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7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71화
빛의 용사 오강우 (3)
“죄송합니다. 언젠간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결국 이렇게 전하게 되네요.”
“자,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이아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인 강우 씨가 어떻게 지옥의 마왕이 될 수 있었는지… 사탄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건 또 무슨 얘기인지….”
“처음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5년 전, 격변의 날. 저는 검은색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예…?”
“그게 무슨.”
“저도 왜 제가 지옥에 떨어졌는지는 모릅니다.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그날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
침묵이 흘렀다.
강우의 말이 이어졌다.
“플레이어도 아닌 그저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던 전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죠. 그러던 중 지옥의 마기를 몸 안에 받아들였고 그 이후….”
“악마가, 되신 거군요.”
가이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를 몸 안에 받아들인 존재는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마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이지를 상실한 마물이 되거나….
악마로 변했다.
“그렇습니다. 악마가 된 이후, 살기 위해서 계속해서 싸웠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격변의 날 이후 5년이 지났을 뿐이잖아.”
차연주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강우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구에서는 5년이 지났겠지. 하지만 지옥에서는 그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어.”
“대체 지옥에서 얼마나 보냈길래 그런 말을….”
“만 년.”
“뭐?”
“난 지옥에 만 년을 갇혀 있었어.”
“…….”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 년.
상상할 수도 없이 아득한 시간.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이다. 마왕님께서는 만 년 동안 일천부터 구천의 지옥을….]“발록. 조용히 하고 있어.”
[명을 받들겠습니다.]이번에 발록이 내뱉은 말은 도움이 됐다.
강우가 지옥에서 만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증인의 등장에 술렁임이 일었다.
차연주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진짜야? 지옥에서 만 년을 보냈다고?”
“그래.”
“그리고… 지옥의 지배자가 됐다고?”
“한때는, 말이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자신이 5년 전 격변의 날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 만 년의 시간을 지옥에서 보내며 구천지옥을 지배하는 마왕이 됐다는 것.
여기까지는 아무 거짓도 보태지 않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거짓말은.’
1%의 거짓을 섞으며 이뤄지는 것이다.
강우는 머릿속에 구상한 ‘스토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구천지옥에는 ‘대공’이라는 강력한 악마들이 있어. 나는 지옥에서 대공들과 싸우며 그들을 억누르고 있었지.”
“억누르고 있었다고?”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지구를 넘보고 있었으니까.”
“…….”
“특히 그중에 사탄이 가장 지구에 대한 야욕이 심했어.”
“그, 그렇다면 강우 씨는 대공들이 지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마왕이 되신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과장된 설정은 금물.’
지나칠 정도로 정의롭거나, 이타적이어서는 안 됐다.
인간의 기본적인 관념을 벗어난 설정은 스토리의 개연성을 망친다.
“전 그렇게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마왕은 악마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싸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앉게 된 자리입니다.”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태어나고 자란 세계를 침범하려는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구에 대한 추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사탄이 지구에 왔다는 얘기는….”
“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주먹을 움켜쥐며,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 한 번 잡아주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연출.
가늘게 몸을 떨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사탄에게 패배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해(魔海)를 각성해 666가지의 권능을 가지게 된 그를 이길 수는 없었죠.”
“아….”
“사탄은 제가 지닌 힘을 빼앗고, 마왕의 자리를 찬탈했습니다. 그리고 세력을 규합하여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고, 대공들을 이끌고 지구로 넘어갔습니다.”
“…….”
“저는 사탄의 뒤를 따라 지구에 왔습니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탄을 막기 위해서.”
가이아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혼란스럽겠지.’
물론, ‘사탄’이라는 악마와 자신이 동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제까지 강우가 만들어 놓은 알리바이가 너무 확실했다.
하지만 사탄과 강우가 다른 존재라는 것과는 별개로, 오강우라는 ‘악마’의 말을 신뢰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는.’
믿음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살지 말지 고민하는 물건을 눈앞에 두고 옆 사람이 이 물건 좋다며, 사는 게 좋다며 부추기면 그에 자기도 모르게 편승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바람잡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흐름을 만든다.’
김시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흐릿하게 변했다.
[종속의 권능이 발현되었습니다.] [사역마의 행동에 대한 지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저는 형님의 말을 믿습니다.”
“기, 김시훈 수호자님?”
가이아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김시훈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 씨. 이제까지 형님이 해왔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
“만약 형님이 악마의 편이라면 저희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싸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그렇지만….”
