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3
12화. 약빨이 넘쳐서 그만텅 빈 연무장.
평소 코흘리개들의 기합 소리로 가득하던 이곳에 지금은 나 혼자뿐이었다.
아버지가 호피를 팔러 가면서 백무관을 며칠 쉬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팔다리를 녹림십팔식(綠林十八式) 중 전 육식(六式)의 투로를 따라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내 무공 말이냐?
내가 자신의 무공을 물을 때마다, 맹호악은 가슴을 활짝 펴고 뿌듯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무공은 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이거야!
-온갖 잡스러운 무공을 갖다 붙여 만든 주제에 뻔뻔하긴.
-광마 이 새끼. 여기서 나가면 너부터 때려죽일 줄 알아!
-흥. 누가 할 소릴.
“……이 양반들은 추억 속에서도 싸워대네.”
녹림투왕 맹호악과 광마 헌원후는 견원지간이었다.
무림에서 활동할 때는 한 번도(놀랍게도) 부딪친 적이 없었지만, 뇌옥에 들어온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둘이 추구하는 무공의 궁극적인 목표나 성격 차이 때문에 벌어진 사소한 언쟁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냥 입만 열면 서로 시비를 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무공에 깊이라고는 없는 무식한 파락호!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만 해대는 칼잽이!
대체로 이런 식이었는데, 둘이 다른 방(바로 옆방이었다)에 갇혀 있어서 실제로 무공을 겨루거나 한 적은 없었다.
‘둘이 제대로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결국 둘의 대결은 성사되지 못했다.
뇌옥에서 탈출한 직후, 우리는 곧장 혈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혈교의 무인들을 쓰러뜨리며 움직여야 했으니까.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우던 두 사람의 손발이 수십 년 맞춰 본 사형제처럼 잘 맞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 언쟁을 벌이면서 서로의 무공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을 테니까.’
뭐,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면, 맹사부가 창안한 녹림십팔식은 기존에 녹림에서 전해지던 온갖 무공들을 집대성해 하나로 만든 무공이었다.
녹림의 역사는 깊다.
하지만 아무도 그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명문대파나 세가들은(심지어 사파마저도) 녹림을 양민이나 수탈하는 도적으로 취급하고, 종종 후기지수들을 보내 심리적으로 편안한 첫 살인의 경험을 쌓게 한다.
-개 같은 정파 놈들. 우리를 아주 아무 때나 잡아 죽여도 되는 벌레 취급을 하지. 누군 산적이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흥. 그게 싫으면 나가서 농사라도 지었어야지. 성실하게 일하기 싫어서 도적이 된 주제에.
-……성실?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비였지만, 맹호악은 평소와는 다른 싸늘한 목소리로 광마에게 대꾸했다.
그때만큼 차가운 맹사부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네놈은 한 번이라도 농사를 지어 보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잘난 집안에서 태어나 벌모세수에 영약에 온갖 특혜는 다 받고 자란 놈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탐관오리에게 수탈당하는 삶을 아느냐? 아비는 포졸들에게 매 맞고, 어미와 누이는 겁탈당하고, 흉작이면 온 가족이 굶어 죽는 삶을 아느냔 말이다. 그런 인생이 성실하게 살면 바뀔 것 같으냐?
씩씩대며 따지고 드는 맹사부의 말에, 광마는 평소보다 대답이 늦었다.
-……네 이야기인가?
-아니. 전부 지어낸 얘기다. 크하하하하!
-미친놈. 궤변 잘 들었다.
지어낸 이야기든 아니든.
궤변이든 아니든.
녹림이란 갈 곳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도적질을 하는 단체였고, 관부와 정파 무림은 그들을 세상에서 없애야 할 악으로 취급했다.
녹림의 무공은 그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실용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발전해 왔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속 편하게 앉아서 내공을 쌓아?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일단 주먹부터 휘두르고 봐야지!
산적들에겐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내공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다.
그들의 무공이 신체를 단련하는 외공 위주로 발달한 이유다.
내공은 단전에 기를 느끼는 데만 해도 늦으면 몇 달씩 걸리지만, 외공은 비교적 빠르게 성과가 눈에 보이니까.
그래서 외공 위주인 녹림의 무공은 타고난 신체 조건에 크게 좌우되고, 깊이가 얕다고 무시당해 왔다.
하지만 우리 맹사부께서 이르길,
-그건 신체를 극한까지 단련해 보지 않는 놈들이 지껄이는 헛소리다. 고수란 놈들도 어느 순간부터 신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초식만 좀 연습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내공만 늘리려고 해! 우선 가부좌를 오래 하면 허리와 무릎에 얼마나 나쁜지 알려 주랴?
평생 외공을 수련해 온 맹호악은(그렇다고 내공이 없지도 않았다.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적었을 뿐) 인간의 신체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한 후 이렇게 정리했다.
-외공의 가능성은 결코 내공에 밀리지 않는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 경지에 이른 신체에는 저절로 기가 깃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절대지경에 이를 수 있다!
미안하지만 나는 거기서 분위기를 좀 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맹사부. 예전에 영약 많이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 넷 중에 누구보다 영약 좋아하는 사람이 맹사부였다.
어릴 때 못 먹고 자란 게 한이 됐다며, 녹림을 통일한 후로는 닥치는 대로 구해다 먹었다나?
뱀, 지네, 호랑이, 거북이, 개구리 등등…….
광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옆방에 있는 거한을 바라봤다.
