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50)
바른이 연 거대한 게이트에 마차가 속속들이 통과했다.
게이트의 빛 무덤을 지나 말을 탄 근위대가 선두로 달려가고 나와 킬리언이 탄 마차가 데인 브륀힐트 백작저의 포석된 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뒤로 이곳에 초대받은 장관들의 마차도 빠르게 정원에 도착하고 있었다.
마차로 이동했다면 리트번에 가기 위해 궁전에서 몇 시간 전에 출발해야겠지만, 황제는 게이트를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음…….”
마차 창에 역광으로 비친 그의 옆선은 언제 봐도 근사했다.
결이 좋은 검은 머리칼 아래 짙은 눈썹, 긴 눈매, 우뚝 솟은 코와 고집스레 다물린 입술. 그리고 귀족적인 턱선과 툭 불거져 나온 목울대까지.
더욱더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그는 마치 거대한 방패 혹은 요새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했다.
마차를 타면서부터 내내 내 손을 잡고 있을 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킬리언?”
나는 침묵을 유지 중인 킬리언의 이름을 슬쩍 불러 보았다.
마차를 타자마자 도착한 것과 다름이 없어 사실 그가 별말 없이 시간을 보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퍽 무겁게 느껴졌다.
“응.”
그의 시선이 뒤늦게 나를 내려다봤다.
“일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그에게 몸을 기울이고 묻자 킬리언의 눈매가 설핏 굳었다.
아닌가? 나의 느낌일지도 몰랐다.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가 않았다.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왜 이런 걸 입고 온 거지?”
무슨 말인가 싶어 그를 보는데, 저택 앞에 멈춰 선 것인지 마차 유리창에 조명에 확 쏟아져 눈이 부셨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자, 여전히 나를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킬리언의 무표정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 그가 말한 ‘이런 거’라는 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말하는 거예요?”
“황제 폐하 내외분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내가 설마 하는 얼굴로 묻는 찰나 바깥에서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시종의 목소리가 울렸다.
킬리언의 입 언저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어 나는 그가 기분이 가히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하고 그의 이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이상해요?”
“보기 싫…….”
똑똑-
바깥에서 시종이 마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겠다는 신호였다.
보기 싫다고? 그 정도야?
되묻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랄 게 없었다.
“…….”
고개를 들어 보니 이미 열린 마차 문 너머로 계단을 오르던 귀족들이 서둘러 양옆으로 물러나며 열을 맞추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레네트?”
먼저 내린 킬리언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것인지 방금까지 그가 보였던 그 서늘하고 무서운 눈빛 대신 태연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게 놀라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기 싫다니!
무안한 마음을 꾹 누르며 나는 억지로 그에게 손을 내미는 시늉을 하며 마차에서 내려갔다.
물론 그의 손에 닿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이다.
데인의 무도회는 성공적이었다.
각 영지에서 달려오거나 미리 수도에 머물다 리트번에 온 많은 귀족들이 황제에게서 리트번을 하사받은 젊은 백작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데인의 아버지 브륀힐트 공작은 참석하지 못했으나 어머니 브륀힐트 공작 부인이 데인과 함께 귀족들을 맞이하고 담소를 나눴으며 리트번에 좀 더 머물며 귀부인들과 가질 티타임을 약속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참석해 주셔서 이 자리가 더욱 빛났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데인이 킬리언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네자 모두가 기분 좋은 박수를 쳤다.
나는 이 저택의 그랜드 홀에 들어서자마자 브륀힐트 공작 부인을 급히 찾는 시늉을 하며 킬리언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킬리언의 시선이 연회장을 훑으며 누군가를 찾듯이 움직이자 나는 서둘러 사람들 틈바구니에 몸을 숨긴 후 샴페인을 쭉 들이켰다.
“황후 폐하께선 날이 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지신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한답니다.”
빈 잔을 트레이에 내려놓고 샴페인이 든 새 잔을 들어 올리는데 브륀힐트 공작 부인이 다가와 말했다.
“하하. 모두는 아닐 거예요. 별로라 여기는 분들도 계시겠죠.”
킬리언을 포함해서.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샴페인을 홀짝거렸다.
달콤하고 톡 쏘는 게 자꾸만 입이 갔다.
생애 가장 장시간 꾸민 날, 보기 싫다는 평을 듣다니…….
왜인지 분하고 억울하고 그가 밉고 야속하고 무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섭섭했다.
사실 가장 예쁘게 보이고 싶은 대상은 당연히 킬리언일 수밖에 없는데.
그의 언짢은 기색이 만연한 붉은 눈을 보는 순간,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뭐라고. 흥.”
그리고 그 생각을 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의 그깟 평 하나로 모든 걸 망쳤다고 여긴 나 자신이 말이다.
“단언하건대 취향을 막론할 만큼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을걸요?”
