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처음으로 무게가 느껴졌다
테오 텔로스가 처음이었다.
나에게 위기감을 준 사람이 말이다.
킬러, 헌터, 슈퍼솔져, 네오휴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다양한 놈들을 만났지만 그놈처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놈은 처음이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놈의 감정상태도 그래.’
마음속에 오직 두 가지밖에 없었다.
공허함, 그리고 순수할 정도로 지독한 살심.
그걸 목도하는 순간 로드 라이언이 말했던 네오휴먼의 폭력성이 떠올랐다.
그런 감정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잠재되어 있다는 내 생각을 부정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었다.
‘원래부터 그런 놈일까? 아니면 Neo-X의 부작용?’
놈은 냉동인간으로 사백 년 동안 보존되어왔고, Neo-X로 되살아난 존재다.
어쩌면 네오휴먼과 바이오 기술의 만남이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또 그런 놈이 생기면?’
네오휴먼이 수면 위로 드러난 세상.
앞으로 각국은 초능력을 연구할 테고 테오와 비슷한 존재들이 생겨나진 않을까.
마치 나로 인해 이 모든 일들이 초래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컬이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버리고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해온 일들.
그 일들은 분명 촉진제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놈이 되살아난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방치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메리엄의 꿍꿍이를 파헤친다는 생각으로 미뤄둔 탓에 그놈이 살아났고,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버렸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지 않아서.
처음으로 무게가 느껴졌다.
책임이라는 무게가.
***
켄싱턴, 브릿지 타워 펜트하우스.
뉴욕항을 떠난 나는 브라이언 볼드윈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습격이 있었던 페어팩스의 저택을 떠나 이곳에 거주하는 듯 했다.
“내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나?”
그에겐 염력을 연결해놓은 상황이기에 어디에 있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그 사실을 모르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당신은 이제 어딜 가든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나는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뉴욕항에서 오는 길이다.”
“뉴욕항? 설마 테오 텔로스를 죽였나?”
“아니, 놓쳤어.”
놓쳤다기보다는 손을 대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걸 알게 된다면 놈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질 테니 말이다.
“자네가 놓쳤다?”
“말했을 텐데 그 능력은 성가시다고.”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때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요점은 특수부대가 사살이 아닌 생포를 목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었다.
그 행위로 판단컨대 미국은 테오를 연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 그랬지?”
“냉동인간을 부활시킬 수 있는 열쇠가 그자의 몸에 있으니까.”
그의 대답에 실비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의 판별은 나도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그녀는 상대의 속내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기에 함께 온 것이었다.
일단 목적이 네오휴먼의 연구가 아니라 냉동인간이라는 것에 다소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니 죽일 생각은 거두고 말을 이었다.
“그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포기해.”
“왜 그렇게 단언하지?”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뭐?”
“경고하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 네오휴먼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거절한다면?”
브라이언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며 되물었다.
“전에 당신이 그랬지? 법이라는 시스템은 나한테 있어서 선을 넘느냐 마느냐일 뿐이라고. 그리고 난 그걸 넘을 수 없다고 말이야.”
“……”
“맞아, 그땐 넘을 수 없었어. 기준이 딱히 없었거든.”
나는 브라이언 볼드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젠 달라.”
“……”
“네오휴먼을 욕심내고 연구하는 놈들은 그게 누구든 다 죽일 생각이거든.”
“이보게. 네오휴먼은 이미 세상에 드러났고, 각국은 그들의 존재를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해. 자네 혼자서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당신 말대로 해보려고.”
“……?”
“사회지도층을 죽이고 또 죽이면 그 흐름이라는 것도 바뀌지 않겠어?”
내 말에 브라이언은 황당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다 자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네.”
“그럴 수 있으면 해보든가.”
나는 고개를 돌려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럴 생각은 없네요. 오히려 반대예요.”
“그래?”
반대라면 테오와 나 사이를 두고 계산을 끝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걸 보니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지?”