-신체에 저절로 기가 깃들어? 그렇게 처먹어 대니 안 깃들 수가 있나.
-크흐음! 이론이 그렇다 이거지, 이론이! 두고 봐라. 내 심법이 필요 없는 천하제일의 외공을 만들어 낼 테니!
그렇게, 맹호악은 뇌옥에서 자신이 정립한 녹림십팔식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뇌옥에서 자신의 무공을 돌이켜보고 재정립한 것은 다른 사부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맹사부는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이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지.’
비록 자신은 익히지 못했지만, 새로운 녹림십팔식을 완성한 맹사부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애송이, 네가 증명해라! 가장 비실비실한 놈을 골라서 내 무공을 가르치는 거다! 크하하! 그래서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외공으로 천하제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라!
……죄송한데 가장 튼튼한 놈으로 골라서 가르쳤습니다.
그때는 마뇌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또한 아무리 맹호악이 누구든지 익힐 수 있는 무공을 만들었다고 해도, 타고난 신체 조건이 외공을 익히는 데 유리하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어쨌든…….
‘그걸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은 몰랐군.’
신체가 허약한 자도 얼마든지 익힐 수 외공.
즉, 이 몸으로 익히기에도 무리가 없다는 의미였다.
“후우…….”
나는 잠시 수련을 멈추고 호흡을 정리했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난 거야?”
아침부터 수련을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귓가에 맹사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녹림십팔식은 전, 중, 후 육식(六式)씩 나뉜다!
전반 육식을 익히면 몸의 기운이 북돋워지고 고양이처럼 유연해진다.
중반 육식을 익히면 몸이 쇠처럼 단단해지고 신력을 얻게 된다.
마지막 후반 육식을 완전히 익히면 수화불침(水火不侵)의 신체가 되고 금강불괴를 이루며,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불로장생까지는 솔직히 못 믿겠지만.”
맹사부도 어디까지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예상했을 뿐이니까.
사실 네 사부의 무공을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녹림투왕의 무공이 미미하게나마 넷 중에 가장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권각술과 외공만을 놓고 본다면, 녹림투왕의 무공이야말로 천하제일이라고.
-갈! 모조리 때려죽여 주마!
나는 뇌옥을 탈출한 후 일행의 선두에서 혈교의 고수들을 때려죽이며 전진하던 맹호악의 신위를 떠올렸다.
산사태나 다름없는 재앙을 일으키던 그를 막아서기 위해, 혈교는 어마어마한 피를 흘려야 했다.
“만약 맹사부가 명문세가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구파일방에 눈에 띄었다면…….”
나는 가정을 해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녹림투왕이 대단하긴 하지만, 광마나 빙월신녀, 검존의 재능도 결코 녹림투왕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만큼 대단한 절대고수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넷씩이나.
“후우……. 후우…….”
나는 노을이 저물고 별이 뜰 때까지 녹림십팔식의 전반 육식을 수련했다.
중간에 두 번 밥을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계속했다.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오랫동안 할 수 있도록 내 체력에 맞춰 계산해서.
그럼에도 팔이 떨려오고 몇 번이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조금만 더. 아직 더 할 수 있어.’
부들거리는 팔을 억지로 움직였다.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바짝 힘을 줬다.
아직 전반 육식만을 수련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중반 육식을 익힐 것이고, 언젠가 후반까지 익혀 낼 수 있다면.
나는 외공에 있어 녹림투왕도 이르지 못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뿐인가?
내게는 광마의 무공과 빙월신녀의 무공, 검존의 무공, 그리고 역천신공이 있었다.
‘이걸 다 익히면 대체 얼마나 강해지는 거지?’
터무니없는 오만일지도 모른다.
이 중 하나라도 대성하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익히기 쉽지 않은 무공들이니까.
또한 강호에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고수와 기인이사들이 즐비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 팔다리는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시간도 잊고, 이제는 몸이 저절로 투로를 따라 움직일 지경이 되었을 무렵.
콰앙!
대문이 활짝 열리고 얼큰하게 취한 얼굴의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아들아! 애비가 돌아왔다! 하하하! 그 호피를 얼마에 판 줄 아냐? 알면 너도 깜짝 놀랄…….”
“……후우. 벌써 오셨어요?”
“아니 이게 다 뭐냐? 너, 너 설마 밤새 이러고 있었던 거냐?”
“아니 그게…… 약빨이 받아서 체력이 넘쳐가지고 그만.”
급하게 변명을 한다고 했는데 역효과만 났다.
“약빨? 너 설마…… 하수오를 복용한 게냐? 너 혼자서? 위험하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 아니 그게요.”
아버지는 연무장을 휙휙 둘러보더니,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대빗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노무 자식……. 너 이리 안 와!”
“말로 합시다! 말로!”
나는 대빗자루를 들고 쫓아오는 아버지를 피해 한동안 추격전을 벌였다.
……그래도 1각 가까이 도망 다녔으니, 체력이 꽤 늘기는 한 모양이었다.
* * *
그날 이후에도 내 일과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안으로는 아침저녁으로 역천신공을 운기조식해 몸 안의 탁기를 단전에 생긴 내단에 모았고.
밖으로는 녹림십팔식의 전 육식을 수련해 체력을 키우고 몸의 유연성을 길렀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비응객 고주열에게서 기다렸던 연통이 왔다.
청룡학관의 신입 강사 입사 지원 공고가 나붙었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