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65
464화
-개미굴(1)
분체들이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을 때, 이현의 본체는 태평양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었다.
대기권을 돌파한 이현의 분체는 눈앞에 들어오는 태평양의 모습에 혀를 찼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하네.”
크고 평화로운 바다라는 이름의 태평양은 엉망진창이었다.
사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사기로 탁해진 바다는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것도 물이 있는 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아주 구멍이 뻥 뚫렸구만.”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대륙 사이에 북아메리카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구역의 물이 사라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닥 한가운데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구멍이 존재했다.
이현이 향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망할 놈들. 인류의 위업을 흙더미 쌓듯 쌓아서 댐을 만들어 놨네.”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만리장성,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부르츠 할리파.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건설했던 유산들이 마치 벽돌처럼 아니, 돌무덤처럼 마구 쌓여 있었다.
아마 자세히 보면 청와대나 류경 호텔의 잔해도 끼어 있을 터였다.
피라미드 같은 경우는 모두 부서져 곳곳에 쌓였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댐 일부분이 무너지며 바닷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퀴이이잇!”
그러자 권속 일개미 수백 마리가 거대한 철제 구조물을 든 채로 심연의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이현은 그 철제 구조물의 정체를 알고서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핵 잠수함이잖아?’
전장 170m에 달하고 무게만 4,800t이 넘는 인류 최강의 병기가 한낱 권속 일개미들에 의하여 댐 일부분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태평양 한가운데 차근차근 쌓아놓은 원형의 댐은 주변의 바닷물이 심연의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게 막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하얀 부분은 뭐지?’
1만 년이 넘게 누적된 인류의 유산의 양만으로는 그런 거대한 댐을 만드는 건 무리였다.
권속 일개미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접착성 액체를 시멘트처럼 발라 댐을 만들었다.
마치 벌이 밀랍을 생성해 내어 집을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벌과 개미가 생각보다 가까운 친척이라지만.’
이현은 권속 개미들이 댐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핵 잠수함으로 댐의 보수를 마친 권속 일개미들이 다시 심연의 구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확실히 저기가 둥지가 맞나 보네.”
저 둥지 안에 권속 개미들을 부리는 사도가 머무르고 있을 터였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이현은 니체의 명언을 뇌까리며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구멍 속을 노려보았다.
혹시라도 사도가 자신을 알아챌까 싶어서였다.
* * *
흠칫!
깊고도 깊은 심연의 개미굴에서도 가장 깊은 곳.
지각이 끝나고 대류하는 맨틀 위에 위치한 자신의 궁전에서 잠을 자던 여왕개미, 사도 키유탄이 몸을 떨었다.
자신을 주시하는 불쾌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참 산란을 해서 권속들을 생산한 뒤 피곤함을 달래려 잠든 것이 조금 전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피로를 풀기도 전에 잠을 방해받다니.
“퀴이이익!”
여왕개미를 시중드는 권속 일개미가 심기가 불편해진 어미의 몸을 닦아주며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권속 일개미는 위로보다는 도망을 선택했어야 했다.
“저리 비켜.”
“퀴에엑!”
키유탄의 붉게 물든 발이 권속 일개미의 머리를 꿰뚫었다.
으적으적
충성의 대가는 심기 불편한 어미의 간식이 되는 운명이었다.
“맛이 없네.”
키유탄은 일개미의 붉은 체액이 진득히 묻은 자신의 발을 핥으며 짜증의 페로몬을 뿜어냈다.
그러자 일대의 권속 일개미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붉은 발의 키유탄.
그녀의 별명처럼, 키유탄은 심심하면 자신의 권속을 쿠키처럼 씹어먹었다.
키유탄은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발이 붉은색이었지만, 그녀의 권속들은 자신들의 피가 묻었다는 의미로 그녀를 붉은 발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럴 지능이 있는 권속들만 그랬다는 소리다.
“짜증이 치솟는군.”
그녀는 어마어마하게 커진 배에 힘을 주며 새로운 권속 일개미로 태어날 알들을 꽁무니로 뱉어냈다.
