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92
3.
한 때 항주제일의라고 불렸던 자, 장주련은 항주무림맹 사람들의 기세에 눌리고 날벼락 같은 광인대사 살인에 대한 충격으로 목소리를 떨었다.
“부, 분명히 잠드신 걸 확인하고 물러났습니다. 평시처럼, 의, 의방엔 소인 밖에 아무도 없었고……”
“알았으니 진정하십시오.”
목계백이 강한 눈빛으로 말하자 장주련은 입을 닫고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어깨의 떨림을 멈추진 못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림사장경각주 광인대사가 죽어버렸다. 누군가 침입해 살해한 것이다.
비격으로부터 주변과 항주의방 내부에 대해 귓속말을 들은 목계백이 명세기에게 보고했다.
“의방 내에 의심이 갈만한 인물은 없는 걸로 보입니다. 다른 방에 퇴기로 보이는 환자 둘이 있습니다만, 병색이 짙어 혼자선 거동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의방 주변도 골목골목 수색을 했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흉수가 혈뢰인을 쓰는 그자라면 같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같다고 본다는 말은 흔적이나 단서가 없다는 말이라는 걸 귀가진 자들이 모두 알아들었다. 때문에 원율도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암울하고 무거운 눈빛으로 도호를 읊었다. 그야말로 비통스럽고 분노한 소리였다.
“원시천존……”
광인대사의 시신 앞으로 더 바싹 다가간 원율도장은 창백한 광인대사의 얼굴을 응시하고 속삭였다.
“미안하오이다. 정말로 미안하오이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원율대사만이 알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의 가슴에 사무친다.
결국 광인대사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항주무림맹의 책임이다.
혈뢰인에 의한 첫 번째 살인 후 바로 조치를 취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다.
충격적인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명세기가 입을 열었다.
“광인대사의 시신을 빙고(氷庫)로 옮겨라. 조부맹주와 도사님들의 시신도 함께 옮겨라. 소림사에서 도착하게 되면 한 점 의혹 없이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원율도장도 눈빛을 냈다. 자신이 사실관계를 전달하겠지만 소림이 아닌 무당의 인사다. 그러한 백 마디 말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이 확실하다. 시신의 현 상태를 보여준다면 더없이 좋다.
목계백이 고개 숙이고 물러났다.
“명을 받듭니다.”
항주만을 바라보는 해안 언덕에 위치한 빙고는 특별한 건축물이다. 석조건물로서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공간이 훨씬 크다. 항주만 앞바닥에서 나는 해산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 만든 시설이다.
이곳도 그동안은 혁리세가의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오늘 밤부터는 출입을 통제해야 할 상황이다.
빙고 안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을 무심히 응시하며 목계백은 생각했다.
‘소림과 무당인사들을 노리는 이유가 있어.’
계단을 밟고 빙고안의 칙칙한 어둠 속으로 내려가면서 그 생각을 씹었다.
‘그들에게 갚아야 할 원한이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첫 번째 목적은 강한 자들을 먼저 해치우는 것이야.’
분명하다.
현재 항주무림맹 내에서 제일 강한 자들의 전력을 꼽으라면 역시 무당이십팔검이다.
물론 맹주 명세기가 남궁세가에세 보인 대외적인 위세가 있어 고려의 대상이고 그 밖의 수뇌부들도 그렇지만, 역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난 고수들은 그들이다.
그들을 하나씩 죽임이다.
‘암살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건데……’
소림과 무당의 본산에서 도착하려면 적어도 이레는 더 지나야 한다. 그 안에 녹림본산에서 들이칠 것이 분명하다.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때 아닌 암살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명백한 전력 깎아내리기다. 무당이십팔검까지 사라진다면 심적 실질적 충격은 대단할 것이다.
물론 목계백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니 반가움도 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일이다. 목계백 자신이 계획하고 행동한 일의 결과가 아니다.
그래서 위험을 느끼고 긴장하고 있다.
예측불가한 상황이나 돌발변수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막아야해, 잡아야 해.’
어느새 빙고 안으로 들어선 목계백은 통로에 밝혀져 있는 불빛을 따라 시체가 있는 석실로 향했다.
지나며 본 다른 석실들엔 지난겨울 강에서 채취해 놓은 얼음들이 가득했고, 항주내의 고급반점과 기루주루 등으로 들어갈 해산물들이 가득했다.
그 석실들을 지난 마지막 석실에서 멈췄다.
네 구의 시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광인대사와 태허자와 또 다른 무당이십팔검의 한사람, 그리고 부맹주이자 안휘검문주였던 조두량이다.
