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22
321화. 은인이라니
모용준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얼굴의 형태가 눈앞에 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거리자 서서히 초점이 잡혔다.
“정신이 드냐?”
“……!!”
류설이었다.
순간 모용준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겨, 결국 너도 죽은 거냐? 설마 나한테 입은 부상 때문에…….”
“뭐래 이 병신이.”
류설은 차마 환자를 때리지는 못하고 옆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모용준이 비명을 질렀다.
“끄악!”
“비명도 지르는 거 보니 다 나았네.”
고통스러워하는 모용준을 보며 류설이 낄낄 웃었다. 안도의 웃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모용준은 아픈 옆구리를 만지며 류설에게 물었다.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안 죽었지? 분명 기혈이 다 뒤틀려서…….”
모용준은 말을 하다 말고 자신의 몸 안을 관조했다.
기혈이 안정되었고, 몸 안을 찢어댈 기세로 날뛰던 기운이 얌전해졌다. 주화입마의 증상이 깨끗이 사라졌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나도 몰라. 쟤가 살렸으니까 쟤한테 물어보든가.”
류설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백수룡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었다.
“총사범?”
“후우…….”
마침 운기조식을 끝낸 백수룡이 눈을 뜨더니 고개만 간단히 까딱였다. 얼굴이 초췌한 게, 생각보다 내상이 깊은 듯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했다.
“하, 하하……. 정말로 내가 살아났단 말이지.”
순수하게 기뻐한 것도 잠시, 모용준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뒤늦게 자괴감, 죄책감, 수치심 따위의 감정들이 밀려든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그래도 은인에게 인사가 우선이었다. 모용준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백수룡에게 포권을 취했다.
“제가 아직 이렇게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총사범님.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다면서 표정은 왜 그렇게 죽상이야?”
백수룡이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진원진기까지 끌어올린 독마와 생사결을 벌였고, 그 직후 주화입마에 빠진 모용준의 기혈을 바로잡느라 심력을 다 쏟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자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모용준과의 이야기는 일단락지어야 했다.
“……살아난 건 기쁘지만, 솔직히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까요.”
“어째서?”
“저는 무림맹을 배신했습니다. 이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
“……맞아. 이 녀석은 죗값을 치러야 해.”
그 옆에서 류설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둘 다 꽉 막힌 부분이 있었다.
백수룡과 남궁수의 입만 단속하면 아무도 모르게 묻고 지나갈 수 있을 텐데도, 둘 다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조용히 덮자고 말하는 건…… 오지랖이겠지.’
류설과 모용준의 무인으로서 자존심을 무시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백수룡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려고?”
“전부 자백한 후에, 정당한 죗값을 치를 생각입니다.”
모용준은 단전이 파괴되고 사지 근맥이 잘리는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예상했다.
아무리 주화입마에 걸렸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독마와 함께 개방 방주를 죽이는 일을 공모했으니까.
‘방주께서 돌아가셨다면,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지도……’
구파일방의 수장 중 한 명을 죽이려고 한 죄는 그만큼 컸다. 무림맹이 그를 용서한다고 해도, 개방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용준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방주님에겐 내가 선처를 부탁해 볼게.”
“……예?”
“내가 며칠 전에 그 양반도 치료해 줬거든. 설마 생명의 은인이 하는 부탁을 거절하겠어?”
모용준이 혈교에 협박을 당했고, 주화입마까지 걸렸다고 적당히 양념을 쳐서 사연만 잘 만들면 그럭저럭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백수룡은 남을 설득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모용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내가 만든 무공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그리고 검존 사부와 같은 핏줄이기도 하니까.
백수룡은 그렇게 말하는 대신, 웃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옛 제자 녀석 중 하나가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까.”
세 사람 모두 많이 다치고 지쳤다.
백수룡의 체력도 거의 한계였다. 내상은 심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한 상황이고, 외상도 적지 않았다. 무복은 완전히 넝마로 변해, 차라리 벗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따로 묻고 싶은 얘기도 있는데, 일단은 피곤하니 돌아가자.”
“예.”
“그래.”
세 사람은 함께 야산을 내려갔다.
어느덧 칠흑 같은 밤을 지나, 어스름한 새벽이 찾아왔다.
