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57
457화. 흑사련주 (2)
추혼궁귀가 쏘아 낸 화살이 수백 장이 넘는 거리를 지우며 날아갔다.
쐐애애액-!
화살이 스쳐 지나간 나무들이 태풍을 만난 것처럼 휘청였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거센 비명을 질렀다.
돌풍을 동반한 벼락이 이런 모습일까.
“……!”
백수룡은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고 날아온 화살과 마주했다. 화살이 아니라 투석기로 장창을 쏘아 보냈어도 이보다 맹렬하지는 않을 듯했다.
추혼궁귀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예상은 미리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흑사련주의 말에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으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 순간 추혼궁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화살을 쏘았다.
물론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쩌엉!
백수룡은 창룡신검으로 화살을 쳐 내며 손목을 빙그르르 돌렸다. 충돌의 순간 받은 충격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백수룡은 추혼궁귀가 쏘아 보낸 두 번째 화살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
소리도, 형체도 없었다.
밤하늘의 별빛에 섞여 날아온 화살은 첫 번째 화살보다는 느리고 조용했지만, 훨씬 더 은밀하고 치명적이었다.
“궁귀! 멈춰라!”
뒤늦게 흑사련주가 사자후를 터트리며 도를 휘둘렀다. 거세게 불어닥친 도풍이 두 번째 화살의 궤적을 살짝이나마 틀어 주었다.
그와 동시에, 백수룡도 어깨를 옆으로 틀었다.
촤악!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흑사련주와의 싸움으로 엉망이 되었던 무복이 완전히 찢어지고, 그 안에 벌겋게 변한 피부가 드러났다. 쓰라린 통증이 뒤따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깨가 뚫릴 뻔했다.’
백수룡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추혼궁귀의 세 번째 화살을 경계했다.
무림의 호사가들 중에는 ‘천하제일의 살수는 천살이 아니라 추혼궁귀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활을 다루는 절세고수가 수백 장 밖에서 저격하면 누군들 당해 낼 수 있겠느냐는 의미의 농담인데, 백수룡에게는 그것이 더 이상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세 번째 화살은 쏘아지지 않았다.
“멈추라고? 어째서?”
대신 백수룡의 뒤편에 추혼궁귀가 사뿐히 내려섰다. 그 목소리는 더없이 싸늘했다.
수백 장이 넘는 거리를 순식간에 당도했다는 말이었다. 두 번째 화살을 쏘자마자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경악할 속도의 경신법이었다.
‘처음부터 함정이었나?’
위기 속에서 백수룡의 머릿속 사고가 미친 듯이 가속했다.
무림십존이자 삼흉이라 불리는 두 절세고수에게 앞뒤로 포위당했다.
그 누구라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방금 전 흑사련주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상황을 추측했다.
‘날 자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지. 수라혈천도를 겪어 본 적이 있고…….’
다시 생각해 보면 흑사련주의 도법이 뛰어난 것과 별개로, 그는 수라혈천도의 초식에 대처하는 것이 능숙했다.
처음에는 흑사련주가 천하에 존재하는 온갖 도법을 견식해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겪어 본 거야. 수라혈천도를……. 삼호를.’
옛 제자를 떠올리자 백수룡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추혼궁귀가 시위에 세 번째 화살을 걸어 백수룡을 겨눴다.
“저렇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처럼 기파가 요동치는데? 역시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게 낫겠어.”
“흐음. 묘하군. 저만한 고수가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다니…….”
추혼궁귀가 싸늘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응시하고, 흑사련주는 의아한 기색으로 그를 살폈다.
“…….”
그들이 백수룡을 혈교에서 보낸 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오해를 풀기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역천신공을 쓰는 수밖에.’
백수룡의 눈동자가 은은하게 붉은색으로 물들 때였다.
“……맹룡휘는 혈교가 아니다. 내가 장담하지.”
흑사련주가 고민 끝에 도를 내리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적월을 도집에 넣은 그는 뒷짐까지 졌으나, 추혼궁귀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활을 내리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해?”
“직접 칼을 맞댔다.”
