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98)
“어디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볼까.”
다음 순간 복희가 부채를 촥 펼치면서 술법을 시전했다.
신술(神術)
은하개람안(銀河槪覽眼)
위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우주 공간의 환영이 전면부에 떠올랐다. 복희가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그 환영을 서서히 들여다보자, 갑자기 선지자가 마음이 급해진 듯 외쳤다.
[거짓을 말해서 미안하오!! 우리가 왕실에서 끌어쓰던 힘은 아카샤 에너지(虛空之力)라고 하오.]그 말에 복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게 말 안 하려는 이유가 있었군. 설마 외신 허공록에게 그대들의 기억을 조공하면서 그 대가로 종족의 번영을 얻고 있었다니! 명색이 은하의 지배자 중 하나일진대 그런 행위가 허용될 듯싶은가?”
[우리가 그렇게 잘못한 건 없소. 어차피 그분은 전지자(全知者)이니 우리가 하는 게 공양의식에 속하지 않으며 그저 소꿉놀이일 뿐. 그분께 서도 초월자이시니 전능자이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공양 그 자체가 의미 없지 않소?]촤악!
복희는 선지자의 변명에 부채를 접어 그를 겨누면서 말했다.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는 말투였다.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네가 아카샤 에너지라고 칭하는 그 힘은 반물질 따위보다 몇억배는 더 강력하며 위험한 권능이다. 신좌에서나 쓸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지. 너희가 그걸 끌어써서 허공의 권위를 현세(現世)에 체재하게끔 만드는 것 자체가 결국 전지자를 이 세계에 소환할 빌미가 되지 않는가?”
[……]“정녕 무서운 놈들이구나.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허공의 권능을 몰래 써 온 것이냐? 역대 필멸자의 문명 중에서 너희가 가장 위험할지도 모른다. 설마 아직도 내게 숨기고 있는 음모가 있는 게 아니냐?”
선지자는 움찔했다.
[그런 건 없소.]“모를 일이지.”
[아무튼 나는 당신이 요구한대로 우리 종족의 극비 사항을 공개했소. 이제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 줘야만 할 것이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복희가 입을 열었다.
“사실 너희의 기억전송술법을 내가 제자와 함께 연구 중이던 차였다. 그러나 술법의 연구가 잘 진전되지 않아서 저 손님의 도움을 받아 흑요석을 매질로 하여 너희의 술수를 흉내 내어 봤지. 그런데 너희에게 피해가 갈 줄이야.”
됐다!
복희가 비난의 화살을 자기한테 돌려 주었다!
‘확실히 이 자리에서 우리를 보호 해 주려 하는구나!’
복희의 거짓말에 선지자는 의심하지 못한 채 당황했다.
[으음! 당신이 우리의 술법을 연구했다고?]“그렇다. 너희의 기억전송술은 꽤 쓸 만한 듯했기에 인간에게 열화판을 만들어서 전수해 볼까 싶었지.”
[……납득이 가지 않소. 뭘 하려 했는지는 알겠소만, 겨우 그 정도 소규모 전송 때문에 왕실이 폭파당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당신들은 ‘무엇’을 전송했던 것이오?]“알려 줄까?”
[알려 주시오.]복희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 대신에 앞으로 허공록의 힘을 끌어쓰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뭐라고! 어디까지 적반하장을 할 셈이오!]“적반하장 같은가? 너희는 그게 떳떳한 행위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좌에서 탄생한 내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별과 고향을 잃어버린 너희 종족을 내가 공격하면 어찌될 것 같은가.”
[……!!]“하나 나도 내 잘못이 있으니 약속만 하면 너희의 사특한 행위를 봐주겠다. 약속하기 싫으면 우리가 뭘 전송했는지 알아내는건 포기해라. 너의 선택에 맡기도록 하겠다.”
[크으으윽……]사실상 복희가 무력으로 겁박하는 셈이었지만 선지자는 이만 부득부득 갈 뿐 복희에게 감히 대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의 복희는 우주에서 손꼽히는 반열에 올라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결국 선지자는 한참 후에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 하겠소…… 그 대신에 한 가지 자비를 더 베풀어 주길 바라오.]선지자의 선택에 복희는 의외인 듯 눈을 크게 떴다.
“흐음, 뜻밖이군…… 어떤 자비를 바라느냐?”
