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dark-haired alien RAW novel - Chapter (1383)
〈 1383화 〉천마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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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할 말 없냐고.”
나는 세계수를 응시하면서 낮게 말했다.
이 새끼가 내 꿈에 간섭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나의 생각 정도는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적어도 사막에 있을 때까지는 나름대로 나한테 간섭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으니까.
이후로는 내가 존나 씹쎄져서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 적어도 그전까지는 내가 품고 있던 의문을 눈치채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난 세계수 이 씹년이 내 생각을 알아채고 연락을 끊은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뭐. 지금 들어야겠지.
“…”
그러나 세계수는 침묵했다.
“할 말 없는 겁니까? 세계수님?”
단지 샤흐란의 모습을 빌렸을 뿐인 세계수의 표정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힘을 측정한다. 지금 이곳에 강림한 세계수는 본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공격한다고 해도 딱히 통하지는 않을 터다.
이 신들은 아직 내가 잘 모르는. 닿기 어려운 그런 이상차원(異相次元)에 존재하는 놈들이니까.
따라서 지금 놈 역시 나를 해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해할 수 없는 상태. 대화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들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늘 그렇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대화가 아니라 심문이니까. 폭력이 제한된 상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아무튼 그리 침묵하던 세계수가.
“무슨 말을 원하지.”
어조의 변동 없이 말했다.
아니… 어조 변동이니 뭐니 하는 건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 이것은 이 세상의 생명체가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온 무언가다. 우리의 모습을 빌리고 우리의 말로 소통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운 무언가에 불과하다.
“흐흐흐, 무슨 말을 원하긴.”
잡아 땔 생각이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 결과 세계수가 이상한 신탁을 내려 엘프들과 적대하게 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리된다면 샤흐란을 구워삶아 주도록 하겠다.
그리 생각하던 찰나 세계수가 말을 이었다.
“너는 나의 부탁을 훌륭하게 완수해 주었다.”
“뭐?”
“지상에 떨어진 힘의 파편들을 회수했군.”
ㅡ파앗.
순간 저 하늘의 배경이 변모한다.
저번에 봤던 것과 동일한 풍경.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전부 차원의 틈에 난 구멍이었다. 그 틈들은 마치 색이 반전된 밤하늘과 거기에 떠 있는 별빛들 같았다.
리치 이 씹새끼가 뚫고 있는 구멍들.
“하지만 여전히도 틈은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더욱 빠른 속도로.”
ㅡ츠팟.
그 말대로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쏘아진 흑색의 빛줄기가 하늘에 구멍을 내고 있는 상태였다.
“…”
밤하늘에는 별이 정말 많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단위의 별빛이 있다. 그러나 어두운 밤하늘은 결코 별빛만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렇게 뚫리고 있는 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하늘이 무언가에 의해 뒤덮인다는 내용의 불길한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불쾌한 암시로군.
“저 틈을 통해 모종의 의도를 가진 외부의 존재들이 넘어오고 있는 중이다.”
세계수는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말을 돌릴 생각인가?
“말했듯 우리들은 저것을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나, 지금의 힘을 지닌 너라면 저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 수액을 내려줬고 힘의 파편을 탐색하는 일을 보조했다.”
명확한 정리로군.
“너와 했던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달리 무엇이 궁금하지.”
“…”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이거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새끼 지금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민감한 질문을 피하고 싶다고 느끼는 것이 분명해.
생명체를 벗어난 존재라고 할지라도 이 김캇트의 통찰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 이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인가.
웃기는군.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것을 왜 막아야 한다는 것이냐?”
내 뻔뻔한 태도에 세계수는 잠시 날 응시했으나, 침착하게 설명했다.
“외부의 존재들이 과도하게 넘어온다면 방어할 능력이 없는 이 세계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모르지 않을 텐데.”
“당연히 알고 있다.”
그걸 내가 모르겠니.
당연히 그런 이계의 괴물들은 내 상대가 안 되지만 뭉텅이로 한 번에 쳐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이 멸망급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나 혼자서 전세계를 다 지킬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세계수 네가 말한 멸망의 정의가 무엇인지 먼저 묻고 싶은데.”
“무슨 뜻이지.”
