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96
194화. 읍소 (2)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비웃음이란 말인가.
“아하하! 아아, 하. 하여간 우리 기려 씨가 무슨 이유로 그런 고초를 다 겪었나 했더니.”
“에, 에스더 헌터?”
“맙소사.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사연일 줄은 진짜로 몰랐네.”
에스더는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한참을 폭소하더니 30초가 지나서야 대화를 잇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어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을 소리였다.
“아무튼, 먼저 결론을 밝히자면 기려 씨가 S급이 아닐 확률은 0%예요!”
“뭐라고요?”
“벌써 가는 귀를 드셨나요? 김기려 헌터는 같은 최상급 각성자가 보증하는 진짜배기 실력자라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대상으로 착각을 하다니!
에스더는 방금의 말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진 것이었는지 아직도 드문드문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협회장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색이 어두워진다.
긴장. 불안감.
점차 부정적인 기색이 감도는 중년의 표정.
“뭐… 뭘 근거로 0%라고 말하는 겁니까? 이, 이건 나도 다 믿을 만한 정보처에서 들은 겁니다. 무려 미국에서-.”
“미국이요?”
에스더는 특유의 높은 톤으로 말하다가 이내 자세를 바꾸었다.
“흠, 그럼 저도 공평하게 알려드릴게요. 일단 제 정보처는 일본이긴 한데요.”
다리를 꼬아서 조금 더 편하게 앉은 것이다.
“제가 예전에 게이트 스타라는 길드의 창립일 기념행사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어떤 헌터를 만났는데…….”
참고로 미국의 파티장에 있었으며 기려와 대화한 적은 없는 인물의 정체란 바로 이 사람.
“그게 ‘야마사카 이오리’랍니다.”
그녀와 번호를 교환한 해외 인사는 일본의 바람 속성 S급 헌터였다.
“그런데 마침 저는 애니메이션을 꽤 좋아하는 편이니까요. 이오리 헌터는 한국의 아이돌에 호감이 많고요.”
“예?”
“이렇게 각자의 문화에 관심이 있으니, 메일만 몇 번 나눴을 뿐인데 서로 금방 친해지지 뭐예요.”
“요, 요점이 뭐요?”
“서론이 너무 길었나요? 그만큼 친해졌으니까 최근에는 이오리 씨에게 드래곤 토벌 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요점이긴 한데…….”
에스더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상대가 그토록 원하던 본론을 말해준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예요. 일본의 S급 게이트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면 절대로 그 인간을 가짜라고 말할 수 없다고요.”
가고시마의 S급 게이트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협회장은 에스더의 발언에 당황한다.
왜냐하면, 그는 오히려 가고시마의 레이드의 정황 때문에 기려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기려가 사기꾼이라고 확신하게 된 데에는 스펙트럼 사의 압박이 가장 큰 작용을 했지만.
‘김기려 그 녀석은 일본에 보조원 역할로 갔었잖아……?!’
굳이 서포터를 자청했던 그 남자의 행동도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상했다.
상대를 가짜 S급이라고 가정하면, 이는 부족한 실력을 감추기 위한 연막일 확률이 높으니.
“으음, 이걸 어디까지 알려줘도 되려나.”
중얼중얼.
그런데 저주 속성의 각성자는 이 순간에도 평온한 어조로 그저 말을 이을 뿐이었다.
“우선 한 가지 비밀부터 말해드리자면, 기려 씨는 그 독룡의 둥지에서 독 웅덩이에 풍덩 빠지고도 멀쩡했답니다.”
“무슨…….”
“물론 딱히 대단한 업적은 아니죠. 그곳의 독은 다른 일본의 S급들도 다들 어느 정도는 버텼다니까.”
이 말에 협회장은 잠시 행동을 멈춘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듣고도 아직 그 오해가 건재할지는 모르겠군요. 김기려 헌터는, 그 던전에서 드래곤 1마리를 상처조차 입지 않고 단독으로 죽였어요.”
“뭐요?”
“일반 몬스터라고는 해도 그곳의 용은 일본의 헌터들이 단체로 달라붙어 사냥해야 할 정도로 질겼는데 말이죠.”
그 헌터는 분명히 일본의 사냥꾼들을 뒤에서 돕기만 한다고 했었는데, 어째서 그 인간이 용을 제 손으로 죽일 수가?
게다가 뒤이은 설명은 기어이 협회장의 폐부마저 굳게 만들었다.
그 차가운 인상의 헌터가 용을 죽일 때 사용한 수단은 정말이지 흔하고 유명한 스킬이라.
“게다가 방금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김기려 헌터가 사냥에 [바인딩]을 썼다는 거예요.”
바인딩.
