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99)
“망량선사는 대체 뭐지?”
“네?”
“그만큼 강력한 존재는 듣도 보도 못했다. 내 신좌에 있는 힘을 모두 찾는다 하더라도 우리 남매가 그 망량선사란 자의 본체를 이길 수 있을 지 의심이 들 지경이군. 그리고 그렇게 강력하다면 전 우주에서 다섯 손가락 내에 꼽힐지언대, 내가 아는 한 그 존재들은 망량선사 같은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아니, 그 존재들이 나서는 순간 전 우주의 인과율이 요동치기 때문에 애초에 망량선사처럼 활동할 수도 없지. 인간을 지킨다는 헛소리도 하지 않고.”
“너무나 인위적인 존재로군…… 마치 그 달마대사라는 자의 바람과 같지 않으냐.”
“무슨 말씀이신지……”
“뭐 이 자리에 없는 자를 더 논해도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그대는 언제가 되었든 망량선사의 진실과 마주쳐야 하겠군. 그리고 그게 아마도 그대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복희가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네. 그럼 이제 나도 한 가지 얘기할 게 있네만.”
“무엇입니까?”
“생각 같아서는 자네들에게 신력과 신술수련을 바로 시켜주고 나서 바로 황제 공손헌원의 만신전으로 쳐들어가고 싶네. 산하사직도 내의 복희가 그랬듯이 그게 지금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야. 그자는 자네 말대로라면 지금 [기어오는 혼돈]의 소환권도 잃어버렸을 테니 우리가 아마 이길 거라고 생각 하네.”
“오오!!”
“하지만 그러지 않겠네. 아니,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니 그럴 수가 없지.”
나는 복희가 바로 정면공격의 책략을 부정하자 당황했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산하사직도 때와 달리 지금 황제의 곁에는 소녀(素女)가 있어. 그러므로 신중해야만 해.”
“소녀!! 그 녀석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토록 경계하는 것입니까?”
“흠. 자네는 소녀의 소문이 무성하다는 것만 들어봤을 뿐 그 실체를 보지 못했겠군……”
복희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말했다.
“소녀가 갖고 있는 불멸(不滅)의 권능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잘은 모릅니다. 자세히 설명해준 사람이 없으니까요.”
“나도 신농에게 들어서 알고 있을 뿐 직접 보진 못했어. 허나 그 권능은 무한(無限)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
“……?!”
“그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경계할만한 존재야. 혼돈의 재능을 각성시키다 보니 내가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튀어나와 버렸군.”
무한?! 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복희 에게 말했다.
“무한? 무슨 말입니까? 사실 유소가 말하길 소녀가 황제의 봉인을 풀었을 거라고 예측하던데 그거랑 상관이 있습니까?”
“복잡한 개념설명이 될 것 같으니 자네가 이해하기 쉽도록 전후 관계를 한번 짚어주지.”
그렇게 말한 복희는 다리를 꼬고는 말을 이었다.
“당초 소녀의 재능에 주목한 건 바로 신농이야. 신농은 소녀의 능력을 알아보고 황제와의 결전에 대비하여 비밀무기로 키우려 했지. 허나 모종의 이유로 소녀는 황제 공손헌원에 게 납치되어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자네 말대로라면 그게 서왕모의 궁전이란 말이겠지. 그렇다면 신농은 어째서 소녀의 능력이 황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어……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생물과 비생물, 무엇이든 간에 ‘무한’을 설정해 버릴 수 있었다고 하더군. 즉 그녀의 직접적인 전투능력은 신에 비해 부족할지라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옛 지배자]를 한방에 죽여 버리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야.”
“……!!”
“신농 밑에 있을 때는 능력이 발전 도중이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겠군. 허나, 유소의 말대로 황제의 자가 봉인마저 풀어 버릴 정도로 ‘무한’을 설정할 수 있다면 그건 무척 위험해. 나라고 해도 잘못하면 당할지도 몰라.”
“그, 그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무한을 설정한다는 게 어떤 점에서 대단한 겁니까?”
복희는 눈에 이채를 띄며 신기해했다.
“흐음. 자네 생각보다 머리가 안 좋군?”
“…. 자주 듣는 말입니다.”
“간단하게 예시를 들어보지. 자네와 나 사이의 거리는 딱 양팔을 벌려 있는 정도야. 그런데 자네와 나 사이의 거리를 무한대로 만들면 어떻게 되겠나? 자네는 우주 끝까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지.”