류설이 백수룡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후배, 너 혹시 생사신의의 숨겨 둔 제자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느새 호칭이 다시 후배로 돌아왔다. 반면 백수룡은 한 번 놓은 말을 다시 높이지 않았다. 류설도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잖아. 사람 살리는 게 특기도 아니고, 독에 당한 개방 방주에, 주화입마에 빠진 이 자식까지 구해 줬잖아. 게다가 독마? 그 자식이 쓰는 독도 안 통한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해 봐.”
“그건…….”
생각해 보니 그런 오해를 받을 만도 했다.
실제로는 생사신의의 제자는커녕, 얼굴도 구경 못 해 봤지만 말이다.
‘독, 주화입마. 따지고 보면 다 혈교랑 관련된 것들이라서 쉽게 해결한 거지.’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기에, 백수룡은 대충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무언가를 까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갑자기 백수룡이 우뚝 멈춰서며 중얼거렸다.
“……맞다. 남궁수.”
“빨리도 기억해 내는군.”
수풀이 흔들리며 남궁수가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상당히 지치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른 세 사람보다는 상태가 훨씬 나아 보였다.
“독에 당한 건 괜찮냐?”
“……해독했다. 네 걱정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남궁수는 백수룡의 몰골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모습이었다.
백수룡이 졸린 눈으로 웃으며 남궁수에게 다가갔다.
“마침 잘 왔다. 너 체력 좀 남았지?”
“……왜 그러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내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말이야. 무림맹으로 돌아가면 바로 곯아떨어질 것 같거든?”
“본론만 말해라.”
백수룡은 히죽 웃으며 부탁을 했고, 듣고 있던 남궁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다녀오지.”
남궁수가 어딘가로 향한 후, 세 사람이 된 일행은 다시 무림맹으로 향했다.
그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무림맹으로 귀환했다.
당연히 무림맹은 발칵 뒤집어졌다.
* * *
그날 아침.
콰앙!
부술 기세로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의천단주가 눈을 부라리며 백수룡을 찾았다.
“청룡신협!”
이내 그는 이불에 파묻히다시피 쓰러져 자고 있는 백수룡을 발견했다.
“네 이놈!”
“……뭐야?”
죽은 듯 잠들어 있던 백수룡이 고개만 돌려 의천단주를 바라봤다.
눈은 아직 반밖에 안 떴고, 옷매무새는 흐트러져 있었다.
“지난밤에 보고도 없이 맹을 이탈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뭐?”
“오늘 새벽, 무한 외곽의 야산에서 거센 기파의 충돌이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네가 무단외출한 시간과 겹치더군. 이래도 모른 척할 텐가?”
“……어쩌라고?”
“네놈이 새벽에 맹으로 들어왔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번 건까지 모두 징벌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변명할 말이 있나?”
확인해 볼 것도 없었다.
의천단주의 예리한 시선은 백수룡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곧바로 눈치챘다.
‘저 정도 고수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대체 누가?’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자세한 것은 데려가서 취조해 보면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백수룡은 이불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이불 속에서 꿈지럭거리며 말했다.
“……머리 울리니까 조용히 좀 말하지? 나갔다 돌아와서 두 시진도 못 쉬었다고.”
“하! 결국 이실직고하는군.”
의천단주는 백수룡의 수갑이 풀려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멋대로 수갑까지 풀었군. 멸사단주가 열쇠를 줬나? 그렇다면 이 일에 그녀도 책임이 있단 말인데.”
“그게, 아무래도 싸울 때 좀 불편해서.”
“네놈……! 좀 진지할 수 없나!”
의천단주는 청룡신협 백수룡이 거슬렸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가 강력한 차기 맹주 후보이자, 자신의 경쟁자이기 때문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명성 좀 날렸다고 맹주 자리를 넘보다니.’
청룡학관과 무림맹이 동맹으로 협상할 때, 백수룡이 맹주에게 부맹주 자리를 요구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천단주는 그때부터 백수룡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백수룡이 무림맹에 도착한 날부터 계속 견제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오늘부로 너는 총사범직에서 해임될 터.’
의천단주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그는 이번 징벌위원회에 모든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했다.
청룡신협은 무림맹 정문을 부순 것도 모자라, 지난밤에는 무림맹을 무단으로 이탈했다.
간부들의 여론을 모은다면, 아무리 맹주라 해도 더 이상 청룡신협을 감싸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라. 오늘이 징벌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았을 테지.”
“이렇게 아침 일찍?”
“네놈이 망둥이처럼 날뛰었기 때문이지. 다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제대로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의천단주는 아주 기세등등했다.