그것은 스킬석의 형태로 흔히 등장하는 마법으로, 특수한 효능을 가진 만큼 이것의 습득 과정은 개인의 소질을 많이 탔다.
정확히 말하면 염동력에 재능이 없다면 스킬석을 사용해도 몸이 기술을 익히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운 좋게 이를 배울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는 제법 높은 유용성을 보인다.
C급, D급 등.
위력이 고정된 경우가 많은 여타 스킬석들과 달리 바인딩만은 언제나 각성자의 스펙을 따랐으니.
“혹시 협회장님은 모르실까요? [바인딩]의 출력은 각성치에 비례해 강해진다는 거?”
에스더는 금발의 남자가 언젠가 내뱉었던 것과 같은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이에 협회장은 무어라 반박했으나.
“그, 글쎄요. 아무리 스킬의 전제가 그렇다 해도. 아이템 같은 다른 수단을 써서 조작한 게 아니겠습…….”
이번에는 여인 쪽에서 너털웃음과 함께 말을 끊었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네. 회장님, 지금까지 들으신 이야기를 전해준 건 바로 일본의 이오리 헌터예요.”
“예?”
“그는 [감정] 스킬의 보유자라고요!”
헌터 협회의 회장.
이것도 따지자면 나름 엽사의 업계에서 일하는 직업이니. 고병도가 각성자의 생태를 전혀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설마…….”
고병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말뜻을 알아듣는다.
감정사란, 누구보다도 던전의 아티팩트와 친숙한 자들.
그렇기에 분석 스킬의 보유자들은 다른 헌터들보다 아이템의 힘을 예민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네. 그 설마가 사실이랍니다. 제가 혹시 몰라 물어봤는데 김기려 헌터는 무려 레이드 당시 ‘무기’를 착용하지 않았다더군요.”
그런 일본의 감정사가 판정내리길.
김기려 헌터는 가고시마의 S급 게이트에서 스킬의 위력을 올려주는 장비 따위는 착용하지 않았다.
아니, 비단 위력 관련 아이템뿐만이 아니다.
품 안에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 단검과 작은 상자를 제외하면 그는 아예 맨몸으로 공략을 진행한 정도였으니.
“당신이 상상하던 뭔가 대단한 아이템의 조작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거예요.”
…물론 이 말과 달리 사실은 있었지만.
기려가 무한동력 코어로 스킬의 위력을 높였던 것은 지구인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기려 씨가 어떻게 가짜겠어요? 이미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요.”
“….”
“애초에 나는 이렇게 확실한 사람을 회장님이 왜 오해했는지도 모르겠네~ 자기가 먼저 집 주소를 퍼트린 주제에, 고작 30억 정도의 배상금을 낸 게 아까워서 속았다고 씩씩대며 칼을 간 건 더 실망이고.”
또한 김기려가 진짜 S급이라는 가정을 하면, 이 자리의 누군가는 주워 담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셈이 되는 상황.
‘기, 김기려가 S급 게이트에서 용을 직접 죽이기까지 했단 말이야? 그럼, 일본 놈들이 인터뷰에 대고 한 말도 단순히 허례허식이 아니었고?’
협회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린다.
초조한 표정으로 변해가는 고병도의 반응과 달리, 에스더는 머릿속으로 ‘협회장이 알라이를 부른 건 확실해졌으니 유스티티아 대여는 취소해도 되겠다. 돈 굳었다.’라고 생각할 뿐이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설마, 김기려 그 헌터가 진짜로…….’
누군가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협회장이 저지른 일로 인해 탄생한 불씨는 아직 제대로 타오르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기려 씨는 참 다시 봤어요. 그렇게 냉정하게 생겼는데, 소중한 정보를 유출한 협회장님을 여태 살려줬잖아요.”
“예?”
“게다가 협회에서 등급을 감췄던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도 칭얼대니 그런 계약까지 해서 몸소 안심시켜줬고요.”
“…윽.”
“의외로 소시민을 상대로는 너그러운 것 같은데.”
잠시 중얼거린 에스더는 턱을 괴고 어딘가를 훑어봤다. 정확히는 협회장의 경호원들이 서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미안하지만 나는 더 이상 못 봐주겠네요. 무슨 오해가 있었든 간에, 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각성자에게 칼을 빼 들 수 있는 위험한 종자랑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요.”
“이보시오.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참고로 또 변명할 거면 때려치워요. 아까는 타이밍을 놓쳤지만 나는 말꼬리가 긴 범죄자는 딱 질색이니까.”
탁.
“우리는 이미 충분한 기회를 줬어요. 그런데도 당신이 선을 넘었으니.”
