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7
016화 배금(拜金) (5)
정화의 1차 원정은 오직 동남아시아 일대만 항해한다.
내 교역품도 이 점을 생각해서 선정해야 한다.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2차 때는 인도까지, 3차 때는 중동까지 확장되며, 4차 때는 아프리카 국가인 케냐까지 도달한다고.
“보십시오. 강서성 장인이 만든 청화백자입니다. 귀하기 이를 데 없는 명품이지요.”
정심영은 감정을 빠르게 가라앉힌 후 자연스럽게 상품을 소개했다.
“예술품에 조예는 없는 제가 봐도 명품입니다.”
특히 순백에 가까운 하얀 빛깔은 나름 도자기 선진국인 조선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재료가 없다나.
백자의 무늬를 그릴 때 사용하는 청색 안료도 마찬가지다.
이 안료는 조선은 물론, 명나라에도 원료가 없다고 한다.
정확히는 원료가 있기는 한데, 중동의 원료로 만든 안료 아니면 선명한 푸른색이 안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전량 수입이라고 들었다.
그 때문에 작년에 사신단이 받아 온 청화백자를 보고, 우리 킹방원 전하도 크게 감탄했었다.
우리도 만들 수 없겠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미래인으로서 결론을 말하자면 조선도 언젠가 만들기는 한다.
그게 언제인지 모를 뿐이지.
게다가 사치를 경계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청화백자보다는 철가루를 이용한 철화백자가 더 유명하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겠습니다만, 도자기는 원정대에서도 많이 가져가지요?”
“물론입니다. 도자기와 비단 등 최고의 명품으로만 가득 실었지요.”
도자기와 비단은 교역품으로 정말 좋은 물건들이다.
부피 대비 가격이 매우 높으니까.
하지만 나는 원정대와 같은 물건을 가져가기 어렵다.
질과 양에서 상대가 안 되고, 내가 더 높은 이익을 내면 정화의 위신에 먹칠하게 되는 셈이니까.
적어도 내가 자리를 완전히 잡을 때까진 정화는 내 든든한 조력자로 남아있어야 한다.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입니다.”
“정 단주가 가져온 물건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상품을 원합니다.”
“조공 무역용 상품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그랬다면 굳이 저에게 화물칸을 맡기셨을 리가 없지요. 저의 경우······ 그렇군요. 조공 무역과 민간 무역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공 무역이라고 하기엔 난 조선인이고, 민간 무역이라고 하기엔 황실에서 지원하는 상품을 취급하니까.
“게다가 남해 원정은 원양 무역보다는 근해 무역에 가깝지 않습니까. 이 점을 이용해 차별화를 두고 싶습니다.”
“대인께서는 시야가 넓으시군요.”
“예?”
“조선이나 류큐, 왜국보다 먼 나라로 향하는데 근해 무역이라고 하시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더욱이 천주나 광주가 아니라 경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까.”
칭찬이라기보다는 신기하게 보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아직 세계관은 그리 넓지 않으니까.
게다가 홍무제에 의해 근 30년간 해금령이 유지되었던 만큼, 해상무역을 주로 하던 이들은 너무 늙었거나 밀무역자가 되어버렸다.
현 기성세대에게는 동남아시아 국가조차 상당히 머나먼 나라겠지.
“하하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여행기를 보았을 때, 파사국이나 대진국 정도는 되어야 원양 무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진국이요? 그곳은 배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파사국에서 내려서 육로로 이동한 후, 다시 항구로 향해야 갈 수 있는 곳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미처 몰랐군요.”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긴 했으나, 이내 대화를 정리했다.
“요약하자면 대인께서는 최고위층이 아니라 중간 관리나 부유한 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물건을 찾으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최고의 명품은 원정대에서 취급하는 데다 제가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요.”
지금이야 황태자나 정화의 입김이 있어서 가능하다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게다가 최고의 명품은 언제나 그렇듯 제작 기간이 길고, 수요가 많아서 공급이 따라가질 못한다.
“그런 물건이라면 술이 좋겠군요. 근래에 곡물의 수확량이 급증해서 이를 이용한 명주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주(식초)도 괜찮겠고요.”
“그것도 괜찮겠군요.”
“혹여 생각하신 물건이 있습니까?”
“듣자 하니 소금과 차의 규제가 풀렸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이소군이 말해줬지.
“예. 본래는 관아에서 독점하였으나 민간 상인도 팔 수 있도록 허가해 주셨지요.”
“어떤 차를 취급하십니까?”
“경사에는 천하의 중심인 만큼, 대국의 모든 명차가 모여듭니다. 어떤 차든 구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대국의 다도에는 조예가 없습니다만, 차를 중점으로 무역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술도 거래하고 싶고요.”
민간 무역은 조공 무역과는 달리 자주 할수록 이익이 커진다.
이 특성을 이용하면 교역품에 관한 답이 나온다.
기호식품.
소모품인 만큼 한번 맛을 들이면 계속 팔 수 있으니까.
