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90
389화
-함정(2)
“충충가향(蟲充家鄕) 충현진인(蟲玄眞人). 충충가향 충현진인.”
수백여 개의 초가 타오르는 충현궁 깊숙한 곳의 제단.
그 앞에서 마교의 교주 충충도인은 쉼 없이 절을 하며 그의 주인을 위한 제를 올리고 있었다.
마치 기계처럼 기도문을 독경하며 절을 하는 것을 반복하던 그의 움직임이 별안간 딱 멈추었다.
“손님이 오셨구려.”
누가 들었다면 기겁을 할 소리였다.
충현궁은 오로지 마교 교주만이 출입할 수 있는 건물로 시중을 드는 자들도 없었다.
그런데 충충도인은 누굴 보고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제단 앞에서 손을 모아 합장을 한 채로 입을 다시 열었다.
“숨겨도 소용이 없소이다. 나의 주인께서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겹쳐진 눈으로 모든 걸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니.”
“…….”
스륵.
아무도 없던 것이 분명했던 제실 문 쪽에서 귀신처럼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이현이었다.
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말했지 않소이까. 나의 주인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신다고.”
이현이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충충도인은 제단 앞을 향한 채로 이현을 보지 않고 말을 해왔다.
“처음 보는 분이시구려. 마교의 교인이라면 감히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터. 바깥에서 오셨소?”
“내 정체에 대해서는 잘난 네 주인도 알지 못하나 보네.”
이현의 비아냥거림에 충충도인이 후후후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충현진인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을 보니 확실히 마교의 교인은 아니외다. 당신이 요즘 그 유명한 도이현 대협이오? 몽중현녀를 모시고 있다는?”
“…….”
충충도인의 말에 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한 달 만에 자신에 대한 정보가 마교에까지 퍼져 있었다.
“고생하면서 정보를 알아내러 왔는데 당신은 이미 앉은 자리에서 우리 정보를 모두 알고 있군그래.”
“말하지 않았소. 나의 주인께서는….”
“아, 그래그래. 벌레 같은 눈으로 모든 걸 다 꿰뚫어 본다 이거지?”
“……입이 험하시구려.”
충충도인이 처음으로 불쾌한 듯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네 주인 같은 놈들이랑 두 번이나 싸워봤거든. 죽이는 데 애 좀 먹었지. 그러다 보니 좋은 감정이 들지를 않네.”
“농담도 심하시구려. 한낱 인간이 어찌 나의 주인과도 같은 존재를 무찌른단 말이오?”
이현의 도발 섞인 말을 충충도인은 조금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낱 인간이라…….”
이현은 지금이라도 격을 퍼뜨려 자신의 힘을 교주에게 보여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 교주가 놀라서 마교 교도들을 모두 불러내면 나만 힘들어진다.’
이현이 여기까지 오면서 [분석의 안약]으로 확인한 마교 교도의 숫자만 만 명에 가까웠다.
지금 이현은 정보를 얻으러 온 것이지 그들을 모두 죽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현은 교주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대신 허풍쟁이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여기 오신 이유는 무엇이오.”
“찾는 게 있어서.”
이현은 애각창을 복원할 조각일 가능성이 있는 조운 자룡의 위패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들어왔다.
이현의 대답에 충충도인은 다시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소이까? 기왕 여기까지 오신 손님이시니 내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드리리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충충도인의 반응에 이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닐 거고.’
이현이 바보도 아니고 교주의 말을 순순히 믿을 리 없었다.
‘어떤 꿍꿍이가 있는 거지?’
표정이라도 읽으려 했지만, 충충도인은 이현에게 등을 돌린 채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이현은 속으로 혀를 차며 말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자신이 찾는 것을 입에 담았다.
“순평후 조자룡의 위패를 찾으러 왔다.”
“……특이한 것을 찾으시는구려.”
정말 의외였는지 충충도인의 대답이 살짝 느렸다.
“충란선단이나 본 교의 경전을 가지러 오신 줄만 알았소이다.”
“줘도 안 가진다, 그런 거.”
이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어쨌든 위패를 찾아 이곳으로 오긴 했는데, 보이질 않는군. 여기 있긴 한 건가?”
몸을 투명화할 수 있다고 해서 이현이 무작정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교주의 거처인 충현궁을 샅샅이 뒤지며 위패의 존재를 분석안으로 탐색했다.
하지만 충현궁 가장 깊숙한 곳인 제단의 방까지 오면서 위패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있소이다.”
하지만 충충도인은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패 하나쯤이야 내어드리지요.”
충충도인이 낮게 웃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걸 그냥 준다고?’
이현은 밀려드는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주를 포함한 마교의 본거지는 그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우선, 교주가 너무 이현에게 호의적이었다.
이현이 남무림맹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이미 교주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적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물로 주겠다니?
이현은 그것을 순수한 선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다음은 바로 장소였다.
마교의 본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깨끗한 곳이었다.
이현은 사도와 몇 번이고 싸움을 벌여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의 경험에 비춰볼 때, 만약 이곳에 사도가 존재한다면 어마어마한 사기가 풍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사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아.’
물론, 충란선단을 복용한 마교의 무사들에게서 풍기는 사기는 곳곳에서 풍겨왔다.
하지만 사도가 풍겼던 그 끔찍한 사기에 비하면 꽃향기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 농도가 옅었다.
“……이를 어쩐다.”
