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새로운 동료 (2)
“괴도라…….”
선글라스의 남성이 작게 한탄을 한다.
동양인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서구식 외형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최근 사람들 사이에 급격하게 소문이 퍼지고 있는 괴도를 입에 올려본다.
물건을 훔치는 자.
하지만 괴도가 훔치는 물건들이 레이나라는 드래곤의 레어에서 훔쳐온 물건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괴도란 녀석은 드래곤의 보물을 알고 있는 녀석임에 틀림이 없군.”
전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드래곤의 보물.
루틴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괴도는 드래곤의 보물을 노리고 있다.
실제로 루틴과 거래했던 자들 중 이미 2명이나 도난 사건을 겪었다.
아니, 이번으로 3명째다.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여성용 핸드백까지 포함하면 3번째군.”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그 일이 괴도와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밝힐 필요가 있지만, 괴도가 아닌 이상 그 여성용 핸드백을 노릴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고급스럽게 보일 만한 아이템이긴 했지만, 그게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드래곤의 보물은 이미 괴도의 손에 하나둘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퍼져 있는 드래곤의 보물은 널리고 널렸다.
허나 이런 식이라면…….
“내 장사에 방해가 되겠어.”
혀를 차며 괴도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떠올리는 루틴.
더 이상 괴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손을 뻗어 전화기의 버튼을 누른 루틴이 작게 중얼거린다.
“저번에 내가 말했던 것을 실행하도록.”
-알겠습니다.
마치 기계음처럼 딱딱함을 뽐내는 여성의 목소리가 루틴의 말에 긍정을 표한다.
계속적으로 괴도의 행동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상태로 괴도의 행동을 놔두게 된다면.
틀림없이 루틴에게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 괴도라는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제거하는 게 좋겠지.”
루틴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새겨진다.
적룡 산업 대표 사무실 안.
“24의 위치는?”
“…L열의 가장 오른쪽이에요.”
면접의 내용은 실로 매우 간단했다.
저번에 카페에서 간단하게 세미의 능력을 확인했던 것을 보충해서 한 번 더 확인한다는 차원의 기억력 테스트였다.
수많은 숫자들을 나열하고, 특정 위치의 숫자를 맞추는 일.
단순해 보이는 퀴즈 테스트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기억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 석두가 묻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녀의 능력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창민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석두의 오른팔이라고 불릴 만큼 그간 많은 동행을 했던 망치도 절로 탄식을 내뱉는다.
“세상에…….”
단순히 기억력이 좋다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미 그녀의 기억력은 ‘좋다’라는 말의 범주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석두가 망치뿐만이 아니라 번개, 그리고 그의 적룡파 조직의 핵심 멤버들을 일부러 호출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바로 이들에게 세미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앞으로 세미는 적룡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특수한 기억 능력은 필히 석두의 괴도로서의 행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우선 여자라고 조직원들 내에서 무시를 받아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동등한 위치에서 행동해야 한다.
자고로 여성은 사회적인 조직에서 자연스럽게 보호 대상, 혹은 남자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기본적으로 망치처럼 엄청난 근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창민과 같이 냉철한 사고방식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번개처럼 빠른 소매치기 실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가 적룡파에 들어오기 위해선, 그리고 망치와 창민, 번개와 쾌남 등 핵심 멤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능력을 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쾌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표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카메라를 통해 세미의 기행을 지켜보고 있다.
“이 정도면 되나요?”
“충분하군.”
석두가 말을 내비치며 조직원들을 바라본다.
그의 말에 토를 달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거 참… 굉장한 아가씨를 데려오셨군요, 두목.”
번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언제부턴가 형님에서 두목으로 호칭이 변경된 석두였다.
“소감은 어떻지?”
“굳이 소감을 말할 필요가 있나요? 이 정도의 기억력이라면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번개가 슬쩍 망치를 바라본다.
망치 역시도 같은 의견이었다.
“머리 나쁜 저로서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형님! …이 아니라 두목님!”
“창민은?”
번개와 망치의 시선이 창민에게로 돌아간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끼파라는 어마어마한 거대 조직을 이끌던 보스이기도 한 그다.
그러나 창민은 그저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답변을 이끌어낸다.
“저희 적룡파에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인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전 한 가지 걱정이 되는군요.”
창민이 여전히 냉소와도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녀는 뒷세계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그런데 과연 저희의 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요?”
그의 말에 세미가 시선을 돌린다.
창민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세미도 잘 파악하고 있다.