하지만 그 알들이 태어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오독, 오도독 자신이 낳은 알을 씹는 광기에 가까운 그 모습은 키유탄이 몹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이 저주받을 행성 때문에!”
그녀가 다시 태어나 사도로 각성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먼 옛날, 단짝이었던 샤이 규라흐와 함께 티타누스에게 도전했다가 사도의 알로 되돌아간 그녀는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다.
총관은 이번 우주를 만들면서 포로로 잡고 있던 사도의 알을 곳곳에 숨겨놓았었다.
우연인지 의도된 건지 모르겠지만, 키유탄은 단짝이었던 샤이 규라흐와 같은 별에 알로서 잠들게 되었다.
때문에,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샤이 규라흐의 사기를 느낀 키유탄은 몹시도 이를 반가워했었다.
“이 등신 같은 놈은 어딜 간 건지.”
하지만 그녀가 이 지구를 점령할 때까지 샤이 규라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짜증 나게 하는 첫 번째 원인이었다.
“으으윽!”
갑자기 찾아오는 복통과 함께 키유탄이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껍데기가 쩍쩍 갈라지며 안에서 회백색 투명한 새로운 육체가 드러났다.
탈피였다.
“안 돼.”
키유탄이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탈피를 억누르자, 갈라지던 껍데기가 다시 붙으며 원래대로 돌아갔다.
“망할 놈의 총관. 왜 하필 이 별을 아끼는 건데!”
총관의 보호 아래에 있는 별에서는 사도가 완전한 성체에 이르러선 안 된다.
거기다 직접 나서서 행성을 정복해서도 안 된다.
키유탄은 오래전부터 총관과 벌레 신 사이에 맺어진 바로 이 맹약 때문에, 억지로 자신의 성장을 억누르며 심연의 구멍 속 둥지에 처박혀 있는 것이었다.
기껏 부활해 예전의 힘을 찾으려 했건만, 부활한 행성이 총관의 보호 아래에 있다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것이 키유탄이 불쾌한 두 번째 이유였다.
“이런 와중에 사념 에너지를 내 새끼들이 아닌 다른 것에게 양보해야 한다니.”
다른 것이란 바로 그녀의 산란실 깊숙한 곳에 있는 또 다른 사도의 알이었다.
그녀가 알에서 깨어나 사도로 각성하자마자, ‘그 존재’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오랜 잠 끝에 다시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 자매여. 어서 빨리 네가 성체가 되어 다시 우리의 전력이 되면 좋겠지만 총관의 보호 때문에 그건 힘들 것 같군. 그러니 이 알에 사념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도록.’
같은 사도라 하여도 살아온 시간과 그 힘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키유탄은 한 번 죽었다 부활한 몸이었기에 힘이 몹시도 약했고, 그 때문에 서열 1위의 사도가 하는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그녀가 가장 강력했을 때도 그녀의 자매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하다니!’
쿵! 쿵! 쿵!
자신이 불쾌해하는 마지막 이유를 떠올린 키유탄이 그녀의 붉은 발로 미친 듯이 땅을 굴러댔다.
덕분에 맨틀의 뜨거운 마그마가 간헐천처럼 궁전의 바닥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퀴에에에엑!”
“크퀴이이잇!”
마그마에 휩쓸린 몇몇 권속 일개미들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지만, 키유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의 분노가 더 먼저였다.
그때였다.
찌릿.
그녀의 등골을 타고 흘러가는 불쾌한 시선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어떤 놈이 감히 내 몸을 훑어보는 거지?”
태평양의 해양 지각 두께가 대륙보다는 얇다고 해도 10km나 된다.
그 깊이를 뚫고 그녀를 주시한다는 것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만약 키유탄이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가 과거 그녀를 알로 돌아가게 했던 존재의 힘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것을 알면 까무러쳤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위대한 사도였고 지구 전체에 퍼진 수십억의 권속 개미 군단을 거느린 왕국의 군주였다.
사도 특유의 오만함으로 그녀는 평생을 후회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당장 저놈을 데려와! 산 채로 내 앞에다가!”