이현이 미심쩍은 요소들을 곱씹을 때였다.
평균보다 왜소한 체구의 노도사는 제단 앞으로 다가가더니 몇 가지 장치를 건드렸다.
쿠구궁!
그러자 기관진식이 작동되며 초로 가득 차 있던 제단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것은 둘로 갈라져 나뉜 제단 밑에 존재하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그 입구를 본 이현이 놀라서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제단 자체가 위장이었나?”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제단은 제단이고 비밀통로는 비밀통로일 뿐.”
충충도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홱 돌렸다.
이현은 처음 보는 그의 얼굴에 잠시 놀라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얼굴에는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두 겹눈이 달려 있었다.
“따라오시오. 그대가 원하는 위패를 내어드리리다.”
충충도인은 놀란 이현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역시 이미 인간이 아니었나.”
이현의 분석안에는 교주 충충도인의 정보가 이렇게 뜨고 있었다.
「이름 : 충충도인
종족 : (???)
직업 : 벌레 신의 권속」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마교를 이끄는 교주로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 속은 이미 권속에게 전부 먹혀 버린 지 오래였다.
마교의 살수들처럼 거대한 지네의 모습을 한 권속일지, 아니면 뉴가텀에서처럼 누에나방의 모습을 한 권속일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자, 이제 어쩐다.”
이현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하 통로를 내려다볼 뿐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해.’
이현의 직감이 맹렬히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보는 소찬경이 얻어내고 있을 테니 문제가 없지만, 애각창의 조각을 얻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하다못해 조자룡의 위패가 애각창의 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라도 이곳을 떠나야 했다.
“어쩔 수 없네. 가야지.”
이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교주가 사라졌던 지하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 * *
이현이 지하 통로를 통해 충현궁 밑에 있는 지하 비동으로 들어서자 충충도인은 그제야 걸음을 이어나갔다.
이현이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게임 속 NPC 같네.’
그가 내려오지 않으면 평생을 거기서 기다렸을 것 같은 비인간적인 느낌에 이현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이미 인간이 아니지.’
이현은 언제라도 품에서 [판타소스의 꿈]을 꺼낼 수 있게 준비를 하며 충충도인의 뒤를 따라갔다.
‘꽤나 깊숙이 들어가네.’
이현과 충충도인은 아래로 경사진 지하 비동의 길을 한참이나 걷고 있었다.
이미 충현궁의 터를 지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걸어가는 시간이 30분을 넘어가자 이현은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려워졌다.
방향과 걸은 시간을 고려하면, 충현궁 뒤에 있는 산 밑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산의 뿌리로 향하는 느낌인데, 이거.”
“눈치가 빠르구려. 우리는 지금 천산산맥의 중심을 향해 가고 있소.”
이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충충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자 이현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설마했는데.”
“갱도가 무너질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교주의 말을 들은 이현은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건 좀 놀랍네.”
지하 비동의 통로는 지지대나 기둥 하나 없이 오로지 돌로만 이루어진 통로였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통로의 벽이 마치 녹여서 만든 것처럼 매끈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다.
‘대체 어떻게 뚫은 거지?’
현대식 기술로 터널을 뚫고 콘크리트로 마감해도 이렇게 매끄럽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벽마다 샛노란 형광빛을 내뿜는 주먹 크기만 한 보석이 박혀 갱도를 밝히고 있었다.
환하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빛은 앞을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전기도 아니고 아티팩트도 아닌데 빛을 내뿜고 있다니.’
이 광경을 티타니아가 보고 있었다면 ‘야광주!’라고 소리쳤을 터였다.
아니, 그것도 틀린 명칭이었다.
형석으로 이루어진 야광주라면 이렇게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에서 빛을 발할 수가 없었다.
이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빛을 내는 보석을 지긋이 보다가 순간 얼굴을 팍 구겼다.
그 보석에서 느껴지는 짙은 사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눈치채셨구려.”
이현의 욕설에 충충도인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충란선단을 사람의 몸이 아닌 밖에서 성장시키면 저렇게 스스로 빛을 내는 야광주가 되오. 모두 하나하나가 나의 동족이란 소리지.”
이젠 자신이 벌레 신의 권속이라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어진 것인지, 교주는 벌레 같은 웃음소리로 키득거렸다.
“어떠시오? 아름답지 않소? 그대에게라면 몇 개쯤은 선물로 드리리다.”
“사양하지. 당장이라도 박살 내고 싶은 걸 참는 중이거든.”
방금 동족이라고 해 놓고선 선물로 준다는 충충도인의 말에 이현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인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기에.
그리고 그를 떠나서 곧 권속으로 부화할 저 보석들을 모두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이현은 곧 야명주처럼 빛나는 충란선단들은 신경도 쓰지 못할 광경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빌어먹을.”
한참을 걸어 내려간 비동의 끝은 넓은 공동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현은 그 공동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사기에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권속이나 충란선단 따위에서 흘러나오는 사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반신의 격을 가진 데다가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현을 이렇게 압박할 수 있는 사기를 가진 건 하나밖에 없었다.
“나의 주인을 만나 뵙게 된 것을 경하드리오.”
겹눈을 반짝이며 충충도인이 히죽 웃어 보였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공동 한가운데 설치된 제단에 모셔진 거대한 벌레의 알이었다.
“사도의 알.”
이현이 봤던 그 어떤 사도의 알보다도 커다란 알이 공동을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