“……”
그런 게 되나?
“잘 상상이 안 되겠지만 불멸의 권능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네. 그리고 이 권능의 진짜 골치 아픈 점은 [작은 굴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작은 굴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자면 능력을 사전에 봉쇄하려고 시간정지, 역행, 고쳐쓰기 등을 아무리 시도해봐도 안 통한다는 말이네. 그래서 필멸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지배자]일 경우 잘못하면 일격에 당할 수도 있어.”
“헉!!”
“능력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상상력만 잘 발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진정한 무한]이라는 건 그만한 가능성이 존재해.”
그 정도로 강력하다는 말인가?!
실로 사기적인 능력이었기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보, 복희 님도 그런 사기 능력이 인간에게 나올 거라 생각지 못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하는 건 그저 인간에게 미약하게 잠재되어 있는 혼돈의 자질을 발아시켜서 자기보호능력을 주는 차원에 불과했어. 그런데 불멸의 권능은 완전히 예상외의 능력이 야.”
“소녀 말고 다른 자에게 인위적으 로 발현시킬수는 있겠습니까?”
“모르지. 말했듯이 내 손을 떠난 문제야.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지.”
“으음.”
“아무튼 소녀를 탈환하러 바로 돌격하지 않은 자네의 결정은 옳았다고 말해두지. 그런 소녀가 서왕모의 궁에 있다면 충분히 자기를 보호할 자신이 있어서 체재하는 것일 테고, 소녀 곁에 황제의 심복들이 호위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아. 여와에게 물어서 확인해봐야겠지만 그곳은 현재 복마전처럼 어려운 난이도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리고 여와가 그 사실을 알텐데도 내게 말하지 않은 이유도 신경 쓰이고……”
“그렇군요.”
나는 복희의 말을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분석이 되자 내 옆에 있던 흑웅이 복희에게 말했다.
[복희여. 그럼 주인의 신력을 강화시키고 신력을 익혀 선신들의 가호를 받으면 소녀를 탈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소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확실히 말하지는 못하겠군. 다만 지금도 너희의 힘은 천상천하에 손꼽힐 정도이니 일대일로 못 이길 만한 상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라고 한다면 상대가 너희를 일대 일로 상대하지 않는 경우의 수겠지.”
[역시 그렇구려.]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어리둥절해서 흑웅에게 말했다.
“역시 그렇다니?”
[주인이여. 거신족의 장군인 유망과 싸워 비겼으니 주인의 잠재력은 확실히 삼황오제 바로 아랫급까지 왔소. 허나 적들은 그런 우리를 일 대일로 상대하지 않고 합공을 해서 죽여 버리려 할 게 틀림없소.]“헉!! 뭐라고?”
[소녀를 탈환하고자 한다면 일단 개인적인 무력뿐만이 아니라 세력을 갖춰서 쳐들어가야 할 거라 생각하오. 황제의 사도나 화신은 여럿이 있을 터이니 잘못했다가는 탈출도 못 하고 죽을지도 모르겠소.]“……”
설마 그 강력한 신격들이 나를 합공하는 비겁한 짓을 할 수도 있다니!
늘 약자의 입장이었기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또한 기백천사 같은 놈이 몇 명이나 동시에 달려드는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나는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타, 탈환까지 꼭 해야 하나? 위치만 알려달라 했으니 굳이 서왕모 궁에 안 쳐들어가도 되잖아.”
[주인. 우리는 전륜성왕이 시킨 것 만 해야 하는 거요? 소녀는 명백히 이 시대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이고 역사의 거대한 축이오. 언제가 되었든 소녀와 만나서 어떤 비밀을 갖고 있는지 그 진실을 들어야만 주인이 전생자로써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것이오.]“으음!” “흑웅의 말이 맞네.”
복희가 약간 낮은 목소리로 부채를 촥 하고 펼치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하게. 전생자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해 지는군.”
우우웅
나는 바로 쌍장을 펼쳐서 다시 한 번 사과나무를 만들어내는 연습을 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열 번 쯤 시도하자 한 번은 나오는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흑요석을 다시 만들 어내려 해봤지만,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복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흑요석을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신력수련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과율의 역풍 때문인 듯하군. 기억을 전송할 가능성이 있는 매체를 만드는 것조차 우주의 법칙이 방해하는 것이야.”
“…… 흑요석 광산에 가서 자연 흑요석을 캐도 마찬가지겠죠?”