“한번 시음해 보시겠습니까. 견본품으로 다양하게 갖춰놓았습니다.”
“그러지요.”
정심영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물 끓이는 도구를 가져오게 했다.
직접 물을 끓인 후 식히고, 다시 끓인 후 적당한 온도까지 낮췄다.
이것을 다섯 개의 도자기 주전자에 담고 그 안에 각각 다른 찻잎을 넣었다.
잠시의 기다림.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도에 조예는 없지만, 차가 맑게 우러나오길 기다리는 것 역시 다도라 들었습니다.”
“하하하. 이미 전문가십니다.”
그는 찻잔 하나를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먼저 녹차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차로, 경사 바로 아래인 절강성에서 명차가 많이 나지요. 이 차는 용정차, 그중에서도 으뜸인 서호용정입니다.”
마셨다.
녹차였다.
잘 모르겠다.
부드럽다는 건 알겠는데.
“이번엔 황차입니다. 제조가 어려워 대중적이진 않지만, 다도의 명인들은 무척 좋아하지요. 이것은 황차 중 최고로 치는 군산은침입니다. 호남성의 명품이지요.”
마셨다.
녹차와 우롱차 사이의 무언가다.
역시 잘 모르겠다.
“백차입니다. 복건성의 명차인 백호은침으로 마음을 정화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6년 묵은 백차는 약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요.”
아까 군산은침차도 그렇고, 은침이라고 하기엔 찻잎이 별로 가늘지 않은데.
“오룡차입니다. 복건성과 광동성이 주 산지로, 이 차는 복건성의 명차인 철관음입니다.”
오룡차가 우롱차다.
보리차처럼 쉽게 마시기에 좋았다.
근데 어째 이름이 하나 같이 무협지에서 많이 들어봤던 것 같은 기분이다.
“청차입니다. 역시 복건성에서 주로 생산되며 이 차는 대홍포라고 합니다. 천하의 모든 차 중 으뜸이라 하여 차중왕(茶中王)이라는 별명도 있지요.”
“대홍포요? 무이대홍포?”
“예. 효자고황후의 병을 치료하여 태조 고황제께서 차나무에 붉은 비단을 하사하셨지요. 그 뒤로 대홍포라 불립니다.”
전생에 마셔본 적 있다.
그때는 홍차로 분류됐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찻잎이 검녹색이다.
“마지막으로 흑차입니다. 주로 운남성과 사천성에서 생산되며 단단하게 굳힌 후 발효한다는 특징이 있지요.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입니다만, 10년 이상 묵힌 흑차는 건강에 그리 좋다고 합니다.”
보이차다.
이 시대에는 그리 대접받지 못하지만, 나중에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에 가치가 재조명된다.
비타민이 많고 소화를 도와서 육식 위주의 유목민에게 매우 좋았다나.
“홍차는 없습니까?”
“청차나 오룡차를 홍차라고 부르는 이도 있더군요.”
아직 안 만들어졌나?
홍차의 기원은 송나라라고 들었는데.
“황차와 백차는 제외하겠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요. 하나 같이 대국의 명차다운 훌륭한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조 과정이 너무 어려운 것은 제가 취급하기 어렵군요.”
귀한 물건일수록 떼오기 어렵잖아.
교역하기엔 최고급 명품보다 고급 양산품이 낫다.
“그럼 녹차와 오룡차, 흑차가 남는군요.”
“흑차는 소량만 준비해주세요.”
괴혈병 치료제로 쓸 생각이니까.
나중에 제대로 취급할 생각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싸구려 이미지가 있어서 좋지 않다.
“녹차와 오룡차는 반반씩 준비해주시되 마른 찻잎이 좋습니다.”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니 마른 게 좋긴 하겠군요. 알겠습니다.”
뭘 좋아할지 모르니 일단 다 가져가자.
“그리고 그림이나 글씨 중 괜찮은 걸 선정해주세요. 고가의 물건은 오히려 취급하기 어려우니 적당한 수준으로요.”
“예? 항해하신다면 그림이나 서예는 습기에 무척 취약할 겁니다만.”
“관리는 제가 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게다가 내가 찻잎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단순히 교역품만으로 쓰기 위함이 아니다.
차도 습기에 강하진 않지만, 항해 기간이 길지 않으니 괜찮다.
오히려 제습제로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술 항아리를 운반할 때나, 원정 도중 귀한 물건을 사게 되면 완충제 역할도 해줄 테고.
“알겠습니다. 다만······ 주제넘은 말씀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세요.”
정심영은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대인께서 거느린 기녀는 다도 명인의······ 흠. 흠. 아닙니다. 차에 관한 지식이 해박합니다. 차를 취급하신다면 그녀의 의견을 경청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그러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받았다.
여기서 동요나 호기심을 드러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까 봐.
“또 필요한 게 없으십니까?”
“그물과 천이 필요합니다. 튼튼하기만 하다면 저렴한 것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느 정도 필요하십니까?”