그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는 듯, 흑사련주는 조용히 백수룡을 바라봤다.
백수룡도 천천히 검을 내렸다. 그는 추혼궁귀가 어떤 부분에서 오해했는지 깨닫고 그녀에게 말했다.
“련주를 공격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소. 그가 한 말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다가갔을 뿐.”
추혼궁귀가 코웃음을 쳤다.
“절세고수가 고작 심적인 동요 때문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고? 그런데도 혈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
백수룡은 해명하는 대신 침묵했다. 설명할 수 없다면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궁귀. 활을 내려라.”
흑사련주가 나직한 목소리로 추혼궁귀를 타일렀다.
그러나 추혼궁귀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당신이라고 해도 내게 명령할 권리는 없어.”
“명령이 아니다. 친우로서의 부탁이지. 잠시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물러나 다오.”
“…….”
“내가 고개라도 숙이길 원하나?”
추혼궁귀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마음대로 해. 이번에는 정말 뒈져도 몰라.”
흑사련주의 고집에 결국 추혼궁귀가 활을 내렸다. 훌쩍 위로 뛰어오른 그녀가 나뭇가지 위에서 말했다.
“……또다시 내 잠을 방해하면, 둘 다 머리통에 구멍을 내 버리겠어.”
섬뜩한 협박을 남긴 추혼궁귀는 신법을 펼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기척이 멀어졌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흑사련주가 고개를 돌려 백수룡에게 말했다.
“미안하군. 내 오랜 친우가 조금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배려해 줘서 고맙소. 여러 사람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백수룡은 진심을 담아 포권을 취했다. 그 모습에 흑사련주가 슬쩍 웃었다.
“잠깐 걷겠나?”
“그러지.”
두 사내는 함께 산길을 걸었다. 정해진 방향도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윙윙거리는 벌레 소리, 이따금씩 나뭇가지를 밟아 부러지는 소리.
형산의 밤은 많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흑사련주가 침묵 끝에 말문을 열기 전까지.
“나는 천하제일도가 아니다.”
겸손이나 허례허식 따위가 아니었다.
흑사련주는 그런 것들을 따지는 무인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사내였다.
그저 담담하고 솔직한 고백이었다.
“십여 년 전. 나는 수많은 무인 앞에서 팽가주를 꺾고 천하제일도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흑사련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 누가 나를 가로막더군.”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흑사련주가 자신의 감정을 일부러 억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름도, 별호도 들어 보지 못한 자였다. 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 어쩌면 나보다 뛰어난 도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제자리에서 멈춰 선 흑사련주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자는 스스로를 사도(師徒)라고 하더군.”
“…….”
예상했던 말이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수룡은 갑자기 숨을 쉬기가 불편해진 기분이었다.
십여 년 전.
혈교의 사도가 흑사련주를 찾아와 생사결을 청했다.
흑사련주는 상대가 걸어온 싸움을 거절하지 않았고, 어느 이름 모를 야산에서 절세의 도객들이 생사결을 치렀다.
“누가 이겼을 것 같나?”
“……사도.”
백수룡은 솔직하게 대답했고, 흑사련주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패배였다. 백 초식을 겨루기 전에 파탄이 드러났고, 이백 초식이 넘기 전에 완전히 압도당했지. 그리고 삼백 초식이 되기 전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궁귀가 아니었다면.”
흑사련주는 추혼궁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녀가 시간을 벌어 준 틈에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체면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꽁무니가 빠져라 줄행랑을 쳤지. 평생 그렇게 빨리 뛰어 본 적은 처음이었어.”
흑사련주는 우스운 듯 껄껄 웃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따라서 웃지 못했다.
“오늘에서야 그 도법의 이름을 알게 되었군. 수라혈천도(修羅血天刀). 실로 어울리는 이름이야. 나를 십 년이나 폐관동에 처박히게 한 사도의 도법…….”
스스스슷.
절세의 도객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형의 기운이 바닥의 흙을 사방으로 할퀴었다. 흑사련주는 금세 기운을 거둬들이며 물었다.
“자, 이제 너도 얘기해 봐라. 너는 혈교도인가?”
