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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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들어본 적 있어……’
내가 전생하면서 직접 맞닥뜨린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고대의 삼황오제 신화는 물론이고 도 가에서 종종 언급되었기에 나뿐만 아니라 역사를 공부한 모든 학자나 학인(學人)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었다.
그 존재는 황제 공손헌원에게 방중 술 등 성의학에 관한 자문을 하였으 며 초기 인간 문명을 설립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방중술은 성합이라 음란한 상상을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망량이 내게 가르쳐줄 때 말하길, 소녀경의 방중술은 그 자체가 절세의 진기도인법이었기에 오악의 도가문파들이 소녀경에서 파생된 호흡법을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 근본은 인간을 이롭게 하고 활인을 만들어내는 비기였다.
그 전설적인 소녀라는 기인이 하필이면 전륜성왕과 신농이 맞부딪히는 자리에서 언급되다니?!
‘아니 그것보다 소녀라는 존재가 실존했단 말인가?’
하긴 기백 또한 기백천사라는 이름의 사도로 마주쳤으니 소녀가 등장해도 이상할 게 없긴 했지만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신농이 전륜성왕의 말에 대꾸했다.
[다 알고 있나 보군. 그 말대로 유소는 소녀에 맞먹는 재능의 소유자…… 황제는 틀림없이 소녀의 능력을 이용해 암수(暗手)를 부리려 할 텐데 거기에 대항하려면 유소가 필요하다.]
전륜성왕은 여전히 상하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신농이여. 아무리 유소와 소녀의 능력이 대단해도 우리 같은 신성(神聖)에게 큰 위험을 끼치지는 못한다. 그대는 황제에 대항한다는 핑계 로 황제와 같은 패도(覇道)를 걸으려 하는 게 아닌가?]
[…….]
[부정하지 못하는군.]
그러자 신농이 다소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소녀가 합류한 황제의 진영이전보다 더 강력한 건 사실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유소라는 패를 소멸시키는 악수를 두어서 뭐에 쓴다는 게냐.]
[굳이 용불용(用不用)을 따질 게 있는가? 황제가 이기는 그대가 이기든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아버지]의 품 안에 들어갈 뿐. 정해진 운명을 거슬러 리(利)를 취하려 함은 마치 필멸자의 발버둥과 같다.]
[후우…… 근원의 [죽음]에서 태어났다 하여 마치 [아버지]라도 된 양 지껄이지 말아라. 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감조차 부정하는 오만함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런가.]
뭔가 신농과 티격태격하던 전륜성왕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 옥좌에 턱을 괴었다. 그러더니 바로 옆에 있던 내게 말을 걸었다.
“백웅이여. 너는 저게 보이느냐?”
“예?”
뭐가 보이냐는 거지
나는 명경 너머에 뭔가가 있나 싶어서 시력을 집중해서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신농과 거신군단 외에는 없었기에 나는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자 전륜성왕이 말했다.
“아무래도 힘을 너무 중구난방으로 쌓은 것 같구나. 원래 너 정도 역량이라면 저놈쯤은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저놈이라니요?”
스윽
그러자 전륜성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릎을 꿇고 있는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내 이마에 톡 갖다대었다.
“이럴 때 한 번 전륜(轉輪)해주면 힘의 순수성을 정립할 수 있지.”
쩌어엉!!
“……!!”
그 순간 내 상단전이 쪼개지는 듯 한 어마어마한 파격(破格)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무형의 힘이 사지(四枝)에서 회오리치며 피부를 찢어버리려 했고 나는 몸 전체가 소용돌이에 갈려 들어가는 듯한 압박에 비명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악!!”
전륜성왕이 나를 공격한 것인가?!
쿨럭!
‘젠장! 이번 생은 전륜성왕한테 죽는 건가!’
우우웅
하지만 잠시 후 나는 전신이 가뿐 하고 상쾌해짐을 깨달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혈을 토하자마자 내 전신에서 새하얀 백광이 일어나서서 차라리 성스럽기까지 한 힘의 파동이 넘실거렸다.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려도 생기지 않을 듯한 충만함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헉! 이건…….”
“힘의 흐름이 잠시 안정되었으니 정신을 집중해서 삼안(三眼)을 떠보아라.”
“아… 넵.”
