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6
15화
-던전 표류(1)
티타니아의 계획은 민아에게 격을 집중시키자는 것이었다.
이현은 그 이유를 물었다.
“일단 좀비든, 다른 승격체든 약한 건 똑같아요. 흡혈종 헌터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좀비의 강한 힘이라면 전투에 쓸만하지 않을까?”
이현은 민아가 그 조그마한 손으로 보여줬던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아왔다.
성인의 몸을 가진 워킹데드가 좀비로 승격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티타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봤자 하급종이에요.”
“하급종…….”
거머리의 종족인 뱀피르는 상급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힘이 셀 뿐이지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스킬도 없어요.”
스킬은 중요했다.
마나, 기, 오러, 내공 혹은 사념 에너지를 이용해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바로 스킬이었다.
그것이 없는 한, 이현과 그의 몬스터들에게 승산은 매우 희박했다.
당장 이현만 해도 스킬의 도움으로 헌터들을 이길 수 있었다.
“그래서 민아 양을 승격시키자는 거예요.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스킬을 얻는다고?”
“네. 승격은 보통 일이 아니에요. 업적이죠. 그 보상으로 스킬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새로 얻은 스킬을 규격 외의 격으로 승급시키는 것이 티타니아의 계획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안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냐? 나온다고 하더라도 비전투 스킬이면 어쩌려고 그래?”
혹시나 던전 지식이나 재료 손질 같은 스킬이 나온다면 꽝이었다.
비전투 스킬은 등급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전투에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나오면 대박이고 안 나와도 중박이죠.”
“안 나와도 중박?”
“민아 양이 승격하면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거고, 좀비의 상급종이면 아이의 몸이라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가능성은 작아도 성공하면 거머리를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나쁘지 않아. 아니, 지금은 오히려 도박이 필요할 때야.”
이현은 티타니아의 말대로 민아에게 걸기로 했다.
* * *
쪽잠을 취한 뒤, 이현은 해가 뜨자마자 규격 외의 격을 얻을 준비를 시작했다.
“크르르륵.”
흡혈종처럼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시귀종 역시 햇빛을 불쾌히 여겼다.
때문에, 민아는 아침부터 자신을 텐트 밖으로 데려가는 이현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꼭 목욕 전의 새끼 고양이 같네요.”
“……물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영화 속 좀비들과 다르게 시귀종에게 전염성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크륵!”
다행히 민아가 던전 보스인 이현을 무는 일 없이 무사히 던전의 핵인 던전수 앞에 도착했다.
민아는 햇빛이 닿지 않는 동굴로 들어오자마자 다시 얌전해졌다.
“눈을 감고 격을 보낸다는 생각에 집중하면 돼요.”
티타니아의 안내에 따라 이현은 민아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그럼 시작한다.”
격을 나누어준다. 격을 모두 나누어준다.
이현이 열심히 속으로 되뇌었지만, 변화는 없었다.
“왜 안 되는 거지?”
티타니아가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둥 옆에서 외치는 헛소리는 무시했다.
이현은 그때와 지금의 어떤 점이 다른지 곰곰이 점검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뭘까? 긴장감? 아니면 목표?’
민아를 치료하겠다는 목표. 그 목표가 이현의 격을 움직였었다.
이현은 다시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뚜렷한 목표를 의식한 채였다.
‘내 모든 격을 다 바쳐서 민아를 성장시키겠어.’
두근, 심장이 크게 맥박쳤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뜨거운 기운이 솟기 시작했다.
성공했음을 확신한 이현은 다시 한번 목표에 집중해서 격을 컨트롤했다.
[던전 보스의 격을 상대에게 양도합니다.] [경고. 양도한 격은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민아에게 내 모든 격을 양도한다.”
마치 썰물 빠져나가듯이 이현의 심장에서 쏟아져 나온 격이 양손을 통해 민아에게로 전해졌다.
그리고 격이 빠져나감에 따라 이현은 서서히 느려지는 자신의 심장을 느꼈다.
‘어지럽고, 숨이 막혀온다.’
그때, 전과는 다른 변화가 이현의 몸속에서 일어났다.
한줄기 시원한 기운이 이현의 아랫배에서 치솟아 올라 심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윽!”
마치 청옥액을 마셨을 때처럼 얼음장 같은 한기가 심장에 닿자마자 심한 격통이 밀려왔다.
두근.
격이 빠져나간 빈 심장을 비집고 들어온 한기가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규격 외의 격이구나.’
이현은 격의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규격 외의 격을 인식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격이 모두 사라져 멈춰가는 이현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고 있었다.
덕분에 이현은 이번에는 정신을 잃지 않고 격의 양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격의 양도가 완료되었습니다.] [던전 보스의 남은 격은 0입니다.] [던전 보스에게 양도한 격의 2배로 규격 외의 격이 부여됩니다.]“됐어!”
이현은 성공을 확인하고 씩 웃었다.
던전은 이번에도 별 탈 없이 이현에게 규격 외의 격을 2배로 돌려주었다.
“성공했어요?”
“응. 결과적으로 격이 0이 되는 대신 규격 외의 격이 원래 있던 것과 합쳐져서 120이 됐어.”
“민아 양은요?”
이현은 분석의 안약을 넣고 분석안으로 민아를 보았다.
「이름 : 장민아
종족 : 좀비(시귀종)
격 : 110/80」
“승격 할 수 있을 것 같아. 격이 최대 수치를 넘어섰어.”
이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써 계획의 1단계까지는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민아 양의 승격이에요. 던전수에 달린 열매를 따서 민아 양에게 먹여요.”
던전수에는 손바닥만 한 이현의 잎과 손가락만 한 민아의 잎, 그리고 손톱 크기만 한 다른 몬스터들의 잎이 자라 있었다.