“……”
[우리가 지구에 가서 사는 걸 허락해 주시오.]“인간으로 갈아타는 건 안 된다.”
[당연한 말이오. 우리도 그렇게 하등한 종족까지는 되고 싶지 않으니 이 별에 와 있는 외계인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하오.]“흐음…… 그 정도라면야 좋다.”
[감사하오.]선지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복희가 내 쪽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백웅, 최대한 숨기고 싶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에게는 진상을 이야기하겠다.”
복희는 선지자가 진실을 외면하는 길을 택하도록 유도했지만 선지자가 피해를 감수하고 진실을 택해 버린 것이다. 질서의 용신으로서는 더 이상 선지자를 기만할 수가 없었다.
“음…… 어쩔 수 없죠.”
복희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고 사실 우리 쪽이 가해자라서 더 이상 몰아붙이기도 뭣했다. 선지자와 일이 더 꼬이면 어찌될지 상상만 해도 갑갑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게 최선인 것이다.
잠시 후 복희가 말했다.
“이쪽은 백웅이다. 백웅과 함께 흑요석의 기억전송술을 연구하다가 백웅의 기억을 내게 전송하려 했지. 그런데 난데없이 너희 별이 터진 것 이다.”
선지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경악하자 복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걸 이젠 알겠지. 되레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우리가 알고 싶을 정도다.”
[……잠깐만.]선지자가 성큼성큼 걸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스윽 시선을 내 쪽으로 집중하더니 말했다.
[어째서…… 내 표식을 갖고 있는 거지? 그 표식은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표식이거늘.]표식?
‘아!’
선지자가 나를 전생자로 알아보려고 새겨 놓은 각인!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각인은 내 전생을 넘어서도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선지자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이상 이 각인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때때로 놈이 표식을 알아보면 내가 전생자라는 걸 눈치채곤 했던 것이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선지자는 혼란에 휩싸여서 말했다.
[말도 안 돼…… 그건 허공록에게 받은 술법이지만 절대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술법…… 한데 그걸 처음 보는 자가.]“……!!”
그 때 선지자가 아니라 복희가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봐, 지구에 와서 너희 문명을 복구하면 다시 왕실을 만들 수 있는가?”
“내가 도와주면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겠지.”
[그야 물론…… 그렇다면야 오백 년 이내에 가능할 거요.]“그럼 이렇게 하지. 너희가 지구에 오는 걸 허락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너희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겠다. 그 대신에 너희 종족은 우리 진영에 들어오도록 해라.”
[……]“대신 왕실을 만들어라. 최대한 빨리.”
[알았소.]선지자는 원독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복희…… 아무리 도와준다 하여도 이번 일은 잊지 아니하겠소.]파앗!
잠시 후 선지자의 모습이 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나는 선지자가 별 탈 없이 물러서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십년감수했네….’
방금 전에 뭔가 꼬일 뻔했지만 잘 무마된 듯한 느낌이다. 아마 복희가 없었으면 이렇게 원만하게 처리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안도하는 것도 잠시, 눈앞의 복희가 불쑥 꺼낸 말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
“백웅, 자네가 전생자였군.”
“쿨럭!!”
나는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당황해서 말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속이려 할 필요 없네. 어차피 기억전송술을 썼을때 이미 각오했을 텐데 뭘 새삼스레 그러는가?”
“……”
“하나 정상적인 전생은 아닌 것 같군. 설마 [큰 굴레]를 되돌려서 과거로 왔다든가 한 것인가? 아마 그렇겠군.”
“그,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일부러 타 문명에서 발달해 있는 과학의 문물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언급해 보았네. 그리고 자네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미묘한 반응을 관찰했지. 익숙한 기색이 역력했기에 자네가 결코 이 시대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고, 그렇다면 먼 미래에서 왔다는 걸 추측 가능했지.”
“……”
“하나 단순히 생각하면 전생자가 오랜 세월 생존하면서 스스로 문명의 발전을 겪고 난 후 전생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확신은 가지 않았지만 방금 전 마도왕이 표식 얘기를 하니 확실해지더군. 한 적도 없는 표식이 인과율을 무시하고 박혀 있다는 건 시간의 범위가 모순된다는 것일세. 황제 공손헌원의 예지력을 맘대로 벗어날 수 있을리도 만무하니, 자네는 어떤 방식이든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온 거야.”
나는 기가 질려서 한숨을 푹 쉬었다.
