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성전의 믈라카 (4)
선동자를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입을 터는 것이다.
“내가 진짜 신의 대리자다!”
광신도를 상대할 때는 무조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강하게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설득력이 확 떨어진다.
“생각해보아라!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런데 왜 자칭 신의 대리자라는 작자들은 헌금을 원하고, 여자나 제물을 내놓으라 하는가!”
적당히 가져가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 거래라는 생각이라도 들지.
멘탈 케어 서비스 같은 거.
하지만 가정을 파탄 낼 정도로 뜯어가는 자칭 신의 대리자, 혹은 인간의 육체를 빌려 태어난 신이라는 작자가 너무 많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곽란이나 학질 환자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대들은 기도로 그들이 치유되는 걸 보았는가?”
중세에 유럽에서 엄청난 권세를 자랑하던 기독교가 세력이 꺾인 이유.
십자군 전쟁 실패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흑사병이다.
따라서 이 점을 이용해서 설득할 수 있다.
“이 역병이 신의 징벌인가? 그러면 두 살 난 아이가 역병으로 죽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실제로 많은 지식인들이 흑사병으로 어린아이까지 죽는 걸 보며 많은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 결과는.
신앙의 붕괴다.
“부모의 죄를 아이가 받았다고? 신이라는 존재는 부모의 죄를 아이에게 뒤집어씌울 정도로 가혹한 존재인가?”
인간의 논리로 설득을 하니, ‘그런 가혹한 신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으니까.
“성직자가 죽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부패한 성직자였다고? 그렇다면 부패한 성직자가 그렇게 많았다는 뜻인가?”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왜 바로 아래 종복인 성직자의 부패는 눈감아 주는가.
“나를 봐라. 내가 한 일을 기억해라. 나는 처음 보는 병을 치료했다. 심지어 내 재산을 아낌없이 써서 너희를 구했다.”
원래라면 열 명 중 일고여덟 명이 죽는 가혹한 병.
사망률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눈에 보일 정도의 성과다.
“나는 너희에게 헌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신의 대리자가 왜 재물이 필요하겠는가?”
오히려 나는 돈을 나눠주었다.
세금으로 낸 돈 이외에도 사회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빈민을 구제했다.
솔직히 명나라나 조선의 사대부를 설득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행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토록 민심을 최우선으로 했던 이유.
착해서가 아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곧 세상이고.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결실을 볼 때다.
“나는 너희가 부유하게 살게 돕고, 너희를 병마의 고통과 굶주림에서 해방하며, 돈을 벌 기회를 주기 위해 아득히 머나먼 곳에서 왔다!”
머나먼 미래에서 왔지.
“나를 따르는 이들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할 기회를 얻는다. 실제로 그렇게 된 이를 직접 보지 않았는가!”
석피는 천민 출신.
무함마드는 몰락한 상인 출신.
이소군은 기녀 출신.
주요 간부들만 해도 이런데 다른 직위는 말할 것도 없다.
창해 주식 상단 전체가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갖 군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모두 이 시대 중위 평균보다는 잘산다.
“다시 말하지. 내가 진짜 신의 대리자다! 너희들부터가 나를 용왕이라 부르지 않은가!”
아직이다.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장점만으로는 부족한 듯했다.
머릿속에서 진리가 떠올랐다.
도덕적 훈계보다는 법적인 처벌이 더 확실하게 범죄율을 줄이고.
협력을 구하는 것보다 배신을 차단하는 것이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너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끝까지 싸울 생각이로구나. 네 자식과 후손들에게도 그런 싸움을 물려줄 거고?”
원 역사에서는 그렇다.
국소적으로는 승리한 종교가 있을지 몰라도, 지구 전체로 보면 완벽하게 승리한 종교는 없다.
“내 장담하지. 500년이 지나도 그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심지어 인도와 파키스탄은 총이 아니라 서로 핵무기를 겨누고 있을 정도니까.
“죄 없는 너희 후손에게 그런 증오를 물려줄 거라면, 차라리 내가 모든 죄악을 뒤집어쓰고 증오의 사슬을 전부 끊어버리겠다! 전원 사격 준비!”
