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78
277화
-거절할 수 없는 퀘스트(4)
기다릴 것도 없이 이현은 바로 [워터게이트]를 통해 던전으로 복귀했다.
나진과 이아코스, 리코스 부부가 있다면 그가 없어도 바깥 상황은 안심이 됐다.
문제는 던전 안의 상황이었다.
‘총관이 찾아왔다고? 왜?’
물론 총관이 이현의 던전을 처음 찾는 것은 아니었고 올 때마다 나빴던 일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으로서는 그녀가 찾아올 만한 일이 짐작이 가질 않았다.
‘설마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규격 외의 일을 저질렀나?’
티타니아가 알면 자아도취가 심하다고 한소리 했겠지만, 이현으로서는 그 외에 총관이 찾아올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 주인님, 어서 와요.”
서둘러 달려간 화이트 캐슬의 응접실에서 티타니아가 한가롭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다급하고 복잡한 자신의 마음과 달리 느긋하고 한가로워 보이는 티타니아의 모습에 이현은 기가 막혔다.
“굉장히 한가한가 보다?”
미간을 잔뜩 구기며 갈굴 태세를 하는 이현을 보며 티타니아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방금까지 총관님을 모시고 있었거든요?”
그녀의 말대로 티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찻잔 세트가 놓여 있었다.
찻잔에는 마시고 남은 최고급 넥타르가 달짝지근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총관님은? 지금 어디 가셨는데?”
“이 정도로 순도 높은 넥타르를 생산하는 곳이 궁금하다면서 구경 나가셨어요.”
“뭐? 혼자서?”
“네. 총관님이 혼자서 다니신다고 문제될 게 있나요?”
태연하게 말하는 티타니아를 보며 이현이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누가 총관님을 걱정한대? 우리 던전 몬스터들이 사고를 칠까 봐 걱정인 거지!”
넥타르 제조 공방에는 고된 노동을 담당하는 사우레노르 구울들과 이아코스를 도와 넥타르를 제작하는 공원 사람들 몇이 있었다.
문제는 그들 중 총관의 얼굴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현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티타니아를 구박했다.
“너라도 따라갔었어야지.”
“와, 지금 주인님을 성실하게 기다리고 있던 도우미를 탓하는 거예요?”
이현의 구박이 서러웠는지 티타니아가 입을 삐죽이며 톡 쏘아댔다.
“제가 일부러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아요? 총관님이 혼자서 몰래 가신다는데 제가 어떻게 말려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책임자인 이아코스도 없는데.”
“그럼 내보내질 말든가!”
“총관님이 오실 줄 내가 알았냐고!”
이현과 티타니아의 언성이 높아질 때쯤이었다.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내가 일부러 오지 말라고 한 게 맞아.”
“총관님! 주인님이 괴롭혀요.”
홀연히 응접실에 나타난 총관에게로 티타니아가 포로롱 날아가 안겼다.
이현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콧김을 한번 뿜고는 총관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총관님. 오시는 줄 모르고 자리를 비워서 죄송합니다.”
“내가 아무 연락도 없이 온 거니 자책하지 않아도 돼.”
총관은 작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는 티 테이블에 앉았다.
“이 넥타르가 워낙 순도가 높고 맛이 좋길래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이아코스라는 친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상급 넥타르입니다.”
이현이 서둘러 눈짓하자 티타니아가 화가 덜 풀렸는지 힝힝대면서도 총관의 찻잔에 넥타르를 따랐다.
“조만간 던전 마켓에 내놓을 스페셜 상품 ‘마고’입니다.”
이아코스가 [소통의 넥타르]를 만들면서 함께 개발한 최고급 넥타르였다.
스페인어로 마법사를 뜻하는 마고.
특별히 공을 들여 신격까지 쏟아 넣어 만든 마고는 그 이름대로 감히 장담컨대 그 누구도 맛보지 못한 최상품이었다.
“괜찮네. 아니, 솔직히 아주 좋아.”
청옥액이라는 고급 영약을 입에 달고 사는 총관의 입에서 극찬이 나오자 이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총관쯤 되는 이의 입맛에 맞는다면 앞으로 DP를 쓸어 담는 것도 꿈은 아니리라.