“……다 맞습니다. 대단하시군요.”
정말 대단하다. 어차피 기억을 주려고는 했지만 정황 증거만으로 단숨에 여기까지 유추해 내다니? 복희의 지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복희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전 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네. 자네는 이 시대에서 흑요석으로 기억전송을 할 수 없어.”
“……네?!”
뜻밖의 소리에 나가 깜짝 놀라자 복희가 말을 이었다.
“자네의 기억을 전송하는 것만으로 위대한 종족의 왕실을 터뜨렸다는 것은 인과율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뜻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허공록과 직접 연결된 은밀한 아카이브에 그 인과율의 모순이 닿자마자 폭발을 일으킨 건 당연한 일이야. 아마 왕실을 재건하더라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일세.”
“하, 하지만 제 시대에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만.”
“자네가 [큰 굴레]를 넘어서 과거로 온 게 사실이라면 그럴 수밖에. [큰 굴레]를 넘는 일 자체가 모든 인과를 위배하는 상황이고, [작은 굴레]를 돌리는 것과 달리 자네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우주를 바꾸는 것이네. 재수정할 방법도 없지. 하물며 기억처럼 선명한 행위는 크나큰 물리적 모순을 초래할 것이네.”
“……”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 님, 하지만 저는 이미 제가 전생자라는 사실을 전륜성왕에게 들켰습니다. 전륜성왕은 그런 인과율의 위반사항에서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것입니까?”
내 말에 복희가 깜짝 놀랐다.
“뭐라고? 그 일을 자세히 말해 보게.”
나는 내가 혼돈의 재능을 받으려다가 죽어서 전륜성왕의 방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기억을 읽혔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복희가 손을 뻗어서 내 머리 위에 대어 보더니 말했다.
“과연. 나도 자네의 기억을 읽을 수 없어. 그렇다는 건 전륜성왕은 그 방 안에서는 외신에 가까운 힘을 지닌다는 것인가?”
“네?! 그 정도입니까?”
“자신의 차원에 있으면 신의 힘이 강력해지는 건 우주의 기본 원리지. 허나 전륜성왕은 그 정도가 심해서 그 안에서만큼은 무적인가 보군. 다만 그 대신에 본디 자신이 갖고 있던 우주의 [죽음]을 다루던 능력을 어느 정도 잃어버린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복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것만으론 납득할 수 없군. 그걸로는 자네의 기억방어를 뚫은 것만 설명이 될 뿐 인과율의 역풍은 설명되지 않아. 그렇다는건……”
“그렇다는 건?”
“전륜성왕은 자네의 기억을 읽음으 로써 이미 손해를 본 것일세. 어떤식으로든 힘이나 권능을 일부 잃어버렸겠지. 그러나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자네를 계속 끌어들이려 했으니….”
복희의 눈이 투명하게 나를 향했다.
“자네에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단 거야.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전륜성왕은 자네를 이용해서 이 세계의 패권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군.”
“……”
그럴 수도 있겠다. 전륜성왕이 내게 약간의 집착을 보이는 게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복희의 말에 납득하다가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겨서 말했다.
“복희 님은 그걸 눈치채셨는데 어째서 선지자에게 왕실을 재건하도록 호의를 베푸신 겁니까?”
“자네를 위해서지.”
“네?”
“흑요석의 술법을 다시 사용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테지만 그걸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이어진 복희의 말에 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자네가 허공록에 접속해서 허락을 구하는 거야.”
무, 무슨 말이지?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복희에게 질문했다.
“허공록에 접속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허공록이 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의미 그대로일세.”
“역사이자 기록이고 가장 위대한 존재…… 가장 지혜로운 외신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전 우주의 기억이 담긴 창고 같은 거라는 사실도요. 하지만 외신에게 접속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흐음. 의외로 겉핥기만 알고 있고 본질까지는 알지 못하는군. 일반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복희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방금 자네는 전 우주의 기억이 담긴 창고라고 표현했지. 그러면 그 창고의 문을 여는 자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네? 어…… 전 우주의 기억을 볼 수 있겠지요.”
“그래. 단순히 얘기해서 허공록에 접속한다는 건 그런 거야. 전 우주의 지혜와 기억을 열람해서,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지. 자네가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송할 수 있게 되려면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일세.”
“으음……”
내가 아리송해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옆에 있던 흑웅이 마저 설명했다.
