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오늘 고마웠어요, 전검사님
남부지검 앞 커피숍.
전민성이 이혜선과의 만남을 위해 정한 약속장소였다.
전화상으로 들었던 그녀의 말이 심상치 않았기에 심리적으로 익숙한 장소를 고른 것이다.
“후우······”
커피숍에 들어가기 전 담배 한 대를 태우며 마음을 달랬다.
사이코패스.
그녀는 염석훈의 상태가 위험해보인다며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자고 말했었다.
마치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석훈이가 좀 세게 말하긴 했지만 충분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어.’
게다가 사이코패스라 하면 흔히 연쇄살인마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상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자기 입장에서 제 잇속만 챙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 또한 그런 부류라고 할 수 있고.
그때 염석훈의 모습만 보고 콕 집어서 사이코패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혜선의 어조에서 느낀 불안감은 전민성이 그녀를 만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녀석과 이혜선과의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자 정작 당사자인 놈이 연락두절인 게 생각났다.
‘근데 이 자식은 남지웅을 잡은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왜 소식이 없어?’
명도종합병원의 사건에 녀석이 개입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박인섭의 경질소식을 알려줄 때 남지웅을 잡으러 거길 간다는 얘기를 했으니까.
그런데 그 이후로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괜히 그런 말을 했나······’
남지웅을 죽이지 말고 검찰에 넘기라는 말.
불법 장기이식을 받은 놈들까지 처벌을 받게 하자는 의도로 말했지만 진짜 속내는 너무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 같아 염려되어 한 말이었다.
살인도 살인이지만, 경찰들도 눈을 벌겋게 뜨고 있으니까.
자신이라도 제동을 걸지 않으면 폭주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그리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연락도 없게 되어버리니 더욱 불안하고 초조했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진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옆에서 계속 상기시켜줘야해.’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 녀석은 치밀해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단순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움직인다.
어떤 장벽이 있든, 무슨 문제가 있든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그 대상이 뭐가 되었든 달려들 놈이 염석훈이었다.
전민성은 다만 그가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리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오늘의 만남도 그런 일환.
염석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생각으로 이혜선을 만나는 것이었다.
“어서오세요.”
이혜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사소한 몸짓에도 예의가 있었고 우아한 분위기가 엿보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바쁘신데 시간을 내게 만들어 제가 미안하네요.”
“바빠도 나와야죠. 그런 말을 들었는데요.”
전민성은 맞은편에 앉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화상으로 말씀하신 게 무슨 말입니까? 석훈이가 사이코패스고 또 위험한 상태라니요?”
이혜선은 그의 모습을 보며 지그시 미소 지었다.
그 아이를 염려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제가 이엘바이오의 아시아지부장이라는 자리에 있긴 하지만 저 역시 과거엔 연구원이었고 학자였어요. 그런 제 소견으로 그때 그 자리에서 보인 염석훈 씨의 모습은 굉장히 아슬아슬해 보였어요.”
“위험하니 아슬아슬하니 그런 추상적인 말 쓰지 말고 확실하게 말씀하세요.”
“어쩌면······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
이혜선은 애써 속내를 감추려하는 전민성의 모습을 잡아냈다.
표정관리에 익숙하더라도 동공 같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을 캐치한 것이었다.
“놀라셨나보네요.”
“글쎄요, 놀랍다기보다는 영 터무니없는 말 같아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어요. 저야 염석훈 씨를 직접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요. 한 번 보고 그런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솔직히 이혜선 씨의 말에 조금 불쾌한 기분도 듭니다. 제가 아끼는 동생을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몰아가셨으니까요.”
“저는 그저 가능성을 말씀드린 거였어요. 아끼는 동생이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되면 안 되잖아요?”
“……”
전민성은 전화상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검사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으시면 어렸을 때 염석훈 씨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네?”
“어린 시절엔 어땠는지 알면 상태를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그녀의 눈에 전민성이 경계하고 있음이 확연히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과거를 입에 올리는 일이기 때문.
이럴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면 경계심을 허물 수 있었다.
“설아 씨에게 어느 정도 듣긴 했었어요. 어렸을 때 실어증에 걸렸었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
“근데 성격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여러 사람에게 들어보는 게 더 정확하거든요.”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그럼요.”
“무시할 수도 있지 않나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음······ 그러니까 전검사님께서 탐탁지 않아 하는 상황을 제가 감수하면서까지 왜 이러는지 묻는 거군요?”
“네.”
“설아 씨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해둘게요.”
“……!”
“그리고 그때 염석훈 씨의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거든요.”
이혜선은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 시간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있다고 했었죠, 석훈 씨가. 저 또한 남편과 아들을 잃었던 그때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잘 알고 있죠, 과거에 묶여 있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런데 그 과거가 잘못된 길로 이끌어서 미래까지 망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이겠어요?”
“……”
“본인 스스로도 돌보지 못하면서 남을 어떻게 신경 쓰냐고 타박하시면 할 말 없지만 도움이 되고 싶네요. 오지랖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전민성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뭡니까?”
“석훈 씨가 말을 되찾은 게 언제쯤이죠?”
“그런 게 사이코패스와 관련이 있나요?”
“학대가 실어증의 계기가 되었다면 말을 되찾은 것에도 그만한 계기가 있었을 테니까요. 심리적인 변화는 아주 중요해요.”