“정확히 무엇을 멸망으로 정의하느냐는 거다. 명확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영혼을 지닌 존재들이 주축이 된 세상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다.”
“영혼이라?”
이 세상의 멸망을 그런 식으로 정의하다니.
좋다.
이 신 놈들의 생각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대충 감히 잡힌다. 일단 놈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알아온 사실에 의하면 이계의 괴물들 역시 영혼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럼 정확히 어떤 존재들이 그 영혼이라는 걸 지니고 있는 거냐?”
“수많은 생명체들.”
수많은 생명체.
“하지만 그 중 의미가 있는 영혼이라면 단연 지성체들의 영혼이다. 엘프와 인간. 드워프 등의 존재라고 말하면 이해가 가능하겠지.”
지성체라.
“왜냐하면 신앙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지성체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럼 몬스터들도 영혼이 있기는 하다는 건가?”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의미심장한 대답이다.
“영혼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신조차도?”
세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지성체의 영혼과 신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소리인데. 맞나?”
“나는 엘프의 신이다. 따라서 엘프의 영혼과 신앙을 중요하게 여긴다.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긴 해.
아무튼 이 새끼랑 소통이 된다는 것 자체가 존나 신기하긴 하다.
“세계수. 저번에 분명 내 물음에 이렇게 말했었지.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
“네 정체는 무엇이지?”
“나는 세계수. 엘프들의 신이다.”
“신은 무엇을 하는데?”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다. 너는 네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나?”
나는 퓨전유교의 구도자이며.
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하지만 명확하게 설명한다면 호흡부터 시작해서 눈을 깜박이거나 팔을 움직이는 둥. 뭐 하는 게 참 많기는 하지.
“대표적인 거 있잖아.”
“엘프의 신인 나는 엘프의 안녕과 영혼을 관리한다.”
“엘프의 영혼을 어떻게 하는데?”
나는 다섯 살 먹은 애새끼처럼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자 짜증이 난 것인지 세계수가 말했다.
“네가 물을 권리도, 내가 답해줄 의무도 없다.”
“이런 시발. 그럼 너는 언제부터 엘프의 신이었지?”
“그 또한 마찬가지다. 엘프들에 대한 것은 온전히 나의 권리다.”
“…”
말 못한다는 거군.
당장은 서로를 해할 수 없는 상태라서 협박도 안 통할 것 같은데.
“그럼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지? 이 땅에 신이라는 존재들이 없었던 시대를 안다. 타이탄이라는 거대 종족이 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지. 당시엔 신이라는 게 없다고 알고 있는데.”
“의심의 근거는 그것인가.”
“그래. 속 편하게 말 좀 해보지?”
“…”
세계수는 침묵했다.
“그런 것은 스스로 알아내야 하겠지.”
“뭐 임마?”
“중요한 것은 이 세계가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엘프들의 안녕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안녕 또한 원하고 있다.”
ㅡ스르륵.
동시에 세계수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 도망치지 말고 대답해!!!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고 언제 온 것이냐!!”
ㅡ화아악.
내가 놈을 꾸짖은 순간 다시금 섬광이 몰아친다. 동시에 세계수가 떠나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새끼… 결국 대답을 강제할 수단이 없으니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가 없었다.
뭐가 됐든 저쪽이 말하기 싫다면 방법이 없다.
“씨발.”
스스로 밝혀내는 것 말고는 여전히 방법이 없구나.
하지만 내가 너희들의 차원에 닿게 된다면 무시할 수 없을 테지. 서로를 해할 수 있는 곳에 닿게 된다면 대답쯤은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세계수가 말했던 대로, 지금 중요한 것은 리치였다.
놈은 여전히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수는 그것을 위협으로 여기고 있는 상태고. 이 내가 세계를 수호해주길 원한다.
“너희들이 취할 영혼들이 번영하기 위해서?”
그리 생각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선한 존재라고는 할 수 없다. 단지 나와 부분적으로 이해가 일치하고 있을 뿐.
ㅡ파앗.
곧 풍경이 완전히 변화했다. 나는 어둡기 짝이 없는 세계수의 구멍 속에 있었다. 세계수의 기운은… 멀어졌는지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이 씨발련. 존나 개 빠개버리고 싶네.”
