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330
2013년 1월 15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리온 밸리. 포레스트 미도우 스트리트.
“윌리!! 당신 또 멋대로 빨래를 했어요?!”
“하아- 이런.”
딸깍.
노트북의 키보드를 눌러 화면을 멈춘 윌리 팔라치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3년 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뷰포드가 직접 소개해 준 가정부인 르번 마르티네즈(Levern Martinez)는 윌리 팔라치오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의 친구들을 르번이 없는 날에만 집으로 초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고양의 앞에 쥐가 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긴 싫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뭐라고 했죠? 흰색 옷은 절대로, 다른 색의 옷과 섞이면 안 된다고요!”
“내가 그랬던가?”
“…….”
붉은색 물이 든 흰색 셔츠를 들어 올리는 르번의 시선에, 윌리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는 멋대로 세탁기를 돌리지 않겠다고 할뿐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숨을 내쉰 르번은 셔츠를 따로 챙겨가며, 자신이 내일 쇼핑을 해서 오겠다고 말을 했다. 윌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48년의 결혼 생활동안 배운 삶의 지혜는, 결코 쓸모없지 않았다.
“청소는 내가 전부 해놨어요. 그리고 음식은 냉장고에 있고요. 제가 올 모레까지 또 굶으면 혼날 줄 알아요! 그리고!”
“또 잔소리가 남았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것도 알아요.”
“…….”
“Come On, 윌리. MS는 결코 가벼운 병이 아니에요. 잘 먹어야지 낫는다고요.”
“뷰포드인가? 아니, 괜한 말을 했군. 아마도 베스이겠지.”
르번은 과거 뷰포드의 집 가정부였다.
“약속하지. 모레까지 음식을 잘 챙겨먹고, 도시락도 사무실로 들고 가지.”
“그리고요?”
“알코올은 안 된다는 것.”
“바로 맞았어요. 아예 안 된다는 건 아녜요. 전처럼 많이 마시지 말라는 거지. 아무튼, 모레 봐요.”
르번은 윌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몸을 돌렸고, 그녀가 무사히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본 윌리는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당장에 노트북의 앞으로 걸어가고 싶었지만, 방금 전 르번의 이야기가 떠올라 오븐의 앞으로 다가갔다.
안에는 아직도 뜨끈뜨끈한 그라탕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윌리는 그것을 꺼내들어 레드 와인 한 병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뭐, 와인 정도야.’
제대로 된 와인 글래스가 아닌, 머그컵에 술을 따르며 윌리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딸깍-
화요일인 오늘 윌리는 일찌감치 퇴근을 해, 그간 미뤄두었던 김민혁의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12월 22일에 있었던 PSU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바로 어제 펼쳐진 ISU경기의 편집 된 영상들을 그는 몇 번이나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PSU와의 경기에서 김민혁은 엘보우에서 자신의 패싱 능력을 마음껏 보여줬다. 스스로 컨트롤 타워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었는데, 이는 마이너 컨퍼런스에선 유니크한 재능이었다.
1월 3일에 펼쳐진 NCU전에서는 를 능숙하게 수행해내기도 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을 때, 는 그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 우리에겐 매우 낯선 이 한국인 농구선수는 때로는 팀의 모든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 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마이너 컨퍼런스이기에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는 분명 굉장한 칭찬이었다. 본인 스스로는 그것을 꿈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우우우-”
바로 어제 있었던 경기에서, 김민혁은 단 23분을 뛰며 22득점과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읠리는 표면적인 수치들 중 몇몇 부분에 주목했고, 이러한 것들을 종합한 결과는 이 동양인 포워드가 놀랍도록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벌써 몇 번이나 김민혁과 스탠리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생각했던 윌리였지만, 그간의 사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있으면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다가올 텐데, 단순한 스카우트 그 이상을 담당하는 윌리는 2월이면 더 시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안경을 뒤집어쓰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르르르-
“…….”
뷰포드로부터 휴가를 얻어낸 윌리는 다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1월 3일에 있었던 영상으로 화면을 옮겼다.
‘트라이앵글이라니. 이거 원.’
양파와 브로콜리, 미트볼이 잔뜩 들어간 그라탕을 한 입.
그리고 레드 와인을 한 입.
‘거기에 이 동양인 꼬마라.’
윌리 팔라치오는 이 조합이 자신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 생각했다.
++++++++++++
2013년 1월 25일. 오스틴, 텍사스. 웨스트 슬래터 레인. 제임스 보위 고등학교, 로버트 휴즈 코트(Austin, TX. W Slaughter Ln. James Bowie Hs, Robert Hughes Court).
“옆 자리는 비었소?”
“응?”
