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15
□ 경기 종료
U-대한민국 77 VS 92 U-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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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올림픽에 나가기 힘든 것은 사실인 것 같고요. 어차피 제가 아니더라도, 좋은 선수는 많으니까…….”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엔트리에는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중이었다. 실제로도 몇 번 대표팀에 소집이 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난 대표팀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 민혁아!”
“어? 안녕하세요.”
인터뷰가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서는 길에, 익숙한 얼굴이 나를 불러 세웠다.
현재 창원 LG 세이커스와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겸임 중인 유명학 감독님이다. 내가 한국 농구 지도자들 중에서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분이기도 했다.
“오늘 아주 잘했어. 응? 새끼.”
따뜻한 손으로 목덜미 부근을 주물러주시는 유명학 감독님은 내게 미국 진학에 대해 질문해 오셨다. 어떤 대학인지, 어떤 감독의 밑에서 뛰게 되는지. 적응 과정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난 기자들의 앞에서와는 다르게, 최대한 상세하게 내용을 알려 드리기로 했다.
“흐음- 그래? 일단 한 번 부딪쳐 봐. 네가 잘하면, 여기도 조금 바뀌겠지. 안 그래?”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들어가 봐.”
내가 미국에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서 흘러 나왔을 때, 감독님은 내게 먼저 전화해 좋은 결정이었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지금까진 대표팀 엔트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시지만, 감독님은 애초부터 날 제외하실 생각이셨다. 과거 진수형의 사례도 있고, 미국 무대에서 적응을 하는 것을 충분히 배려해 주시겠다는 거였다.
나는 당연히 감사하다고 말씀드렸고, 감독님은 한국 농구가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하지만 구태의 얼굴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가도 하셨다.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새로운 얼굴이.”]대한민국 사람들의 기본적인 성질일는지도 모르지만, 전통적으로 한국 스포츠는 굵직굵직한 얼굴들이 있을 때 가장 상식적으로 돌아갔다.
야구의 박찬호, 축구의 박지성.
이들이 중심이 된 대표팀은 세계대회에서 가장 빛났고, 이들의 활약에 자극을 받아 투자의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맞춰 성장한 선수들은 황금세대로 불렸거나, 혹은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의 연세대와 고려대. 삼성과 현대.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농구에 대한 투자와 붐이 이어졌고, 여기에 대한 성과로 이어진 것이 프로 리그. 즉 KBL의 출범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스타들이 생산되는 타 프로종목과는 달리, 농구는 스타의 출현이 멈춰 섰다. 한 순간은 언론에서 큰 주목을 보내기도 하지만, 꾸준함이나 세계적인 수준의 성과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유명학 감독님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내게 말씀해 주셨다.
“잘 뛰었어. 그런데, 정말로 미국에 갈 생각이냐? 중앙대로 오지 그러냐. 내가 잘 말해주면, 4년 장학금은 물론이고 연봉도 받을 수 있을 건데.”
“…….”
라커룸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말을 걸어오는 U-대표의 감독님.
그가 바로, 유명학 감독님이 입 아프게 말하는 고인 물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떠날 순간이다.
++++++++++++
2012년 1월 26일. 인천광역시, 대한민국. 중구 운서동 공항로 272. 인천 국제공항.
“어, 엄마. 응? 이제 막 자리에 앉았어. 민지는?”
오늘은 여러 의미에서 조금 놀란 날이다.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데이비드가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부터 시작해, 생각보다 큰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다. 유명 커뮤니티에서 나온 한 남성분은 직접 제작한 내 피규어를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난 지금 그것을 만지면서,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이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평온한 날보다 다투는 날이 훨씬 더 많았던 우리 남매. 민지는 언제나 나보고 언제 미국에 가느냐고 입 아프게 물었었고, 솔직히 조금 속 시원해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항상, 입대한 오빠가 없어 너무 행복하다는 여동생들의 글을 지켜봐왔기에 민지 또한 그럴 거라 믿었던 것 같다.
근데, 갑자기 민지가 펑펑 울기 시작했던 거다.
“지금 화장실에 갔어. 봐바. 엄마가 뭐라고 했어. 민지가 겉으로는 그래도 널 많이 믿고 따른댔지?”
“에효. 민지한테 나중에 오빠 방에서 필요한 거 가져다가 쓰라고 해.”
“진짜? 얘가 웬일이래? 갑자기 철이 들기라도 했어? 지방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해 놓고서는.”
“아, 쫌. 어차피 짐도 다 붙여놔서 아무것도 없는데, 뭐.”
난생 처음으로 보는 동생의 모습에 조금 짠했던 게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 밖에 안 되었기도 하고, 나를 밖에서 보면 반갑게 뛰어왔던 것도 떠올랐다.