그들의 시신을 응시하다가 다시 가슴에 남겨진 혈뢰인의 흔적을 살폈다.
‘붉은 번개문양의 장인이라…… 기이한 무공이야.’
혈뢰인의 위력과 이해하기 힘든 죽음의 흔적을 생각하던 목계백은 기억에 남은 것들을 떠올렸다.
해남파의 무공인 혈뢰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이다.
상관무영 말해준 강호의 많은 무공들 가운데 이것이 있었다.
혈뢰인, 이것은 본래 서역의 무공이라 했다.
소뢰음사 출신의 승려가 중원행을 하며 알려진 무공이다.
그것이 삼백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이름이 혈승(血乘)이라 했던 그는 말 그대로 지옥혈승(地獄血僧)으로 불렸다.
그가 비무를 핑계로 죽인 사람의 수가 백 명을 넘어갔다. 모두가 강호의 고수들이다. 소림사와 무당파의 인사 중에도 그에게 죽는 자가 나왔다.
그러한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해남파였다.
강호에 막연한 소문으로만 돌던 해남파 제일의 고수, 해남검선(海南劍仙)이라는 별호를 가진 장취의(張就義)를 찾아 간 것이다.
그것이 혈승의 행적이 드러난 마지막이다.
그는 해남파에 들어간 간 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승패는 어찌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백년 후 해남파가 혈뢰인을 사용했다.
지금으로부터 이백년 전이다.
해남파와 점창파의 인사 둘이 강호에서 조우해 논검을 하던 도중 결국 살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일로 두 문파는 전쟁을 했다.
바로 그 때에, 점창파가 멸문의 위기까지 갔던 그때에 해남파는 혈뢰인을 세상에 선보였다.
강호는 그 장력의 위력에 경악했고 짐작했다. 지옥혈승으로부터 해남파에 혈뢰인이 넘어갔다는 것을.
검만을 추구하던 해남파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공을 바탕으로 삼게 됐으며, 강호는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 해남파가 십년 전에 멸문했다.
갑작스러운 급변이었다. 강호는 놀랐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목계백은 그 이유를 안다.
‘무림이 그들을 몰살했지.’
목계백은 어금니를 물고 원한의 안광을 내뿜었다.
서리서리 한이 맺힌 시선은 광인대사와 다른 자들의 시신을 훑었다.
칼이라면 난도질 할 것 같은 기세다.
“너희들의 그 음모에 북천이 칼잡이로서 희생됐다. 하지만 그 일은 끝나지 않았어. 아직 칼잡이 하나가 남아 있다. 그 칼잡이가 너희를 찾아갈 거다.”
나직한 독백을 흘려낸 목계백은 뒤돌아 석실을 나갔다.
* * *
태원자는 사제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 응시하며 이야기 했다.
“혈뢰인을 사용하는 흉수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는 안다. 놈은 바로 이곳 항주에 있다. 그것도 항주무림맹 안에 있다. 분명히 이곳에 관여한 주요인사중의 한명이다. 놈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혈뢰인을 사용하는 것으로 봐선 해남파와 관련된 인물임이 거의 확실하다. 역시 목적이 뭔지 모르지만,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본다. 조두량에 이어 우리 사형제 둘을 살해한 것으로 봐도 그 짐작이 맞다.”
시린 눈빛을 마주 내고 있는 사형제들에게 태원자는 자신의 속생각을 밝혔다.
“어쩌면…… 혈뢰인의 흉수가 십팔나한과 태현사형을 해친 놈인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그럴 거라고 본다. 지금처럼 흉수 놈은 모습을 감추고 십팔나한과 태현사형 일행을 각개격파 한 것이다. 그 현장을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럴만한 능력을 가졌다. 바로 그 놈이 이젠 우리를 노리는 거다.”
태원자는 어금니를 문 목소리로 뒷말을 이어냈다.
“흉수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먼저 움직인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안다.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을 감시하는 거다. 절대로 혼자서 행동해선 안 된다. 이제 우리인원은 열다섯, 세 명씩 다섯 개조로 나누어 움직인다. 한조는 사숙의 곁에 남아있고, 나머지 네 조가 움직여 흉수는 잡는 거다.”
고갯짓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사제들을 눈을 맞춘 태원자는 마지막 결의의 한마디를 던졌다.
“무당의 이름으로 응징한다.”
* * *
맹주 명세기의 처소가 있는 다루의 꼭대기층을 보면서 목계백은 시린 눈빛을 냈다.
다시 한 번 명세기라는 자에 대한 모든 것을 떠올려봤다.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알아냈던 온주에서의 소문과 풍문들, 대동보에 대한 모든 정보들. 하지만 역시 명세기는 혈뢰인과 관련한 자가 아니다.
