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중용
“전하께서는 팔렘방의 여왕님도, 파사이 술탄국의 여왕님도 유혹하신 마성의 매력남이 아니십니까. 전 세계 미녀들을 모두 휘어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정도는 음담패설의 축에도 못 낀다.
괜찮다는 게 아니라, 뱃사람들이 평소에 하는 음담패설은 숙녀의 교육과 260만 광년 떨어져 있을 정도로 매우 찐득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들으면 안 될 사람이 들었다는 것.
“나, 나흐라시야 술타나께서 항구에는 어쩐 일로…….”
당황하니까 말도 더듬게 되네.
“용왕께서 출항을 앞두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미리 배웅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것이…….”
오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나만 살자고 선원을 버리는 꼴이 되어 신뢰의 문제가 생긴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잘못한 것으로 할 수밖에…….
내가 잘못한 게 있었던가?
“용왕께서 여러 아내를 들이는 거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율법에도 술탄은 네 명의 아내를 들일 수 있다고 하니까요.”
“…….”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관계를 맺는 건 간음입니다. 매우 심각한 죄악이지요. 그러니 결혼도 안 한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이슬람교나 힌두교의 명예살인은 현대에도 매우 유명하지만, 사실 이 부분을 피해갈 맹점은 있다.
바로 약식으로 혼인 신고를 하고, 관계를 맺은 다음 이혼 신고를 하면 된다는 것.
간음은 죄악이지만, 이혼은 죄악이 아니라는 허점을 이용한 방법이다.
그래서 내가 전생에 배 타고 중동에 갔을 때, 선배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랑 연애한 여자가 명예살인 당할 위기라면, 그녀의 손을 잡고 대사관으로 튀어라.
거기서 혼인 신고를 올리면 그녀를 살릴 수 있다.
그다음은 알아서 하고.
“용왕. 듣고 있습니까?”
“예? 아, 예. 물론입니다.”
“또한, 네 명의 처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알라께서 반신불수의 저주를 내릴 테니까요.”
어쩐지 어머니께 혼나는 기분이다.
“동등하게 대우하면 후계자는 어떻게 선정하나요?”
“첫 번째 아들을 낳은 후궁이 제1부인 됩니다.”
에 있던 시스템이다.
당시에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현실 고증이었구나.
근데 술탄이 억지로 우기면 원하는 사람을 대표 배우자로 지정할 수 있던데.
이것도 현실 고증인가?
“아무튼 용왕은 명성이 높으며, 만인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마시고 부디 모범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훈계가 끝난 뒤에야 나흐라시야 술타나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술타나인 만큼 호위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녀의 뒤로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쓴 채 함께하고 있었다.
“이분들은?”
“알라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 여성들입니다. 용왕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녀들에게 이슬람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었거든요.”
얼굴을 보니 나이든 여성들도 꽤 많았다.
하나같이 순박해 보이는 얼굴들.
또, 상당히 짙게 화장을 한 이들이 많았다.
자세히 보니 눈 주변이 퍼런 것 같기도…….
갑자기 전생에 봤던 인터넷 만화가 떠올랐다.
이슬람식 와이프 고집을 꺾는 법이라는 제목.
“혹시 이슬람의 가르침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된다는 말이 있습니까?”
내 말에 나흐라시야 술타나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다만, 하디스를 보면 무함마드께서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는 왜 때리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라고 문답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는 내용이다.
조선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다.
따라서 이슬람교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 600년이 지나도록 바로잡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바로 잡기는커녕 더욱 강화했지.
이는 단순히 문화적 악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깨어있다는 생각까지는 않았습니다만…….”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에 조금 더 발전된 시각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은 했다.
“저는 생각보다 편견이 강한 편이었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큰 충격을 받아서 술타나의 말씀을 곡해했다는 뜻입니다.”
여성의 존엄성과 고귀함이라는 단어에 발작 버튼이 눌렸던 것 같다.
그녀는 그저 누구나 사람답게 대우받는 걸 원했을 뿐인데 말이다.
혼자서 너무 앞서 나갔다고 할까.
대략 600년쯤.
“처음 만났을 때 하셨던 질문에 다시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누구나 존엄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슬림도, 힌두교도도.
남자도, 여자도.