나는 전륜성왕이 내게 뭔가를 했다는 걸 알아채고는 곧장 그의 말대로 과거에 내가 습득했던 전륜성왕의 권능 중 하나인 삼안을 개방했다. 이마에 힘을 집중하고 삼안의 권능 을 불러오자 잠시 후 내게 또 하나 의 눈이 생겨났고, 이 삼안이야말로 명계에서 전륜성왕과 염라대왕만이 가진 최고의 권능 중 하나였다.
‘그동안 삼안은 거의 쓸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잘 되는구나.’
스아앗
잠시 후 삼안을 통해서 신농과 거신군단이 있는 장소의 허공에 무언가가 보였다. 지금껏 투명화하고 있던 무언가였다는 걸 깨달은 나는 그걸 좀 더 자세히 살폈는데 이윽고 그게 무엇인지를 알아채고는 외쳤다.
“황제의 사도, 기백천사(岐伯天師)!!”
저 괴이한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열 개나 되는 눈과 몇 쌍의 날개, 그리고 불길한 적색 견갑골은 그 자체로 우주적인 공포에 가까웠다. 황제의 사도이자 그 자체로 강력한 신격 중 하나인 놈이 등장한 것이다.
전륜성왕이 차분하게 말했다.
“저놈은 지금 은신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서 흥분해 있는 신농이 놈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기백천사의 눈을 통해 황제에게 모두 들어가고 있겠지.”
“……!!”
“그러나 저놈이 아무리 뛰어난 은신술을 발휘해도 삼안을 피할 수는 없다. 네 안의 신력을 한번 갈무리 해주었으니 삼안을 앞으로 잘 활용하도록 하거라.”
“네, 넵.”
나는 전륜성왕이 내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설마 지금 유소를 죽이려는 척 하시는 이유가……”
“그래. 황제가 다 보고 있는데 본좌가 뻔히 유소를 신농의 손에 넘겨준다면 유소는 몇 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신농의 말대로 유소는 우리에게 비장의 패가 될 수 있으니 황제에게 신원이 노출되는 걸 피해야 하지.”
“그럼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신농과 말을 맞춰야지. 그리고 기 백천사도 속여야 한다.”
그렇게 중얼거린 전륜성왕이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니 네가 대전사(大戰士)로 나 서줘야겠다.”
“네?”
덥썩
전륜성왕이 갑자기 손으로 내 얼굴을 꽉 붙잡았다.
“잘 해다오.”
슈우웅!!
다음 순간, 나는 갑자기 전륜성왕의 방에서 명계의 성문(城門) 앞으로 이동되었다. 허허벌판과 같은 성문 앞에는 수많은 군세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나는 그 군세의 한가운 데에 신농의 거대한 본체가 나타나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명계에 쳐들어온 신농의 거신군단 바로 앞으로 순간이동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 정신이 아득해져 버렸고, 주춤거리며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던 신농이 외쳤다.
[네놈은 누구냐!!]
그 외침에는 신농의 성난 살기(殺氣)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그가 얼마나 열 받아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열 받았기 때문 에 몰래 숨어있는 기백천사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이리라. 그리고 내가 만일에 저 살기의 주인인 신농에게 공격받는다면 단 일격도 버티지 못 할 게 자명했다.
“어……… 그…….. 그…… 그게…….”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상황이 된거지?!
내가 충격과 공포 때문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허공에서 전륜성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농. 나는 명계의 대제(大帝)로서 섣불리 생사견명(生死堅明)의 원칙을 굽힐 수 없다. 그리고 유소를 양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대 또한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하여 황제에 대항하는 우리가 전력으로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일이다.]
[그래서?]
[서로의 대전사를 내보내어 일기토로 결판을 짓자. 이긴 측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자 신농이 껄껄 웃었다.
[후하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아주 좋다만 설마 이 조그마한 인간이 너의 대전사인가?]
[그렇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제외한 최강의 전사를 내보내거라.]
[그렇다면 당연히 내 선택은 정해져 있다.]
쿠웅….
쿠웅!!
청동빛 갑옷과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는 거신이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피부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한 손에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그 도끼에는 엄청난 신력이 깃들어있었다.
나는 그 존재를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거, 거신왕(巨神王) 수인(人 ) ….”
지금 나보고 저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냐고!!
딱 봐도 나보다 수백 배는 더 강한데!
내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전륜성왕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인(變人)은 안 된다. 독립된 의지를 갖고 있다지만 화신(化神)이니 사실상 신농 그대 자신이 아닌가?]
[흐음.]
[정 수인을 내보내겠다면 나도 염라대왕을 조력자로 붙이겠다.]