지엄한 사도이자 여왕개미인 어미의 명령에 따라, 심연의 개미굴에 있던 수억 마리 권속 개미들이 이현을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쏴아아!
키유탄의 명령을 받은 권속 개미 떼가 심연의 개미굴을 통해 지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크기가 1m에 달하는 권속 일개미들과 10m가 넘는 권속 병정개미들의 수가 무려 수억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는 마치 폭풍이 이는 밤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퀴에엑!”
“크큇! 크큇!”
권속 병정개미 중 지휘관 역할을 하는 권속의 호령과 페로몬에 맞추어 권속 개미 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개미는 인간과 침팬지를 포함해 전쟁을 벌이는 얼마 안 되는 생물이었다.
물론, 이들은 진짜 개미가 아니라 개미와 닮은 벌레 신의 무리였지만, 전쟁을 위해 준비된 군대라는 것은 같았다.
그렇게 맨틀에서 지상까지 수직 10km의 높이를 순식간에 내달려 온 권속 개미 떼의 선봉이 심연의 구멍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어미가 말한 존재가 눈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팔짱을 끼고 아주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퀴에에엑!”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에게서 흘러나오는 격에 겁을 먹은 선봉 권속 일개미가 페로몬을 뿜어냈다.
그사이 이현은 팔짱을 풀며 심연의 구멍에서 나온 개미를 노려보았다.
“오냐, 본인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나오지 않겠다 이거지?”
이현은 자신이 눈치를 줬는데도 나오지 않는 사도의 태도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을 잘못 만난 네 운명을 원망해라.”
으직.
이현이 가볍게 주먹을 뻗자 거기서 뻗어 나온 권풍이 선봉 권속 일개미를 그대로 짓뭉갰다.
“큇! 큇! 큇!”
하지만 권속 일개미는 죽어가면서도 웃었다.
이미 그가 뿜어낸 페로몬이 동료들에게 전달되었을 터였다.
그 페로몬을 사람의 언어로 옮기자면 이랬다.
‘여기에 무서운 존재가 있다. 어머니 여왕께서 원하는 자다!’
쏴아아!
페로몬으로 이현의 정보를 전해 받은 권속 개미 떼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현이 있는 자리를 덮어 휩쓸었다.
쏴아아! 콰득! 콰드득!
옛날 B급 호러 영화를 보면 식인 개미 떼가 지나간 자리에 동물이건 사람이건 뼈만 남게 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물론, 현실의 개미 떼는 그런 일을 벌이지 못하지만, 사도의 권속인 개미 떼들은 그게 가능했다.
이현이 있던 일대의 모든 것이 권속 개미들의 턱에 부서지고 찢어졌다.
“퀴에에엑!”
한참을 미친 듯이 턱질을 하던 권속 병정개미 중 지휘관 역할을 하던 권속이 멈칫하며 페로몬을 내뿜었다.
‘당장 저놈을 데려와! 산 채로 내 앞에다가!’
그제야 자신들의 어미이자 주인인 키유탄이 이현을 산 채로 데려오라고 명령한 것을 떠올린 권속들은 사색이 되었다.
이미 가루가 되어 버린 이현을 다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로 키유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이곳에 있는 권속 개미들 모두가 그녀의 간식이 될 터였다.
자식이야 하루에도 수만 마리를 낳는 키유탄에게 권속 개미의 목숨이란 조금도 중요하질 않았다.
그렇게 권속 개미들이 공포의 페로몬을 뿜어대며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먼 곳에 있는 너희 주인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나를 겁내야 하는 게 먼저 아닐까?”
쾅!
이현을 뒤덮었던 권속 개미 떼들이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퀴에에엑!”
“크퀴이잇!”
권속 개미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라보는 곳에는 거대한 빛의 거인으로 변신한 이현이 서 있었다.
이현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총처럼 뻗었다.
“가볍게 F 킬러부터 시작하자.”
치이이익!
규격 외의 힘으로 만들어진 살충제가 권속 개미 떼들의 머리 위로 살포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