에스더는 꼬아 앉았던 다리를 다시 바르게 하며 구둣발로 불만스럽게 바닥을 두드렸다.
“기려 씨를 대신해서 이제부터는 내가 처벌을 할 생각이에요.”
“허!”
“알라이에 대한 건은 일단 그놈의 협회장 자리부터 내놓은 다음에 이어서 천천히 논하자고요. 뭐든 순서가 있으니까요. 알겠죠?”
소파에 앉은 S급 헌터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전할 건 다 전했다는 듯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탕!
이때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테이블을 내리치며 분노를 표현했다.
“거, 듣자 듣자 하니까 새파랗게 어린 년이 아까부터 버르장머리가 없이!”
“깜짝이야.”
“그 배워먹지 못한 말본새를 다 참아줬더니 이제는 뭐? 자리를 내놔?”
고병도 협회장은 씩씩거리며 눈앞의 S급을 삿대질했다.
“어디 그게 그렇게 쉽게 될 것 같나 봅시다. 한국마탑 길드장!”
“으음.”
“벌써 잊었나 본데 나는 당신이 정부와 밀약할 때 그 자리에 버젓이 있던 사람이에요!”
“아.”
“댁이 사형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해왔다는 걸 똑똑히 알아!”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일까.
분명 기사화되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약점을 꺼내 들었거늘.
에스더는 협회장의 말이 이어질수록 왠지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짓기 시작하여.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협회장의 협박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뭐, 뭐……?”
“이봐요. 요즘은 당신 같은 기득권층들이 워낙 횡포를 부려준 덕분에 사법 불신이 만연한 시대가 됐어요. 그러니 그깟 게 뭐 큰 흠이겠어요.”
보복. 폭력. 사적제재.
요즘의 사람들은 으레 그런 자극적인 일에 열광하곤 했으니. 죄 없는 이를 해친 범죄자의 숙청은 몇몇 시민들에게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었다.
“어디 내가 한 짓을 공개하려면 해보세요.”
“….”
“하지만 과연 신세대들이 날 비판만 할까? 그보다, 내 뒤에도 떡하니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붙어 있는데 그게 제대로 퍼지기는 할지?”
참고로 고등급의 범죄자를 숙청한다는 이 행위는, 그녀도 이전부터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무고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게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처럼 정부 측이 이를 빌미로 자신의 목줄을 잡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고찰 끝에, 에스더는 이미 리스크의 해결법을 찾아낸 상황이었다.
“참. 그나저나 협회장님, 혹시 이제는 두통이 좀 괜찮으신가요?”
두통. 그 단어를 듣자 고명도가 눈에 띄게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괜찮아지셨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우리 협회장님이 앞으로 또 심보 나쁜 일이라도 벌이면 말이죠.”
“허어!”
“저는 하늘이 노해서 그 병세가 다시 나빠지진 않을까 좀 걱정되는데…….”
이렇게 말하는 에스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찬 얼굴로 상대를 내려다봤다.
자신에게 부탁을 건넨 금발의 헌터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매섭고 두려운 태도로 일관했다는 뜻이다.
이때 고병도 협회장은 한국마탑의 길드장이 사람을 향해 능력을 썼다는 걸 눈치채고 순간 쾌재를 부른다.
상대방은 방금 자백이나 다름없는 말을 한 게 아닌가?
이 협회장실에는 언제나 녹음기가 켜져 있으니, 이제 이를 새로운 교섭 재료로 써버리면…!
“눈을 어디로 그렇게 굴리세요. 혹시 그 의자 아래가 녹음기 위치인가요?”
그런데 그때.
나른한 인상의 여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못다 한 말을 이었다.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는데, 사실 제가 오늘 이 방으로 1급 마정석들을 좀 들고 왔어요.”
이와 동시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수행비서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열어 보여준다.
와그르르.
눈이 부실 정도로 발광하는 던전의 자원들.
하지만 이는 산화우라늄이 만들어내는 황록색처럼 위험성이 높은 아름다움이었으니.
“그러니 녹음 기능 같은 걸 켜두셨다면 아마 소리가 조금 이상하게 들어갔을 테고…….”
게이트의 특성을 모방한 간섭.
협회장이 눈가를 부르르 떨 때쯤, 지구의 저주술사는 환한 얼굴로 그에게 고했다.
“여기까지 들으셨으면 이제 충분히 알아먹었을 것 같은데. 기대해요. 이제부터는 당신이 일방적으로 당할 차례예요.”
“이보시오, 에스더 헌터!”
“참고로 나는 사람의 진심이 아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선량한 헌터를 건든 대가는 모쪼록, 그 뒤에 꼭 진득이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파멸의 서장이 시작됐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