귀족도, 평민도, 노예도.
“따라서 나흐라시야 술타나께서 하시려는 일을 누구보다 긍정합니다. 역사는 술타나를 가리켜 가장 고귀한 술탄이라 기록할 것입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용왕께서 긍정해주시니 이 길이 옳다고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술타나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배우셨다고요?”
“예. 제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당연하게 넘기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생각을 포기한 인간들이나 하는 말이건만.
나는 신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며 손을 놓아버린 부분도 있었다.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요구와 소명이 따르는 법인데, 너무 저를 중심으로 바라본 경향도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
상인에 대해서도.
여자에 대해서도.
특히 가족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뻐꾸기에 대한 공포가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 같다.
솔직히 에서 가정의 달 특선 컨텐츠인 ‘후계 파트’를 경험해보면 공포가 없을 수가 없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나 같은 인간일수록 더더욱.
백인과 백인 캐릭이 결혼했는데, 흑백혼혈 아이가 나올 때의 심정이란…….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결국 믿음과 신뢰가 아니겠습니까.”
그녀가 막 나가는 화교 상인들에게도 신뢰로 대했듯이.
힘들게 모은 귀한 돈을 나를 믿고 맡겼듯이.
과연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어쩌면 파사이 술탄국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인정받기를 원하고, 신뢰받기를 원하는 존재.
끝도 없이 의심해봐야 나만 힘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저는 겁쟁이라서 술타나처럼 다른 이를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편견을 버리고 바라볼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보기엔 용왕께서는 이미 선지자에 가깝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각 분야에서 능력 있는 자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지도자라면 응당 그래야겠지요.”
“반면 용왕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시고 계시지요. 아마 화상들이 마음을 바꾸어 기부한 이유도, 제 신뢰보다는 시장이 개방되고 민심을 얻은 용왕의 상단이 들어온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화상들은 언제든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허세다.
다른 곳에 가면 그곳 원주민의 텃세에, 이미 자리 잡은 다른 화상의 텃세도 이겨내야 한다.
기반을 버리고 본진을 바꾸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창해 주식 상단이 이권을 다 빼앗아 갈 것 같고.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 착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더 옳겠지.
이게 시장 개방의 장점이다.
“따라서 아직은 미숙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이들과 함께 파사이 술탄국에 번영을 가져오고, 함께 잘살 수 있는 부국으로 만들 것입니다.”
“미력하나마 한 손 보태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잘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실 경제라는 게 그렇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각종 물건을 만들어내고, 잘 팔릴만한 곳에 유통한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비자들은 내 일에만 집중해도 다양한 생산품을 누릴 있게 된다.
“용왕은 유학자셨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단은……?”
“유학을 가장 많이 공부했지만, 세상에는 배워야 할 가르침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굳이 유학자라는 명칭에 집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자본주의자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저에게 가르침 하나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르침이요?”
“그동안 저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설파하지 않았습니까. 용왕을 키워낸 유학의 가르침도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나를 키운 건 유학이 아닌데.
“알겠습니다.”
고민하다가 하나를 골랐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라.”
이로 시작되는 가르침.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
“정성스러우면 모양을 갖추고, 모양을 갖추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며, 변하면 바뀐다.”
“…….”
“천하에 오직 지극한 정성만이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사서삼경 중 사서에 해당하는 중용의 가르침이다.
중용의 핵심은 옳은 신념을 중심에 잡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라는 것.
상대방에게 맞추라는 게 아니라, 양쪽의 관점을 전체적으로 살펴서 언행에 있어 공격적으로도, 무르게도 하지 말고 적절히 하라는 뜻.
“파사이뿐만 아니라 남해에는 다양한 갈등이 있습니다.”
조선도 갈등이 없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남해의 갈등에 비하면 없는 편에 가깝다.
지금은 민족 갈등도, 종교 갈등도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중용의 가르침을 이해하신다면 다양한 갈등을 봉합하고 단합으로 이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지극히 정성을 다하여 나와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나도 반성해야겠다.
요즘 들어서 말이 안 통하면 일단 총 들 생각부터 하니까.
“그런데 언제 떠나십니까? 할 일이 많은지라 지금 미리 배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거 빨리 떠나라고 등 떠미시는 것 같군요.”