이현은 그중에서 민아의 잎 밑에 달린 대추만 한 열매를 보았다.
「승과(昇果)
– 승격을 시켜주는 열매.
◆ 획득 가능한 스킬
– [복종] : 격이 낮은 같은 계열 몬스터들을 수하로 거느린다. (선택)
– [전염] : 점막을 통해 체액을 투입해 시귀종으로 변화시킨다. (선택)
– [혈액 구속] : 체내의 혈액을 조종한다. (선택)」
“선택이… 가능해?”
이현은 분석안에 보이는 선택이라는 두 글자에 눈이 못 박혔다.
다른 글자에 비해 더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은 규격 외의 격으로 간섭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예요?”
“규격 외의 격으로 획득할 수 있는 스킬을 정할 수 있어.”
“와, 진짜 규격 외네.”
티타니아가 사기라며 투덜댔지만, 이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잠깐, 이거 그 총을 쓸 수 있다는 거잖아?”
이현은 주저하지 않았다.
“혈액 구속으로 선택할게.”
[규격 외의 격 10이 소모됩니다.]민아의 승격과 스킬 획득이 코앞이었다.
그리고 승리의 실마리도 잡혔다.
‘기다려라, 거머리 자식아.’
* * *
스킬을 선택한 승과를 민아에게 먹이자 그 직후 민아는 죽은 것처럼 잠들었다.
이현은 민아를 안고 동굴을 나와 캠핑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민아가 승격을 완료하길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던전이 승격을 완료했습니다. 던전(임시)이 던전(F)로 승격합니다.] [던전의 영토가 확장됩니다.]“그러고 보니 승격이 완료될 시간이었네요.”
티타니아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이현은 두 번째 알림 방송 때문에 의아해했다.
“던전이 확장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제가 말을 안 했나요? 던전은 승격할 때마다 그 영역이 늘어나요.”
“그런 건 미리미리 좀 말해줄래?”
처음 듣는 소리에 뻔뻔하게 나오는 티타니아를 노려보던 이현이 멈칫했다.
“잠깐, 그러면 캠핑장 주변도 던전에 말려든다는 거야?”
이현의 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캠핑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던전이 계속 확장된다면 부모님도 던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그건 아니에요. 전혀 다른 곳에 세워진 다른 던전과 통합되는 거예요.”
티타니아의 대답에 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현은 적어도 부모님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이네. 그래도 새로 휘말린 던전 영토에 나처럼 갇힌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현은 처음 자신이 던전에 휘말렸을 때를 떠올렸다.
5일 전, 갑작스레 자신이 던전에 휘말렸을 때 그런 것처럼 그들도 당황하고 있으리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가자.”
이현은 민아가 잠든 텐트를 언데드들에게 지키게 한 뒤, 떠날 채비를 했다.
도끼와 헌터가 쓰던 헬멧, 그리고 전투복까지 챙겨 입으니 겉으로 봐선 헌터처럼 보였다.
“그 헌터 놈의 장비라니까 괜히 찝찝하네.”
전투복은 망자의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풀에서 이현이 발견했다.
분석안을 쓰고 있는 이현의 눈에는 아무리 잘 숨겨 놓아도 들키는 건 금방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리고 그거 생각보다 좋은 거 같은데요?”
“그러게. 아주 튼튼해.”
헬멧처럼 아티팩트는 아니었지만, 막상 입으면 쾌적하고 움직이기 편했다.
거기다 묘하게 튼튼한 재질이 방어력도 있어 보였다.
“위치는 어디야?”
“동굴을 기준으로 캠핑장과 정반대예요.”
이현은 티타니아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그리 넓지 않았던 던전인 만큼, 이현은 금방 새로운 던전의 영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원? 뜬금없이 웬 공원이지?”
계곡 던전 끝의 언덕을 넘어가자 이현의 눈에 비친 것은 공원이었다.
그것도 깔끔하게 잔디가 다듬어져 있고 시설도 훌륭했다.
“궁동공원?”
이현은 주변을 둘러보다 곧 한글로 된 안내판을 발견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궁동공원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울?!”
캠핑장이 있던 곳은 강원도 원주, 새로 생긴 던전의 영토는 서울이었다.
한참을 떨어진 두 장소가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져 버린 것이었다.
“뭘 그리 놀라요? 지구 반대편이 될 수도 있었는데. 같은 나라면 양반이죠.”
그 말인즉슨, 바다 한가운데나 극지방이 던전에 추가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사막이나 도시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네.”
이현은 새삼 던전의 신비에 놀라서 말을 잃었다.
“그럼 일단 사람들부터 찾아보죠?”
이현은 잠시 넋 놓고 있다가 티타니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말대로 사람들을 우선 구하기 위해 온 거니까.
이현은 언덕길을 올라 공원의 중심으로 향했다.
“인간들이 있나 본데요? 소리가 들려요.”
티타니아의 말대로 언덕 꼭대기에 있는 공원의 쉼터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리고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건가?”
이현은 발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당신들이 이런 거 아냐?! 이거 몰래카메라지? 책임져!”
“저희가 그런 거 아닙니다. 모함하지 마세요!”
나이 든 배 나온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에게 삿대질하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아니, 지금 전 세계가 이상 현상으로 난린데 이런 장난을 쳐?!”
“아니라니까요! 아, 이거 진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네.”
“이거? 이거?!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나이 든 남자에게 동의하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나뉘어 곧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와, 저 할아버지 어그로 잘 끄네.”
“……왜 내가 부끄러워지는 거지.”
이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티타니아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이현의 눈에 두 젊은 남녀가 들어왔다.
‘어? 윤나진이랑 고재성이잖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춘 미남 배우 고재성과 아나운서 출신 연예인 윤나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