그런데도 나는 맨날 물 떠오라 하고, 불 끄라고 부르고. 라면 먹으면 뺏어먹고.
아. 나 정말 나쁜 오빠였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알았으면 꼭 거기에서 잘 적응해. 그래야 엄마랑 민지도 놀러가지.”
“열심히 할게. 아빠는?”
“아빠는 지금 일 때문에 통화중. 여보? 한 마디 해.”
“민혁아.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돼. 거기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네 인생 모두가 잘못되는 건 아냐. 알겠지?”
아버지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나는 엄마에게 몇 마디를 더 대충 건네고는 전화를 끄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몇 주 전에도 탔던 비행기이지만, 이번은 기분이 조금 묘하다.
생소한 나라인 것도 거지만, 유타라고?
물론, 유타는 내게 친숙한 이름이기는 하다.
존 스탁턴(John Stockton)과 칼 말론(Karl Malone) 듀오는 198,90년대 NBA에서 가장 위력적인 원투펀치 중 하나였으니까. 지금도 종종 아버지의 서고에 있는 오래 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 당시의 경기를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유타라는 도시에 대한 지식은 조금도 없다. 지금도 난 바닥에 내려놓은 작은 백팩을 뒤적여 책자를 꺼내들었다.
“응? 뭐하냐?”
이륙하기 전,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 데이비드가 내게 묻는다.
“공부요.”
“공부? 대체 무슨…….”
탁-!
“아, 형!”
“야야야. 직접 부딪치며 경험해 봐야 하는 거야. 이런 거 미리 읽어놓으면, 편견밖에 더 생기겠어?”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책을 앞에다가 대충 꽂아버린 데이비드가 내 곁에 앉으며 다시 말했다.
“넌 그냥 하나만 알면 돼.”
“그게 뭔데요?”
괜히 불퉁해진 내가 퉁명하게 대답하자, 데이비드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어깨를 툭하고 치며 대답했다.
“더럽게 지루하고 조용한 동네.”
“…….”
그거야 말로 내게 편견을 심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데이비드의 말은 순도 100%의 진실이었다.
++++++++++++
오그던, 유타. 킹스턴 드라이브(Ogden, UT. Kingston Dr.).
솔트레이크 시티 국제공항에 내려섰을 때, 나는 왜 데이비드가 한국에서와 똑같은 옷가지를 구비하라고 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우- 추워!!”]기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칼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데이비드가 말하길, 유타의 1월은 보통 영하 5도에서 영상 10도 사이를 오간다고 했다. 한국보다 더 따뜻한데 어째 더 춥게 느껴진다는 말에, 바람이 제법 부는 날씨여서 그렇단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내 몸은 금방 유타의 날씨에 적응을 했고, 주차장에서 기다림을 계속하는 동안 조금 따뜻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응? 왔다.”] [“…….”]초록색의 트럭(데이비드는 저걸 픽-업 트럭이라 부른단다.) 한 대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차장으로 들어섰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린 것은 쌀쌀맞아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였다.
데이비드는 그녀가 스탠리의 딸이라고 했다.
스탠리의 나이는 많아도 40이 아니었던가? 대체 몇 살에 결혼을 한 거야?
아무튼, 솔트레이크 국제공항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는 그리 멀지 않았다. 대략 40분 정도가 지나서, 평화로워 보이는 조용한 동네에 트럭이 멈춰 섰다.
“(당분간 여기에서 지내면 돼요. 필요한 건 전부 채워뒀고, 일주일 한 번 장을 보러 갈 건데 그 때 나와 동행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어지간하면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아요. 치안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낯선 동양인은 분명 눈에 띈다고요.)”
“(명심하지.)”
“(하아- 오늘 저녁은 저희 집에서 먹을 거예요. 길 건너에 보이는 초록색 지붕이 저희 집이니까, 7시까지 오면 되고요. 그리고.)”
데이비드와 셸리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이 크고 넓은 2층짜리 집을 정신없이 쳐다보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이런 크기의 집을 사려면 과연 얼마나 할까?
그냥 궁금했던 거다.
“으왓! 죄송합니다.”
한눈을 팔고 걷던 중, 가슴팍 부근에서 무언가 부닥치는 느낌이 들어왔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사과가 튀어 나왔는데, 껌을 씹고 있는 셸리가 눈을 치켜 올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화가 났나?
“(동양인치고는 제법 귀엽기는 하네.)”
“(미, 미안한데. 뭐라고?)”
“K-Pop. Kimchi. Bul-gogi. 흐하하. Bye~”
“…….”
오른손을 살짝 흔들며 집을 나서는 셸리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쟤가 지금 뭐라고 한 거예요?”