브륀힐트 부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나를 귀애하듯 바라보던 그녀가 슬쩍 고개를 숙여 나에게 속삭였다.
“대외적으로 제가 어머니라 공표된 이후로 귀부인들이 제게 어쩜 이렇게 예쁜 딸을 낳았느냐고 비결을 알려 달라고 자꾸 졸라 대는데 이를 어쩐답니까? 특히 밤에 뭘 해야 하냐고 하는데 제가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요?”
“켁!”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사레가 들려 켁켁거리는데 브륀힐트 부인이 웃음을 머금으며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웃으라고 드린 말씀인데 놀라셨나 보네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켁, 네네, 재미있었어요. 그렇지만 너무 생각지 못한 말이라서요.”
내가 턱에 묻은 술 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자 브륀힐트 부인이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는 샴페인 잔을 일별했다.
“폐하. 이건 너무 많이 마시지 마세요. 여기 쿠퍼잔에 담긴 샴페인은 달콤하긴 하지만 무척이나 독하답니다. 취하실 수 있어요.”
“정말요? 저 이미 이거 너무 많이 마셨는데?”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는 찰나, 누군가 내 허리를 감쌌다.
“엄마야!”
등에 와 닿는 온기에 화들짝 놀라 뒤를 올려다보니 킬리언이 짐짓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망연히 그를 보고 있는데 브륀힐트 부인을 비롯해 내 주변에 모여 있던 귀부인들이 하나둘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왜 피하는 거지?”
킬리언이 침착한 어조로 나에게 묻자 나는 슬그머니 몸을 빼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한 셈이었다.
“레네트.”
내 이름을 으르렁거리듯 입에 담은 킬리언이 허리를 더욱 힘주어 잡으며 그의 몸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왜 피하는지 묻잖아.”
“내가…… 언제 피했어요?”
“아까부터 계속. 사람 미치게.”
“아, 아닌데?”
움츠러드는 어깨를 짐짓 당당하게 펴고 그를 올려다보자, 킬리언이 화를 삭이는지 흉곽을 부풀려 크게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 쿵 내려앉는 심장이 못마땅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을 단박에 삼켜 버렸다.
술에 취하면 사람은 없던 용기도 생긴다고 하니까.
겁먹지 말자, 나 자신. 기죽을 거 없어! 안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었다고 나를 나쁘게 대하고 있는 이 남자가 문제인 거지.
그래,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건 키가 아주 큰! 잘생긴 동상일 뿐이야!
나는 그를 똑바로 올려다본 채 손을 뻗어 한 잔 더 냉큼 들이켜 버렸다.
킬리언의 눈길이 나와 술잔을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살짝 눈썹을 휘어 올렸다.
“이거 독한 술이야. 알고 있어?”
“알고 있어요!”
내가 반박하듯 대답하자 그의 눈이 잠시 커졌다.
***
킬리언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깜찍한 아내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그러는데.”
레네트를 발코니로 데리고 나온 킬리언이 커튼을 닫아 무도회장의 공기를 차단하며 물었다.
맛은 천상의 달콤함을 자랑하는 반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 악마의 샴페인으로 유명한 술을 레네트는 꿀꺽꿀꺽 잘도 삼켜 댔다.
그러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이 술이 독한 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위험했다. 정말로.
“내가 뭘요?”
레네트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그와 눈을 마주쳐 왔다.
술기운 때문에 볼이 익은 아내는 못내 분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하.”
물끄러미 레네트를 내려다보던 킬리언은 기가 찬 바람에 실소를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렇게 화가 난 얼굴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물론 왜 저렇게 보는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보기 싫다고 하니까 같이 안 다니려고 한 건데. 그게 왜요?”
그녀가 한 번 더 말을 덧붙이며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그래, 이만하면 인정해야 했다.
그는 그녀에게 눈이 돌아간 지 오래였다. 인간이 된 채 잠들어 있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단 한시도 빠짐없이 그렇게 되었다.
킬리언은 한숨을 내쉬며 착잡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보기 싫다는 건 드레스일 텐데? 레네트가 아니라.”
그가 한 발 다가가자 레네트의 걸음이 홱 뒤로 물러섰다.
화가 나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만 킬리언의 눈빛이 단박에 가라앉았다.
방금까지 자신을 피해 내내 숨어 다니던 레네트가 이번엔 가까이하기도 싫다는 듯 물러섰다.
그의 인내심을 뚝 끊기게 하는 반응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꾸몄는데…….”
강제로라도 레네트를 바짝 붙여 놓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지막이 들려온 웅얼거림에 킬리언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늘 같은 모습만 보여 줬으니까 이젠 좀 다른 모습도 보여 줘야 할 것 같아서 해 본 건데. 근사한 황제 옆에, 마찬가지로 근사한 황후가 돼서 품격을 높이는 예쁜 드레스도 입고…….”
드레스 자락을 만지작대며 불만스레 입을 삐죽인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