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14
2012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송파구, 잠실동. 잠실 학생 체육관.
□ 4개국 초청 친선대회 승자전
U-대한민국 VS U-중국
“…….”
“뭐하냐?”
“뭐 저리 크노? 돌았네.”
이번 U팀에는 고등학생이 두 명이다.
하나는 물론 나고, 다른 하나는 부산 중앙고 출신의 이석모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성균관대에 진학했는데, 183cm의 실력 있는 슈팅 가드였다. 석모와는 전국대회에서 많이 만났었고, 대표팀 생활을 통해 친해진 케이스였다.
“점마가 가제?”
석모가 말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15번인 리 후이펑(李辉锋)이다. 211cm의 키에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 야오밍 – 리 지엔리엔 이 후, 제대로 된 NBA 리거 계보가 끊긴 중국의 떠오르는 희망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고, 현재는 중국 CBA팀인 바이 로켓츠(Bai Rockets)소속이다. 중국의 유망주는 보통,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로 뛰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말로 크긴 크다.
“건우햄이 점마 막겠나?”
“좆 빠지겠지 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U-대표팀에서 포워드/센터를 겸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언제나 이를 두고 불만족스러워 하셨다. 단순히 신장이 크다, 혹은 작다는 이유로 포지션을 구분하는 구시대적인 방법이 여전하다는 게 싫으셨던 거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감독님이 까라면, 까는 것 뿐.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저 녀석을 막고 싶다.
“니가 점마 막아야하는데.”
“그럼 니가 감독님한테 그렇게 말해 볼래?”
“돌았나. 그랬다간 뭔 개욕 처먹으라고?”
“하하하.”
인상을 팍 찌푸리는 석모의 어깨를 툭하고 민다. 내가 석모를 좋아하는 이유는 재미있고, 솔직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우리들도 NBA를 보며 감탄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기량을 쓸데없이 폄하하고 구겨진 자존심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석모는 아니다. 녀석은 나처럼 솔직히 부족한 것을 인정한다.
차이점이라면, 내가 도전정신이 더 강하다는 것 정도? 그렇다고 안정적인 진로를 원하는 석모를 단 한 번도 꿈이 없다 생각하지 않았다.
녀석은 분명, KBL 드래프트 상위권에 선택이 될 거다.
“전부 모이자~!”
“에휴. 오늘 존나게 깨지겠다. 가자.”
“…….”
중학교 때 까지는 중국과의 경기가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에는 같은 나이 때의 중국 팀을 96-46으로 대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중학교 때 20점차로 줄어들더니, 고등학교 때부터는 상대하는 게 조금 벅차기 시작했다.
10번을 맞붙으면, 4번 이기는 정도? 초, 중학교 때는 백이면 백. 전부 승리를 할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를 두고, 지도자들의 문제라고 말하시고는 했다.
“야야야. 이리 모여 봐. 오늘은 죽어도 이겨야 돼. 지면 다음 소집 때 산악구보다. 알겠지?”
“…….”
그리고 난 이에 100% 공감한다.
대체 언제까지 정신력을 강조할 생각이지? 승리와 우승, 1등이라는 단어 외에는 모든 값어치가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학원 스포츠에서. 장기적인 비전이란 찾아 볼 수 없다.
“파이팅 하자, 그러니까. 파이팅 하자고.”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참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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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쿼터 5 : 33
U-대한민국 24 : 41 U-중국
“야이 ㅆ……똑바로 안 해?”
내기 하나 할까?
만약 이곳에 2천여의 관중들과 중계 카메라가 없었다면, 감독님이 욕을 했을지 안했을지. 나는 전자에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었다. 전재산이라고 해봐야, 쥐뿔도 없기는 해도.
경기를 치르며 느낀 것은 우리의 사전 정보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 놀랍지도 않았는데, 국제 대회마다 항상 우리는 예상 밖의 복병에 한 방을 얻어맞았다.
