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34
333화. 초상화
혈교가 남궁세가를 공격했다는 소식의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소식이 무림을 강타했다.
‘청룡신협이 혈교와 내통하고 있던 무림맹의 배신자를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소식인데, 연이은 놀라운 소식들이 개방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청룡신협이 독에 중독돼 생사를 오가던 용두방주를 구했다!’
‘무시무시한 독공을 사용하는 혈교의 장로가 청룡신협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과거 절세검객이었던 검존의 무공을 청룡신협이 계승했다!’
무림맹에서 있었던 일들이 들불처럼 전 강호로 퍼져 나갔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 같아서 처음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소문에는 개방의 확실한 증언이 있었다.
“개방에서 나온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오. 개방은 청룡신협을 명예 방도로 임명하였소. 그는 우리의 형제나 다름없으니, 앞으로 청룡신협을 핍박하는 자는 개방을 핍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오.”
용두방주의 화끈한 선언.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온 무림의 거지들이 거리로 구걸을 나갈 때마다 새로 생긴 형제를 자랑했다.
“청룡신협은 우리의 형제이자 방도요!”
“거지들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는 유일한 사내란 말이지!”
“우리하고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니까?”
개방도들이 이토록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니, 사람들도 더 이상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 거지들은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한 적이 없었다.
“미친 거지 놈들이…….”
백수룡은 치솟는 살심을 간신히 누르며 거리를 걸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신과 관련된 소문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어지간히 뻔뻔한 백수룡도 수치심에 손이 떨릴 정도였다.
‘미리 인피면구를 쓰고 오길 천만다행이지.’
백수룡은 섬서의 중심인 서안에 도착했다.
이곳은 대대로 화산파와 종남파의 영역.
그런데 요즘엔 어디를 가나 무림맹과 청룡신협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무림맹이 이번에 큰일을 겪었다면서요?”
“청룡신협이 또 한 건 했다는군. 혈교의 장로를 또…….”
“허어. 이토록 과격한 행보를 보이는 고수가 지난 수십 년간 있었나 싶습니다.”
“날이 갈수록 명성이 높아지니, 이제는 십존이란 위치도 과하지 않아 보입니다.”
객잔으로 들어서자마자 온갖 이야기가 쏟아졌다.
백수룡은 기막을 고막에 두르며, 빠르게 객잔 주인에게 다가갔다.
“방 하나 주시오.”
곧바로 방으로 올라간 백수룡은 단정한 백의로 갈아입었다. 서생들이 흔히 입는 옷에 한 손에는 쥘부채를 쥐었다.
얼굴은 이미 인피면구로 평범하게 바꾼 상태였다. 동경을 바라보니 허약해 보이는 서생이 서 있었다.
‘이 정도면 어딜 가도 튀진 않겠지.’
허리춤의 창룡검은 그대로 두었다. 검은 멋으로도 들고 다니는 흔한 무기이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다.
객잔을 나선 백수룡은 곧바로 개방 서안 분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몇 번이나 거지들에게 붙들려 “청룡신협은 거지들의 형제…….”라는 말을 들었다.
‘망할 거지 놈들. 아니,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남궁수 때문이지.’
용두방주에게 괜한 말을 해서 이 사달을 낸 장본인. 백수룡은 언젠가 꼭 갚아 주리라 다짐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서안 분타는 굴다리 밑에 있었다. 거적에 누워 코를 후비던 거지 하나가 백수룡을 돌아봤다.
“뉘슈? 여긴 댁 같은 서생이 올 만한 곳이 아닌데?”
“이걸 분타주에게 전해 주십시오.”
백수룡은 여러 말을 하는 대신 품에서 서찰을 꺼내 거지에게 건넸다.
은은한 고린내를 풍기는 서찰은 개방의 분타주급 이상만 사용하는 특별한 향이 묻어 있었다. 무림맹을 떠나기 전에 방주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잠시 후.
“이건……!”
서찰의 내용과 필적을 확인한 분타주가 움막에서 한달음에 뛰쳐나왔다.
최근 무림을 들썩이는 소문의 주인공이 눈앞에 있었다. 분타주가 감격한 표정으로 그 별호를 부르려 했다.
“청…… 으읍!”
백수룡은 손에 든 쥘부채로 분타주의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그를 움막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걸로 제 신분은 증명되었을 테니, 나머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읍, 으읍!”
백수룡이 은근히 기세를 일으키며 묻자, 분타주가 고개를 위아래로 열심히 끄덕였다. 다행히 눈치가 없는 자는 아니었다. 백수룡은 비로소 부채를 뗐다.
“……이,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분타주의 움막으로 들어간 백수룡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밥알이 떠 있는 숭늉이면, 개방에선 용정차나 다름없었다.
“개방의 형제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오신다는 소식은 방주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아, 예…….”
쓸데없이 비장한 말투조차 백수룡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일만 마치고 최대한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을 마음뿐이었다.
“제가 부탁드린 것은?”
“여기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분타주가 움막 한편에 말아 두었던 지도를 내밀었다.
지도에는 서안에 있는 모든 고서점의 위치가 표시돼 있었다. 백수룡은 그것을 빠르게 훑으며 감탄했다.
‘고작 며칠이었을 텐데.’
무림맹을 떠난 백수룡은 곧장 경공을 펼쳐 섬서로 향했다.
