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2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28화
뭐해?(1)
뉴스 속보를 들은 후, 강우는 에키드나와 한설아를 데리고 레드로즈 길드로 향했다.
“야, 빨랑빨랑 못 움직여?!”
“중국 측에 연락해서 악마교 위치 확인해!”
“대책 회의 장소가 어디라고? 비행기, 우선 비행기부터 싹 모아!”
레드로즈 길드의 상황은 말 그대로 난장판.
로비와 사무실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지금 사태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문을 열자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는 차연주의 모습이 보였다.
“왔어?”
차연주가 고개를 들었다.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강우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일단 뉴스를 보긴 했는데, 정확히 무슨 상황이야?”
“블라디보스토크에 대규모 소환이 일어났어.”
“대규모 소환이라고 하면….”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파악 안 됐는데 최소 백 단위의 악마를 소환한 것 같아. 엄청난 숫자의 마물도 함께 소환됐고.”
“백 단위.”
그 숫자에 자기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가려고 했다.
강우는 올라가려는 입가를 애써 내렸다.
‘이 기특한 새끼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넓은 러시아를 언제 다 조사할지 막막했던 상황을 그들 스스로가 한 번에 해결해 줬다.
대규모 소환에 성공한 그들을 끌어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현재까지 피해 상황은?”
“원래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인명피해는 몇 없어. 문제는….”
“마물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거군.”
차연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도 꽤 빨라. 게이트 주변에 있던 SS급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기도 하고.”
사실 두 번째가 더 큰 걱정거리였다.
SS급 게이트.
그 게이트가 위치한 주변은 격변에 날 이후 5년이 지나도록 복구하지 못했다.
다른 게이트에서는 보기도 힘든 강력한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와 그들만의 서식지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일정 거리 밖으로는 몬스터가 서식지의 범위를 늘리지 않았기에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 주변은 인외(人外)의 영역이자 발을 디딜 수 없는 금지(禁地)였다.
그런데 그런 SS급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악마교가 소환한 악마와 마물 무리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강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허기가 느껴졌다.
그에게 있어 끔찍한 악마군단 무리는 영양가 만점의 도시락으로 보일 뿐이었다.
‘마물은 큰 의미 없다만.’
영혼을 거두는 자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악마의 영혼.
욕망을 견디지 못하고 자아를 잃은 마물들의 영혼 따위는 흡수할 가치가 없다.
‘할키온 같은 마물이면 몰라도.’
할키온.
마물들 중에서 극히 드물게 지성을 가진 존재였다.
지성을 가진 마물은 어지간한 악마들은 쓸어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중에는 권능을 가진 존재도 있었다. 포식의 권능으로 잡아먹을 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할키온 같은 마물이 있을 때의 이야기.
‘영상에 보이는 건 대부분 삼천지옥 이하에 서식하는 마물들이었어.’
그중에는 지성을 가진 변종 마물은 없을 것이다.
변종 마물들은 대부분 팔천지옥 이상에 서식했다.
‘그렇다면 악마를 최우선으로 노린다.’
단 한 마리도 남길 생각은 없다.
새롭게 각성한 특성, ‘영혼을 거두는 자’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악마를 먹어치워야 했다.
“마물들은 어디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만주 벌판 쪽으로. 이대로 중국으로 향한다면 모르지만 한국 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어.”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 중국과 인접한 지역이었다.
5년 전 격변의 날 당시 북한이 멸망해 버렸기에 한국 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다.
“흠.”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마물들의 방향에 따라 중국에도, 한국에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중국 측 움직임은?”
“한국에 동맹을 요청했어. 인명 피해가 커지기 전에 만주 벌판에서 결판을 볼 생각인 것 같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한국 둘 중에 어디로 악마들이 향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느 한쪽에 공격이 집중된다면 감당하기 힘든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둘이 힘을 합쳐 위험요소를 지워 버리는 것이 타당했다.
‘밸런스는 좀 안 맞겠지만.’
중국은 동아시아권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는 최강의 국가였다.
인구가 많은 만큼 플레이어들이 많았고 국가 특성인지 ‘내공’이라는 고유 스탯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많아 평균 전력이 강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을 둘 다 합친다고 해도 중국이 가진 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뭐, 내가 있으면 다르겠지.’
강우는 피식 웃었다.
고작 개인의 힘으로 국가 간의 압도적인 전력 차를 뒤집을 수 있다는 광오한 생각이었지만 거짓은 없었다.
강우의 존재 하나만으로 한국은 세계 최강국가인 미국과도 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하얼빈 쪽에서 전략 회의를 한다고 참여해 달래. 그래서 지금 화랑부대랑 대형 길드랑 비행기를 구해서 하얼빈 쪽으로 향할 생각이야.”
“그렇군.”
“강우 너도 갈 거지?”
물어볼 것도 없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만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천소연까지 합류한 강우 일행은 레드로즈 길드에서 준비한 비행기를 타고 하얼빈으로 향했다.
“내가 태워다 줄 수도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에키드나가 옷깃을 당겼다.
강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만 먼저 간다고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다른 대형 길드에서도 지원 병력을 하얼빈 쪽으로 보냈다고 들었다.
전략 회의는 아마 그 모든 병력이 도착한 후에나 이루어질 것이다.
