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106
106. 한판 붙자!(3)
통로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바닥을 내려보았다.
평소의 대기실을 감싸고 있던 은
빛 금속 대신,풀과 흙이 바닥을 덮 고 있다. 앞을 보자 저 멀리 드문드
문 나무의 그림자가 보였다. 풀,흙, 나무와 꽃. 골드로 구입하는 인테리 어 소품이었다.
‘이런 거까지 해줬나.’
작은 숲이었다.
공기에는 특유의 습기마저 머물고 있다. 나는 축 늘어진 라카리를 어 깨에 멘 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통나무로 얼기설기 지어진 움막집 몇 채가 눈에 띄었다.
“넌 뭐냐?”
곧바로 반응이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여자 가 한껏 눈매를 세운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짐승 가죽으로 짠 원피스를 입고 있다. 인상과 외모는 라카리와 비슷 했지만,이쪽은 완연한 성인이었다. 한 명의 시선이 라카리에게 향했다.
“그 아이는……
“그쪽이 보낸 거 아니었나?”
여기까지 왔으면 볼 일은 없다.
나는 어깨 위의 라카리를 흙바닥 에 내려놓았다.
“무슨 애를 첩자 보내듯이 숨겨놨 어? 제대로 하지도 않더만. 참고로 말하지만 별짓은 안 했다. 날뛰길래 조금 조용히 시켰을 뿐이야.”
“저 녀석이 그분이 말하던…… “그렇다면 인간 중에서……
나는 눈썹을 좁혔다.
두 명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 해서 칼집에 손을 올리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노골적인 적의는 없었다. 그저 약간의 경계와 호기심이 엿보 일 뿐. 나는 발밑의 라카리를 살폈 다.
“음냐……
완전히 기절했는지 일어날 기색은 없다.
왼쪽에 있던 여자가 라카리에게
빠르게 다가가더니 데리고 사라졌 다.
‘별로 인간과 다르진 않은데.I 수인족이라지만 눈에 띄는 차이는
없다. 기껏해야 특이한 옷을 입었고 손톱이 날카로운 정도. 동물 귀가 달렸다거나 꼬리가 나왔다거나 하 는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네가 한 이스라트냐?”
남은 한 명의 수인 여자가 말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기다리고 계신다.”
여자는 할 말을 끝마친 뒤 몸을 날 렸다.
도약 거리만 수 미터. 놀랍도록 잽 싼 몸놀림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이야기를 해보려 했더니, 자기들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쫓아갈 생 각도 들지 않았다.
‘의도를 모르겠네.’
다만 나를 완전히 적대시하지 않 는다는 것은 알겠다.
나는 칼집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흙 길이 나 있었다.
‘완전히 전용 공간을 만들어줬군.’
숲 한쪽에는 짚으로 만든 허수아
비와 나무를 엮어 만든 갖가지 장애 물이 보였다.
3파티만 쓰는 임시 훈련장인 것 같았다. 계속 나아간다. 숲의 중앙 에는 커다란 공터가 나 있다. 그리 고 공터 중앙에 한 소녀가 우뚝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아하하핫!”
소녀는 크게 웃었다.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목청 이었다.
소녀의 등 뒤로 갈색 머리칼이 갈 기처럼 뻗어 있다. 겉모습으로 보이 는 나이는 라카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키샤샤 비크샤비. 만나서 반 갑다. 너는 한 이스라트.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 대기실에서 가장 강한 수컷이라지?”
“가장 강한 수컷?”
“마스터의 이상한 주술로 네 가 싸 우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굉장하 더군! 이렇게 두근거렸던 적은 오랜 만이 야.”
키샤샤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르특. 조막막한 하얀 손에서 손 톱이 삐죽이 솟아 나왔다.
나는 웃고 말았다.
“간단한 이유였군.”
별로 텃세를 부린다거나 견제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전사,한 이스라트!”
“그래.”
“나와 한 판 붙자!”
순간,키샤샤가 딛고 있던 흙이 움 푹 파였다.
나뭇잎과 흙더미가 휘날리더니, 작은 몸이 엄청난 속도로 내게 접근 했다. 오른손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 졌다. 나는 바로 검을 뽑아 들어 맞 부딪쳤다.
카캉!
검과 손톱이 교차했다.
묵직한 충격이 손목을 타고 어깨 까지 오른다. 근육이 저릿저릿 지렸 다.
자세를 정돈했을 때,나의 몸은 이 미 몇 발자국이나 뒤로 움직인 상태 였다.
“막았구나!”
키샤샤의 입이 유쾌한 듯이 비틀 어졌다.
투광!
동시에 발이 대포처럼 날아왔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뒤에 있던 나
무가 수수깡처럼 반절로 뚝 부러졌 다.
