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18
216화. 녹아웃 토너먼트 (3)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빨리 알려줬어야지.”
“예?”
더는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강창호.
“네가 S급 헌터가 맞다면 내가 고작 C급 게이트의 일로 놀랄 필요도 없었잖아.”
“음.”
“하지만 이번은 네 잘못도 컸던 거 알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새벽에 일한다는 문자를 보내면 쓰나.”
“아, 죄송합니다. 모방 도시 건은……. 제가 프리랜서다 보니 밤낮이 바뀌어서요.”
“그래?”
“집에서 메시지를 보낼 때 순간 시간대를 착각했어요.”
“하긴 우리가 출근 개념이 없긴 하지.”
이어진 건 두 헌터의 짧은 대화다.
“어쨌든 겨우 나아졌다는 몸을 또 망칠 생각이 아니면, 앞으로 새벽 연락은 자중하시고.”
강창호는 들고 있던 방문 선물을 집주인에게 건네며 모종의 제안을 했다.
“S급이 맞다니 마침 잘됐네. 그럼 각성자들이 모인 경기장에 가도 마력에 눌려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아, 저는, 그, 사실 지금도 컨디션이…… 좀……?”
“그래? 건강이 안 좋아서 중국은 못 가시겠어?”
물론 상대의 대답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출국한 사이에 계약자가 또 이상한 던전에 들어갈까 봐 걱정되는데. 그럼 그냥 이 자리에서 죽…….”
“방금 했던 말은 농담이고 다음 주 토요일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
중국 톈진시.
그곳은 국가 수도인 베이징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여러 교통상의 이점이 있으나,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랜드마크를 갖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장소였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이 항구 도시에 이례적인 수준의 인파가 몰려든다.
수억 원을 들여 생방송 중계권을 따낸 언론계. 들뜬 얼굴의 외국인들.
거기에 일반인들과는 무언가 다른,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 기라성 같은 실력자들까지.
어느덧 완성된 톈진의 국제 경기장은 마치 몇 년은 공을 들여 세운 성처럼 넓고 튼튼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사실 중국 내의 토속성 각성자들이 단기간에 쌓아 올린 결과물로, 막상 내부를 들어가 보면 관람석의 구조가 단순한 돌계단에 불과하다는 등의 세부적인 결함이 보였다.
각성자들의 스킬에 노출된 건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수명이 짧아지기에.
행사가 끝나고 나면 쓸모없어진 경기장을 철거할 요량으로 비용을 아껴 짓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다.
【중국이 1달 걸려 지은 경기장의 실체.jpg】
【(실제 상황) 이게 600만 원짜리 좌석이라고……?】
【어웨이크너의 능력으로 급조한 건물의 안정성 문제】
그래서 각종 커뮤니티는 행사의 부족함을 지적하느라 뜨거워진 상태인데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부정적인 여론 흐름과 달리, 의외로 이벤트의 좌석표 자체는 순조롭게 팔려나갔다.
[(속보) 제1회 IHT 참가 의사 밝힌 S급 헌터 현황……. ]지성체들은 으레 호기심에 약한 법이고.
이 행사에는 시민들이 차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대박] [진짜 S급전도 해??] [미친 트리아이나가 크긴 큰 보상인가 보네 ㄷㄷㄷ]확정된 생태계 최상위 각성자들의 참전!
이런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어찌 각국의 호사가들이 지갑을 열지 않았겠는가.
행사 기간이 다가올수록 세계의 시민들은 이 자극적이고 현대적인 스포츠에 기대를 가졌고.
얼마 뒤.
톈진의 항구와 활주로에는 각자의 목표를 안은 투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
경기장 2.5km 근방.
톈진의 한 호텔.
“즈한. 마지막으로 한국 S급의 입국이 확인되었습니다.”
“빠진 인사는 없는 거죠?”
“적어도 육성(六星)급에선 그렇지요. 황룡전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잘그락.
즈한이라고 이름 불린 남자가 들고 있던 위스키 글라스를 내려놓으며 뒤를 돌아본다.
그는 언젠가의 게이트 스타 파티장에서도 모습을 보였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유명 인사였다.
현장 업무를 자주 보는 직업적 특성 탓인지 까만 편인 피부.
옛 무협 영화의 주인공처럼 제법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꽁지를 묶은 차분한 머리카락.
바깥에선 그를 S급 헌터라는 단어로 가리키지만, 이 나라는 독자적인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육성 각성자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하던가.
F급이니, E급이니, D급이니.
일성이니, 이성이니, 삼성이니.
자질구레한 단어 표현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이쪽이 각성계의 최정상에 서 있는 포식자란 사실이었고.
게다가 그는 이번 행사로 본인의 위상이 그 첨단 속에서도 더욱 꼭대기에 있었음을 증명할 생각이었으니까.
“흠, 네 명이라. 네 명.”
즈한은 부하가 가지고 온 서류첩을 훑으며 생각했다.
일단 이번 행사에 응한 국외의 최상위 인사는 총 4인.
미국 1인, 한국 1인, 파키스탄 1인, 레바논 1인.
