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6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64화
빛날배 (1)
“크읏….”
“일어났냐.”
김시훈의 옆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그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떠진 눈이 강우를 향했다.
“형, 님?”
김시훈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쯧,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 나다, 인마.”
“혀, 형님! 크윽!”
다급히 몸을 일으키던 김시훈이 배를 부여잡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가볍게 손을 들어 김시훈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가만히 누워있어. 상처가 완전히 낫지는 않았으니까.”
재생의 권능은 몸을 백 퍼센트 치료하지는 못했다.
외상 자체는 치료할 수 있더라도 쌓인 피로와 내부의 데미지까지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상을 입었으니 당장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게 왜 멍청하게 계속 싸우냐고. 적당히 때를 봐서 도망친 다음에 시간을 벌어야지. 설아가 나한테 연락한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하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뭐, 쉽게 도망치기는 힘들었겠지만.’
적의 숫자는 하나가 아닌 셋.
아마 현실적으로는 도망칠 기회를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울분이 치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보다 악마들은….”
“두 놈은 죽었고, 한 놈은 도망쳤다.”
정확히는 도망치도록 풀어줬다.
“아.”
김시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번에도 전….”
“뭔 말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은데, 오글거리니까 입 닥치고 있어.”
“…….”
“괜히 자책하면서 감성 팔려고 하지 마, 개찌질해 보이니까.”
“크, 크흠.”
“아주 그냥 혼자서 똥폼이란 똥폼은 다 잡아요. 누가 보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줄 알겠다.”
“혀, 형님!”
김시훈이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소리쳤다. 어지간히 창피한 모양.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혼자 분위기 잡으면서 똥 싸지 말고 그냥 조용히 누워 있어.”
“뭐, 뭔가 평소의 형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랄하기 짝이 없는 그의 말에 김시훈은 끄응, 침음을 삼켰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냐.”
평소 김시훈을 대하는 말에 비해 조금 신랄했던 건 사실.
하지만 그의 원래 말투는 이쪽에 가까웠다.
“강우 씨!”
“강우 형님! 괜찮소?!”
뒤늦게 달려온 한설아와 강태수. 그리고 에키드나의 모습이 보였다.
“응?”
그들 옆에 따라오는 금발의 중년 여인과 그녀의 품에 안긴 가이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레이스와 가이아였다.
“여긴 어떻게….”
“그녀는 내가 불렀네.”
이어지는 목소리.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천무진을 비롯한 차연주, 백화연 등의 몬스터 토벌 조가 있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천무진이 김시훈에게 다가갔다. 김시훈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이내 침음을 삼키며 쓰러졌다.
천무진이 그의 몸에 손을 올렸다.
“내상이 심하군.”
그는 눈을 감은 채 김시훈의 몸 안으로 내공을 불어 넣었다.
고통에 일그러졌던 김시훈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강우는 김시훈을 치료하고 있는 천무진을 대신해 차연주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희들이 가이아 씨랑 그레이스 씨를 부른 거야?”
“맞아. 정확히는 천무진 아저씨가 불렀어.”
“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디언즈는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비밀조직이었지만 각국의 수뇌부나 월드 랭커 정도라면 그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천무진은 중국의 수뇌부이자 동시에 월드 랭커이니 가이아와 연락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 강우 씨. 악마들이 시훈 씨를 습격했다고 들었는데 시훈 씨는 괜찮으신가요?”
가이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이기에 김시훈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상처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악마들도 제가 물리쳤고요.”
“음. 근데 그 습격했다는 악마들의 시체는 어디 있어?”
주변을 살피던 그레이스가 물었다.
막힘없이 답했다.
“죽이고 나서 얼마 지나자 몸이 검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오리악스도 그렇게 됐지.”
차연주가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이상하네. 내가 악마를 잡았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당연했다. 악마는 죽는다고 해서 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지 않으니까.
오리악스가 가루가 되어 흩어진 것처럼 보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강우가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기 때문.
‘하지만.’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악마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아직 악마에 대해 잘 모르니까요.”
“그건 그렇지.”
악마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은 불과 몇 년.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는 이상 되는 대로 설정을 가져다 붙여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설정 짜기 얼마나 좋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악마는~ 이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얼버무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한 일이란 말인가.
“그보다 천무진 님. 악마들이 마을을 습격한 것을 보니….”
“오늘 찾았던 흔적이 악마교의 것이 확실한 것 같소.”
가이아가 한숨을 내쉬며 천무진을 향해 물었다.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눈이 빛났다.
“흔적을 찾으셨다고요?”
“그렇다네. 검룡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 악마교로 보이는 흔적을 찾았네.”
“사실 제가 이곳에 온 건 흔적을 발견했다는 천무진 님의 연락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던 도중에….”
“검룡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럼 애초에 가이아와 그레이스가 이곳에 온 이유가 시훈이 때문이 아니었군.’