이대로 세계수를 뿌숴버릴까 하는 충동이 나의 심장을 강하게 옥죄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엘프들이 좆같은 새끼들이긴 해도 몰살당해 마땅한 존재는 아니다. 그들의 신을 명확한 증거 없이 죽일 수는 없지.
천마 김캇트의 도리란 그런 것이다.
ㅡ끼이익.
나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 * *
“하앗…!”
문을 열고 나가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샤흐란이 갑자기 주저앉았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암컷 향기를 풍긴다. 갑자기 발정을 한다고? 나 볼 때마다 발정하는 내 여자들 급으로 쉽게 발정을 하는 중이다.
뭐, 몇십 분 못 봤다가 갑자기 봤다고 새삼 반하기라도 했냐?
어이가 없지만 당연한 일이었으니 봐주도록 하겠다.
“뭐. 왜. 불만 있어?”
“아, 아, 그… 그런 게 아니라…”
시뻘게진 샤흐란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고 하면서 더듬더듬 대답했다. 방금 전의 샤흐란의 모습을 빌린 세계수랑은 완전히 딴판이다.
“아니면 뭔데.”
“다, 당신의 표정이…”
내 표정?
“화가 나신 것 같으셔서… 몹시 사나운 표정이라 그만…”
“잔말 말고 일어나 이 새끼야.”
이 김캇트는 화난 얼굴조차도 하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구태여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아아… 어쩜. 당신 앞에만 있으면 천박해지는 것 같아서…”
“실제로 천박한 거 맞잖아.”
“…죄송합니다.”
일어난 샤흐란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공손하게 허리 숙여 사죄했다. 이제 이곳에 딱히 볼 일은 없다. 내가 걸어나가자 샤흐란이 내 뒤를 쫓았다.
“저… 세계수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별일은 아니고. 엘프들 영혼은 세계수가 관리한다더라.”
“네? 그런 당연한 물음을 하러 찾아오신 거였나요?”
“당연… 아니. 그것만은 아니고.”
그래.
이 세상 사람들이 그리 여기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었지.
“별건 아니다. 이 세상이 위험에 처했으니 나보고 좀 해결해 달라고 했지.”
“역시! 세계수님께서 당신을 정말로 신뢰하고 계시나 보네요!”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뿐.
“그렇다면 당신을 지원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필요 없다니까.”
“아니. 굳이 결합을 대가로 하는 말은 아니에요. 종교적으로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그러냐? 그럼 해.”
“…”
그런 이유라면야 딱히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근데 원래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내가 끝까지 거절하니 그냥 대가 없이 챙겨주겠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저에 대해선 따로 다른 말을…?”
“니 말은 딱히 안 하던데. 안 물어봤거든.”
“…그런가요.”
그 말에 샤흐란은 조금 침울해진 듯 보였다.
얘 지금 자기 신한테 떼쓰고 있는 데 관심까지 못 받는 것이라고 느낀 것인가? 샤흐란은 애정결핍이 좀 많이 심해 보이는 타입의 여자인데, 그게 좀 힘들기는 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아무튼 세계수님과 나누신 이야기를 조금 더 진지하게 듣고 싶은데, 그건 괜찮을까요?”
“뭐… 그것까지 거절할 이유는 없지.”
이계의 침략자들에 대한 것을 조금 자세하게 풀어줘야겠다. 그런 이야기 정도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럼 자리를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라.”
그렇게 나는 다시 궁전의 안으로 들어간 뒤에 샤흐란과 헤어졌다.
“테에엥. 붕쯔붕쯔. 테에엥. 붕쯔붕쯔.”
할 것도 없어서 할당된 방으로 들어가 씻은 뒤에 마음을 가라앉히는 진언을 읊으며 명상을 하고 있으니.
ㅡ끼익.
곧 엘프 시녀들이 날 데리러 왔다.
“…”
여진히도 말이 없는 시녀들이다. 일종의 무녀라고 했던가. 속이 비치는 투명한 재질의 옷가지를 걸친 이 엘프 시녀들은 흡사 옷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영장류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알겠다. 가자.”
그렇게 나는 시녀들을 따라 샤흐란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고.
ㅡ끼익.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짙은 최음향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