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불쌍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
나라시노 주둔지 화약고 폭발사고.
내가 저지른 자위대 대학살 사건은 표면적으로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어이가 없지만 미국과 일본의 회담결과가 그러했다.
국제사회란 게 이런 걸까.
미국은 죽은 CIA요원들의 희생을 국익으로 환산했다.
처벌이 아니라 돈을 받아낸 것이다.
“원래 요원의 삶이 그런 겁니다.”
나라를 위한 희생.
조지는 그 말로 요원들의 죽음을 일축했다.
그래, 좋다. 그건 당신들 일이니까.
그럼 그 사건과 함께 덮어버린 731부대와 슈퍼솔져 뇌실험은 뭐냐.
내가 따져 묻자 조지가 이렇게 답해주었다.
“미X개는 패죽이지 못할 바엔 목줄을 죄는 게 낫습니다.”
표현이 참 거침이 없다.
미X개.
그래, 오죽하면 인류 역사상 핵폭탄을 처 맞은 유일한 나라일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두 발의 핵을 맞고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몰락작전을 펼쳐 일본열도를 초토화시키려고 마음먹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패죽이는 거?
그래, 솔직히 못하겠지.
만약 인체개조를 위해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었다면 얘기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옛 731부대의 자료를 토대로 대상자의 동의를 받고 뇌수술을 했다.
분명 지탄을 받을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숨통을 끊기엔 약간 모자란 것이다.
그럼 이 목줄은 달아서 어디다 쓰려고?
“동북아시아와 관련해 미국이 가장 난감할 때가 언젠지 아십니까?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싸울 때입니다. 합심해서 중국을 견제해도 부족할 판에 서로 싸우면서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떼를 쓰면 중간에서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둘 다 미국에게 중요한 동맹국인데. 그런데 이 목줄만 있으면 앞으로 그럴 일은 없게 되는 겁니다.”
한국과 마찰을 빚는 모든 사안에 제동을 걸겠다고 한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전범기업 재산환수, 수출규제,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혐한 등 일일이 다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건들에 대해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여기서 갑자기 한국을 끼워 넣어요?”
“어휴, 끼워 넣긴요. 처음부터 그걸 가장 염두에 두고 내린 결론입니다. 제가 CIA ‘한국’지부장 아닙니까.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속이 훤히 보이는데 아니긴.
아마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혐한집회에서의 건담,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물뱀을 보면 내가 뭐 대단한 애국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뭐 정치니 외교니 하는 건 알아서 하세요. 대신 오쿠타마에서의 일은 그냥 못 넘어갑니다.”
요원이나 군인 같은 정부 관련 인사와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다르다.
당신들은 전자에 더 무게감을 둘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후자가 더 중요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니까.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총리대행 사이토 나카다 부총리, 그리고 외무성 야기 소스케 국장.
오쿠타마 사건의 주동자 다섯 중 남은 놈들이었다.
“오쿠타마 방화사건과 엮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인사들이군요. 그렇다고 나라시노 일을 덮은 이상 가미카제라는 놈들과 엮기도 힘들고……”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지?
“이렇게 하시죠.”
“……?”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면 정적도 많고, 부정도 많을 겁니다. 그걸로 대신 처벌하겠습니다. 처벌수위는 뭐 종신형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은데 종신형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중간에 특별사면이니 하는 X짓거리로 풀어주지만 않는다면.
“CIA에서 책임지고 바깥 공기 마시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내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조지가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
그래, 그것만 지켜준다면 문제가 없을 거다.
사실 풀려나도 더 이상 타츠오 모자를 건드리진 못할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담이지만 타츠오는 퀸시로 가지 않고, 미국에 신변을 의탁하는 것으로 향후 행보를 정했다.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서는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블랙 씨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조지는 기대감을 가지고 나에게 물었다.
미국이 이번 사건에서 나를 도왔으니 타츠오처럼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저야 조직의 결정을 따라야죠. 타츠오 씨야 조직에 들어오기 전이었다지만 전 사이커스에 매여 있는 몸이라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만 제대로 마무리 되면 함께 할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듣자하니 조직에서는 CIA를 돕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럼 당분간 저희와 같이 움직이겠군요?”
“글쎄요. 조직의 명령을 기다려봐야죠.”
계속 조직을 핑계로 대다보니 무슨 깡패조직에 들어간 것 같다.
“혹시 전에 얘기한 이엘바이오 지부장 찾으러 프랑스에 가실 건가요?”
뭐지? 지금 날 떠 보는 건가?
“사실 그때 이후로 윤종호와 그 여자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블랙 씨의 진짜 신분을 알고 싶어서요.”
“……!”
“별 사이 아니라고 했지만 분명 가까운 사이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니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알고 싶겠지, 내가 누군지.
“그래서 찾았습니까?”
“아니요. 두 사람이 접촉한 거의 모든 동양인을 조사해봤지만 블랙 씨는 없더군요. 심지어 이혜선의 과거 신분인 심은희의 주변인까지 뒤졌는데 말입니다.”
“……!”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심은희? 안소미가 아니라?
그럼…… 이혜선이…… 엄마라고?
“헉! 혹시 기분 나쁘셨습니까?”
“닥쳐!”
“……!”
조지는 입술을 말아 넣으며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지니 곧바로 오만가지 생각이 이어졌다.
‘정말 엄마라고? 그 여자가?’
CIA가 허투루 조사하진 않았을 것이다.
처음 조지 크리크와 만났을 때 이혜선이 신분을 바꿨었다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기도 했었고.
안소미란 걸 알았겠거니 오해를 한 건 나였으니, CIA가 파악한 대로 엄마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엄마일 것이다.