“아니오.”
백수룡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한 듯, 흑사련주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째서 사도와 같은 도법을 쓰는 거지?”
흑사련주와 추혼궁귀가 맹룡휘를 혈교라고 추측했던 이유.
십 년 전 흑사련주에게 참혹한 패배를 안겨 주었던 사도의 도법을 그가 펼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중을 꿰뚫을 듯한 흑사련주의 깊은 눈빛에, 백수룡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수라혈천도는 혈교의 무공이 아니오. 원래는 헌원세가에서 갈라져 나온 무공이지.”
“헌원세가?”
흑사련주의 눈이 반짝였다.
한때는 하북팽가와 천하제일도문을 놓고 다투던 명문이었으나, 광마 혈사라는 끔찍한 비극으로 쇠락해 버린 가문의 이름이 아니던가.
그 순간, 흑사련주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혹시……. 광마 헌원후가 혈교의 사도인가?”
“헛소리!”
백수룡이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그 가설을 강하게 부정했다.
“혈교는 광마의 원수였소. 또한 광마 혈사라 알려진 일은 혈교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오. 범인은 광마가 아니라…….”
“사도였겠군.”
“…….”
백수룡은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혈교의 사도이자, 자신의 옛 제자가 헌원세가를 찾아가 수많은 생명을 해친 범인이라는 것을.
그의 표정에 짙게 어린 고통을 본 흑사련주가 작게 혀를 찼다.
“이래저래 사연이 많은 무공이로군.”
“……사도의 도법은 어땠소?”
흑사련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소름 끼치도록 강했다. 이름 그대로 피에 젖은 수라가 칼에 들러붙은 듯했지.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한 무공. 그런 가공할 경지에 이르고도…… 백정처럼 칼을 휘둘렀다. 과연 그자에게도 인간의 마음이 있을까 궁금할 지경이었지.”
“…….”
한 마디 한 마디가 백수룡의 마음에 비수처럼 박혔다.
사도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가 힘겹게 물었다.
“다시 사도를 만나면 어쩔 거요?”
“죽든가, 죽이든가. 둘 중 하나겠지.”
“…….”
두 번은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다, 라고 흑사련주는 덤덤히 중얼거렸다.
“날이 밝을 때까지 더 겨뤄 보자고 하려 했는데, 얼굴을 보니 그럴 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군.”
“……어차피 칼도 없소. 당신이 부숴 먹어서.”
백수룡의 대답에 흑사련주는 피식 웃었다.
“혹시 나중에 흑사련에 올 일이 있다면, 괜찮은 칼을 하나 선물하도록 하지.”
“칼을?”
“나 때문에 칼을 잃지 않았나. 다행히 내겐 좋은 칼이 많거든. 물론 이놈만 한 녀석은 없지만.”
흑사련주가 손가락으로 허리춤을 툭 치자, 그의 신병인 적월이 우웅- 하고 울었다.
백수룡은 지친 표정으로 힘없이 웃었다.
“거절하진 않겠소. 언젠가 꼭 받으러 가지.”
“그럼 내일 회합에서 보도록 하지.”
궁금증을 대부분 해소한 흑사련주는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오히려 백수룡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정체가 궁금하지 않소?”
“허리춤의 검을 보니 대충 알 것 같군.”
흑사련주는 턱짓으로 창룡신검을 가리켰다.
그리고 가볍게 발을 구르자,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만이 잔향처럼 남았다.
“다음에 또 겨루지. 청룡신협.”
“…….”
자리에 혼자 남은 백수룡은 심경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삼호.’
옛 제자들 중에서도 유독 살기가 짙었던 녀석.
수라혈천도의 영향이었다.
광마 사부는 무공에 잡아먹히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으나, 그 시절 이십칠호는 제자에게 그런 부작용을 알려 주지 않았다.
“헌원세가를 몰살한 범인이 정말 너라면…….”
자연스럽게 수라혈천도를 계승한 또 다른 제자에게 생각이 미쳤다.
“……원강이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군.”
백수룡은 청룡학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씁쓸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