‘뭐냐,이 괴력은.’
“어제 그 전사는 투지가 넘쳤지.
하지만 날 만족시켜주진 못했어. 넌 어떨까!”
“나와 싸우고 싶었던 거냐?” “물론이야. 강한 전사와 싸우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그게 인간이든,동족이든!”
키샤샤는 몸을 바짝 낮추었다. 그러더니 내게 도약해왔다. 흡사
치타를 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카캉! 캉!
검과 손톱이 부딪히는데 불꽃이 튀겼다.
비프로스트의 단단한 검날로도 키 샤샤의 손톱은 훔집 하나 나지 않았 다.
‘손톱을 이용한 격투술인가?’
나는 비프로스트를 옆으로 세웠 다.
키샤샤의 뻗어진 양손이 검면을 타고 올라가며 격한 마찰음을 내질 렀다. 동시에 발이 치고 들어온다. 손과 발으로 이어지는 동작이 물 흐 르듯 매끄러웠다. 또한.
‘꼬맹이가 뭐 이렇게 힘이 세?’
파박!
손톱이 흙을 헤집자 순식간에 작 은 구덩이가 생겼다.
손과 발은 겉보기로는 아이의 부 드러운 그것이지만,나무 따위는 수 수강처럼 박살낼 거력을 품고 있었 다.
두 번의 손톱이 연달아 어깨를 스 친다.
가죽 갑옷이 두부처럼 베이며 피 부를 드러냈다. 나는 한 발짝 물러 나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키샤샤는 2m 높이로 도약하면서 피하더 니 위 에서 아래로 손톱을 내리꽂았다. 곧
장 검을 회수해 막았다.
쾅!
흙먼지와 함께 나뭇잎이 피어올랐 다.
잽싸게 물러난 키샤샤가 재차 달 려들었다.
진퇴가 빠른 데다가 자유자재. 공 격과 방어의 타이밍을 종잡을 수 없 었다. 여태껏 내가 한 번도 상대하 지 않은 스타일의 적이었다.
나는 전신에 힘을 실으며 검을 돌 려 벴다.
키샤샤는 바로 피했다. 이어서 나 는 근육의 반동을 이용해 검을 사선
으로 꺾어서 휘둘렀다. 녀석은 손톱 을 내세워 막았지만.
퍽!
수 미터나 날아간 키샤샤가 풀숲 에 처박혔다.
녀석은 풀잎을 헤치며 벌떡 일어 섰다.
“넌 다르군. 이 정도일 줄이야.”
키샤샤는 싱긋 웃으며 입가의 피 를 닦았다.
나는 검을 내렸다. 왼쪽 팔뚝을 보 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팔뚝을 할퀸 것이다.
‘상태창.’
[키샤샤 비크샤비(★★★★) Lv. 22 (Exp 32/180)][클래스 : 수인(Half-beast)]
[힘 : 54/54]
[지능 : 10/1이
[체력 : 48/48]
[민첩 : 59/59]
[보유 스킬 : 중급 격투술(Lv.l), 투지 (Lv.3),초직감(Lv.l), 전투 속 행(Lv.l), 야수성 발현(Lv.4),숲의 사냥꾼 (Lv.8), 재빠른 몸놀림 (Lv.9)]
[각인 슬롯 : 1/1]
[1 : 수왕의 후예(B+, Lv.3)]
[먼 과거, 제국과 대륙의 패권을 다투었던 수왕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의 혈통이 다.]
[효과 : 정신 공격 내성 +50%, 공 포 면역, 빈사 상태에 빠질 시 능력 20% 상승(지속 시간 60초)]
[고유 스킬 : 수화(獸化)]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모든 스탯에서 나보다 우위를 점 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갖고 나온 능력치가 다르다.
총합을 보아하니 성장치도 우수한 것 같았다. 추후에 강화를 거친다면 모자란 스랫을 메꿀 수 있지만,아 직은 방법이 없었다.
거기에 중급 무기술을 비롯한 알 짜배기 스킬은 다 가진 상태였고, 심지어 각인까지 달고 나왔다. 한마 디로 말하자면.
‘4성 중에서도 상위권.’
지표상의 수치로는 내게 현저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신검합일 스킬을 배우지 못했다면
꽤나 밀렸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스펙만 따지자면 최하급 5성과 비 교해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_
|픽 미 업’은 스팩만으로 하는 게 임이 아니다.
우열이 확실한 전투가 뒤집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것이 임 무든,혹은 영웅 간의 결투든.
수왕의 혈통이라.
날 때부터 강자. 본인의 능력도 있 겠지만,타고난 금수저인 것 같다.
‘그렇다고 질 수는 없지.’
기분 나쁘잖아.
나는 웃고는 검을 바로잡았다.