“말해서 뭣하나. 어차피 기억전송 자체가 봉인된 것을… 결국 아까 말한 대로 허공록의 허락을 받는 수 밖에 없어.”
“으음.”
“단지 자네의 재능을 생각하니 재밌는 응용법이 생각났군. 좋은 수련이 될 거야.”
“그게 뭡니까?”
내 질문에 복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인간]을 제작해 보게. 신력을 수련한다면 이만큼 좋은 과제가 없지.”
“……?!”
뭐, 뭐라고?! 말도 안 돼!
나는 당황하다가 말했다.
“이, 인간을 어떻게 만듭니까? 아무리 신력이라도……”
“응? 무슨 소린가? 애초에 인간을 만든 방법이 신력인데.”
“지금의 인간은 과거 만들어진 원류 인간을 신력을 이용해서 변형시킨 것들이야. 완전히 무(無)에서 만들어내는 건 공이 들겠지만, 이 정도는 [옛 지배자]들이 봉사종족을 만들 때 종종 하는 일이지. 자네도 충분히 할 수 있을걸세.”
“아, 아니 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
“자, 따라 해 봐.”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과제에 멍하니 있자 복희가 부채를 촤르륵 펼치며 앞으로 내뻗었다.
“인간이여, 생겨나라!”
쿠구구구구
잠시 후 땅바닥에서 흙덩어리가 뭉글거리며 중력을 역행해서 솟아올랐다. 마치 막대기처럼 변한 그 흙덩어리는 잠시 후 혼돈의 빛에 휩싸여 흑백의 역광을 방출하더니, 빛이 사그라들자 완전히 알몸의 인간으로 변해버렸다.
복희는 부채를 탁 하고 접으며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황이구나!!’
설마 말 한마디로 흙덩어리에서 인간을 창조해낼수가 있다니! 나는 놀라워하다가 문득 새롭게 창조된 인간의 눈에 아무런 빛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의식이 없는 것 같았기에 나는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복희에게 말했다.
“영혼이 없는 겁니까?”
“당연히 그렇지. 인공혼을 만들어서 일부러 집어넣지 않는 한 이런식으로 만든 인간은 영혼이 없네.”
“그럼 영혼도 신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겁니까?”
“당연히 만들 수 있지. 그게 안 되면 봉사종족들은 아예 행동을 못 하지 않는가? 뭐 쌍으로 다 만들어서 넣는 건 공이 드니까 보통은 영혼제조기를 따로 만들어서 욱여넣거나 술법으로 영혼을 복사한다네.”
“…….”
“흐음. 이제 보니……”
복희는 약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자네는 신이 뭔지 잘 실감을 못 했 모양이군. 그저 힘센 괴물이라고 여겼던 건가?”
“……”
“정작 자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야.”
나는 복희의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 말대로다. 나는 여태 신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잘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가볍게 생명과 영혼을 창조하는 것을 보니 당황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야….’
복희가 한 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직감 때문에 내 힘이 신의 영역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걸 실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며 서서히 상장을 앞으로 내뻗으며 중얼거렸다.
“인간이여, 생겨나라……”
우우웅
그 순간 배운 것도 아닌데 신력이 수많은 갈래로 움직여서 제멋대로 요동치는 흐름을 알 수 있었고 그걸 창조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배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는 복희 때와 마찬가지로 흙이 솟아올라 흑백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알몸의 인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인간의 형태는 내가 모르는 것이었다.
“어?”
이건 누구지? 이렇게 생긴 놈이 내가 아는 중에 있었나?
그리고 옆에 있던 흑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게 누구요?]정말 이거 누구지?
확실한 건 정말 처음 보는 놈인데도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은 든다는 것이었다.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복희가 말했다.
“나 복희가 명한다. 피조물이여,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저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복희의 신력을 담은 언령(言靈)이었다.
잠시 후 내가 만들어 낸 [인간]이 그 언령에 반응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심수력(審壽力)…….이다!!”
“……?!”
“뭣?!”
복희도 놀라도 나도 놀라고 흑웅도 놀랐다.
지금 막 창조한 존재가 자기의 이름을 말할 줄이야?!
그러나 이어진 심수력의 말에 나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나는 화신류(火神流)의 심수력…… 호월의 친구다!!”
화신류?!