국가기밀과 관련된 용의자를 조사한 결과인데 틀릴 리가 없다.
당혹스러웠다.
윤종호가 엄마의 생존사실을 알려줬을 때보다 더욱.
엄마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그때 날 찾아왔던 당시 왜 스스로를 안소미라고 했을까?
날 만나기 싫었던 걸까?
그럼 날 지키기 위해 고아원에 맡긴 것도 거짓말이었던 건가?
‘뭐가 뭔지 모르겠어……’
당장 만나서 묻고 싶었다.
나는 도대체 당신에게 뭐냐고.
그 모든 게 날 위했던 게 맞냐고 말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아니면 어쩌지.
어렸을 땐 날 보호하기 위해서였더라도 이제는 날 버렸다면?
솔직히 이십 년 가까이 흐르지 않았나.
게다가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끝까지 좋았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팔을 부러뜨리고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아니, 그때 만약 조금만 핀트가 어긋났어도 난…… 망설이지 않고 손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남들과는 다르게 자라서?
그래서 엄마라는 사실을 숨긴 건가?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아서?
-찌이잉.
“크윽……”
머리가 칼로 찌르는 듯 지끈거렸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눈앞이 노래졌다.
순간 바닥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암전과 함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블랙 씨! 왜 그러세요?! 블랙 씨!”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조지의 외침까지 희미해졌고, 결국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
“어떻게 된 거예요?”
스미스와 실비아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조지에게 물었다.
그들은 CIA요원과 함께 없는 스컬을 쫓아 도쿄 외곽 가마쿠라까지 갔다가 연락을 받고 급히 돌아오는 길이었다.
“얘, 얘기 중에 갑자기 기절하셨습니다.”
조지는 자신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답했다.
“갑자기요?”
“네, 근데 병원으로 옮기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어서 두 분께 연락을 드린 겁니다.”
그 말에 스미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옮길 수가 없다니요? 그냥 들어서 옮기면 되지 무슨……”
그가 걸음을 옮기자 실비아가 급히 말했다.
“다가가면 안 돼요!”
하지만 이미 지척까지 다가간 후였다.
그때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스미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으힉!”
스미스는 반사적으로 그걸 피했고, 옆의 벽에는 펜이 꽂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책상에 있던 볼펜이 날아와 박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피했기 때문일까.
바닥에서 투명한 젤 같은 액체가 스멀스멀 나오더니 어떤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빨리 이쪽으로 오십시오!”
조지까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스미스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또라니요?”
“물건이 날아오는 걸 피하거나 막으면 저 괴물이 나옵니다. 실비아 양, 저게 뭔지 아는 것 같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조지의 물음에 실비아는 그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초능력을 발현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브루스 베커와 함께 일본까지 오면서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잘 때마다 겪은 일이었고, 함부로 다가가다간 다친다고 말이다.
“뭐? 의식이 없어도 능력을 쓸 수 있다고?!”
스미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건 듣도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에요. 그때 우리한테도 잘 때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었고, 브루스 베커가 멋모르고 다가갔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말도 안 돼……”
“일종의 자기방어기제 같은 거라던데 저건 저도 처음보네요.”
실비아는 투명한 젤이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전체적인 형태는 점차 여성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저걸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전단농화유체 같은 겁니다.”
조지가 손가락으로 투명한 몸체를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전단농화유체요?”
“액체 상태로 있다가 충격을 받으면 고체가 되는 물질입니다. 아까 총으로 쏴봤는데도 막아내더군요.”
“젤리 같은 게 총알도 막았다고요?”
“네, 그래서 제 선에서는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연락드린 겁니다. 어떻게 해야 저걸 없앨 수 있는 거죠?”
“깨어나야 해요. 그 방법 말고는 몰라요.”
“저 괴물을 뚫고 블랙 씨를 깨워야 한다고요? 허……”
그때 여의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서훈의 앞에 서있었다.
다소곳한 모습으로 서있는 중년여인.
마치 크리스탈 조각상인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실비아는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혹시……”
잠깐이지만 본 적이 있었다.
타츠오와 이혜선을 찾기 위한 방법을 논의할 때 서훈이 사진을 보여주며 동물들이 이 얼굴을 기억할 수 있냐면서 물었던 적이 있었다.
“실비아 양도 아는가보군요? 네, 이엘바이오 아시아지부장의 얼굴하고 똑같습니다.”
“……”
“실은 아까 그 여자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에 블랙 씨가 기절했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저런 형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혜선……”
“역시 블랙 씨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던 건가요? 저한텐 끝까지 말해주지 않던데.”
“저도…… 잘 몰라요. 저한테도 말을 안 해줬거든요.”
실비아는 이혜선의 모습을 한 여의를 통해 기억의 파편을 읽었다.
조지와 서훈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갑자기 그가 식은땀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다 쓰러지는 것까지 말이다.
‘심은희?’
분명 조지가 그 말을 하는 그때부터 서훈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 감정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덤덤한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면 심리적 충격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 일본까지, 줄곧 옆에 있었던 실비아는 알 수 있었다.
-주르륵.
그때 이혜선의 얼굴을 한 조각상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실비아는 그걸 보자마자 가슴이 아려왔다.
마치 서훈을 대신해 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왜 저러지? 여기도 너무 가까워서 저러는 건가?”
“더 멀리…… 떨어질까요?”
조지와 스미스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몇 걸음 더 물러났다.
반면에 실비아는 천천히 여의에게 다가갔다.
“어?! 뭐하는 거야? 위험해!”
스미스가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이미 여의의 앞에 서있었다.
“불쌍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
실비아는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눈물이 흐르는 여의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이혜선의 모습을 하고 있던 여의가 허물어지며 바닥 아래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