“저희들은 이보다도 더한 더러운 일들도 할 겁니다. 그저 물건을 훔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폭행, 협박, 그리고 필요하다면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두목.”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
석두도 창민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얼핏 보면 이들은 평범한 무역 회사의 중역들로 보일지 모른다.
허나 이들의 정체는 괴도, 즉 범죄 집단이다.
비록 이들보다도 더한 녀석들을 심판한다는 명목이 있긴 하지만, 행동 자체는 엄밀히 범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인에 불과한 세미가 과연 이 범죄를 저지를 만큼 대범한 심장을 지니고 있는가?
그에 대해서라면 창민은 단연코 No라고 할 수 있다.
“아가씨는 살인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창민이 심리적인 압박을 가한다.
일반인에게 살인을 할 수 있다고 물어본다면.
“못 해요.”
당연한 대답이다.
세미는 당당하게 자신의 한계를 제시한다.
“물건을 훔치는 것도, 그리고 사람을 때리는 것도. 전 아무것도 못 해요. 하지만 당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암기력은 선보일 수 있어요. 제가 직접 하진 못하지만,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본인의 손을 더럽히진 않는다.
아니, 더럽힐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중죄를 저질러 본 적도 없는 평범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여성에게 석두는 범죄를 강요할 생각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하기 위해 세미를 꼬드긴 것이 아니다.
석두는 그녀의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 중에서도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서포터 역할을 해주는 녀석이 있다. 히키코모리이면서도 천부적인 해킹 실력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지. 안 그러냐? 망치.”
“예, 그렇습니다. 두목님.”
망치가 거침없이 석두의 말을 받아준다.
“녀석도 해킹이라는 것 빼고는 직접 중죄를 저지른 적은 없습니다. 행동파인 저와 번개가 알아서 했으니까요. 아가씨 역시 똑같습니다. 손을 더럽히는 건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저 아가씨께서는 모른 척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스스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봅니다.”
망치답지 않은 간단명료한 답변이었다.
그 말에 석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창민을 바라보며 되묻는다.
“더 필요한 게 있나?”
“두목님의 뜻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에 창민은 처음부터 석두가 세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세미에게서 이번 일에 가담하게 된 결심을 스스로 견고하게 다지게 하고자 강요를 시킨 것일 뿐이다.
석두도 창민이 일부러 세미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그녀의 결심을 견고하게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걸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심리전은 창민의 주특기다.
그래서 석두는 창민을 곁에 두고 싶어 한 것이다.
“이제 면접은 끝났나요?”
세미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자 석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내놓는다.
“합격이다.”
세미의 합류.
그것은 분명 적룡파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설마 그 여자가 저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망치가 혀를 차면서 다시 한 번 세미의 능력에 감탄을 한다.
사무실을 나온 뒤 쾌남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한 망치와 번개.
쾌남도 감시카메라를 통해 세미의 능력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어려움 없이 낄 수 있었다.
“…천재일지도.”
“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야.”
망치가 쾌남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는다.
쾌남도 사실은 머리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과는 별개로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머리가 좋지 않고서는 해커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나저나.”
세미는 둘째 치고, 망치는 사실 더 신경 쓰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창민이었다.
“설마 도끼파와 같이 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번개가 망치의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먼저 입에 담는다.
그간 도끼파에서 엄청난 수탈을 당해온 이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창민과 같이 일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두목님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지.”
망치도 창민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무식하게 행동력만 앞세우는 망치와는 다르게, 창민은 이성적으로 냉철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아마 석두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필요한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서로 새로운 동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이었다.
띵동!
낯선 초인종 소리에 망치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누구지?”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적룡 산업이 위치한 고층 빌딩이 아니다.
도끼파를 궤멸시키기 전까지 사용하고 있던 구 사무실이다.
그곳으로 찾아온 인물이 누가 있을까 궁금하게 여기며 문을 연 망치의 시야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한다.
“김석두라는 사람을 찾아왔는데요.”
“아… 형수님?!”
망치가 놀란 표정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석두를 찾아온 인물은 얼마 전, 망치도 본 적이 있는 레이나였기 때문이다.
“어머, 형수님 아니에요.”
“그, 그렇군요. 그보다도 두목님은 여기에 안 계십니다만…….”
“아참, 그랬었죠.”
이제야 적룡 산업 빌딩의 존재를 눈치챈 레이나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런데 두목님한테는 무슨 볼일로…….”
“별거 아니에요.”
가볍게 손사래를 친 레이나가 여전히 눈부신 웃음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의뢰할 일이 생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