“글쎄.”
“아, 쫌! 그 표정! 뭐라고 했는데요?”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한 데이비드는 능글맞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다, 이제는 그만 짐을 정리하자고 말해왔다. 우선은 침실을 정하는 것이 먼저였는데, 1층에 두 개. 그리고 2층에도 3개의 침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 중 사용할 수 있는 것은 1층의 두 개 뿐이란다. 즉, 안쪽에 있는 큼직한 방과 계단 바로 앞에 있는 시끄러울 것이 분명한 방뿐이라는 건데…….
“먼저 찍는 사람이 임자!!!”
“어어엇-! 야!! 김민혁!!”
주인이 없는 물건은 항상, 먼저 침 바르는 사람이 임자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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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좀 어떠니?)”
“(응? 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하하하. 우선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도록 해. 영어가 가장 중요할 테니까.)”
데이비드가 통역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충 스탠리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 스탠리도 드웨인처럼 쉬운 단어만을 골라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한 마디씩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이려한 배려에 퍽 감동했고, 또 감사했다.
“(하아- 내일 부터는 곧장 공부를 해야지?)”
“(공부?)”
“(그래. 3월에 있을 SAT1을 봐야 하니까. 네가 특기생인 부분은 감안이 되겠지만, 성적이 전혀 안 나오는 것도 곤란해.)”
지금은 데이비드가 통역을 해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WSU로부터 그 어떠한 장학금 제안도 받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다. 리쿠르팅이 되었다고는 하나, 농구팀을 구성하는 15명 전원이 장학금을 받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알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대학마다 특기생을 위한 예산이 주어지게 되고. 이 것은 팀의 성적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
Division 1 중에서도 마이너 컨퍼런스 소속인 WSU라면, 기껏해야 주전 5명에게 장학금을 안겨다주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에 있는 셸리가 널 가르칠 거야. 대화도 많이 나누도록 하고. 친구가 되라는 말이지.)”
“(예, 예스.)”
셸리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내가 눈치가 없는 남자도 아니고, 어떤 의미를 담은 눈빛인지는 미드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 조금 놀아도 되려나.
“쟤가 스탠리 딸인 건 알고 있는 거지?”
“아.”
아. 그랬지, 참.
그래서 난 셸리와 마주하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고개를 카페트로 떨어트렸다. 가뜩이나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온 미국 무대인데, 감독의 딸이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해봐.
내가 뭐가 돼?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할 거고, 가족을 볼 낯도 없다.
띵-동.
“응?”
“(오-! 리온이 왔는가 보군.)”
“리온?”
아무래도 우리 말고도, 초대 손님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주방에 들어선 셸리는 클레어를 도와 저녁 식탁을 준비 중이었다. 클레어는 스탠리의 부인으로, 셸리의 붉은 머리가 누구에게서 유전 된 것인지를 한눈에 알게 해 주었다.
아무튼 소파에서 일어난 스탠리가 입구로 나섰는데, 그 때 데이비드는 내게 리온 베이커(Leon Vaker)라는 남자에 대해 소개를 해 주었다.
그는 WSU의 2학년 선수였고, 데미안 릴라드 이 후 팀의 에이스로 주목을 받는 남자라고도 했다. 6-11(약 210cm)의 키를 가진 트위너(Tweener)란다.
트위너란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의 경계쯤의 플레이 스타일을 지닌 선수를 말한다.
“(둘이 인사를 하렴. 리온? 여기는 킴. 킴? 여기는 리온.)”
“(안녕, 형제.)”
“응, 응? 와, 와썹.”
대뜸 포옹을 해오는 리온을 따라,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 본다. 잠깐. 근데 나 지금 쫌 감동받은 듯. 흑형이 나한테 와썹 브로라고 했어.
“(여기에 있는 리온이 내일 오전에 널 데리고 학교를 안내해 줄 거란다.)”
“(WSU는 좋은 곳이야. 나만 믿어.)”
“(고, 고마워.)”
커다란 입으로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웃는 리온은 퍽 순진해 보였다.
첫 인상만으로 난 리온이 마음에 들었고, 그 또한 스스럼없이 날 대해주었다. 식사가 다 준비 되었다는 클레어의 말에, 남자들이 모두 식탁에 앉는다.
“New Family.”
나를 새로운 가족이라 소개한 스탠리의 환대는 날 감동시켰고, 한국에서 느낀 마지막 감정 사이와의 괴리감은 오히려 나를 더욱, 이곳의 구성원이 되고 싶게끔 만들었다.
미국은 정말로 기회의 땅이다.
고작 하루 만에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할 수많은 이유를 찾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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