아무리 개방의 전서구가 빠르다고 해도, 서안 분타주가 방주의 연락을 받은 것은 하루 이틀 전일 것이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백수룡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 놓았으니, 과연 천하제일의 정보 조직다웠다.
“고서점에서 찾는 서적이 있으시다면서요? 제목까지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찾아드릴 수도 있는데…….”
무림맹을 떠나기 전, 백수룡은 방주에게 서안의 고서점들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찾아야 할 서적이 있다는 이유였다.
‘빙궁의 신물인 빙백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백수룡은 지도를 품에 넣으며 가볍게 웃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책은 제가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그러자 무슨 책인지 알겠다는 듯, 분타주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짓궂게 웃었다.
“흐흐. 사람마다 은밀한 취미가 하나쯤은 있는 법입죠. 취향에 맞는 걸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제 입은 무거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분타주는 백수룡이 고서점에서 춘화라도 찾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콱 그냥…….’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백수룡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신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않고요? 마침 밥때인데…….”
그러면서 구석에 있는 밥그릇을 가져오는데, 거기에는 식은 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찬들이 뒤섞여 있었다.
백수룡은 그 순수한 호의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남궁수가 옆에 있었으면 못 참고 한 대 쳤을 것이다.
“……먹고 왔습니다.”
“이런, 아쉬워라…….”
백수룡은 간신히 분타주의 제안을 뿌리치고 움막을 나섰다.
그의 뒤에서 분타주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외쳤다.
“다음에 또 들러 주십시오! 제대로 한 끼 대접하겠…… 허어! 겁나게 빠르구만.”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백수룡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백수룡이 서안에 온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빙월신녀가 정인에게 주었다는 빙백환 하나를 찾는 것.
두 번째는 현무학관에 들러 현천신녀를 만나는 것.
‘일단 빙백환의 남은 한쪽을 찾는 게 우선이야.’
빙백환을 찾아야 빙궁을 찾아갈 명분도 생긴다.
현무학관으로 가서 현천신녀를 만나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백수룡은 개방에서 받아 온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고서점부터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분명 고서점에서 만났다고 했지.”
-그 사람이 일하던 고서점에서 처음 만났지. 귀찮은 날파리들 때문에 면사에 흑립까지 쓰고 나간 날이었는데, 허약해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호롱불을 비춰 줬어.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으면 눈이 나빠진다면서 말이야.
백수룡은 정인에 대해 말하던 빙월신녀의 표정을 떠올렸다. 드물게 짓던 미소에 뇌옥 안이 환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던.
“……아직 살아 있다면 좋겠는데.”
오십 년, 아니 은사부가 혈교에 납치된 세월까지 합치면 육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만을 기다리기엔, 길어도 너무 긴 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어. 아니, 사내치고는 허약한 편이었지. 종일 서책만 읽는……. 그런 남자였어.
진작 다른 여인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았을 수도 있다.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탈출하면 혼례부터 올리게. 내 아들과 함께 참석할 터이니.
-이 오라비도 빠질 수 없지!
-……나도 참석하지.
백수룡은 오래전 사부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다 같이 은사부의 혼례에 참석하기로 했었는데.”
그때는 이런 이야기라도 해야 뇌옥에서 버틸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 지옥에서 탈출해,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필요했으니까.
-이곳을 탈출하면, 그 사람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 거야.
빙월신녀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도 백수룡은 전해 주고 싶었다.
은사부의 정인을 만난다면, ‘그녀가 끝까지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란 그 말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다.
어느새 지도에 표시된 첫 번째 고서점에 도착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백수룡은 평범한 외모의 서생으로 변장한 상태였다. 그는 고서점의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문율이라는 분이 이곳에서 일하시지 않았습니까?”
문율.
빙월신녀의 정인에 대한 단서는 한때 고서점에서 일했다는 것과 이름뿐이었다.
“문율? 모르는 사람 같은데…….”
나이가 지긋한 주인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백수룡이 다시 한번 물었다.
“비슷한 이름이라도 들어 보신 적 없습니까?”
“글쎄요. 내가 여기서 이십 년째 장사하고 있는데,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수룡은 미련 없이 고서점을 나왔다. 쉽게 찾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서안은 큰 도시다.
종일 발품을 팔아도 지도에 표시된 곳을 다 돌아보는 건 쉽지 않았다.
휘익!
백수룡은 주변에 사람들이 없을 때는 경공을 펼쳤다. 지도에 표시된 고서점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방문했다.
그러나 다른 곳도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문율? 처음 듣는 이름이오.”
“내 서안에 삼십 년째 살고 있는데, 고서점 주인 중에 그런 이름은 없소.”
“쓸데없는 것 물어보지 말고, 안 살 거면 돌아가슈!”
그렇게 반나절 넘게 서안의 고서점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오늘은 여기가 마지막이겠군.’
백수룡은 기대를 접고, 마지막 고서점으로 들어갔다. 서점 내부에는 호롱불이 켜져 있었다.
늦은 시간에 온 손님을 본 서점 주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가 꽤 지긋한 노인이었다.
“미안합니다만, 이제 곧 문을 닫을 시간이라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잠깐 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백수룡은 말을 하다 말고, 고서점 주인의 뒤편에 있는 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은사부?”
빙월신녀 은예린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백수룡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