근데 그걸 과연 복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본래부터 잘했던 선수였고, 그것을 우린 몰랐을 뿐이다.
“뭐 그렇게 볼을 쉽게 뺏겨??!!”
감독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체육관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오늘 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중인 현웅이형은 멘붕이 온 것처럼 보였다. 중국의 포인트가드인 장경보(張警报)는 엄청난 수비력을 지닌 남자였다.
현웅이형보다 키도 10cm가량 컸고, 발 길이는 거의 손바닥 두 개 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거기다 운동능력에서마저 앞서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1쿼터에만 두 번의 스틸을 당하더니, 2쿼터에는 투입 되자마자 또 한 번 볼을 빼앗겨 버렸다.
압박의 강도나 개인적인 수비능력 모두, 대학에서 만나는 선수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장경보 또한, 상하이 샥스(Shanghai Sharks)에서 프로생활을 하고 있다.
“에이, 씨! 타임아웃.”
삐익-!
“타임아웃!”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흥겨운 음악과 함께 SK 나이츠의 치어리더들이 뛰어 나왔다.
그래도 결승전이라고 장내 아나운서까지 섭외했는데, 그 분이 관중석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고 노력하고 계셨다. 하지만 어느새 20점차로 벌어진 상황이라, 기분을 내는 것도 영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벤치에 앉자마자 감독님의 속사포같은 타박이 이어진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똑바로 안 해?!”
“…….”
왜 우린 죄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앞 선에서부터 볼을 뺏기면 뭘 하라는 거야? 뻔히 보이는 곳으로 왜 패스를 찔러 넣냐고!! 석모! 네가 뛰어! 이런……씨.”
“…….”
현웅이형은 고개를 떨어트린 채,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남은 이들도 덩달아 위축이 되었고, 석모 또한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유니폼을 벗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감독님의 눈이 마주친다.
“넌 뭘 잘했다고, 그래?”
“넵. 죄송합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내 대답에는 영혼 따윈 담겨 있지 않다. 왜 내가 죄송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면, 너무 삐딱선을 타는 것일까? 하지만 타임아웃 내내, 정작 경기의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조언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석모를 투입하고, 연습대로 하라고 한 것이 전부다. 내 생각에는 지금 우린 연습처럼 하고 있다. 다만 중국 애들이 더 잘하는 것 뿐.
“아이 씨팔. 존나게 짜증나네.”
“원래 어려운 경기였잖아요.”
“그야 그런데, 아이 씨팔.”
욕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건우형 역시도 여러 가지 부분이 불만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저 인간은 왜 뒤지지도 않고, 맨날 영감탱이가 감독해서야 되겠냐?”
“달리 누가 대표팀 감독을 하겠어요? 안 그래요?”
“아우, 씨! 내가 빨리 때려 치든가 해야지.”
물론 농구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프로 원년 세대들이 은퇴해 감독이 되었고, 산악 구보나 무조건적인 런닝을 대신해 체계적인 시스템과 스킬 트레이닝 등의 참여 빈도가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표팀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다. 이것은 성인이든 U팀이든 매한가지다. 잘도 이런 곳에서 농구를 해왔다 싶다.
미국을 갈 때가 가까워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좋은 이유는 도무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이 내게 있어 최선이다.
“아이…….”
포스트업을 시도하던 건우형이 던진 훅슛이 리 후이펑의 블록에 막혀 버렸다.
사이드라인 밖으로 벗어난 농구공으로 아무도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렸다는 거겠지. 만약 이것이 제대로 된 농구가 되려면, 감독은 선수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 주어야만 했다.
아. 농구만 하고 싶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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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쿼터 2 : 26
U-대한민국 57 VS 81 U-중국
[“마음대로 해 봐!”]석모는 언제나 이것을 두고, 괜히 카메라 앞에서 사람 좋은 척 하려는 거라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 동감이다.
사실상 경기의 승패가 갈린 가운데, 감독님은 갑자기 대인배라도 된 것처럼 유종의 미를 잘 거두자고 말을 했다. 석모와 나를 포함해, 기존에 벤치를 지키던 세 명의 선수들이 남은 시간을 뛰게 될 것이다.