싸우는 이유, 아무래도 좋다. 눈앞 의 적이 10대 초중반의 외견을 갖고 있는 꼬마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안 오면 내가 간다.”
나는 검을 옆으로 세운 채 하체를 굽혔다.
그때,옆에서 별가루가 반짝거렸 다. 이셀. 끼어들기 전에 차단했다.
“말리지 마. 서로 죽일 생각은 없 으니까. 인사일 뿐이야. 안 그래?”
“아핫핫! 알고 있군. 맞아,이건 몸 과 몸의 대화. 우애를 다지는 의식 이다. 넌 인간이지만 맘에 드는구
나!”
“그거 다행인데.”
가볍게 뛰어들었다.
후웅!
그리고 무겁게 휘둘렀다.
같잖은 기교는 집어치운다. 오로
지 무겁게. 더욱 강하게. 리디기온 처럼 모든 검형을 마스터할 정도의 재능은 내게 없다. 그렇다면 한 가 지에 파고들 수밖에 없다. 그 사실 을 깨우쳐서야 신검합일을 익힐 수 있었다.
’중검 (重劍)
쾅!
두꺼운 비프로스트의 검날이 키샤 샤를 강타했다.
강한 풍압이 얼굴을 때렸다. 바닥 을 딛고 선 키샤샤가 몇 미터나 미 끄러 졌다.
“짜릿한데!”
키샤샤는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지 었다.
그와 동시에 흙바닥을 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기꺼이 어울려준다. 키 샤샤는 손과 발,머리에 팔꿈치,무 릎에 이르기까지 전신의 모든 부위 로 나를 공격해왔다.
맨몸 격투와 검술. 이런 경우에는
무기를 든 쪽이 훨씬 유리하지만, 키샤샤는 검을 잽싸게 피하고 때로 는 맞부딪치며 나를 상대했다.
키샤샤가 엎드리듯 몸을 숙인다.
그 위를 훑고 지나간 검날이 나무 를 썰었다. 중간이 잘린 나무가 왼 쪽으로 미끄러졌다. 쿠응. 나무가 쓰러지자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 속에서 주먹이 날아왔다. 스치는 것 만으로 뺨에 피가 튀었다.
주변의 나무와 흙,바위를 남김없 이 때려 부수며 난전을 이어가는 도 중.
‘슬슬 기어를 올릴 때가 됐군.’
이렇게 싸움을 이어가도 괜찮겠지 만,내 성미에는 맞지 않다.
이 녀석은 전력을 숨기고 있다. 나 도 마찬가지. 이미 보여줄 것은 충 분히 보여줬다. 다음으로 넘어갈 때 였다.
‘광폭.’
머릿속에 뜨거운 피가 돌았다.
[‘한(★★★)’이 광폭 상태에 돌입 했습니다!]눈앞이 뜨거워졌다.
나는 손과 허리에 힘을 꾹 주었다.
막대한 무게를 담은 삼연격이 키샤 샤를 후려쳤다. 키샤샤는 막는 그대 로 포탄처럼 날아가 흙더미에 처박 혔다.
광폭성이 7레벨에 다다르면서,더 해지는 스탯값은 15를 돌파했다. 여 기에 신검합일까지 추가하면 순수 힘으로만 80에 가까운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끝내자.”
나는 흩날리는 먼지를 보면서 말 했다.
“이래봬도 바쁜 몸이거든. 다른 할 일이 많아.”
‘수화라고 했나.’
각인에는 한 가지씩 고유 스킬이 달려 있다.
각각 효용성이 다르지만,키샤샤 가 가진 수왕의 후예는 B+. 상당히 높은 등급이었다.
먼지 속에서 그림자가 떠올랐다.
[고유 스킬,수화 발동!] [‘키샤샤 (★★★★)’} 변신합니 다!]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렸 다.
어린 소녀의 음성은 온데간데없었 다. 영락없는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호랑이.’
나는 픽 웃었다.
왜 수인이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먼지를 헤치며 거대한 맹수가 나타난 것이다. 크기는 약 2m. 동물원에서 본 것보다 훨씬 거 대하다.
“그게 네 본모습이냐?”
등 뒤의 꼬리가 좌우로 움직였다.
전신을 두꺼운 줄무늬 가죽이 덮 고 있었다.
키샤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상체만한 앞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이건 당첨인데.’
개인 전투력도 우수.
거기에 변신 능력까지 지니고 있
다.
성향이 조금 유별나긴 하지만,이 정도면 허용 범위 이내였다.
‘공략에 큰 도움이 되겠군.’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싸우고 싶다면,원하는 대로 해주
마.’
나는 검을 녀석의 면전에 겨누었 다.
어금니가 내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크아앙!”
포효를 내지르며 키샤샤가 달려들 었다.
나도 마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