막대한 상금을 걸어 돈을 뿌려댄 것치고는 저조한 참가율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어쨌든 ‘가장 중요한 국가’, 즉 미국의 인사를 무사히 포섭했으니.
“일본의 참가가 무산이 된 게 역시 영 아쉽네. 저번에 연락해 보니 일본은 아직도 그, 길드 분권 문제던가? 아무튼 그걸로 난리인 모양이더라고요. 물론 어차피 거기 각성자가 왔어도 결국 부나방 신세밖에 더 됐겠느냐마는.”
즈한이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자, 방에 있던 다른 중국인들은 즐거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었다.
아무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야 S급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결국 에픽급 최상위의 트리아이나가 원인인데, 이쪽은 그 물건을 외국인들에게 넘길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니까.
물 속성으로 각성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톈진이라는 항구 도시의 지리적 이점.
언제든 스킬의 파괴력을 높여주도록 땅에 몰래 매설해 둔 마력석.
그리고 중국 출신이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경기장에서 걸칠 기본 아이템 체크에서 부릴 각종 꼼수까지.
즈한은 이미 홈구장 이점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부정행위를 준비한 상태였다.
따라서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본인의 승리를 확신했다.
물론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본디 사기든 꼼수든, 이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자들이 이름을 남기는 법이지 않던가.
즈한은 단지 자신이 남들보다 철저하고 영민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당하고 떳떳했다.
따라서 남은 일은 조국의 신임에 답하는 것뿐.
“자, 이 축제는 주석님이 직접 명하신 것이니까 다들 신경 좀 씁시다.”
“예!”
“이번 일을 계기로 세계에 다시 알리는 거예요.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인 막강지국이라고. 아시겠죠?”
오오!
방에 모인 이들은 벌써 경기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른 샴페인을 터트렸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이었다.
“즈한!”
“네. 리치앙.”
한쪽 구석에서 갑자기 높은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입을 연 중국인은 즈한보다 어려 보이는 연령대의 또 다른 최상위 각성자였으며.
무언가 질문할 것이 생겼는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진 말입니다. 정말 이런 식으로 짜도 되는 건가요? 육성급(*대외적 S급 헌터)과 오성(*A급 헌터)급을 마주 붙여버리면.”
“오성이 지죠.”
“너무 뻔하잖아요. 사람들이 왜 황룡전을 이딴 식으로 진행하냐면서 욕하던데요?”
그렇다.
이 헌터의 말마따나 S급과 A급이 혼재하여 있는 황룡전 토너먼트에서는 사실상 A급의 우승 확률이 없는 상황.
하지만 중국 측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행사는 자국의 위상을 드높이기만 하는 용도로 쓰기엔 호객 행위에 든 돈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적자를 보지 않으려면, 경기에서 제일 인기를 끌 유명 인사들의 출전을 어떻게든 늘려야 했으니까.
“리치앙. 누군가가 압도적으로 지는 모습을 본다는 것도 어쩌면 관람객들에게 유희가 될 수 있어요.”
즈한은 온화한 어조를 유지하며 뒷짐을 졌다.
“육성급을 만나 패배한 아래 등급엔 따로 그에 맞는 위로금이 있으니까. 뭐, 사실은 그들에게도 나쁘지만은 않은 이야기일 테고.”
“그래요?”
“몇몇 오성은 아예 육성급 각성자와 겨뤄볼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며 좋아하기도 하던데요?”
당연히 이런 게릴라 행사 따위에서 기적 같은 하극상이 벌어질 확률은 낮겠지만.
“게다가 만의 하나로, 어쩌면 약자의 반란으로 S급이 지는 재미있는 광경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지켜보세요.”
“하긴.”
“어차피 이번이 1회차인 행사인데 모든 게 완벽할 필요야 있나.”
즈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마쳤다.
-댕, 댕, 댕.
그와 동시에 울리는 것은 정각을 알리는 누군가의 고전적인 알람 소리.
자, 그럼 슬슬 호텔을 나서 경기장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인데…….
“즈한. 그러고 보니 황룡전 대진표는요? 그건 아직 당신에게도 안 내려왔습니까?”
중국 측의 헌터들은 자리를 옮기기 전 간단한 대화를 마저 나눴다.
“그럴 리가요~ 바깥에만 공개되지 않았다 뿐이지 저는 이미 다 전달을 받았죠.”
“아하.”
“하지만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비밀엄수. 이름표만 보고 꽁무니를 내빼는 겁쟁이가 생기면 재미없어질 거예요.”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오성급의 사람들이 설마 그렇게 허무하게 기권할지는. 그리고 참가료를 받으려면 경기 시간이 최소…….”
“쉿, 잠깐만. 또 전화가 왔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즈한이라는 인물의 휴대전화로 새로운 연락이 들어온다.
“여보세요?”
화면에 뜬 것은 행사 관리자의 번호였으며, 그 중국 인물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전달받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정해진 대진표를 급하게 바꿔야겠다고요?”
.
.
.
한편.
톈진 경기장에 마련된 어느 대기실의 안.
“으아, 으아…….”
“…….”
“흐으으아, 내가 거기에서 올인만 하지 않았어도…….”