가이아는 망설였다.
김시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악마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저도 강우 씨를 믿어요.”
그 다음으로 나온 것은 한설아.
그녀는 강우를 바라보며 애잔한 눈빛을 보냈다.
“처음에 강우 씨가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지나치게 좋아하시기에, 솔직히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한설아가 손을 뻗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강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토록,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홀로 견뎌 오신 거였군요.”
그녀의 눈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그녀는 모른다. 하지만 처음 강우의 반응을 생각했을 때, 그곳이 어떤 곳이지 어림잡아 상상할 수는 있었다.
‘얼마나,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강우를 만나고, 가장 오랫동안 그와 함께 있었던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강우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래서, 그런 쓸쓸한 눈을 하고 있었던 거야.’
가끔씩 강우에게서 보였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 눈빛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 그래도 설아 너를 만난 이후로 적어도 외로웠던 적은 없었으니까.”
강우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마주잡았다.
‘이건 생각 못했는데.’
한설아까지 이렇게 그를 옹호하며 나설 줄은 생각지 못한 일.
하지만 어찌됐든 그녀의 지원사격이 김시훈을 통해 만들어진 ‘흐름’을 더욱 크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서 한 번 꼬아줘야지.’
흐름의 편승해서 기다려서는 안 됐다.
연애에서 밀당이 중요하듯, 거짓말에도 밀고 당기는 타이밍이 필요했다.
강우는 손에 든 흰색 가면을 가이아에게 내밀었다.
“사정이 어찌 됐든, 제가 이제까지 가이아 씨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의 손에 가면을 쥐어주었다.
“오늘 부로, 전 가디언즈를 탈퇴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눈앞에도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아….”
“혀, 형님!”
“강우 씨 그, 그게 무슨 소리세요!!”
또 한 번의 폭탄 발언에 경악이 퍼졌다.
김시훈은 종속의 권능으로 조종한 것이 아님에도 다급히 그에게 다가왔고, 한설아는 눈물을 흘릴 기세로 소리쳤다.
그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밝힌 천소연은 말할 것도 없었고 강태수 또한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허, 헛소리 하지 마 이 자식아! 내, 내가 너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차연주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집중 된 것은 가이아였다.
“강우 씨….”
가이아는 그가 내민 가면을 슬픈 표정으로 쓰다듬으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강우 씨를 믿어도 될까?’
강우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만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몇 개월 정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오강우’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일들은 많았다.
‘강우 씨는.’
그는 사탄이 알렉을 죽이고 김시훈의 목숨을 노렸다는 것에 대해 그 누구보다 분노했다.
악마교의 사악한 계략을 눈치 채고 그를 막으려 애썼다.
사탄에게 약탈된 창고를 바라보며 안일함에 빠져 있었던 가디언즈를 일깨웠다.
레이날드의 위험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으며, 그의 죽음에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
좌절과 절망에 빠질 뻔한 자신에게 언제나 뼈있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 강우 씨를….’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가이아는 그가 준 새하얀 가면을 움켜쥐었다.
가녀린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을, 믿겠습니다.”
“…가이아 씨.”
“당신이 악마이건, 마왕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이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 어떤 어둠도 강우 씨가 지닌 진정한 빛을 가리지 못합니다.”
영웅신 티리온이 그를 선택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이.
‘티리온 님이 강우 씨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거야.’
레이날드를 통해 티리온의 기운을 느꼈을 때, 그가 얼마나 마(魔)를 증오하는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티리온은 강우를 선택했다.
‘모르셨을 리는 없어.’
강우와 연결된 순간, 그의 정체에 대해서 티리온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강우의 몸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강우 씨가 지닌 진정한 빛을 알아차리신 거야.’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강우 씨. 부디 가디언즈에 남아주세요. 저희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가이아가 가면을 다시 내밀었다.
강우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녀에게서 가면을 다시 받아들였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앗!!!
강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검은 마기가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아.”
눈부신 광휘가 쏟아지는 강우의 몸.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반드시, 가디언즈와 함께 이 세계를 구하겠습니다.”
굳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
광휘에 물든 강우는 새하얀 가면을 얼굴에 썼다.
어둠에서 태어나, 빛이 된 존재.
악마의 육체를 가지고도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헌신하는 영웅.
빛의 용사 오강우의 탄생이었다.
‘연출 지리고요~!!’