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71
169화. 시나리오 게이트 (3)
게다가 머리 아플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래잡기가 시작된 지 한 3분쯤 지난 무렵이었나.
“으, 으으으…….”
C급 헌터는 요정을 잡지 못한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는지 곧 자리에 멈췄는데.
그는 가만히 선 채로 식은땀만 줄줄 흘리더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제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기에 이르렀다.
턱!
다른 공략자를 붙잡은 것이다.
“헉, 헉…….”
그런데 그 대상이 왜 하필 나였으며.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저지를 건 다 저질러놓고 무슨 염치로 이제야 사과일까.
번쩍.
나는 내 어깨로 옮겨붙은 빛의 고리를 무심히 쳐다봤다.
여기에서 내가 메우지 못한 허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신성나무 묘목]으로 방어력은 높였다 하나, 그 외의 육체 능력은 여전히 바닥인 상태니.
‘뛰어오는 걸 피할 수 없었어.’
음.
하지만 저 헌터는 내가 반사신경이 떨어진다는 걸 모를 텐데.
“왜 하필 S급을?”
나는 오른팔 쪽을 흘겨보며 질문했다. 상식적으로, S급에게 술래를 떠넘기면 금세 돌아올 게 뻔한데 무슨 생각으로 이랬는지가 궁금했다.
“그, 그게. 죄송해요. 저는 도저히 술래인 상태로는 못 있겠어서, 지, 진짜 당장 미칠 것 같아서……!”
“…….”
“그, 그런데 김기려 헌터님은 S급이시잖아요? 요정도……. 잡을 수 있지 않아요? 네?”
“아뇨. 순간이동을 해대서 솔직히 어렵겠는데요.”
“그래요?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C급 헌터는 공황에 빠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도 S급이시잖아요.”
꼴에 중급 헌터니, 본인도 이런 특수 게이트에선 등급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걸 뻔히 알 텐데도.
“S급이면 다를걸요? 그, 벌칙을 받게 돼도 튼튼하니까. 안 죽지 않을까요. 네? 그러니까 술래 역할은 헌터님이 가지고 계셔주시면 안 돼요? 제, 제발. 제발 돌려주지 마세…….”
“이 주임님!”
보다 못한 선우연이 직장 동료에게 벌컥 소리를 질렀으나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역할 이동 따위로 옥신각신해봐야 의미가 없어.
나는 술래를 건네받자마자 속부터 진정시킨다.
여기에서 조급하게 표식을 돌려주려 하면 안 된다. 이쪽은 등급을 위조한 허위 등록자지만, 상대는 나름 C급의 베테랑이었으니까.
‘민첩성 승부에서 밀린다.’
그래서 판단하기를.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행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없애면, 나한테 술래 역을 떠넘긴 저 빌어먹을 직원 자식도 언젠가 빈틈을 보일 테니.
‘그걸 제외하더라도 사람들이 나한테서 너무 멀어지지 않게 해야 하고!’
파들파들.
나는 떨리는 손을 주머니 안으로 감추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직원분 말씀이 맞아요. 술래역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게 낫겠네요.”
“예?!”
“애초에 던전 안에서 너무 혼란에 빠지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일단 다들 진정하시라는 의미에서…….”
술래는 넘기지 않겠습니다.
이쪽이 안심시키듯 담담한 척하자 예상대로 주변 사람들이 도망치는 걸 멈췄다.
긴장이 풀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 진짜 가지고 계실 겁니까? 정말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증거잖아요. 걱정 말고 이리로 오세요. 괜히 길 잃지 마시고.”
“음.”
“요정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잡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벌칙이 사람을 뜯어먹는 거라면 적어도 그땐 가까이 오겠죠.”
나는 술래 후보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냈다.
이러는 와중에 팔에 붙은 표식을 꾸준히 분석했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은 F급의 마력으로 지울 수 있는 규격은 아니었고.
즉, 살고 싶으면 어떻게든 이걸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려야 하는데…….
‘이 망할 자식아!’
문제는 내가 목표로 하는 그 C급 헌터가 죽어도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직원은 술래를 넘기지 않겠다는 내 말을 듣고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 중이었거든.
교묘하게 설득해봐도 절대 가까이는 안 온다.
게다가 요정이 약속한 10분이 다가오자, 안심한 듯 보이던 다른 사람들마저 은근슬쩍 술래를 멀리하여…….
‘으윽.’
초조하다.