[그건 안 되지. 하긴 저 꼬맹이한테 수인은 과분하겠군. 돌아오거라.]
쿠웅….
수인이 아쉽다는 눈빛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오자 신농이 수인에게 말을 걸었다.
[거신왕이여. 그대를 제외한 최강의 전사를 그대가 골라보겠는가?]
[그러하다면 삼대(三大) 전사장(戰士將)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그대의 선택에 맡기겠다.]
스윽
수인이 도열한 거신족 전사들을 가득 둘러보다가 그중에서 채찍을 들고 있는 거신의 장군에게 말했다.
[축융(祝融). 싸워보겠나?]
뭐, 축융?!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서 그 거신의 장군을 보았다. 그 말대로 그 자는 내가 알고 있는 축융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려(黎)가 지니고 있던 시꺼먼 마력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순염(純炎)으로만 가득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는 거였다.
‘저게 바로 신화시대…… 배신하기 전의 축융인가!’
물론 이 시대의 축융은 나와 일면식도 원한 관계도 없다. 그렇다 해도 저놈은 심심할 때마다 적으로써 내 앞을 가로막았으므로 괜히 미운 놈이었기에 나는 살짝 축융을 노려 보았다.
축융이 수인에게 대답했다.
[너무 약해 보이는 인간이라 싸울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좋다.]
수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던 자에게 말했다.
[형천(刑天), 싸워보겠는가?]
쿠우우우…….
형천이라고 불린 거신족의 전사장은 축융보다 몇 배나 거대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는 머리가 없었으며 그저 자신의 쌍도끼를 들고 있는 근육만 푸들거리고 있었다. 딱 봐도 우악스럽기 그지없 는 형천은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최강…… 고작해야 인간 과…… 싸우는…… 수치…… 싫 다 ….]
[좋다.]
별수 없다는 듯 대꾸한 수인이 신농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삼대 전사장 중에 둘이 거절했으니, 이제 그 녀석밖에 없을 듯하옵 니다.]
[흐음. 확실히 그 녀석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으니 괜찮겠구나.]
[불러오겠습니다.]
우웅
잠시 후 차원문을 열고 누군가를 끌고 나타난 수인이었다. 뒷덜미를 잡힌 채 질질 끌려오다시피 한 그 거신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왕이시여. 일기토라고 하더니 왜 이런 상황이오? 설마 저 앞에 있는 조그마한 인간과 싸우라는 말이오?]
[그렇다. 싫으냐?]
[ …… 음, 뭐.]
거신이 흐느적거리며 자신의 창을 꼬나쥐며 대꾸했다.
[명이시라면 하겠소. 제 짬밥에 설마 이런 일을 시키실 줄은 몰랐소만 …….]
[……]
[축융, 형천! 너희도 시킨 건 그냥 닥치고 하란 말이다. 나한테 덤터기 씌우지 말고.]
거신이 투덜거리자 축융이 팔짱을 끼고 비웃듯이 말했다.
[늦게 온 놈이 잘못이지.]
[허어?]
비아냥을 들은 거신은 곱지 않은 눈으로 축융을 노려보았다.
[축융 넌 나중에 나한테 맞자.]
움찔
그러자 축융이 약간 당황한 듯했다. 그러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손을 휘적대며 거신은 천천히 걸어서 내 삼 장 밖에 섰다. 그리고 내가 얼굴에 쓴 가면을 보고서는 말했다.
[그 가면 때문에 본질을 전혀 알 수 없군. 하여간 네가 명계의 지배자인 전륜성왕을 대신해서 나온 대전사란 말이냐?] 어? 가면?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더듬었다. 그리고 내 얼굴에 새까만 가면이 씌워져 있음을 알아채고는 급히 말했다.“……. 그렇소.”
[ 그럼 한 판 붙기 전에 통성명이 나 할까. 네 이름은?] “ …….”
나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본질을 볼 수 없다고 했고 내 정체도 모르는 거 같으니까……’
아마도 방금 전 전륜성왕이 씌워진 모종의 가면이 내 정체를 숨겨주는 역할을 하는 듯했다. 나는 가면의 효과를 믿고 거짓말을 했다.
“내 이름은…… 흑웅(黑熊)이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눈 앞의 존재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존재니까.
[그래? 내가 아는 놈과 이름이 비슷하구만.] 후웅
거신의 장군이 내 쪽으로 창끝을 향하며 씨익 웃었다.
[내 이름은 유망(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