갈색과 금색.
이 자리에는 국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먼 비행을 감수한 외국인들이 2명 정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금색의 단발을 한 여자 쪽이 갑자기 일어나 주변을 서성거리자, 결국 한 S급 헌터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정신 사나워 죽겠네! 거 대체 언제 적 게임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중얼중얼이야. 소피아, 작작 좀 해!”
이곳은 미국의 황룡전 참가자들을 모아놓은 방이었으니까.
“그, 그렇지만! 진짜 그것만 잃지 않았어도 내가, 이딴 데에 올 일이 없었을 거란 말이에요……!”
땅딸막한 체형의 헌터는 연신 눈시울을 글썽였다.
상사의 밑에서 개처럼 굴러 겨우 빚을 다 깠더니만. 수중에 여윳돈이 생기자마자 다시 옛 버릇이 재발해서는.
어떻게 애써 번 돈을 또 카드 게임으로 꼬라박을 수가 있는 것이며, 게다가 본전을 찾겠다고 사채는 또 왜 받은 것일까.
남들 앞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이지 적성에 맞지 않는데.
그녀는 이제 빚쟁이들이 요구하는 이자를 맞추기 위해서 빠르게 높은 상금을 얻을 수 있는 중국의 행사에 참여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피아는 또다시 도박이라는 요인으로 인해 이 자리까지 내몰린 것이다.
‘망할! 망할……!’
하지만 한심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선 소파 위의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휙.
소피아는 돌연 눈빛을 바꾸어 뒤쪽을 흘낏 노려봤다.
‘그나저나, 엔조 저놈도 참 저놈이군.’
브루클린 모건의 실종 발표 후 스펙트럼 길드가 어떤 꼴이 됐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엔조라는 거구의 남성은 마치 동료의 일 따위는 아무 관심 없다는 것처럼, 시원스럽게 이 토너먼트의 참가를 결정했다.
아마 2위 보상인 [신의 물방울 20병]이 탐이 나서 그랬던 거겠지.
그런데 스펙트럼 길드는 현재 대외적인 이미지가 안 좋아진 상태니.
적어도 브루클린의 실종 이야기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눈에 띄는 짓을 지양하는 게 좋아 보이건만…….
“엔조.”
소피아는 이내 망설이는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나요?”
“뭘?”
“브루클린이요. 그래도 어쨌든… 예전에 한 식구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거잖아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퍽 건조했다.
“식구는 무슨. 그 여자는 그냥 같은 업계 사람이고 어차피 평상시엔 딱히 접점도 없었는데.”
“흐음.”
“처음 만났을 때 정도는 내 쪽에서 먼저 농담을 건넸던 것도 같지만 말이야. 녀석은 본인이 이미 결혼을 한 몸이니까. 알짱대지 말고 꺼지라며 화만 냈으니 내가 뭘 어째. 친해지는 건 그쪽이 먼저 거부했어.”
“어…… 뭐라고요?”
“게다가 헌터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게이트는 사춘기 청소년보다도 제멋대로야! 갑자기 S급 하나 정도는 꿀꺽 삼켜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하!
엔조는 그렇게 말하며 탁상에 올려져 있던 술을 수염이 다 젖도록 게걸스럽게 마셨다.
각성자도 취할 수 있도록 [신의 물방울]을 희석해 만든 혼합 음료.
도박중독자와 술꾼이 한 묶음이라니. 하여간 세계에서 손꼽히는 각성자 강국이 이 무슨 처참한 꼴이란 말인가.
‘브루클린 그게 기혼자였단 말이야?’
소피아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초커를 찬 자기 목덜미를 긁적이기도 했는데, 그 안의 살결에는 더 이상 이전의 나비 문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새카만 문신은 상사가 제게 남긴 낙인이었고.
그 상사와 자신 간의 노예 계약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사라져 버렸으니까.
“흐음.”
브루클린 모건은 실종자가 아니라, 사망자이다.
소피아는 그 사실을 꿰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심지어는 브루클린이 죽은 정확한 시간까지 알기도 했다.
그만큼 계약이 끊길 때의 섬뜩함은 강렬했으니.
‘14일 오후 3시…….’
이쪽이 한창 화창한 볕을 쐬고 있을 무렵. 브루클린은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죽은 걸까.
멍청한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EX급 게이트에 걸려서?
아니면 깊은 해저에서 누켈라비 같은 끔찍한 악마라도 만났나?
하지만 왠지.
소피아는 브루클린 모건이 사람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 추측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야…….
‘비스트.’
날뛰던 비스트가 활동을 중단한 시점이, 어째서인지 모건이 죽은 때와 딱 겹쳤었으니까.
세상은 아직 비스트와 브루클린 모건의 동일성을 모른다.
따라서 소피아는 사실과 다른 추리를 떠올렸다.
만약 지난 연쇄살인의 종착점이 브루클린이었다면…….
브루클린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그 짐승이 만족한 거였다면.
하지만 비스트는 왜 헌터들의 시체를 수집했던 거지?
애초에 그는 누구고?
……그리고 생각해 보면, 검거되지 않은 비스트는 아직도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회에 숨어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