총병들이 일제히 총구를 세웠다.
총 끝은 빛나고.
방아쇠는 심판을 내린다.
기꺼이 적에게 복수하고.
증오엔 증오로 되갚으니.
오, 신이시여.
나를 당신 곁에 두시고.
성인들 중에 세우소서.
“남의 피를 쏟게 하는 자, 자기 피도 쏟게 하리니. 그것이 진짜 신의 뜻이다.”
손가락 까딱이는 거로 사람이 죽는 걸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내 선행과 마지막 외침이 울림을 준 것일까.
그토록 무시하고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던 이들이 엎드렸다.
거짓말처럼.
약속한 듯이 동시에.
***
분노한 7만 군중.
믈라카의 1만 5천 군대.
명나라의 1만의 원정대.
온갖 외국 상인들.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혼탁한 도시.
지옥이 강림한 듯한 이 장소에 마치 지렁이 게임을 하듯, 사람이 보이는 대로 죄다 먹어 치우며 빠르게 세를 불려 나가는 무리가 있었다.
“모든 인류는 하늘의 도가 명한 바에 따라 존엄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타고 났다!”
세계 인권 선언.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기에 적당히 각 종교의 교리와 섞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 알라께서는 모든 이의 완전 평등을 말씀하셨으며, 이는 곧 세상의 완전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의 씨앗이다!”
한 종교만 섞으면 또 게거품 무는 인간이 있을까 봐 각 종교의 경전을 죄다 섞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권을 무시하는 썩어빠진 자들의 쓰레기 같은 만행이 이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나는 지장보살의 대리자로서 그대들을 구한다!”
지장보살님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분이라면 자신을 사칭한 것도 자비롭게 이해해주실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니까.
사람들이 죄를 덜 지어서 지옥에 덜 가게 되면, 그분의 일도 줄어들기도 할 테니.
“또한, 나는 모든 인간의 표현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힘쓰고,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 선업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을 이 자리에서 천명하노라!”
나의 의무를 말하고.
“그대들도 동참하라! 꼭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대가 배워왔던 미덕을 묵묵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진리, 브라만과 하나가 될 수 있느니!”
너의 책임을 말한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이어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기부여 영상에서 봤던 것 같은 어떤 구절들.
“너희가 안 되는 이유는 하나다! 안 변하니까. 저 더러운 것들에게 속아서 이용만 당하니까! 만들어진 증오 속에서만 사니까!”
시대적 한계가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누가 너희를 이용하는지, 누가 너흴 위하는지 정도는 깨달으라고.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너희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은 한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해라! 힘든 일도 있고 짜증 나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넌 극복할 수 있다! 넌 할 수 있다고!”
아이고. 확성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최대한 복식호흡으로 발성하는데도 목이 아프네.
오늘이 지나고 나면 한동안 목이 잠겨서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다.
그래도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군중심리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내 얼굴을 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따르던 사제를 버리고 내 쪽으로 붙었다.
……믈라카에는 상단의 지사를 크게 지어야겠네.
여차하면 사제들이 이들에게 보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질문이 있습니다!”
청년 하나가 내 앞길을 가로막으며 엎드렸다.
마침 목 아팠는데 잘됐다.
“무슨 일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지워버리는 자만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전 대통령이었던가?
“노력은 널 배신하지 않는다. 네가 노력을 배신할 뿐이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력은 어제의 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뿐이지,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이기려면 내가 생각하는 최선보다 아득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재능이라는 요소 때문에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장담하진 못하고.
그런데도.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날 따라라.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과 미래를 주마.”
역사가 증명했듯이 믈라카는 지금보다 훨씬 성장할 테니까.
성장하는 나라에서는 방향만 잘 잡고 노력하면 분명히 과거보다 훨씬 잘살 수 있다.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부자가 되고.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진짜다.
내 눈을 자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나와 가깝다면, 부자가 되고 건강해질 수 있다.
……행복해질지는 모르겠네.
행복은 마음 안에 있는 거니까.
“예! 용왕님을 따르겠습니다.”
내 맑은 눈빛을 보고 감명을 받았는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믈라카 시내를 계속 돌며 사람들을 모아 나갔다.