웨버 스테이트의 감독인 스탠리 헤이버그는 옆 자리가 비었느냐고 묻는 노신사를 돌아보았다. 평범한 옷차림에 걸친 두터운 검은색 코트와 아무렇게나 뒤집어 쓴 것으로 보이는 버건디 색의 빵모자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굳이 비어있는 자리도 많은데 굳이 옆으로 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스탠리는 이를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시죠.”
“고맙소. 읏차-”
“…….”
하루 전에 몬타나 주립고의 경기를 치른 스탠리가 바쁜 일정을 쪼개, 텍사스까지 온 이유는 제임스 보위에서 뛰는 가드를 리쿠르팅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선수와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오늘 경기가 끝난 뒤에 최종적으로 서명을 할 예정이었다.
포지션 랭킹 88위와 전체 랭킹 467위란 숫자는 그리 인상적인 게 아닐 수도 있지만, WSU가 마이너 컨퍼런스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고무적인 리쿠르팅이었다.
“흐음- 이기적인 선수를 데려가려 하는군.”
“뭐라고 하셨죠?”
“제레미 센글린. 6-2의 신장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 키가 커서 6-3이라고 하더군. 스팟업에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볼을 많이 쥐기를 원해. 수비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리더십이 있는 것도 아니지.”
“……누구시죠?”
스탠리 헤이버그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대학 감독인가?’
잠깐 이렇게도 생각을 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어쨌든 제레미 센글린 정도의 랭킹을 스카우트하려면 NCAA Division 1의 관계자여야만 하는데,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이 아니라, 단순한 스카우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스탠리는 오랜 본능으로 눈앞의 남자가 NCAA의 관계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더더욱 노신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반갑네. 난 윌리 팔라치오일세. 스퍼스의 스카우트이지.”
“스퍼스? NBA의 샌안토니오 스퍼스 말입니까?”
“그러하네. 잠깐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
스탠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을 하려다, 윌리의 목적이 조금 다른 부분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스탠리의 표정변화를 지켜 본 윌리는 미소를 씨익 지어보였다. 고작 몇 마디를 나눠봤을 뿐이었지만, 눈앞의 사내가 단순히 영리하다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지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단 첫 인상은 합격이군.’
윌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데미안을 리쿠르팅한 남자를 늘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지.”
일단은 거짓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윌리는 자신의 진짜 속내를 처음부터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편한 핑계인 릴라드의 이름을 꺼내들었다. 일단 경계심을 풀게끔 해서, 진짜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대단할 것이 없었다는 스탠리의 대답을 시작으로, 두 남자는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났을 때, 윌리가 ‘진짜 이야기’ 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녀석을 봤지. 동양인이더군. 맞나?”
“오우- 네, 맞아요. 한국에서 왔죠.”
“흐음- 어떻게 데려오게 되었지?”
“그게, 사실은.”
스탠리도 마침 경기가 따분하던 참이어서, 경계심을 풀고 마음껏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래 리쿠르팅이 결정 되었던 포워드가 막판에 방향을 틀었고, 자신의 오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아 캘리포니아로 향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민혁의 워크아웃 장소에서 몇 가지의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게 뭐지?”
“음. 그와 제가 많이 닮았다는 거죠.”
스탠리 헤이버그 또한 리쿠르팅을 망친 감독에 의해 충동적으로 뽑힌 선수였다. 하지만 이런 충동적인 결정은 곧 그의 커리어를 망가뜨리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린 감독은 스탠리를 전혀 기용하지 않았고, 전학을 선택했을 때에는 이미 성장이 멈춰선 상태였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던 WSU의 감독은 그 때의 본인은 늘, 남의 탓만 했던 것 같다는 고백을 해왔다.
“모든 것들이 제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죠. 그래서 전 늘 민혁이에게 미안했어요. 충동적인 결정이었고, 사실 그가 팀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요.”
“흐음- 그래도 뭔가를 본 것 아닌가?”
“……그는 영리해요. 소름끼칠 정도로요.”
“그런가?”
“네.”
스탠리는 김민혁이 WSU에 합류한 뒤의 일에 대해서 말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환경에서 그가 얼마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노력은 스탠리에게 죄책감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줬고, BYU와의 첫 번째 경기가 끝난 뒤에는 이 포워드를 위해 뭔가를 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얼마 전에 만난 유명학 감독에게 전화를 해, 민혁이에 관해 알고자 통화를 나눴다고 고백해왔다.
“저와 팀의 스태프는 민혁이에게 3&D 플레이어가 되라고 말을 했죠. 실제로도 녀석은 그런 선수가 되려고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다르다고?”
“네. 녀석의 재능은 뭐랄까. 조금 특별하죠.”
“…….”
스탠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유명학 감독은 민혁이에게 말로 설명을 하는 대신, 그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문제를 주어 그것에 부딪치도록 만들고, 시련을 안겨다 주라면서 말이다. 그러면 비로소, 제대로 이해를 하고 극복을 할 거라고 했단다.