“감시하고 있어야 할 뇌룡신검은 대체 어디에 있지?”
“누구 좀 만나러 갔어.”
“남궁세가에도 정식으로 항의해야겠군. 가문의 명예를 걸더니……. 하긴, 남궁세가도 명예가 바닥에 떨어진 지 좀 되었지.”
“나중에 감당 못 할 말은 하지 마라.”
“……!!”
은은한 살기에 의천단주가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백수룡이 침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흐아암. 시끄러워 죽겠네. 가면 되잖아. 어디로 가면 돼?”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다. 따라와라.”
밖으로 나온 그들은 무림맹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본래 징벌위원회는 집법당에서 열지만, 의천단주는 일부러 판을 키우기 위해 대연무장에 무대를 마련했다.
“자리에 앉아 주시오! 곧 징벌위원회를 시작하겠소!”
의천단주의 닦달에 하루 일찍 도착한 신검단주, 정의단주는 이미 자리해 있었다.
각각 허리춤에 보검을 맨 노인과 등에 창을 맨 중년인이었다.
“저 아이가 청룡신협인가?”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이진 않는군요.”
“간밤에도 밖에서 싸움을 하고 왔다고 들었네만……. 허허. 청춘이야.”
“의천단주가 아주 이를 갈고 있는 모양입니다.”
“진광이 총사범을 해임하자고 난리던데.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그만한 죄가 있다면 그리해야겠지요.”
다른 한쪽에는 무림맹주 대리인 류설이 보였다.
류설도 간밤에 입은 내상과 피로 탓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모용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 외에도 무림맹의 간부들 이십여 명이 착석했고, 수백이 넘는 일반 무사들까지 웅성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무대는 완벽했다.
의천단주는 청룡신협을 공개된 처형대 위에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옆에 섰다.
“무림맹 총사범 백수룡에 대한 징벌위원회를 시작하겠소!”
의천단주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징벌위원회의 시작을 알렸다.
본래 무림맹주 대리인 류설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녀는 어째선지 의천단주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징벌위원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소.”
명목상의 토론이 있겠지만, 총사범의 해임 쪽으로 의견을 모으기로 미리 대부분의 간부들을 설득해 두었다.
“오늘 나눠야 할 이야기는 청룡신협이 정문을 부순 일에 대한 것만이 아니오. 무림맹은 청룡신협에게 신원보증인이라는 특혜를 주었소. 그러나 그는 지난밤에 무림맹을 무단이탈한 것도 모자라…….”
무대의 중앙에 선 의천단주의 장황한 비난과 고발이 이어질 때였다.
바람결에 심상치 않은 냄새가 함께 풍겨오기 시작했다.
“흐읍!”
“이, 이게 무슨 냄새야?”
고약한 냄새에 다들 저도 모르게 코를 움켜쥐고, 냄새가 흘러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오나 했네.”
백수룡도 코를 틀어막으며 피식 웃었다.
잠시 후, 후개의 부축을 받으며 개방 방주가 여섯 장로들, 그리고 수십 명의 거지들과 함께 나타났다.
깜짝 놀란 의천단주가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방주를 맞이했다.
“용두방주(龍頭幇主)께서 연통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개방의 방주를 달리 용두방주라고도 불렀다. 개방을 용에 비유한, 최상의 존칭이었다.
방주가 초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은인을 뵈러 왔네.”
“예? 은인이라니…….”
“독에 중독당해 죽어가던 나를 살리고, 간악한 혈교의 장로를 처단한 은인께서 이곳에 있다는 말에 직접 인사를 하러 왔네.”
의천단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방주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독? 혈교? 은인?
“지, 지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마침 저기 계시는군.”
방주는 의천단주를 스윽 지나쳐, 백수룡에게 포권을 취했다.
“청룡신협께 구명의 은혜를 입었소. 개방은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개방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용두방주를 따라, 후개와 개방의 장로들이 동시에 포권을 취했다.
“……!!”
“……!!”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가운데, 백수룡이 앞으로 나서며 진중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을 취했다.
“과분한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무림의 후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거지들의 뒤편에 서 있는 남궁수를 보고 씩 웃었다.
저 깔끔 떠는 남궁수가 거지들 사이에서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은인이라니……. 무슨……. 이런 일이…….”
모두가 충격으로 멍해져 있는 가운데, 의천단주가 홀로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