“네놈이 뭐라고 감히 신의 대리자를 사칭…….”
탕!
“내가 시간이 없어서.”
네가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 잘 모르겠다.
근데 왕에게 이놈, 저놈 하는 걸 보면 상식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놈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 놈을 상대해봐야 시간만 소비되고, 녀석의 선동질에 괜히 불안만 퍼질 염려가 있다.
“계속 가지.”
모든 사람이 나를 따르거나.
조용히 집 안에 들어가거나.
착해질 때까지.
***
한편, 이소군은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몰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귀비 마마. 더는 환자를 받기 어렵습니다. 병상이 부족합니다.”
본래는 아씨, 소저, 선녀, 성녀 등등 다양한 칭호로 불렸다.
강해인이 왕위에 오르고 약식이지만 그녀가 후궁으로 들어가기로 결정된 이후에는 마마라 불렀다.
“숙소 바깥에 천막을 치고 병상을 만드세요. 반드시 깨끗한 천으로 해야 합니다.”
“천도 부족합니다. 최대한 빨리 삶고 있으나, 날씨가 습해서 잘 마르지 않습니다.”
“천이 부족하면 창고에 있는 비단이라도 꺼내세요.”
“그건 교역품입니다만…….”
지금 들어오는 부상자들은 폭도에 맞아서 그렇게 된 이들.
당연히 피를 흘리고 있다.
피는 잘 지워지지 않으므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잔인한 말이지만…….
이 사람들의 목숨값보다 비단 가격이 더 비싸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괜찮아요. 전하께서도 이해해주실 것입니다.”
숫자에는 약하지만 이소군은 확신했다.
단순히 비단이 비싸다고 화내진 않을 거라고.
오히려 비단보다 값비싼 민심을 얻을 테니 더 좋아하실 거라고.
“빨리요!”
“예!”
평상시였다면 빨리 시장으로 가서 사 오거나, 왕궁에 지원이라도 요청했을 텐데.
워낙 험악한 상황인지라 상점이 문을 닫은 것은 물론, 왕궁으로 향하는 길이 안전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귀비 마마!”
“네?”
이소군은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환자들.
치료할 사람마저 부족해서 선원들의 힘마저 빌리고 있었다.
그들도 붕대 감는 정도야 알지만, 강해인이 그렇게 강조한 위생 때문이라도 계속 확인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만큼 온갖 변수에도 다 대처해서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이소군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가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진섭이라고 하면 아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요?”
“이진섭이라고 했습니다.”
잊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동명이인일까?
하지만 나보고 알 것이라 했는데?
정말 그 사람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을뿐더러, 왜 하필 지금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준비하고 가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호위를 준비해주세요.”
“예!”
만약을 대비해 호위로 남겨둔 선원이 있다.
그들은 선원 중 무예가 가장 강했고, 무장한 상태이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기에 치료를 돕지도 않았다.
이소군은 호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정말 있었다.
정난의 변 때 죽었다고 생각했던 혈육이.
심지어 혼자도 아니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흉악해 보이는 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팔렘방에 쳐들어왔던 해적왕의 군대와 비슷한 느낌이라 생각되었다.
“오랜만이구나.”
“…….”
“기녀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잘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이소군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그저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생전 처음 보는 남처럼 딱딱하게 대답했다.
“긴히 할 말이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줄 수 있겠느냐.”
“여기서 하시지요.”
“여기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저는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정 다른 장소가 필요하시다면 나중에 오시지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갑자기 멋대로 찾아와놓고 무례합니다.”
이진섭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서렸다가 이내 확 바뀌었다.
“용왕의 후궁이다. 정중히 모시어라.”
이진섭이 명령을 하자, 가장 덩치가 큰 두 명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소군은 손을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탕!
미리 장전해두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허신애가 호신용으로 쓰라고 만들어준 작은 수석총.
사정거리는 짧지만, 이 거리라면 빗나가지 않는다.
“용왕 전하께서는 이 무기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힘 약한 아녀자도 손가락 까딱하는 것만으로 단련된 장정을 죽일 수 있는 무기.
“평등의 상징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