저들이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술래를 넘길 때 F급의 신체 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내 버릴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이 굼뜬 몸뚱이부터 어떻게든 할 걸 그랬나? 아니, 그렇지만 재산은 한정적인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나는 생각이 복잡해졌고 이때 하늘에서 요정이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앞으로 1분 남은 거예요~”
사람들이 술래잡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여태껏 별 짓거리를 다 했거늘.
괴물의 신호 한 마디로 다시금 폭등하는 위기감. 공략자들은 바짝 긴장한 태도로 내게서 두어 걸음을 더 물러났다.
솔직히 요정의 저 해맑은 머리를 으깨버리고 싶다.
‘하아아.’
이쯤 되면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우선 위치상 현재 제일 가까운 사람은 선우연.
그러나 저쪽은 B등급이다.
지금만 해도 얼음장처럼 굳은 얼굴로 내 표식만 힐끔힐끔 살피고 있는데, 이쪽이 행동에 나서면 바로 쏜살같이 도망치겠지.
B급이나 되는 각성자와 술래잡기를 하려 드는 것은 무모한 행위.
그렇다면 자연스레 희생자는 그녀를 제외한 인원에서 골라야 하고.
“헌터님, 역시 지금부터라도 요정을 잡아보시는 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가능해요. 저건 딱 봐도 순간이동 스킬을 쓰잖아요.”
“그렇지만.”
“나뿐만 아니라 정하성이 와도 에스더가 와도 그건 안 돼. 이것 하나는 확실하니 미리 힘 빼게 하지 마세요.”
남은 시간은 50초.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한테 고리를 옮긴 저 무뢰한에게 복수하느냐. 아니면 안전하게 느린 분석관을 노리느냐.
하지만 역시 이 문제에는 정답이 존재하는 것 같다. 확실하게 가려면 모름지기 약자를 노려야 하는 법.
협회 소속인 저 C급 헌터는 종료 직전에 고리가 옮아도 이를 받아칠 수 있고.
생각해보면 저쪽도 억울하게 첫 술래가 된 것뿐인데, 살고 싶어서 고리를 넘긴 것에 홀로 앙심품어봤자 의미가 없으니.
‘그래.’
그렇다면, 언제나 하던 가치 판단이다.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대신 죽어주긴 어렵지.’
나는 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죄 없는 약자를 희생하기로 했다.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먼 알파우리인다운 발상.
이쪽은 이타심을 좋아하는 몸이긴 하나, 정작 본인이 선하다고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으니.
그런데, 몇 초쯤이 지나자 타인이 갑자기 그 선택을 저지하고야 만다.
“……!”
불시에 다가온 마력.
등에 닿은 누군가의 손짓.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한 각성자의 길게 뻗은 흑발.
“무슨……!”
-턱.
반짝!
내 등을 만져서 술래의 표식을 가져간 선우연은 이윽고 주춤대며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도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앞으로 3초!”
그리고 이 순간. 허공에선 장난의 끝자락을 알리는 신호가 흐르는데.
“2.”
“1.”
“그게…….”
요정이 불쾌한 셈을 할 때쯤.
정장 차림의 지구인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행동의 이유를 밝혔다.
“…기려 씨는 S급 헌터잖아요.”
신기하게도, 어느 협회 직원이 둘러댄 말과 그야말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사유로.
“S급 헌터니까…….”
나의 표식을 가져갔음을.
그녀는 다가올 미래를 상상했는지 숨을 크게 삼킨다.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다 됐다! 그럼, 술래는 지금부터 벌칙!”
그와 동시에 끝난 10분.
곧이어 요정의 손끝에 녹색 잔상이 맺힌다.
그 잔상은 강력한 섬광으로 성장해 빛이나 다름없을 속도로 기지개 켰고.
이윽고 들리는 것은 퍽, 하는 둔탁한 소음.
“선우연!”
협회의 B급 헌터는 그렇게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배가 뚫려 쓰러졌다.
까르르륵.
날개 없는 요정은 이만한 일을 벌이고도 꽤 가볍게 웃었지.
마음 같아선 저 요정의 가죽을 당장 벗겨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복부가 관통된 선우연은 계속해서 바닥에 피를 쏟고 있으니까.
“왜?”
상대는 이미 그 이유를 전했지만.
나는 여전히 지구인이 한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남이 S급 헌터인 것이 대관절 무슨 상관이라고.