“영원히 머무르셔도 됩니다.”
까불면 묻어버리겠다는 뜻인가.
“바람이 불면 출항할 것입니다.”
“살람 알레이쿰. 용왕이 가는 길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뭔가 있어 보여서 멋있다.
유학에는 이런 인사 법이 없는데.
“공자 수 분투.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후회할 일이 없기를.”
***
몇 시간 후.
바람이 불어오자 우리는 곧바로 출항했다.
“이대로 쭉 북쪽으로 향하면 한타와디의 항구, 달라입니다.”
살짝 들뜬 모습으로 나이 쉐 키인이 말했다.
드디어 귀국하게 되어서 기분 좋은가 보다.
“근데 이 배에 탑승해도 괜찮나?”
그는 사신으로 왔다.
당연히 배를 타고 왔고.
믈라카에서 파사이로 올 때도 그들은 각자의 배를 탔었다.
“저는 사신이지 않습니까. 선장과 선원은 따로 있으니, 초심자인 제가 있어 봐야 거치적거릴 뿐입니다.”
거치적거릴 뿐인데, 왜 내 배에 탄 건데.
“그런데 한타와디 왕국은 잉와 왕국과 전쟁 중이라 들었다만?”
“저도 들었습니다만 사실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그런가?”
“잉와 왕국과의 전쟁은 늘, 끊임없이 일어나니까요. 크냐, 작냐의 차이는 있지만요.”
보통 전쟁이라 하면 큰일 났다는 생각부터 들 텐데.
나이 쉐 키인은 무척 담담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모양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북한이 미사일 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 느낌인가.
“흐음…….”
동남아시아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600년 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최종 승자는 버마족이다.
미얀마를 버마라고 불렀으니까.
그렇다는 건, 이번 전쟁에서 크게 패해서 잉와 왕국이 이길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줄을 잘 서야 하는데 헷갈리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자다릿께서 통치하신 이래 한타와디는 늘 번영을 거듭하고 있으니까요. 전쟁에서도 진 적이 없습니다.”
나이 쉐 키인은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나는 역시 불안했다.
그 잘나가던 오스만 술탄국이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 제국에게 털려서 훅 간 게 불과 4년 전 일이다.
물론 티무르 제국에는 티무르라는 당대의 먼치킨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런 군주나 장군이 잉와 왕국에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내가 견문이 짧아서 그러네만, 잉와 왕국은 대체 어느 나라인가?”
“본래 아국 인근에는 바간이라는 거대한 통일 왕조가 있었습니다. 버마족이 중심이 되는 나라였지요.”
“음.”
“그러나 100년 전, 원 왕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곳곳에 독립국이 생겨났습니다.”
진짜 몽골은 미친 건가 싶다.
역사가 조금만 비틀어졌으면,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구대륙 국가를 점령하지 않았을까 싶네.
“잉와 왕국은 샨족의 떠도민뱌 라자가 세운 나라지요.”
“그렇다면 버마족의 나라가 아니라 샨족의 나라가 아닌가?”
“예. 맞습니다.”
“응?”
“저는 잉와 왕국이 버마족의 나라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그러네.
내가 멋대로 그렇게 알고 있었지.
동남아시아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 봤다면 화냈을 것 같다.
“바간 왕국 멸망 이후, 버마족에 세운 나라는 따웅우 왕국이라고 따로 있습니다.”
“아!”
다른 나라는 못 들어봤지만, 따웅우 왕국은 들어봤다.
무려 미얀마, 태국, 라오스까지 정복한 동남아시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으니까.
……언제 그렇게 되는지는 기억 안 난다.
“그럼 지금 따웅우 왕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따웅우 왕국은 잉와 왕국에 속해 있습니다만, 다른 곳과는 다르게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호오…….”
덕분에 방침이 섰다.
일단은 한타와디 왕국과 친하게 지내자.
라자다릿이 굉장하다고 하니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별일 없겠지.
하지만 역사가 늘 말하듯, 뛰어난 왕이 죽으면 그 나라는 이리저리 분열된다.
그때를 대비해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큰 따웅우 왕국과도 친분을 다져놓자.
계획대로만 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계획대로 될 리가 없어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