“두 개······ 아니, 100개 준비해주세요. 그물 위에 천이 고정된 형태로요.”
해먹의 구조를 말했다.
원래부터 석피를 위해 쓰려고 했지만, 교역을 허락받으면서 더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해먹, 그물침대의 최대 장점은 공간을 매우 적게 차지한다는 것.
나와 석피의 선실에 그물침대를 설치하면 짐을 더 실을 수 있다.
“혹시 어디에 쓰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만으로는 대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여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침대로 쓸 겁니다.”
“······예?”
“배 안에서 침대로 쓸 생각입니다.”
“그물을 침대로······ 참 해괴한······ 아, 죄송합니다. 무척 신선한 발상이군요.”
그는 실수를 담백하게 사죄하고는 빠르게 원래의 태도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대처하니 뭐라하기 애매했다.
나중에 영락제나 킬방원이 화났을 때 참고하도록 하자.
······걔네한테도 통할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약초도 필요한데······.”
서적을 뒤져서 예상되는 주요 전염병의 약초를 주문해야겠다.
민간요법이라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슬쩍 약재상을 보았다.
그의 낯빛은 여전히 창백했다.
“우리 회관의 상인이 실수한 듯하니 약초에 관해서는 제가 사비로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필요한 약초 목록은 따로 보내드리죠.”
어차피 내 돈을 아끼는 것도 아니니, 굳이 마음의 빚을 청산시켜줄 필요는 없다.
나중에 이 빚을 이용해서 더 큰 걸 받아낼 수도 있으니.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차를 직접 만들 수는 없습니까?”
“예?”
“찻잎을 다른 방법으로 숙성하고 싶습니다.”
홍차를 만들려는 것이다.
정확한 제다법은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져온 대홍포.
그는 청차라고 불렀지만, 600년 뒤에는 홍차로 취급된다.
대홍포의 제조 과정과 녹차, 우롱차의 제조 과정을 비교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홍차를 취급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국이 가져갔으니까.
중국, 인도에서 희망봉을 돌아 영국까지 가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터.
홍차는 그만큼 긴 항해도 잘 버틴다는 방증이다.
물론 보관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또, 홍차는 녹차와 비교하면 떫은맛이 적어 대중화하기도 편하다.
“모르셨습니까? 차의 재배법과 제다법은 비밀입니다. 송나라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그랬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주요 교역품이니까요. 몇 번의 예외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나라 때 신라에 차나무 씨앗을 하사한 적이 있긴 하군요.”
근데 영국은 어떻게 중국 차나무를 인도에다 심었지?
······그 나라니까 짐작은 간다만.
“알겠습니다. 잊어주세요. 그에 관해선 제가 폐하께 직접 아뢰어 허가받겠습니다.”
“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기본 계획은 이랬다.
고위층만 마실 수 있던 명나라 술과 차를 한 단계 아래로 넓힌다.
이어 조선의 보성과 하동 지역에 대규모 차밭을 일구고 대중화한다.
술과 차가 많이 팔리면 도자기의 수요도 올라갈 터.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 역시 올라가겠지만, 명나라 도자기는 지금도 중간 관리가 사기엔 너무 비싸다.
이때 조선백자를 철저하게 현지 기호에 맞게 디자인하여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제작·공급한다면, 명나라의 핵심 이익과 충돌하지 않고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여기에 조선에서 인삼 무역권까지 따게 된다면 금상첨화.
일본 무역까지 가능해지면 구리와 은, 사금까지 거래 가능해진다.
돈은 숭배(拜)하는 게 아니라 지배(配)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돈이 있어 얽매이지 않을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
나는 돈을 지배할 것이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건만 정심영은 과연 명나라 황실에서 선택한 어용 상인답게 물건을 철저하게 잘 준비했다.
그리고.
원정대가 출발할 그 날이 왔다.
경사 앞 장강을 가득 메운 함선들.
기록에 의하면 정화의 원정대는 60여 척의 함선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와 정화가 타는 기함인 대보선 한 척.
300명이 탑승한다.
최대 1200명이 탈 수 있지만, 높으신 분들이 많이 탑승하므로 편의를 위해 적게 탑승한다.
대형 함선인 보선이 20척.
400명씩 탑승한다.
주력 함선이자, 전투 시 중대장 역할을 한다.
보선보다는 작지만, 대형 함선인 진극(眞克)이 20척.
300명씩 탑승한다.
이쪽에는 조공 무역을 위한 귀중품이 많이 실려있다.
중형 함선인 조(曹)가 80척.
100명씩 탑승한다.
전투 시 선봉장이자 소대장 역할을 한다.
소형 함선인 객극(喀克)이 160척.
30명씩 탑승한다.
고기 방패 느낌이지만, 사실 이 정도 함선만 해도 수가 많아서 어지간한 왜구는 달려들 수 없다.
합 301척.
총 27,100명.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함대가 새로운 역사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