어쩐지 두 사람이 지나치게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김시훈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부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면 말이 됐다.
‘그나저나.’
천무진에게 물었다.
“흔적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습니까?”
“그 악마교가 사용하는 악마 소환 마법진 있지 않나? 그걸 찾았네.”
“주변에 그 만주 전쟁에 봤던 이상한 몬스터들도 있었어.”
차연주가 다가왔다. 그녀는 손에 든 물건을 강우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마법진 중앙에 이것도 있더라고.”
“이건….”
역십자가 형태의 검은 말뚝.
강우의 표정이 굳었다.
‘균열의 씨앗.’
악마교가 가이아 시스템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물건.
‘상태를 보니 박아 넣은 지 얼마 안 됐어.’
먼지 하나 없이 말끔했다.
차연주가 오면서 일부러 말뚝을 닦았을 리도 없으니 근처에 균열의 씨앗을 심은 악마교가 있다는 의미.
“아마 이것 때문에 몬스터들의 습격 소동이 일어난 모양이더라고.”
“주변 몬스터들이 평소보다 훨씬 흉포해져 있는 상태였다.”
차연주의 말에 이어 백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내상을 치료받던 김시훈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마을을 습격한 것도 악마교의 짓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시훈 수호자님.”
‘아니야.’
강우는 표정을 굳힌 채 작게 고개를 저었다.
말파스, 페넥스, 할파스.
방금 전에 상대했던 세 악마들을 떠올렸다.
‘놈들은 악마교와 연관이 없어.’
그들은 루시퍼의 하수인. 에르노어 대륙에서 온 악마들이었다.
지구에 있는 악마교와는 연관점이 없었다.
‘하지만.’
균열의 씨앗과 마물들, 소환 마법진까지.
그것을 루시퍼의 하수인들이 한 일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두 사건을 전혀 연관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설은 하나였다.
‘악마교가 움직였다.’
루시퍼의 하수인들은 중간에 우연히 끼어든 불청객에 불과했을 뿐.
몬스터들을 마물로 바꿔 토착민들을 습격했던 것은 악마교의 짓이었다는 것.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강우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으! 이걸 또 이렇게 해주시나요?!’
물가에 미끼를 뿌려 놓은 채 루시퍼가 낚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그런데 악마교가 그사이 심심하지 말라고 알아서 튀어 올라 낚싯배에 떨어진 기분.
“소환 마법진이 한 개가 아니었던 거로 봐서는… 저번처럼 대규모 소환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악마교니이이이임!’
주먹이 불끈 지어졌다.
광대가 절로 승천했다.
마기 스텟 130.
어떤 방법으로 도달해야 할까 고민하던 것을 한 번에 날려버려 주는 맞춤형 솔루션.
악마교가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까지 어디 있으시다가 이제 오셨습니까!’
사실, 이제 슬슬 악마교가 움직일 때가 되기는 했다.
균열의 씨앗을 뿌린 후로 오랫동안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타이밍이 워낙 공교롭다 보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쁜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도 당연.
그것도 8차 각성 특성을 개화하기까지 딱 한 걸음 남은 상황에서 그들이 대규모 소환을 준비해주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균열의 씨앗 계획이 쫄딱 망해버려 악마교가 잠적해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간 그들이 일어서리라는 것을,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세계를 어둠에 잠기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저는 악마교님들이 해내 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떤 악마를 소환할지, 얼마나 많은 악마를 소환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대공이라도 부활시키지 않은 이상 강우가 상대하기 곤란한 악마는 없었다.
‘그리고 대공일 확률은 거의 없지.’
오리악스 때와 같은 소환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고 했다.
현재 구천지옥에는 대공이 존재하지 않으니 적어도 ‘소환’으로는 대공을 불러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에르노어 대륙에 있는 루시퍼나 혹시 다른 차원에 떨어진 대공들을 소환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악마교가 구천지옥의 악마, 마물들만을 소환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낮았다.
즉, 악마교 셰프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코스요리를 걱정 없이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
‘악마교님들이 주신 도시락의 맛…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악마교의 크나큰 은총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찬양했던 티리온에 대한 경외심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좀팽이 자식.’
지난 만 년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빛에 신념을 바치라니 뭐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는 막상 세계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진정한 영웅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위대한 악마교님들처럼 아낌없이 퍼주면 뭔가 덧난다는 말인가.
울분이 솟아올랐다.
아니, 이쯤 되니 그의 빈자리에 눈물을 글썽였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
‘내가 섬겨야 할 존재는 빛이 아니었어.’
레이날드라는 똥을 던진 쓰레기를 찬양할 때가 아니었다.
강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하늘 높이 올렸다.
날이 저물며 하늘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부터 내가 섬길 존재는 악마교다!’
빛은 날 배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