“앞으로 이 넥타르를 차지하려고 경쟁이 치열해지겠군.”
“안타깝게도 한 번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양이 적어서요.”
이아코스가 신격까지 쏟아 넣어야 할 정도였기에 보통 넥타르를 만드는 수고에 비하면 정말 개미 눈물만큼 만들어지는 게 한계였다.
“그래도 총관님께는 따로 한 병 챙겨드리겠습니다.”
이현이 눈짓하자 티타니아가 고급 와인 병에 담긴 넥타르 ‘마고’를 가져왔다.
코에스몰에 있던 수백만 원짜리 와인을 과감히 따라내어 버리고 포장 용기로 쓴 상품이었다.
“고맙게 받겠지만, 이러면 내가 조금 미안해질 것 같은데.”
“부담 가지실 것 없습니다.”
총관의 보기 드문 난처한 표정에 이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현이 프랜차이즈 매장의 점장이라면, 총관은 그 프랜차이즈의 본사 사장이었다.
이 정도 선물로 호의를 얻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총관은 난처한 기색을 지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니, 내가 여기 온 건 부탁할 게 있어서였거든.”
“부탁할 일이라니…….”
티타니아마저도 총관의 표현에 놀라서 말끝을 흐릴 정도였다.
“괜찮다면 이야기를 해도 되겠나?”
진지해진 총관의 태도에 이현도 덩달아 진지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겠습니다.”
“고맙군.”
총관은 조용히 마고를 한 모금 마시고는 충격적인 부탁을 해왔다.
“바깥에 있는 벌레 신의 무리를 처리해줬으면 해.”
“……!”
“……!”
갑작스러운 그녀의 부탁에 이현도 티타니아도 서로를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 * *
아득, 아드득.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오거들의 시체 더미를 모두 먹어치운 사도의 유충은 시장의 집무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져 있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덩치가 3m에 달하는 수십 마리의 오거를 뼛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운 뒤에도 사도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아그작, 아그작.
몸의 크기를 키우면서 벗어던진 자신의 허물까지도 모두 씹어 먹었음에도 여전히 부족했다.
이 허기를 달래려면 몇 배는 더 먹어야 했지만, 이미 시청에는 남아있는 먹이가 없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해올까?
사도의 유충은 키틴질로 날카롭게 빚어진 자신의 앞다리를 까딱거렸다.
사마귀의 것처럼 생긴 앞다리는 금속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광택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어떤 금속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고 튼튼했다.
푹.
거대한 낫이자 창의 형태를 한 앞다리가 뚫고 간 벽에는 깔끔한 구멍이 나 있었다.
오거들을 위해 튼튼하게 지어진 시청 건물의 벽에 잔금 하나 없는 구멍이 날 정도면 어떤 생명체도 버티지 못하고 절명하리라.
사냥을 하기로 마음먹고 사도의 유충이 막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먹이. 먹이. 먹이.”
사도의 유충이 가진 예민한 감각에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들이 감지되었다.
1층 로비에 들어선 이들은 군홧발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시청을 수색하고 있었다.
“제길, 아무도 안 보여. 다 잡아 먹힌 건가?”
“경찰 놈들은 이렇게 될 때까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떠들 시간에 더 찾아!”
온몸이 체액으로 범벅이 된 채 사격을 이어나가는 그들은 도시 뉴가텀의 방위군이었다.
그들은 도시 외곽의 주둔지에 있다가 도심 내부에서 벌어진 재앙을 전해 들은 참이었다.
“시장님을 찾아야 한다.”
지휘관이 엄숙한 얼굴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도시의 위험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지휘체계의 확보였다.
그러기 위해선 시장이나 그를 대리할 존재가 필요했다.
만약 이미 늦어 버린 상황이라고 해도 새로운 지휘체계를 확립하려면 그걸 확인하는 수순이 필요했다.
지휘관이 이끄는 부대원들은 그걸 위해 시청으로 진입한 것이었다.