사대무류의 고수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몸이 탄탄한 게 오랜 기간 무예를 수련한 몸이 분명하군’
기공의 수련도도 바로 느껴진다. 강호에서 위맹한 명성을 날렸을 법하다. 아니 그런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왜 화신류의 고수가 자기 의지를 갖고 튀어나온단 말인가?!
나는 당황하면서도 그에게 말했다.
“어…… 심수력이라 했소? 호월의 친구라니 설마 백련교주 호월을 말하는 거요?”
그러자 심수력이라 자칭한 그 인간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엄청나게 당황한 목소리였다.
“뭐지? 내가 왜 여기 있지? 너희는 누구냐!”
아무래도 얼떨결에 자기소개를 했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듯했다. 심수력의 의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는 호월의 의지를 이은 백웅이라 하오. 그리고 내 뒤에 있는 이 녀석은 흑웅이고, 저기 있는 건 복희요.”
“뭣이? 네가 호월의 의지를 이었다고? 근데 너나 저 복희라는 놈이나 똑같이 생겼는데 형제지간이냐!”
나는 나도 모르게 복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과 마치 거울처럼 빼다박았고 차이점이라면 입고 있는 옷과 외팔이 여부 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누가 봐도 나와 복희를 쌍둥이 형제라고 여길 게 분명했다.
나는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는 게 더 의심을 살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으음, 여긴 대체 어디냐!”
“여긴 탁록의 숲속에 있는 동굴이오.”
“탁록? 난 분명히 마지막에…… 백 두산(白頭山)에서…… 끄응……”
“백두산?”
“……”
심수력은 자신의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버럭 외쳤다.
“기, 기억이 혼란스럽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게…….”
“아니 지금 보니까 왜 옷을 안 입고 있어! 미치겠구만!”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성기를 가리는 심수력을 보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기억이 온전치 못한데 수치심은 여전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기억상실이거나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여하튼 옷은 드려야겠군. 백웅, 옷을 만들어보게.”
“음…… 될까나.”
나는 복희가 한 말이 내게 신력으로 옷을 창조하라는 뜻이라는 걸 곧장 이해하고는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생각에 따라서 내가 흔히 보곤하던 남자의 복식이 눈앞에 나타났다.
퍼엉
‘와, 이게 되네.’
일반 옷 정도 만드는 건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옷을 심수력에게 건네주었고 심수력은 경계하면서 말했다.
“뭐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옷을 만든 거냐! 술법사인가?”
역시나 신력으로 창조했다고 설명 하기가 더 귀찮았기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술법사요.”
“설마 술법으로 나를 붙잡아온 건가!”
“아니 그게 아니니까 좀 옷이나 얼른 입으시오. 덜렁거리는 걸 언제까지 보여줄 셈이오.”
“끄응.”
심수력은 투덜거리면서 옷을 입었고 신기하게도 옷이 딱 그의 체형에 맞았다. 의식한 게 아니었는데도 심수력에게 맞는 옷을 만들려고 생각한 게 창조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심수력은 옷을 다 입고는 말했다.
“이건 특이한 옷이군.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
그야 그럴 것이다. 내가 만든 건 대명 시대의 옷이기 때문이다. 심수력이 호월의 친구라면 그는 아마도 내 시대보다 천 년 이상 과거의 인물일 게 분명하다. 시대가 다르니 대명제국의 옷이 그에게 낯익을 리가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심수력에게 말했다.
“나는 술법수련을 하다가 인간을 창조하는 술법을 썼는데 당신이 갑자기 튀어나왔소.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른 일이 생겼기에 나도 혼란스럽소.”
“뭐라고? 술법이란 건 대단하구나. 사람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근데 내가 왜 탁록에 왔단 말이냐.”
“나도 모르겠소. 확실한 건 내가 당신을 납치하거나 한건 아니오. 혹시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있소?”
“으음……”
심수력은 골똘히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래. 호월이 산신령(山神靈)의 도움으로 태백신공(太白神功)을 연마하여 광룡(狂龍)의 기운을 잠재우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을 때 호법을 서고 있었다. 맞아, 나는 그 때 호월을 지키고 있었다!”
“……?!”
“근데 내가 왜 여기 와 있는 거지? 탁록이면 관중 근처에 있는 장소가 아니냐? 중원은 한참 전에 떠났을 텐데….”
뭐, 뭣이라?!
난데없는 말에 나는 더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말 속에서 한 가지 단서를 발견해내곤 외쳤다.
“태백신공! 그건 분명히 권성(拳聖)이혼(李揮)의 독문절기가 아니오?”