[주인. 천우진이 과거 도달했던 경지가 바로 그것이오. 그렇기에 나는 주인에게 천우진과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오.]“어?”
[그는 허공록에 도달했었소. 즉, 한낱 인간이라 하더라도 허공록에 접속할 만한 경지에 오르게 되면 삼황오제 이상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지.]“아!! 그, 그렇군!!”
나는 흑웅의 말에 그제야 허공록에 도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난이도를 깨닫고는 더욱 당황해서 말했다.
“잠깐, 그 말대로라면 술법에 있어서 신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거랑 마찬가지잖아!!”
천우진이 망량선사의 도움을 받아 허공록에 도달했으나 그건 망량선사의 사도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망량선사가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데다, 내 술법 재능은 천우진에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천우진은 중화 역사상 최고의 술법천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기에 아무리 망량선사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최소한 술법경지가 천우진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건 나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복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것참 흥미롭군. 나의 제자도 아닌 인간이 혼자 힘으로 허공록에 도달한 예가 있단 말인가?”
“아, 그게…… 이 시대 사람은 아닙니다. 미래에 나타날 재수 없는 놈이죠.”
“그렇군. 역시 인간은 흥미로워.”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허공록에 접속하게 되면 흑요석을 쓸 수 있게 되는 게 확실합니까?”
내 질문에 복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비인격(非人格)의 신이 시기에 허공록은 도달하는 자를 차별하지 않아. 신이 [작은 굴레]로 세계를 재조정하는 것처럼 허공록의 법칙도 바꿔쓰는 게 가능하다. 다만 허공록이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지는 모르겠지만…..”
“으음…… 솔직히 저는 술법 재능이 거의 없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허공록에 접속할 수 있단 말입니까? 술법 경지를 올리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을까요?”
내가 간절하게 복희에게 말하자 복희가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글쎄. 자네가 말하는 게 전제를 벗어나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술법 경지가 나오는 이유가 뭐지?”
“전제를 벗어나다니요?”
“술법은 내가 심심해서 만들어낸 능력체계야. 내 제자들이 쓰는 신술과 보패가 강력하다 하더라도 [옛 지배자]를 뛰어넘긴 힘들지. 헌데 나조차도 허공록에 접속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안일진대 한낱 인간이 내 술법을 수련해서 허공록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 인걸.”
복희는 자신의 어깨를 으쓱했다.
“내 생각이지만, 그 천우진이라는 인간은 술법을 신의 경지로 연마했기 때문에 허공록에 도달한 게 아니야. 그걸 기초로 삼아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나간 게 틀림없고, 그런 경지는 술법의 창조자인 나로서도 상상해본 적이 없군. 술법을 제패한 후의 경지라…… 적어도 인간에게 허용된 수준은 아닐 텐데 말이지.”
“……”
…… 그 때의 천우진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잖아?!
‘술법 경지로 허공록에 도달하는 건 포기해야겠군……’
나는 기가 질려서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렇군요. 그럼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물론 있네.”
복희의 말이 이어졌다.
“허공(虛空), 혹은 경계(境界)에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 그리고 엄청나게 강대한 마도사. 그리고 위대한 공양물이 필요하지. 전례 없는 일이겠지만 최소 조건은 아마 그럴 거야.”
“매개체, 마도사, 공양물…… 음…… 그건.”
현인(賢人).
나는 그 순간 그 단어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과거 외우주에서 달마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현인(賢人)이 필요하다.] [허공록에 손이 닿인 존재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보이지만 이는 매우 까다로운 요건…… 나는 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만 년을 반복해서 노력했다.]지금 복희가 하는 말은 달마가 말했던 것과 거의 같아 보였다. 달마 또한 수만 년을 노력해서 허공록에 손이 닿일 정도의 현인이 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달마 정도의 대마도사가 되려 해도 그것 또한 수만 년은 걸리겠지…….’
달마는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해신을 우겨잡고 삼황오제에 버금갈 정도의 강대한 마신이나 다름없었다. 추측건대 달마처럼 현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 또한 천우진이 술법의 극한에 도달한 것과 마찬가지로 끝없이 어려우리라.
나는 약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셋 다 마련할 자신이 없습니다만…… 그냥 흑요석 기억전송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흐흠, 글쎄. 자네는 몇 번째 전생을 하고 있는 건가?”
“30번째입니다.”