“하하-! 그거 정말 특이한 조언이로군.”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사실이었어요. 녀석은 정말로 스스로의 힘으로 해답을 찾았죠. 전 대학 시절에 추락을 했지만, 이 녀석은 절대로 그렇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는 저와 다르니까요.”
“다르지. 하지만 내가 볼 땐 닮은 점도 또 많은 것 같군.”
“하하-! 닮은 거라면, 여자 친구 정도랄까요?”
“여자친구?”
최근 들어 사귄 여자 친구에 관해서도 스탠리가 이야기를 보탰다.
“제 부인과 전 고등학교 때 만났죠. 그녀는 치어리더였고, 전 선수였어요. 민혁이와 스테이시도 같은 관계죠.”
“흐음- 여자아이는 어떤 사람인가?”
“소문은 많지만, 소문과 같은 여자애는 아니에요. 오히려, 외모 때문에 주위 여자애들에게 질투를 받고 있다고 해야겠죠. 당신도 알죠? 여자들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렴. 늘 여자가 좋은 선수를 망치곤 하지.”
“하하.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윌리는 스탠리와의 대화를 통해, 몇 가지를 확신 할 수 있었다.
추선, 스탠리는 아주 좋은 감독이다. 그리고 자신이 판단한 두 남자의 시너지는 분명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나 상사도, 손아랫사람에 의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성장을 하는 법이었다.
“재미있는 대화였네, 내일 또 보지.”
“내일이라고요?”
“미술라로 갈 생각이야. 그리고 오늘 우리가 했던 대화는 그 꼬마에겐 비밀로 하고 싶군.”
“?!”
“부탁일세. 부디, 지금의 마음이 변하지 않길 바라네. 그럼.”
모자를 푹 눌러쓴 윌리가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스탠리는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화를 나눌 때에는 전혀 의식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엔가 화제는 전부 민혁에게 집중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NBA의 스카우트가 한 선수에 대해 이토록 집중적으로 묻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스퍼스가? 민혁이를?’
스탠리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은 아닌가 싶어, 볼을 살짝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아니군.’
얼얼한 볼의 통증이 이것이 분명한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
2013년 1월 26일. 미술라, 몬타나. 캠퍼스 드라이브. 몬타나 대학교, 달버그 아레나.
윌리 팔라치오가 달버그 아레나에 들어섰을 때, 몇몇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스퍼스의 치프 스카우트가 움직이는 보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자신들은 2라운드나 혹은 언드래프티(Undrafty)로 고려할 만한 재능을 위해 미술라를 찾았다.
무엇보다, 이것은 자신들의 역할이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치프 스카우트는 1라운드에 지목할 재능이나, 트레이드로 고려 할 수 있는 NBA의 선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째서?’
미네소타의 아마추어 스카우트(Amateur Scout)인 토드 섹스턴(Todd Sexton)은 계속해서 같은 자문을 이어갔다. 물론 그 해답은 절대로 찾아낼 수 없었고 말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윌리 팔라치오가 이곳에 온 이유를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흐음- 원정 백투백이로군.’
NBA에서 백투백은 이틀 연속으로 펼쳐지는 경기를 의미하지만, NCAA에서의 백투백은 하루를 건너서 치러지는 경기를 뜻했다. 체력이라는 측면에서, NCAA와 NBA 선수들이 가지는 갭은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편이다.
만약 NBA의 선수들의 체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NCAA의 선수들은 40정도 될 것이다. 실제로도 신인들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고 말이다.
“실례합니다, 저기.”
“……?”
“윌리 팔라치오? 맞죠? 와-우. 전 당신의 빅팬이에요. 당신 때문에 스카우트가 되려고 마음먹었죠.”
“자넨 누구지?”
“오-! 크흠.”
윌리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귀찮게 구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조차 귀찮았기에, 다소 퉁명한 태도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잔뜩 상기 된 표정으로 곁으로 다가온 사내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스카우트인 드루 니콜라스(Drew Nicholas)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기억 할 수는 없지만, 윌리는 이 사내가 그리 오랫동안 근무한 남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노련한 베테랑이었다면, 굳이 잠재적인 라이벌에게 다가와 먼저 명함을 건네지는 않았을 거다.
스카우트의 세계가 냉혹한 정글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에 하는 행동이다.
“기억해두도록 하지.”
“여, 영광입니다!”
싱글벙글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걸어가는 드루의 모습을 지켜보며, 윌리는 받은 명함을 아무렇게나 구겨 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자신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 사내는 자신에게 전혀 서운해 하지 않을 것이다.