‘다른 자야. 우리 속에 숨어 있는 다른 자. 누구지?’
그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어둠 속에 숨어서 항주무림맹의 인사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다. 혈뢰인의 흉수가 다시 살인을 일으키기 전에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제는 다 의심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다 의심을 품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흉수는 철저하게 위장했다.
‘비격이나 모금량?’
그들은 아니다. 그들은 해남파가 멸문하기 이전에 명세기의 손에 거둬진 이들이다. 꿰맞추기엔 시기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들은 이제 명세기보다도 목계백 자신을 신뢰한다.
‘흑전주 용인성?’
그라면 문제가 크다.
비격과 모금량을 제외하면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다.
서천목산에서의 일도 그는 알고 있다.
그가 해남파와 관련한 인물이거나 그쪽과 음모를 꾸미는 거라면 위험하다.
하지만 그럴만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는 흑전주로서 혁리세가의 타파에만 전력을 기울여 왔다. 그 일을 이루게 해준 목계백을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그다.
‘은천장주? 춘추검이나 파랑검?’
은천장주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세명이나 호일도는 모른다.
그들의 과거라고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의심하기엔 무리한 구석이 있다.
비금도에서부터 같이 싸운 자들이다. 해남파의 암살자들과 싸웠다.
은천장주와의 친분으로 목숨을 건 사람들이 그들이다.
‘칠절신편 위홍? 허일관? 한규? 관창?’
남은 인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을 더듬던 목계백은 수상한 기척을 감지했다.
자신처럼 심야의 어둠 속에 숨어든 그림자들이다.
그들이 누군지 살피기 전에 담장 뒤로 몸을 더욱 밀착했다. 그리고 다시 살폈다.
‘무당이십팔검.’
그들이다. 그들 중의 세 명이다.
명세기를 감시하러 온 것이다. 흉수를 잡기 위해 먼저 움직인 거다.
세 명만 여기 나타났으니 다른 곳에도 세 명씩 짝을 지어 움직인다는 거다.
항주무림맹 인사들을 의심하는 거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한 거지만……’
목계백은 자신의 숙소에 들이닥쳤을 무당이십팔검을 걱정했다.
저들은 황산에서 살수를 펼치려고 했던 자들이다.
이번 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있으니 숙소에 없다는 것을 저들이 알게 될 터, 이런 때에 혈뢰인 흉수가 일을 벌인다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순간 호각이 어둠을 흔들었다.
* * *
태일자는 사형제들이 달려오도록 호각을 힘껏 불었다. 동시에 직감했다. 자신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저자, 검은 야행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춘 자, 혈뢰인의 흉수로 짐작되는 자, 저자가 일부러 나타났다는 걸.
사형들이 검을 뽑는 걸 보며 바로 검을 뽑아든 태일자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항주만으로 가는 길목인 이곳은 인적이 없는 곳이다.
주로 포구에서의 수하물과 해산물들을 실은 우마차등만이 다니는 외진 길이다.
이곳으로 칠절신편 위홍을 쫓아왔다.
뒤를 밟았다. 그런데 저자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위홍을 공격했다.
그 불의의 공격을 받은 위홍은 쓰러져 있다.
“호각소리가 듣기 좋구나.”
쓰러진 위홍을 버려두고 야행의의 사내가 다가왔다.
그를 보며 검을 움켜잡은 태일자는 두 사형과 시선을 주고받은 후 전신 내력을 끌어올렸다.
셋이면 진다는 생각은 안하지만,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걸렸다.
“네놈! 정체를 밝혀라!”
사형이 외치는 소릴 들으며 이를 악물던 태일자는 순간 경직했다.
검의야행의의 사내가, 흉수가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유령처럼 일장 앞에 나타났는데, 그가 양손을 휘둘렀다.
그 손으로부터 붉은 번개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사형들이 날아갔다.
던져버린 보릿자루처럼 뒤로 나가떨어진 두 사형,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즉사한 것이다. 왜 그랬는지도 알았다.
지금 본 것, 붉은 번개, 혈뢰인이다. 그것에 심장을 맞아 절명했다.
격공장력이다. 정말 경악스럽다.
‘말도 안 돼!’
태일자는 지금 닥친 이일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믿을 수가 없다.
무당이십팔검의 두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상대의 단 한수에 즉사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저런, 무서운 게구나?”
흉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태일자는 현실로 돌아왔다.
너무나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혀서 망각하고 있던 눈앞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길동무라도 하려무나.”
흉수가 다시 손을 뿌렸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붉은 번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형들의 사이로 태일자는 휙 날아가 떨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