내 대답에 복희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30번? 겨우 그것밖에 안 했는데 벌써 그만한 힘을 쌓고 [큰 굴레]를 돌려 과거로 왔다는 소리인가?”
“어…… 30번이면 엄청 많이 죽은 거 같습니다만….”
“자네가 흑웅을 부린다는 건 천상 천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뜻이지. 보통이라면 아무리 전생자라도 겨우 30번의 죽음으로 흑웅 같은 걸 가질 수는 없을 것이네. 난 단언할 수 있어.”
“아무튼 좋아. 자네가 30번 전생했다는 건 그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다는 거겠지. 그리고 흑웅을 각성시킬 정도의 역량으로 보건대 내가 말했던 3가지 요소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군. 자네의 그 정령은 나조차도 만들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대단한데, 그걸 겪기 위해 수많은 모험과 인과를 겪었음이 틀림없어.”
나는 힐끔 흑웅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복희에게 이 정도로 고평가를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한번 잘 생각해보게. 자네의 능력이라면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몰라.”
“그리고 이런 일은 성공 여부보다는 도전하면서 얻는 게 더 값진 법이지. 안 그런가?”
“그럴지도요.”
복희의 말대로 뭔가 큰 목표에 도전하다가 자잘한 것들을 달성하면서 뜻밖의 이득을 얻는 일이 많았기에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웅이 불쑥 말했다.
[복희여. 신력(神力)으로 대마도사의 존재를 대체할 수는 없소? 아무리 강대한 마도사라고 하더라도 신의 힘에는 미치지 못할 것인데.]“후후, 이해를 못 했군. 허공록 접속에 마도사가 필요한 건 힘의 강약 때문이 아니야. 힘의 강약으로 따지면 나를 포함해 수많은 신격들이 함부로 허공록에 접근할 엄두도 못내는 게 설명이 되지 않아. 신력을 공양물이랍시고 바쳤다가 허공록의 입구에서 소멸당한 지배자가 수백 마리도 넘어.”
흑웅이 흠칫 놀랐다.
[그건 처음 듣는군. 그럼 무엇 때문이오?]“강력한 마도사란 수많은 계약을 거치면서 [옛 지배자들과 쌓은 수 많은 인과(因果)가 마치 딱지처럼 더덕더덕 붙어 있는 존재. 허공록은 신력 같은 순수한 혼돈의 덩어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나, 그 마도사가 계약으로 겪게 된 인과율 덩어리…… 그 육체에 새겨진 핍박받은 생애과 이야기, 감정…… 필멸자의 그런 농축된 인과를 맛있다고 여기는 듯하더군.”
[… 이러니 저러니 해도 허공록 또한 악신(惡神)같구려.]“뭐 농축된 인과를 지니고 있다면 굳이 대마도사가 아니라도 좋아. 그러나 강력한 마도사만큼 악랄한 인과를 농축시킬 수 있는 게 존재하지 않으므로 똑같은 얘기겠지.”
[이해했소.]그렇게 말한 흑웅은 내 쪽을 바라 보더니 말했다.
[주인. 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합시다. 이 시대에서 기억전송은 당분간 할 수 없는 걸로 알아두는 게 좋겠소.]“어쩔 수 없겠군.”
나는 흑웅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상 달마가 준비했던 만큼의 준비물이 필요한데 지금 내 상태로는 그만한 제물이나 마도사를 준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복희에게 말했다.
“설명 감사합니다. 다만 지금은 아니 될 듯하니 아까 약조한대로 우리의 신력수련을 도와주고 신술을 전승해주고 신격의 가호를 주었으면 합니다.”
“그야 물론 해줄 생각이네. 단지 자네들이 여태껏 어떤 경과를 겪었는지,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 정도는 말해줘야겠지.”
“그건 지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좀 길어질 텐데 괜찮겠습니까?”
“한 달 내내 해도 좋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나는 시간을 들여서 차분하게 한 시진 남짓한 시간동안 내가 대명제국에서 태어나서 어떤 식으로 모험을 겪어서 칠요의 비밀과 사대신기의 일, 대웅제국 등을 겪어서 소을촌장 일을 하다가 외우주를 넘어와서 [큰 굴레를 돌리게 되었는지를 말했다. 당연히 반 시진이 아니라 한 시진으로도 모자랄만한 이야기였 지만 하도 이런 얘기를 하는 데 익숙해져서인지 설명이 비교적 매끄럽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복희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