나는 선우연의 상태를 다급히 살폈다.
옆구리를 관통한 지름 4cm가량의 상처.
지금도 벌어진 환부에서 정온동물 특유의 미지근한 혈액이 유출 중인데, 이걸 보니 문득 든 생각은…….
‘어?’
즉사가 아니네?
그래. 즉사가 아니다.
공격을 맞은 부위는 급소와 관련이 멀었고, 격분을 가라앉혀보니 출혈량 자체도 딱히 대단치 않던 터라.
‘잠깐만, 인제 보니 거의 경상인데?’
그러고 보니…….
축제 때 겪은 요정들의 행동 때문에 다들 은연중에 벌칙이 죽음일 거라고 착각했을 뿐.
돌이켜보면 저 아파라는 녀석이 놀이에서 지면 죽인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군.
선우연이 치료 가능한 상태라는 걸 깨닫자마자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된다.
“포션!”
나는 이윽고 뒤쪽을 향해 외쳤다.
“누구 회복약 챙겨온 사람 있어요? 당장 줘봐요. 어서!”
그러자 협회의 다른 직원이 상비약을 꺼내 들었다. 얼추 중하급 회복약 정도 되어 보이는 액체.
나는 그가 준 약품을 눈앞의 상처에 들이부었다.
다행히 마력포가 뼈와 주요 장기를 비켜 가서인지 재생은 제법 빠르게 진행됐고.
지금까지의 정황을 봤을 때.
선우연은 부상이 심각해서가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 긴장해서 기절했을 확률이 높으니까.
“아…….”
역시나, 어깨를 흔들어 깨우자 어렵지 않게 의식도 돌아온다.
부스스 눈을 뜬 그녀는 물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호흡을 깊게 들이켰다.
“어? 머리가 있……. 제가 안 죽은, 그, 살아있어요?”
아직 비몽사몽한 모양인데.
나는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옆에 앉아 설명했다.
“벌칙이 달랐어요.”
“네?”
“광장의 요정들이 살인을 해대서 우리가 오해했는데, 이번에는 몸에 구멍만 뚫고 끝이었다고요.”
그러자 선우연이 입을 작게 벌린다.
그녀는 본인의 생존이 영 놀라운 모양이지만, 그래도 내가 느낀 당혹감에 비할 바는 아니지.
이쪽은 저 B급 헌터가 자기 목숨을 내다 버리는 짓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
“아니, 그런데 대체 술래는 무슨 생각으로 가져간 거예요?”
나는 진심으로 외계인의 뇌 속이 궁금해져서 물어봤는데, 이에 선우연이 답했다.
“기려 씨는 진짜로 그걸 넘기지 않을 기세길래요…….”
“예?”
“어쩌면 이런 곳에서 S급이나 되는 헌터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건 좀, 뭔가 아니라……?”
선우연은 그렇게 용감한 희생을 했으면서도 여태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죽음을 마음먹은 여파가 남은 듯했다.
“사실은 이 S급이라서라는 말도 변명이고, 그냥 속이 불편해서 그랬지만요.”
“….”
“…저는 부모님께서 그렇게 되신 이후로는 남이 눈앞에서 다치는 걸 도저히 못 보겠어요.”
“….”
“그래서 제 마음 편하자고 그랬어요. 사실은, 마음 편하려고…….”
그녀는 뒤이어 전했다.
자신은 원래 이런 성격이라 당신이 아니었어도 술래는 가져왔을 테니 미안해하지 마시라.
물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쪽은 알파우리의 영혼인 만큼 죄책감이 그다지 없는 참이었지만…….
나는 선우연의 발언을 듣고 오랜 침묵에 잠겼다.
“헌터님?”
그리고 이 순간, 허공에서는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툭 끼어든다.
“-다들 제 소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높게 찢어지는 듯한 웃음. 요정 특유의 음정.
“노는 거 재밌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오늘 일은 일기에 남길래요. 왕국에 여러분이 와줘서 기뻐요.”
재잘재잘.
이때 다른 사람들은 요정의 발언에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인상을 팍 찡그렸지만.
아무리 짜증 나는 말을 해도 저건 그저 설계도대로 행동하는 인형일 뿐.
“팔 잡고 서세요.”
“아, 감사합니다…….”
물건에 감정을 쏟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래서 나는 요정을 무시하며 선우연이나 챙겼다. 회복약을 썼다곤 하나 당분간은 부축이 필요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