“자네 혹시 내가 그 사건을 부탁하기 이전부터 테오 텔로스와 관련이 있었나? 그래서 일종의 책임을 느끼고 이러는 건가?”
“……”
“내 예상이 맞나보군.”
브라이언은 고개를 주억거린 후 말을 이었다.
“다소 아깝긴 하지만 포기하겠네.”
“무슨 생각이지?”
진심인 건 알겠는데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내 물음에 브라이언은 실비아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테오 텔로스, 그자의 몸에는 냉동인간 부활기술과 네오 셀에 대한 단서가 들어있을 거야. 그걸로 미국은 영생의 기술을 확보하고 여러 인재들과 유력인사들을 끌어들일 수 있겠지. 네오 셀의 비밀을 밝히면 초능력자를 양성할 수도 있을 테고.”
“……”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하지. 네오휴먼을 연구해 그런 성과를 거둔다면 타국에서도 더욱 박차를 가할 테니까. 그리되면 국력의 핵심은 과학에서 초능력으로 변할 테고, 미국이 지닌 기술의 초격차는 지금만큼 기능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
“가장 큰 문제는 초능력을 이용한 암살행위는 막기도 힘들고,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용의자를 검거하기도 힘들다는 거네. 초능력이 지금처럼 불특정 소수가 아니라 무분별하게 퍼져나간다면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고 말이야.”
브라이언은 실비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턴 아가씨가 말해주겠나? 내 속을 다 읽었을 텐데.”
“당신이 해.”
“아니, 내가 내 입으로 그 말을 하면 또 자넬 이용한다고 생각할 거 아닌가.”
그의 말에 실비아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이용하는 거 맞죠.”
“이 친구가 가는 길을 돕는 건데 그게 어째서 이용하는 건가?”
“경우의 수 중 하나였잖아요. 이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내가 무슨 소리인지 몰라 미간을 찌푸리자 실비아가 말을 이었다.
“미스터 볼드윈은 당신이 네오휴먼과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어요.”
“……”
“그리고 이 상황은 미국에게 나쁘지 않은 기회라고 보고 있고요.”
“뭐?”
“중국이나 북한 같은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특이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으면 잡아다가 실험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네오휴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
벌써 시작된 건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저 사람은 당신으로 인해 그들이 일본 못지않은 타격을 받는 걸 바라고 있어요.”
실비아의 말이 끝나자 브라이언은 헛기침 소리를 내며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염력으로 그의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세웠다.
“무슨 계산인지 알겠네. 미국의 국력을 높이지 못하면 타국의 국력을 낮추면 된다는 거지?”
“크흠······”
“좋아, 손을 잡도록 하지. 단!”
“……?”
“잡았던 손을 놓았을 때 일어날 후폭풍은 훨씬 심할 거야. 각오하고 잡도록 해.”
브라이언 볼드윈은 흔쾌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하네, 파트너.”
하지만 그의 손에 잡힌 건 내 손이 아닌 요구사항이 적힌 리스트였다.
그는 그걸 물끄러미 보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뭔가?”
“파트너라며? 필요하니까 거기 적힌 것 좀 구해와.”
“이걸 다? 자네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해야지, 전쟁.
***
또 다른 준비를 위해 우리는 워싱턴 외곽의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은 이전에 스컬의 헌터들을 괴멸시킨 장소였다.
“여긴 왜 가는 거예요?”
실비아는 도심지를 벗어나 산속으로 향하는 걸 보고 물었다.
갑자기 왜 여길 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능력으로도 내 속은 꿰뚫어볼 수 없으니 말이다.
“연고 발라주려고.”
“아······ 잭 말이에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결된 염력으로 보건대 그는 현재 헌터들이 죽은 장소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다.
‘스컬에 대한 미련이 남은 걸까?’
아니면 자신의 존재이유, 네오휴먼을 죽이기 위한 헌터로 태어났다는 걸 되새기려고 그 장소에 간 걸까.