그 어떠한 작전지시도 없었고, 포지션에 대한 말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려대 2학년인 이계훈 선수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그냥 코트를 넓게 벌리죠.”
“응?”
“어차피 골밑을 노려도 별 거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 수비수가 저보다 느려요.”
“너한테 패스를 해 달라는 거냐?”
굳이 빙빙 돌려 말할 것 없다고 한 계훈이 형은 알아서 해 보라며 패스를 주겠단다. 하프라인에서 시작 된 공격 상황에서 나는 3점 라인 밖에 자리 잡았고, 계훈이 형이 내게 농구공을 전달했다.
그리고 난 옆구리에 볼을 끼워놓은 채 멀리 떨어지라는 손짓을 보냈다. 스몰라인업을 사용하고 있는 덕분에, 나를 상대하는 수비수는 중국에서 가장 느린 선수가 되었다.
어쨌든, 현재의 라인업에서는 내가 가장 크니까 말이다.
“어떻게 할까.”
“??”
“그냥, 오늘 너무 골밑에만 있어서. 슛감이 어떤지 잘 모르겠거든.”
“在??什??”
“이대로 슛을 올라 갈 거라고.”
잠깐의 피벗 동작 이 후, 나는 그대로 점퍼로 가져갔다. 이것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단 1%도 없다. 그저 내 슛 감각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늘 내가 던진 필드골이라고 해봐야, 6개가 전부다. 그것도 전부 골밑이나 미드레인지에서 던진 것들 뿐. 애초에 골밑에서 부볐던데다가, 중국의 큰 신장을 고려해 공격의 대부분은 3점슛에 집중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던진 슈팅은 의외로 말끔하게 그물을 갈랐다.
“김.민.혁! 김.민.혁!”
관중석은 시끄럽지만, 벤치와 동료들은 조용하다. 석모 정도만이 손을 슬쩍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해 주었을 뿐이다.
수비상황이 시작되고,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운 콜들이 터져 나온다.
중국애들도 긴장이 풀린 탓인지, 4쿼터는 영 나사가 풀린 플레이들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중국의 벤치에는 여유가 넘쳤다.
팅-
“서두르지 마!”
리바운드 후 빠르게 나서려던 계훈이 형을 멈춰 세운 것은 석모다.
급할 땐 반말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조금 의도적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저 둘도 친하니까. 아마 시합이 끝나면, 지금의 장면을 두고 장난 섞인 실랑이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석모가 흐름을 볼 줄 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중국의 선수 둘이 백코트를 완료한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굳이 빠르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내내 성급하게 트랜지션 오펜스를 고집하다, 비효율적인 모습을 반복했으니까.
우리가 신장이 작기에 더 빠를 것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이 불러일으킨 비극이다. 장거리 경주가 아닌, 농구 코트 내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다리가 긴 쪽이 더 빨리 나아간다.
“석모야!”
“…….”
하지만 나는 별로 템포를 늦출 생각이 없었다.
아마추어 라인에서는 조금 먼 거리. 하지만 NBA에서는 충분히 3점슛 레인지가 되는 곳에서 볼을 잡았고, 나는 내 슛감을 믿고 자신 있게 곧장 올라갔다.
이미 한 번 나에게 당한 중국 선수는 바짝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지만, 이 먼 거리에서 올라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철썩-
“와아아아아아-!!”
63 : 81.
24점차였던 경기는 순식간에 18점으로 좁혀졌고, 그러자 이번엔 중국 벤치에서 타임아웃을 불렀다. 벤치로 돌아가는 길, 내게 다가온 선배들이 머리나 엉덩이를 두들기며 격려를 해 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을 때 들려 온 한 마디.
“야, 김민혁! 너 왜 진작에 이렇게 안했어?”
“…….”
아우 씨.
죽빵을 한 번 날려줄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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