나머지 병력은 시청 밖에서 권속 누에들을 소탕하는 중이었다.
“여기부터 살피자.”
시청을 수색하는 병력 중 일부가 시장의 집무실 앞을 지나갈 때였다.
푹!
“으아아악!”
벽을 뚫고 나온 앞다리가 운 나쁜 병사의 다리를 꿰뚫었다.
“저기다! 쏴버려!”
쾅! 쾅!
폭음에 가까운 총성과 함께 총탄이 발사되었지만, 다리가 꿰인 병사는 비명과 함께 집무실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으적, 으적.
살과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벽 건너 집무실에서 들려오자 오거 병사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당황한 건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제길, 지금까지 수도 없이 잡아봤잖아! 뭘 망설여!”
“하, 하지만 그놈들이랑은 뭔가 다릅니다!”
지휘관도 분명히 봤다. 자신의 부하를 꼬치처럼 꿰어서 가져간 거대한 앞다리를.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비켜! 이 겁쟁이 녀석.”
지휘관은 부하를 옆으로 치우고 황소만 한 허벅지에 힘을 실어 집무실의 문을 박살 냈다.
“저, 저게 뭐야.”
“왜 저렇게 커?”
집무실을 가득 채운 거대한 애벌레는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컸다.
“킷킷킷!”
마치 거대한 뱀처럼, 혹은 지네처럼 똬리를 틀고 있던 사도의 유충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먹이들을 반기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런, 전부 사격해!”
지휘관은 그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그대로 전방을 향해 총을 갈겼다.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당탕! 탕! 탕!
“크퀴이이이잇!”
“효과가 있어!”
상대의 비명이 들려오자 병사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휘관 역시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탄창 다 비울 때까지 사격해!”
오거 전용 대구경 소총 앞에서는 권속 누에도 세 방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조금 크고 강력하면 뭐 어떤가. 그래 봤자 벌레 아니겠어?’
오거 지휘관을 비롯한 군인들의 머릿속에 승리의 희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희망은 날아드는 앞다리에 무참히도 꿰뚫려 버렸다.
“으아악!”
“사, 살려줘!”
다리 하나에 한 명씩, 두 명의 오거 군인이 끌려갔다.
으적, 으적.
사도의 유충은 앞다리와 마찬가지로 금속성 광택을 띤 키틴질 턱으로 둘의 머리통을 동시에 씹어 먹고 있었다.
“사, 상처 하나 없다고?”
지휘관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사도의 유충은 다른 권속 누에들과 달리 전신에 키틴질 외골격을 두르고 있었다.
앞다리와 마찬가지로 금속을 뛰어넘는 내구도를 자랑하는 외골격 앞에선 어떠한 총기도 무용지물이었다.
“크큇큇. 잘 먹겠습니다.”
생일 케이크를 눈앞에 둔 어린아이의 기쁨이 이러할까.
사도의 유충은 기쁨을 전신에서 내뿜으며 똬리를 풀고 집무실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먹이를 가운데 두고 거대한 원을 그리는 모습은 멸망을 불러온다는 전설 속의 거대한 뱀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외관으로 따지면 끔찍하게 커다란 지네에 가까웠지만…….
“맙소사…….”
“흐힉힉힉, 우린 죽었어. 죽었다고!”
“어, 엄마…….”
죽음의 공포와 사도의 유충이 뿜어내는 사기에 휩싸인 병사들의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미안하다.”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지휘관은 정신을 놓아 버린 부하들에게 사과를 남기고 총을 들었다.
그리고 입안에 총구를 넣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산 채로 괴물에게 먹히는 고통을 감수하느니 이성이 있을 때 자살하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탕!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지휘관의 시체가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이미 정신이 나간 병사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사기로 오염된 뇌가 벌레 신을 위한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히히히, 사각, 사각, 사각.”
“전능하신 신이시여, 전능하신 신이시여, 전능하신 벌레 신이시여.”
“아히야, 아히으아, 그분께서 오신다!”
지휘관의 뇌수와 피로 범벅된 병사들은 산채로 으적으적 먹히는 와중에도 끝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사도의 유충이 시청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