“원장이 죽고 미소고아원이 폐원되던 그 해에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학대가 끝났다는 해방감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전후사정을 보면 인과관계가 분명한 결과로 보였다.
하지만 이혜선은 불안감이 더 커졌다.
“당시 석훈 씨 상태가 어땠죠? 단어 한, 두 개 사용할 수 있거나 어눌했나요? 아니면 정상인과 별 차이 없었나요?”
“별 차이 없었습니다. 원래 실어증이 그런 거 아닙니까?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말을 못하다가 되찾는 거.”
“……맞아요.”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시뮬레이션대로라면 전두엽에 영향을 미친 약효가 서서히 사라져야 한다.
그렇게 갑자기 언어능력을 회복할 리가 없었다.
학대와 해방감.
그 두 부분이 뇌에 미친 영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어렸을 때 당하는 학대는 뇌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니.
‘하필 그런 고아원이어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을 죽인 자들이 턱밑까지 쫓아왔었으니까.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선택지가 그곳밖에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후회가 되었다.
‘진정하자.’
지나간 상황을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상황보다 사실에 집중하여 원인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설마 약효가 나오지 않았던 건가?’
약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실어증과 말을 되찾은 게 학대와 관련한 심리적 영향이라 결론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투여 직후부터 서서히 감정이 사라지긴 했었어. 그렇게 아빠를 찾으며 울던 애가 그 이후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고.’
그 증상을 보고 안심했었다.
예상범위 내에서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이혜선은 당시 투여 후 경과를 본 기간이 워낙 짧았기에 전민성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현상’이 나타났다면 약의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니 말이다.
“전검사님.”
“네.”
“혹시 석훈 씨가 우는 걸 본 적이 있나요?”
전민성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아원에 들어왔을 때가 다섯 살이었는데 한 번도 우는 걸 못 봤네요. 처음 들어온 애들은 큰 애들도 많이 우는데 말입니다.”
“원생들과의 감정적인 교류는 어땠나요? 설아 씨에게 듣기로는 학대 때문에 서로 보듬어주고 의지하고 그랬다던데.”
“무뚝뚝한 녀석이긴 했지만 엉덩이가 터진 형들에게 따뜻한 물수건도 가져다주고, 약도 발라주고······ 어, 또······”
“시켜서 한 거죠? 자발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
“시간을 보낼 때는 항상 혼자 있던가요?”
“……네.”
“뭘 하는지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음······ 개미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대부분은 혼자 돌멩이 가지고 놀더군요.”
“돌멩이요? 어떻게요?”
“손으로 붙잡고 이렇게 위로 살짝 던지고 잡는 걸 반복하면서요. 같이 놀자고 해도 뭐가 재밌는지 매번 그렇게만 시간을 때우더라고요.”
“석훈 씨 주변에서 뭐 이상한 건 보지 못하셨나요?”
“이상한 거요?”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게 있었으면 뭐든 말씀해보세요.”
이상한 건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가 아닌 현재.
더구나 염석훈의 살인과 관련된 부분이라 말할 수 없었다.
“글쎄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석훈 씨는 설아 씨 죽음에 진심으로 화를 내던가요?”
“당연하죠. 아니면 왜 그렇게 설아누나 죽음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겠습니까.”
“아뇨, 제 말은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말한 거예요. 그때 저에게 했던 식으로 차가운 분노 말고. 끓어올라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격앙된 감정을 보이고, 폭력적인 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는지 말이에요.”
“예, 그랬습니다.”
한설아의 죽음과 관련해 염석훈이 죽인 자만 이백 명에 가깝다.
그와 관련해 녀석의 얼굴에서는 용서나 자비라는 단어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녀를 죽인 놈들에 대한 분노가 여실히 드러났었다.
“그렇군요. 대답 감사해요. 제 소견으로는 확실히 사이코패스의 경계선에 있는 것 같네요.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 하지만 주변에서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상태인 것 같고요.”
그녀의 결론에 전민성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되물었다.
“근데 주변에서 신경 쓴다고 그런 부분이 개선이 될까요?”
“……”
“왜 보면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들 있잖습니까. 저는 석훈이가 그런 면을 좀 강하게 타고난 거 아닐까라고 생각되거든요.”
“선천적으로 그렇게 타고 났더라도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요. 본인과 주변 사람의 노력에 달린 거죠.”
“그렇습니까.”
이혜선은 고민을 하는 그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상기하며 그가 숨기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특히 격앙된 감정을 보이고, 폭력적인 면을 드러냈다는 부분에 대한 답변.
지금의 그 아이 성향으로는 다른 사람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리가 없었는데 그 정도로 확신에 찬 대답을 한 것으로 보아 직접 보았거나, 그에 관해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아이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니라는 걸 나한테 보여주려고 그렇게 말한 거겠지.’
전민성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 아이를 염려해서 나온 방어적인 기제일 테니.
‘그래도 다행이야. 한 사람은 있구나, 확실한 네 편이.’
그 아이가 외톨이가 아니라는 것에 눈앞의 전민성에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이혜선은 그와 헤어지기 전 두 손을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오늘 고마웠어요, 전검사님.”
***
박인섭은 침을 꼴깍 삼키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집으로 돌아온 염석훈의 모습이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어디 한 번 보자, 네 진짜 모습을.”
그때 후루룩하고 면치기를 하는 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공돌이는 자신을 노려보는 박인섭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단무지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나가서 먹어,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