어쨌든 이번에는 잭을 다독여 회유할 필요가 있었다.
미하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버서커의 힘은 테오와 비슷한 종류의 네오휴먼에겐 천적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럼 제가 할게요.”
“뭐?”
“보나마나 또 팩트폭력을 날릴 게 뻔한데 서훈 씨보다는 제가 낫지 않겠어요?”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긴 하다.
실비아는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할 수 있고, 이는 설득에 강점으로 작용할 테니까.
“그렇게 해. 난 옆에서 바람만 잡아줄 테니까.”
사위가 어둑해지는 산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모닥불의 불빛이 보였다.
잭은 그곳에서 불을 피우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저기 있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보였고, 가족을 잃은 듯 음침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감정을 보아하니 아직 마음의 정리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혼자 떨어져 있다 했더니 너였군.”
나는 그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잭은 내가 다가갈 때까지도 불멍을 하고 있다가 목소리를 듣고 흠칫 떨며 고개를 들었다.
“다, 당신은······ 여긴 어떻게······”
“그때 너희들을 추적할 수 있도록 조치해뒀거든. 내가 괜히 보내준 줄 알아?”
내 말에 잭은 벌떡 일어나 경계심을 보였다.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흐음, 전과는 다르게 눈깔이 죽어있네. 혹시 죽을 생각인가?”
나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람을 잡기 위한 연기였다.
“자살할 생각이면 힘들 게 싸울 필요 없겠지. 시신은 거둬줄 테니 하고 싶으면 어서 해.”
“……”
“실비아, 와서 불 좀 쫴. 따뜻하니 좋네.”
나는 불가에 자리를 잡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해, 안 죽어? 내가 죽여줘?”
“……”
“그때도 봤겠지만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거다. 단번에 중추신경을 끊어버리면 죽는 것도 모를 거야. 필요하면 도와주지.”
일부러 돕겠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렇게 조금씩 경계심의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비아가 그 벽을 넘어 잭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조직에서 버림받았군요?”
“……!”
“제 이름은 실비아 크리스탈이에요. 아마 저에 대해 얘기 들었을 거예요. 퀸시의 능력자들 중에서도 제법 유명하니까.”
“사이코메트리 능력자?”
“네.”
실비아는 웃으며 그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자신감에 찬 그녀의 감정을 보니 설득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당신들과 할 말 없어. 죽일 테면 죽여.”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아요. 로드 라이언이 원하는 게 그거라서 못하고 있으면서.”
“……!”
“난 못 속여요, 잭. 그리고 당신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잠깐 대화를 나눠보자는 거예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결정적인 말을 입에 올렸다.
“여기에 온 거 서훈 씨 때문이었잖아요?”
“……!”
“저 사람이 한 말 때문에 여기 온 거 다 알아요. 그런데 그 당사자가 우연히 여길 찾아왔는데 얘기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였다.
“뭐? 내가 한 말? 설마 그때 그거 말이야?”
“……”
“아하, 그때 사이먼과 언성을 높인다 싶더니 그걸 계기로 버림받았구만?”
정곡을 찔렀지만 잭은 입술을 짓씹으며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히키코모리를 만나보지 못해 모르지만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싶었다.
“잭, 우리 네오휴먼도 당신 못지않아요.”
“……뭐?”
“복제인간 못지않게 우리도 정체성에 혼란을 많이 느꼈거든요.”
실비아는 자신이 가진 능력 때문에 수많은 상처를 받아왔다고 말해주었다.
복제인간으로서 그가 받은 경험에 비추어 네오휴먼으로서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앞으로는 날 사랑하는 딸이라 말했었지만 속내는 아니었어요. 뒤로는 날 돈벌이 도구로 여기고 쓸모없어지면 버려도 되는 물건 정도로 여겼거든요.”
실비아는 옆에 있던 나무를 불속에 던져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분들에게 난 괴물일 뿐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