윌리는 잠시 뒤에 옆자리로 다가선 빌 에반스에게,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먼저 다른 팀의 스카우트에게 정체를 밝히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그야 물론이죠! 그건 당신이 제게 처음으로 해 준 조언이잖아요! 그런 아마추어와 같은 짓을 제가 할 것 같아요?”
“훗.”
아마추어라.
윌리는 빌 에반스의 대답이 퍽 마음에 들었다.
++++++++++++
“오우-!!!”
윌리 팔라치오는 빌 에반스의 커다란 탄성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영리한 수비였어.’
몬타나의 윌 체리는 NBA의 재능으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로스터의 끝자락 혹은 10일 계약 정도의 수준이라는 한계를 동시에 가진 남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너 컨퍼런스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이 가능한데다, 볼 핸들링이나 스텝을 밟는 동작만큼은 이미 NBA 수준이라고 봐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런 남자와 1 : 1로 대치하던 김민혁이 예상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윌 체리의 스텝백을 긁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컨테스트를 한 게 아니라, 올 해로 2년차 시즌을 맞이하는 뉴욕의 애송이와 같은 수비동작이었다.
‘이만이었지, 아마?’
윌리는 이만 셤퍼트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경기에 집중을 했다.
‘좋은 판단이야.’
윌 체리에게서 농구공을 빼앗은 김민혁은 몸을 빙그르르 돌려 속공을 전개하려고 했다. 전방에는 WSU의 가드가 뛰어가는 중이었지만, 그 뒤를 몬타나의 포워드가 바짝 뒤쫓고 있었다. 어설픈 패스는 커트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드리블을 통해 직접 하프라인을 넘어서기로 한 것은 분명 영리하면서도, 탁월한 판단이었다.
“킴-!”
코트의 한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오고, 카림 자마의 앞에서 뛰어오른 김민혁이 왼손을 휘둘러 빠른 패스를 보냈다. 이곳 또한 괜찮은 판단이었다. 물론 최선은 한 번 더 돌파를 해, 골밑의 수비수를 자신에게 붙이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랬다면, 열심히 트레일링(Trailing)중인 동료에게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방금 전의 패스가 자유투 세 개로 이어졌으니까 말이다.
“응?”
그리고 몇 번의 포제션이 지나, 윌리는 코트의 한쪽 상황에 주목했다.
‘신경전인가?’
김민혁이 뭐라고 입을 열 때마다, 등에 콜먼이라고 적힌 사내는 짜증을 내기에 바빴다. 스크린 파울이 선언되고, 콜먼이 반대쪽으로 멀리 이동하는 순간에도 저 한국인 포워드는 한 순간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그의 영어 수준이 미국인을 짜증나게 만들만큼 충분하다는 결론이 섰다. 전에도 영어가 능숙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건 조금 다른 문제이다.
언어에 통달하는 것만큼이나,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방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윌리는 어제 대화를 나누었던 스탠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말로 적응력이 좋군. 코트 위에서도, 또 밖에서도.’
“훗-”
슬쩍 입 꼬리를 올린 윌리는 자세를 조금 앞으로 숙여, 다음에 이어질 상황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지금까지 패스를 받는 것에 소극적이던 콜먼이라는 남자가 코너에 서서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민혁은 일부러 공격수에게서 멀어지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돌파를 하는 경로는 충분히 막아 놓았다.
“에이-! 대체 이게 무슨!”
발끈한 스탠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윌리는 다시 한 번 코웃음을 쳤다.
저 당돌한 꼬맹이는 지금, 콜먼을 완전히 신경전에서 제압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성공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슈터가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골대를 가르기란 어려운 일인 법이다.
실제로 농구공이 림을 맞고 튀어 오른 순간, 윌리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한 번 마주쳤다. 스탠리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분명 저 꼬맹이의 머릿속에는 이런 과정들이 미리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콜먼을 발끈하게 만들어 점퍼를 던지도록 만들면, 그 슈팅은 분명 높은 확률로 림을 외면할 것이라고 말이다.
‘좋은 수비를 가졌어.’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지만, 분명 좋은 수비수로 발전을 할 가능성이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공격과 수비 모든 부분에서 큰 업사이드(Upside)를 갖췄다는 의미다.
오늘 WSU는 결국 패배했지만, 윌리는 확신했다.
‘이 꼬마는 분명히 성장할 거야. 그것도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달버그 아레나를 빠져나가는 길, 윌리는 택시 안에서 뷰포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부르르르-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윌리는 내내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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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와 윌리의 대화에 관한 내용은 61화에 있습니다.
& PSU전은 72화 / NCU와 트라이앵글은 76화에 있습니다.
& ESPN의 코멘트는 78화에 있습니다.
& ISU와의 경기는 81화입니다.
& WSU와 몬타나의 경기는 86화에서 90화 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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