기던 병장기들, 그것들을 녹여서 소년이 가지고 갈 병기들을 만들었다. 그 병장기들은 표식이 있었다.
북천(北天).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소년이 떠나간 후로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짐작은 했다. 소년은 북천이라는 곳과 관련이 있고, 그 표시가 되어 있는 병장기들을 녹여서 자신의 병기를 만들어 간 이유가 있다고.
흉갑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두이는 목계백을 다시 바라봤다.
“여길 다시 돌아온 이유가 있나?”
목계백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래, 난 내일만 하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두이는 망치질을 하고 흉갑을 녹였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찰갑을 만들 틀에 쇳물을 집어넣는 일을 하는 동안 해는 점점 높아졌다.
망치소리만 가득한 두이의 대장간에서 목계백은 하늘과 나귀만 바라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