“하아. 하필 아버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천소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버님이 없으시니 저희 숙부님이 대신 회의를 주도하실 텐데… 숙부님이 좀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으시거든요.”
“숙부?”
“예. 검귀 천무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니.”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 때문에 많이 유명하지는 않지만 중국 내에서는 손에 꼽히는 무인이에요. 천검문의 부문주시기도 하고요.”
“흠. 너보다도 천검문 내에서 영향력이 큰 거야?”
“부끄럽지만… 그 말이 맞아요.”
천소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천무진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강우는 느긋한 표정으로 등받이에 기댔다. 걱정은 없었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되도록 만들 뿐이었다.
* * *
하얼빈까지의 거리는 얼마 멀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강우 일행은 중국 측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하얼빈 시내에 있는 중국 플레이어 관리소로 향했다.
‘여기도 만만치 않네.’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동아시아 최강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하얼빈에 위치한 플레이어 관리소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베이징에 위치한 자금성을 연상시키는 중국풍 성이 위치해 있었다.
마치 무협 소설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웅장한 건축물.
강우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플레이어 관리소 안으로 들어갔다.
“응?”
“저기서 다들 뭐 하는 거야?”
입구로 들어서 회의실로 향하고 있던 강우 일행의 눈에 거대한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차연주가 빠르게 그 얼굴들을 살폈다.
“온누리 길드랑 사나레 길드네.”
한울 길드와 미르 길드가 공중분해 되면서 3대 길드가 되어버린 대형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차연주는 입구 앞을 신경질적으로 돌아다니는 중년 여인에게 다가갔다.
“현주 아줌마, 무슨 일이야?”
“내가 어딜 봐서 아줌, 아, 연주 너구나.”
정현주. 수준 높은 힐러로 구성된 사나레 길드의 마스터였다.
후덕한 인상의 그녀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것들이 아주 정신이 나갔어. 사람들을 불러 놓고 지금 뭐 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네.”
“왜 그러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회의에 참여하지 말고 나중에 지시대로 움직이라고 하잖니?”
“뭐라고?”
차연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전략 회의에 참여하지 말고 지시에 따라만 움직이라니.
막말로 말해서 한국인들을 싹 다 최전방에 배치하더라도 그에 따라 움직이라는 의미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자기들이 무슨 상관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지시에 따라 움직이라는 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차연주는 살기를 피어 올리며 회의실의 문으로 향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차연주를 막아섰다.
“꺼져.”
“천무현 님이 회의 중이십니다. 지나갈 수 없습니다. 회의 결과는 나중에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중국인 플레이어들이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냐?”
“천무현 님께서는 지시에 따르지 않을 시 중한 동맹에 대한 재검토까지 고려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들이 진짜….”
차연주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끓어올랐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이 주변을 짓눌렀다.
“…제기랄.”
차연주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결국 그녀는 힘을 거뒀다.
중국. 그들이 괜히 동아시아 최강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함부로 그들을 건드리기는 힘들었다.
차연주를 대신해 천소연이 나섰다.
“지금 뭐 하시는 짓이죠? 이분들은 악마들의 침공을 막기 위해 힘을 빌려주시러 오셨습니다. 어서 비키세요.”
“죄송합니다. 천무현 님께서 회의가 끝날 때까지 절대 들여보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 지금 장난하는 건가요? 아버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천무진 님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는 천무현 님의 명령이 우선입니다.”
“…….”
천소연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몸을 돌리며 강우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비상 연락망을 통해서 아버님에게 지금 바로 연락을 넣….”
“아, 괜찮아.”
강우는 느긋한 태도로 그녀를 말렸다.
차연주와 천소연은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이대로 기다리실 생각이신가요?”
“그럴 리가.”
“예? 그렇다면 어떻게….”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강우가 문 쪽으로 다가가자 입구를 막아서던 두 명의 중국인이 무기를 빼들었다.
“거기서 더 움직….”
강우가 손을 움직였다.
두 명의 머리를 잡은 강우는 그대로 회의실의 문을 향해 두 사람을 집어던졌다.
-콰아아앙!
문이 박살나며 회의실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천검문을 중심으로 여러 중국 대형 길드가 모여 있었다.
“이게 무슨….”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문 근처에 앉아 있던 근육질 거한이 몸을 일으켰다.
“어떤 버러지가 감히 신성한 회의를 방해하느냐!”
그는 흉악한 살기를 피어 올리며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사람 머리만 한 주먹이 강우를 향해 휘둘러졌다.
랭커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유형화 된 마력이 담긴 주먹.
-턱.
“어?”
강우는 주먹을 가볍게 잡았다.
거한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붙잡은 주먹을 뒤로 당겼다.
거한의 몸이 쓰러지듯 앞으로 기울어졌다.
강우는 거한의 머리를 움켜쥐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털 하나 없는 민머리인 탓에 순간적으로 손이 미끄러졌다.
‘역시 대머리가 생존력이 좋네.’
그들은 모근을 버림으로써 힘을 얻었다.
강우는 머리를 대신해 거한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콰앙!
목덜미를 움켜잡은 채, 머리를 그대로 테이블에 내려찍었다.
폭음과 함께 단단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회의실 테이블이 박살 났다.
강우는 방금 일어선 거한이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끌어 앉았다.
“…….”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 안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지 않는지 입을 쩍 벌린 채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의자에 앉은 채 느긋이 다리를 꼬았다.
“회의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