틀림없다! 내가 얼마 전 외우주에서 권성 이혼의 클론과 대련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혼이 쓰던 무공의 이름이 분명히 태백신공이었던 것이다! 이혼의 말로는 원본의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오는 독문신공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근데 어째서 호월이 이혼의 이씨가 문에 전해져오는 태백신공을 연마했단 말인가?
그러자 심수력이 머리가 아픈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으르렁거렸다.
“제, 제길…… 시끄럽다. 나도 지금 다 생각이 나는 게 아니다. 머릿속의 실타래가 엉키는 것 같아서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
“아니 그런데…… 내가 왜 네놈한테 이런걸 얘기해야 하지? 네가 호월의 의지를 이었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 네놈은 술법사이지 무인이 아닌 것 같은데!”
“보시오!”
투두둥
나는 즉시 내가 알고 있는 사대무류의 모든 권법을 그 자리에서 물 흐르듯이 전개했다. 그 모습을 본 심수력은 시선을 내게 고정했고, 나는 얼추 권법시연이 끝나자 칼 한 자루를 허공에서 만들어낸 후 뇌신류의 검술을 빠르게 전개했다.
파파파팟
그렇게 약 반 식경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검식을 수납했고 심수력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본디 뇌신류의 검사이지만 다른 무류의 무공도 조금은 습득했소. 그리고 호월 교주에 대해서도 그의 사제인 성진에게 들어서 알고 있소.”
“음. 확실히 뇌신류의 무공…… 그것도 대단한 고수구나!”
찬탄하듯 외친 심수력이 이윽고 놀란 듯 말했다.
“서…… 성진! 그래, 그 이름도 기억난다! 호월이 중원에 두고 온 사제가 있다 했었어!”
“이제 날 믿어주겠소? 성진은 호월이 해동(海東)으로 떠난 후 소식이 사라졌다 했는데 백두산에 있었구려.”
“아니…… 그게…… 크으윽……”
심수력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양 손으로 부여잡고는 크게 괴로워했다. 그러고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백두산에 세워진 의문의 마도사축(魔道四軸)을 발견했을 때…… 우리 다섯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 들어갔고…… 아유타 공주에게 구원을 청했…… 하지만…… 광룡의 기운이 또 폭주…… 으아…… 아아아악!!”
쿠구구궁!!
그 순간 심수력의 전신에서 혈광(血光)이 강하게 일어났고 그의 피부가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심수력에게서 몇 걸음 뒤로 빠르게 물러났고, 심수력의 몸이 잠시 후 크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빠지직
그리고 시꺼멓게 물드는 것 같던 피부는 흑색의 용린(龍麟)으로 변화하는 게 보였으며 그의 몸 전체가 마치 용인(龍人)이나 다름없게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서서히 그의 몸에서 꼬리가 돋는 것을 보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건 뭐지? 황궁에서 만들었 던 용인병? 아냐…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용인병이 갖고 있던 사악한 마력보다 더욱 상위에 있는 어둠이 심수력을 감싸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수력의 몸이 빠르게 용인으로 변하고 있을 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복희가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건 진정한 용의 힘이다. 신력의 일종이기도 하지.”
“단순한 용인과는 다른 겁니까?”
“그래. 진정한 용은 거신족과 마찬가지로 최상위 종족이므로 물질계를 반쯤 벗어나서 자유로이 우주를 날아다닐 수 있는 육체를 지니게 되지. 지상의 용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한건지는 몰라도 저자는 진룡(眞龍)의 힘을 내면에 갖고 있었는데 지금 갑자기 주화입마에 드는 바람에 통제력을 잃고 폭주하는 중인 것 같군.”
“아니 지금 분석할 때가 아니잖습니까! 멈출 방법은요?”
아마 흑웅의 힘을 쓰면 죽일 수는 있겠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못 얻고 죽이면 너무 찝찝하다고!
“흐음, 심수력은 그대의 창조물일 진대 내게 뒤처리를 하라고 시키는 것인가? 건방지군.”
“어 그게 아니라……”
서늘한 복희의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찔끔했다. 호의적이라서 잊고 있었지만 눈앞의 존재 또한 [지배자]의 일원이며 삼황이라는 신화적 존재인 것이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복희가 훗하고 웃었다.
“한 번 정도는 무상으로 도와주지. 지금 이 사태도 제법 흥미가 생겼으니까.”
그리고 복희는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갑자기 커다란 사자후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